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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다음은 무엇인가?』(1932) 발췌: 사회파시즘론 비판과 노동자 통일전선

인물레프 트로츠키, 하인리히 브뤼닝, 아돌프 히틀러, 오토 벨스, 에른스트 텔만, 이오시프 스탈린, 드미트리 마누일스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팔미로 톨리아티, 카를 라데크, 아우구스트 탈하이머, 하인리히 브란들러, 빌헬름 그뢰너, 빌헬름 프리크,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라브르 코르닐로프, 베니토 무솔리니, 그리고리 라스푸틴, 니콜라이 부하린, 장제스, 왕징웨이,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표트르 크라시코프, 블라디미르 레닌,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필리프 샤이데만, 후고 하제, 카를 카우츠키, 헤르만 레멜레, 하인츠 노이만, 루돌프 브라이트샤이트, 오토 바우어, 후고 우르반스, 베르너 히르슈, 루돌프 힐퍼딩 용어사회파시즘, 제3기 노선, 파시즘, 코민테른, 좌익반대파, 독일 사회민주당 (SPD), 독일 공산당 (KPD), 독일 공산당 반대파,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철의 전선, 제2인터내셔널 사건나치 집권과 수권법

제1장 사회민주당

「철의 전선」[1]은 본질적으로, 머릿수로는 막강한 사회민주당계 노동조합과, 인민 속에서 모든 발판과 신뢰를 잃어버린 부르주아 「공화파」의 무력한 그룹들이 맺은 연합이다. 죽은 자들은 싸움에는 쓸모가 없지만 산 자들이 싸우는 것을 방해하기에는 충분하다. 부르주아 동맹자들은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에게 노동자 조직에 씌운 재갈 노릇을 한다. 투쟁, 투쟁 하지만 그건 그냥 하는 말일 뿐이다. 결국은 하느님이 도우셔서 싸우지 않고 넘어가게 될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정말로 말에서 행동으로 넘어갈 결심을 하겠는가? 자기네 사회민주당원들은 한 번도 그런 결심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들이라고 남보다 못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위험이 닥칠 경우에 사회민주당은 「철의 전선」이 아니라 프로이센 경찰에 희망을 건다. 기만적인 계산이다! 경찰관이 상당수 사회민주당 노동자 가운데서 뽑혔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여기서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자본주의 국가에 복무하는 경찰관이 된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부르주아 경찰관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이 경찰관들은 민족사회주의 대학생들보다 혁명적 노동자들과 훨씬 더 많이 싸워야 했다. 이런 학교는 헛되이 지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정부는 바뀌어도 경찰은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민주당의 토론 기관지 『다스 프라이에 보르트』(이 무슨 한심한 잡지인가!)의 신년호 기사는 「관용」 정책의 숭고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경찰과 국가방위군에 맞서서는 히틀러가 결코 권력을 잡을 수 없다. 그런데 국가방위군은 헌법상 공화국 대통령에게 속해 있다. 그러므로 헌법에 충실한 대통령이 국가의 수반으로 있는 한 파시즘은 위험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 때까지 브뤼닝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 그래야 의회주의 부르주아지와 손잡고 헌법을 지키는 대통령을 뽑아 앞으로 7년 동안 더 히틀러가 권력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이 기사의 내용을 한 치도 어김없이 옮겼다[2]. 수백만 명을 (사회주의로!) 이끈다는 대중정당이, 지금 송두리째 흔들리는 독일에서 어느 계급이 권력을 쥐게 될지는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력에도, 파시즘의 돌격대 대열에도, 심지어 국가방위군의 구성에도 달려 있지 않고, 바이마르 헌법의 순수한 정신이 (장뇌와 나프탈렌을 넉넉히 쳐서) 대통령궁에 모셔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바이마르 정신이 어떤 상황에서 베트만홀베크와 함께 「필요 앞에 법은 없다」고 인정한다면? 만일 바이마르 정신의 덧없는 껍데기가 나프탈렌과 장뇌에도 불구하고 하필 가장 곤란한 순간에 바스러져 버린다면? 만일… 이런 질문은 끝이 없다.

개량주의 정치가들, 이 능란한 장사꾼들, 닳고 닳은 모사꾼과 출세주의자들, 노련한 의회 공작가와 장관 자리 공작가들은, 사태의 흐름이 그들을 익숙한 영역에서 내던져 큰 사건 앞에 세우자마자, 이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찾을 수 없으니 하는 말이지만, 완전한 바보임이 드러난다.

대통령에 대한 희망이란 곧 「국가」에 대한 희망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파시스트 소부르주아지(두 진영을 합치면 독일 국민의 압도적 다수다)의 충돌이 다가오는 마당에, 『포어베르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야경꾼을 불러 도와 달라고 한다. 「국가여, 손을 써라!」(Staat, greif zu!) 이것은 이런 뜻이다. 「브뤼닝이여, 우리가 노동자 조직의 힘으로 방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 마시오. 그렇게 되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들고일어날 것이고, 운동은 당 집행부의 대머리들을 넘어 자라날 것이오. 반파시즘으로 시작한 운동이 공산주의로 끝날 것이오.」

이에 대해 브뤼닝이 입을 다무는 편을 더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경찰력으로 파시즘을 다스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럴 수 있다 해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오. 국가방위군을 파시스트에게 맞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국가방위군을 쪼개는 일이고, 어쩌면 국가방위군 전체를 나에게 등 돌리게 하는 일이 될 것이오. 그러나 무엇보다, 관료 기구를 파시스트에게 겨누는 것은 노동자들의 손을 풀어 주고 그들에게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오. 그 결과는 바로 당신들 사회민주당원들이 두려워하는 것, 그러니 나는 두 배로 두려워하는 것이 될 것이오.」

국가기구, 판사, 국가방위군, 경찰에 사회민주당의 호소는 그들이 노리는 것과 정반대의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가장 「충직하고」, 가장 「중립적이며」, 민족사회주의자들과 가장 덜 엮인 관리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회민주당 뒤에는 수백만 명이 있다. 그들 손에는 신문, 의회, 시 자치단체라는 막대한 수단이 있다. 걸려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목숨이다. 파시스트와 싸우는 데서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 힘센 양반들이 관리인 나에게, 내일이면 그 지도자들이 내 상관이 될지도 모르는 수백만 당원의 정당이 공격해 오니 구해 달라고 한다. 사회민주당 양반들의 사정이 나빠도 단단히 나쁜 모양이다. 아주 가망이 없다… 이제 관리인 나도 내 목숨을 생각할 때다.」 그 결과 어제까지 망설이던 「충직하고」 「중립적인」 관리는 틀림없이 몸을 사리게, 다시 말해 자기의 내일을 지키려고 민족사회주의자들과 줄을 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수명을 다한 개량주의자들은 관료의 경로로도 파시스트를 위해 일한다.

부르주아지에게 얹혀사는 사회민주당은 비참한 사상적 기생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부르주아 경제학자의 생각을 받아 쓰고, 어떤 때는 마르크스주의의 부스러기를 써먹으려 한다. 힐퍼딩은 공산당이 히틀러의 국민투표에 참여하는 데 반대한 내 소책자의 논의를 인용하고 나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브뤼닝 정부에 대한 사회민주당의 전술을 설명하는 데 이 몇 줄에 덧붙일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레멜레와 탈하이머가 나선다. 「보라, 힐퍼딩이 트로츠키에게 기대고 있다.」 파시스트 황색 신문이 나선다. 그 대가로 트로츠키는 비자를 약속받았다. 스탈린파 기자가 나서서 파시스트 신문의 보도를 모스크바로 타전한다. 불쌍한 라데크가 앉아 있는 『이즈베스티야』 편집국이 그 전보를 싣는다. 이 고리는 짚어 둘 만하다. 그리고 그냥 지나갈 만하다.

더 진지한 문제로 돌아가자. 히틀러가 브뤼닝과 싸우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부르주아 체제 전체가 힐퍼딩 일당이 이끄는 노동계급의 절반의 등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이 계급 배신의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히틀러는 지금의 힘에 결코 이르지 못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브뤼닝 정부를 구명줄처럼 붙잡았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민주당과 함께 브뤼닝을 쓰러뜨렸다면, 그것은 아주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어쨌든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의 머리를 넘어 자라났을 것이다. 힐퍼딩은 자기 배신의 변명을 우리의 비판에서 찾으려 한다. 우리의 비판은 공산주의자들이 힐퍼딩의 배신을 하나의 사실로 고려하라고 요구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힐퍼딩에게는 트로츠키의 말에 「덧붙일 것이 아무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그는 무언가를 덧붙인다. 세력 관계가, 사회민주당 노동자와 공산당 노동자가 행동을 맞추는 경우에도 「투쟁을 밀어붙여 적을 쓰러뜨리고 권력을 잡을」 가능성은 없는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지나가듯 증명도 없이 던진 이 말에 문제의 무게중심이 있다. 힐퍼딩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가 인구의 다수이자 사회의 결정적 생산력인 오늘날의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함께 싸워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권력을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전쟁 전에는 자본주의가 저절로 자라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라며 사회민주당도 그렇게 자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전쟁은 이 과정을 끊어 버렸고, 세상의 어떤 힘도 그것을 되살리지 못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부패란, 권력 문제가 지금의 생산력을 토대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단말마를 질질 끄는 사회민주당은 경제 문화의 더 깊은 쇠퇴, 프롤레타리아트의 해체, 사회의 괴저로 이끌 뿐이다. 그 앞에 다른 전망은 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빠질 것이고 모레는 내일보다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은 이제 미래를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들은 망할 운명에 놓인 지배계급의 모든 악덕을 지니고 있다. 경솔함, 의지의 마비, 말로 사건을 피해 가려는 버릇, 기적을 바라는 마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타르노의 경제 연구는 지금 어떤 라스푸틴의 위안을 주는 계시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사회민주당원과 공산주의자가 함께해도 권력을 잡을 수 없다니. 바로 여기에 그가 있다. 철두철미 비겁하고 거만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대중에 대한 불신과 경멸에 절어 있는 교양 있는(gebildet) 소부르주아가. 사회민주당의 배신과 공산당의 오류가 수백만 명을 무관심의 진영으로, 심지어 민족사회주의의 진영으로 밀어냈는데도,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합쳐서 약 40%의 표를 얻고 있다. 두 당이 함께 행동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중에게 새로운 전망이 열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힘은 헤아릴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40%에서 출발해 보자. 브뤼닝이나 히틀러가 이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가? 독일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이 세 집단, 곧 프롤레타리아트, 중앙당, 파시스트뿐이다. 그러나 교양 있는 소부르주아의 뼛속에는 이런 생각이 단단히 박혀 있다. 자본의 대표자는 20%의 표만 있어도 다스릴 수 있다. 부르주아지에게는 은행, 트러스트, 신디케이트, 철도가 있으니까. 하기야 우리의 교양 있는 소부르주아는 열두 해 전에 이 모든 것을 「사회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인가! 사회화 강령은 좋다. 그러나 수탈자의 수탈은 안 된다. 그건 볼셰비즘이니까.

우리는 위에서 세력 관계를 의회의 단면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일그러진 거울이다. 억압받는 계급의 의회 대표는 그 실제 힘을 지나치게 작게 보여 주고, 반대로 부르주아지의 대표는 무너지기 하루 전까지도 겉보기 힘의 가장무도회가 된다. 오직 혁명적 투쟁만이 모든 가리개 밑에서 실제 세력 관계를 드러낸다. 권력을 위한 직접적인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안에서의 사보타주와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와 그 밖의 온갖 배신에 마비되지만 않는다면, 의회에 나타난 것을 헤아릴 수 없이 넘어서는 힘을 펼친다. 역사의 값진 교훈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것도 단단히 잡은 뒤에도, 제헌의회에서 3분의 1이 안 되는 표를 가졌고 좌파 사회혁명당과 합쳐도 40%가 안 되었다. 그런데도 끔찍한 경제 파탄과 전쟁, 유럽 사회민주당, 무엇보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배신에도, 전쟁 뒤의 피로에서 온 반동과 테르미도르적 분위기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노동자 국가는 14년째 버티고 서 있다. 하물며 독일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사회민주당 노동자가 공산당 노동자와 함께 권력을 잡으려고 일어서는 순간, 과제는 10분의 9가 풀린 셈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하고 힐퍼딩은 말한다. 사회민주당이 브뤼닝 정부에 반대표를 던져 정부를 쓰러뜨린다면 그 결과는 파시스트의 집권일 것이다. 의회의 평면에서 보면 아마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의회의 평면에 있지 않다. 사회민주당은 혁명적 투쟁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할 때에만 브뤼닝 지지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브뤼닝 지지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이냐. 셋째 길은 없다. 사회민주당이 브뤼닝에 반대표를 던진다면 세력 관계가 단번에 바뀔 것이다. 말들이 뜻하지 않게 탁자 밑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의회의 체스판 위에서가 아니라, 혁명적 계급투쟁의 무대에서 말이다. 이런 전환이 일어나면 노동계급의 힘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가 될 것이다. 도덕적 요인은 계급투쟁에서, 특히 역사의 큰 전환점에서 결코 작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압의 도덕적 전류가 인민의 두꺼운 층을 한 겹 한 겹 꿰뚫고 지나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제 이 위대한 민족의 삶에 다른, 더 높은 방향을 제시할 사명을 띤 것이 자기, 오직 자기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히틀러 군대의 와해와 분해는 결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시작될 것이다. 물론 싸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쟁취하려는 굳은 의지와 대담한 공세가 있다면, 승리는 지금 가장 극단적인 혁명적 낙관론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쉽게 얻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모자란 것은 많지 않다. 사회민주당이 혁명의 길로 돌아서는 것이다. 1914~1932년의 경험을 겪고도 지도자들이 스스로 돌아서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모든 환상 가운데 가장 우스꽝스러운 환상일 것이다. 사회민주당 노동자의 다수는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돌아설 수 있고 돌아설 것이다. 그들을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부르주아 국가에 맞서는 전환일 뿐 아니라 자기 당 상층부에 맞서는 전환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말에 「덧붙일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의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는 또다시 우리 자신의 글에서 뽑은 인용문을 우리에게 들이대려 할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스탈린주의 관료의 정책이 오류의 사슬이라고 쓰지 않았던가? 히틀러의 국민투표에 공산당이 참여한 것을 낙인찍지 않았던가? 썼고 낙인찍었다. 그러나 우리가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 지도부와 싸우는 것은 바로 그 지도부가 사회민주당을 쳐부수지 못하고, 대중을 그 영향에서 떼어 내지 못하며, 역사의 기관차를 녹슨 제동장치에서 풀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고 오류를 저지르고 관료적 최후통첩주의를 휘두름으로써 스탈린주의 관료는 사회민주당을 보존하고, 그때마다 거듭 사회민주당이 다시 일어서게 해 준다.

공산당은 잘못 지도되고 있기는 해도 프롤레타리아적, 반부르주아적 정당이다. 사회민주당은 그 구성원이 노동자이지만 철두철미 부르주아 정당이며, 「정상적인」 조건에서는 부르주아적 목적의 관점에서 아주 능숙하게 지도되지만 사회 위기의 조건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당의 부르주아적 성격은 사회민주당 지도자들 스스로도 마지못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위기와 실업에 대해 타르노는 개신교 목사가 부의 죄를 말하듯 「자본주의 문명의 수치」에 관한 낡은 문구를 되풀이한다. 사회주의에 대해 타르노는 목사가 저승의 보상을 말하듯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말한다. 「9월 14일 이 유령(실업)이 투표함 곁에 서 있지 않았더라면, 이날은 독일 역사에서 다른 얼굴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라이프치히 당대회 보고)[3]. 사회민주당이 유권자와 의석을 잃은 것은 자본주의가 위기를 통해 자기의 참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위기는 「사회주의」 정당을 강하게 하기는커녕 약하게 만들었다. 위기가 상거래의 회전, 은행의 금고, 후버와 포드의 자신감, 모나코 대공의 수입 따위를 약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경기에 대한 가장 낙관적인 평가는 지금 부르주아 신문이 아니라 사회민주당 신문에서 찾아야 한다. 당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이보다 더 반박할 수 없이 보여 주는 증거가 있을까? 자본주의의 병이 사회민주당의 병을 뜻한다면, 다가오는 자본주의의 죽음은 사회민주당의 가까운 죽음을 뜻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에게 기대면서 부르주아지에게 봉사하는 당은, 계급투쟁이 가장 날카로워지는 시기에 무덤의 숨결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2장 민주주의와 파시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는 「파시즘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이, 그리고 부르주아지 독재의 의회적 형태와 공공연한 파시즘적 형태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자유주의적 구성」에 기대는 잘못된 견해와 결별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이 스탈린주의 철학의 요지는 아주 단순하다. 절대적 모순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모순 일반, 상대적인 모순까지 부정하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것은 속류 급진주의의 전형적인 오류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부르주아지의 지배 형태라는 분야에서조차 아무런 모순이 없다면, 두 체제는 그냥 일치해야 한다. 여기서 결론이 나온다. 사회민주당 = 파시즘.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사회민주당을 사회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이 맥락에서 「사회」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까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4].

그러나 사물의 본성은 집행위원회 전원회의의 결정으로 바뀌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그 모순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마르크스주의의 말로 하면, 화해할 수 없는 두 계급의 지배를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한 계급의 서로 다른 지배 체계를 뜻한다. 이 두 체계, 곧 의회민주주의 체계와 파시즘 체계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계급들의 서로 다른 조합에 기대고 있으며, 서로 날카롭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의회주의 부르주아 체제의 주된 대표자인 사회민주당은 노동자에게 기댄다. 파시즘은 소부르주아지에게 기댄다. 사회민주당은 대중적 노동자 조직 없이는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파시즘은 노동자 조직을 쳐부수지 않고는 자기 권력을 세울 수 없다. 사회민주당의 주된 무대는 의회다. 파시즘 체계는 의회주의의 파괴 위에 세워진다. 독점 부르주아지에게 의회 체제와 파시즘 체제는 자기 지배의 서로 다른 도구일 뿐이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이것 또는 저것에 기댄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에게도 파시즘에게도 어느 도구가 선택되느냐는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 그들의 정치적 생사가 걸린 문제다.

파시즘 체제의 차례가 오는 것은, 부르주아 독재의 「정상적인」 군사·경찰 수단이 의회의 가리개와 함께 사회를 균형 속에 붙들어 두기에 모자라게 될 때다. 자본은 파시스트 대리인들을 통해, 얼이 빠진 소부르주아 대중, 계급에서 떨어져 나와 타락한 룸펜의 무리, 금융자본 스스로 절망과 광란으로 몰아넣은 그 수많은 인간 존재들을 움직인다. 부르주아지는 파시즘에게 완전한 일을 요구한다. 내전의 방법을 허용한 이상, 여러 해 동안의 평온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파시스트 대리인들은 소부르주아지를 공성 망치로 써서 길 위의 모든 장애물을 부수며 일을 끝까지 해낸다. 파시즘의 승리는 금융자본이 지배와 행정과 교육의 모든 기관과 제도, 곧 군대를 포함한 국가기구, 시 자치단체, 대학, 학교, 신문, 노동조합, 협동조합을 곧바로 강철 집게로 움켜쥐는 데까지 이른다. 국가의 파시즘화란 통치 형태와 수법의 무솔리니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분야의 변화는 결국 부차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리고 주로, 노동자 조직을 쳐부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체 없는 상태로 만들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독자적으로 결정(結晶)되는 것을 막아야 할,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기관의 체계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바로 여기에 파시즘 체제의 본질이 있다.

민주주의 체계와 파시즘 체계 사이에 일정한 시기 동안 두 체계의 특징을 함께 지닌 과도 체제가 들어선다는 사실은 위에서 말한 것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 이것은 두 사회 체제가 바뀔 때의 일반 법칙이며, 서로 화해할 수 없이 적대하는 체제라도 마찬가지다. 부르주아지가 사회민주당과 파시즘 둘 다에 기대는 순간, 다시 말해 자기의 타협적 대리인과 테러적 대리인을 동시에 쓰는 순간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케렌스키 정부가 그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러했다. 그 정부는 반쯤은 소비에트에 기대면서 동시에 코르닐로프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화해할 수 없는 두 진영 사이에서 예외 법령이라는 균형 막대를 손에 들고 외줄을 타는 브뤼닝 정부가 그러하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의 이런 상태는 일시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은 사회민주당이 이미 자기 사명을 거의 다했지만, 공산주의도 파시즘도 아직 권력을 잡을 준비가 되지 않은 과도기를 나타낸다.

오래전부터 파시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이 개념을 그토록 널리 남용하는 데 여러 번 항의했다. 코민테른 제6차 대회 무렵에도 에르콜리[5]는 파시즘 문제에 대해 지금은 「트로츠키주의적」이라고 여겨지는 견해를 펼치고 있었다. 에르콜리는 파시즘을 가장 일관되고 끝까지 밀고 나간 반동 체계라고 규정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주장은 잔인한 테러 행위에, 살해된 노동자와 농민의 수가 많다는 데에, 널리 쓰인 갖가지 고문의 잔혹함에, 판결의 가혹함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중의 모든 독자적 조직 형태를 체계적으로 없애 버린다는 데 근거한다.」 여기서 에르콜리는 전적으로 옳다. 파시즘의 본질과 목적은 노동자 조직을 완전히 없애고 그것이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찰 수단만으로 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러기 위한 길은 하나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압력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약해진 순간에, 절망한 소부르주아 대중의 압력을 맞세우는 것이다. 바로 이 특수한 자본주의적 반동 체계가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들어갔다.

「파시즘과 사회민주당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문제도 같은 영역(파시즘과 노동자 조직의 화해 불가능성)에 속한다」고 에르콜리는 썼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지금까지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리 잡은 다른 모든 반동 체제와 뚜렷이 다르다. 파시즘은 사회민주당과의 어떤 타협도 물리치며, 사회민주당을 잔인하게 박해했고, 합법적으로 존재할 모든 가능성을 빼앗았으며,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코민테른의 지도 기관지에 실린 글이 이렇게 말했다! 그 뒤 마누일스키가 몰로토프에게 「제3기」라는 위대한 착상을 귀띔해 주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가 「혁명적 공세의 제1열」로 파견되었다. 권력 장악이 당면 과제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봉기 앞에서는 공산당을 뺀 모든 정당이 반혁명적이므로, 파시즘과 사회민주당을 구별할 필요는 더 이상 없었다. 사회파시즘론이 승인되었다. 코민테른 관리들은 무장을 바꾸었다. 에르콜리는 진리도 소중하지만 몰로토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서둘러 증명했고, 그리고… 사회파시즘론을 옹호하는 보고를 썼다. 「이탈리아 사회민주당은 아주 쉽게 파시즘화하고 있다」고 그는 1930년 2월에 선언했다. 아아, 공식 공산주의의 관리들은 그보다 더 쉽게 비굴해지고 있다.

「제3기」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으레 그렇듯 반혁명적이라고 선고되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전위가 비싼 값을 치른 혹독한 경험은 이 분야에서도 전환을 강요했다. 「제3기」는 은퇴했고, 몰로토프 자신도 코민테른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사회파시즘론은 제3기의 유일하게 익은 열매로 남았다. 여기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제3기에 자신을 묶은 것은 몰로토프뿐이지만, 사회파시즘에는 스탈린 자신이 얽혀 들었기 때문이다.

『로테 파네』는 사회파시즘에 관한 자기 연구의 제사로 스탈린의 말을 골랐다. 「파시즘은 사회민주당의 적극적인 지지에 기대는 부르주아지의 전투 조직이다. 사회민주당은 객관적으로 파시즘의 온건한 날개다.」 스탈린이 일반화하려 할 때 흔히 그렇듯이 첫째 문장은 둘째 문장과 모순된다. 부르주아지가 사회민주당에 기대고 있다는 것, 파시즘이 부르주아지의 전투 조직이라는 것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으며 오래전에 이미 말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것은 사회민주당도 파시즘처럼 대부르주아지의 도구라는 것뿐이다. 이때 사회민주당이 어떻게 또 파시즘의 「날개」가 되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저자의 다른 규정도 더 심오하지 않다. 파시즘과 사회민주당은 적이 아니라 쌍둥이라는 것이다. 쌍둥이도 지독한 적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동맹자들이 반드시 같은 날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스탈린의 구성에는 변증법은 말할 것도 없고 형식논리조차 없다. 이 구성의 힘은 누구도 감히 반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계급적 내용」의 차이가 없다고, 스탈린을 따라 베르너 히르슈가 가르친다(『디 인터나치오날레』, 1932년 1월).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은 「유기적 과정」의 성격을 띨 수 있다. 다시 말해 「점진적으로, 냉정한 길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류들이 우리에게서 놀라는 버릇을 없애 버리지 않았다면, 이 논의는 놀랍게 들렸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없다. 이것은 분명히 민주주의도 파시즘처럼 부르주아적 성격을 띤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쯤은 우리도 1932년 1월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진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지배계급은 다른 계급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 개량주의자들이 길들인 노동계급에 기댄다. 이 체계는 노동당 정부 아래서든 보수당 정부 아래서든 영국에서 가장 완성된 꼴로 나타난다. 파시즘 체제에서는, 적어도 그 첫 단계에서는, 자본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을 파괴하는 소부르주아지에게 기댄다. 이탈리아가 그렇다! 이 두 체제의 「계급적 내용」에 차이가 있는가? 지배계급만 놓고 묻는다면 차이는 없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서 모든 계급의 처지와 상호 관계를 본다면 그 차이는 아주 크다.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과 싸우면서, 자기의 보루, 자기의 기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거점, 곧 노동조합, 정당, 교육 클럽, 체육 단체, 협동조합 등을 세워 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 안에서가 아니라 혁명의 길로만 권력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이론으로도 경험으로도 똑같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혁명의 길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부르주아 국가 안에 노동자 민주주의의 거점 기지가 필요하다. 제2인터내셔널이 아직 진보적인 역사적 일을 하던 시대에 그 일은 바로 이런 기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파시즘의 기본적이고 유일한 목적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모든 제도를 밑바닥까지 파괴하는 것이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계급적 의미」를 갖는가, 갖지 않는가? 고명한 이론가들께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히르슈는 그의 스승들처럼 그 체제를 부르주아적이라고 부르고 나서(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소한 것 하나를 잊는다. 그 체제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차지하는 자리다. 그들은 역사 과정을 앙상한 사회학적 추상으로 바꿔치기한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사회학의 성층권이 아니라 역사의 땅 위에서 벌어진다. 파시즘과의 투쟁의 출발점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추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경험이 모여 있고 그 미래를 준비하는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의 살아 있는 조직이다.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이 「유기적」이고 「점진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모든 물질적 성과, 곧 일정한 생활수준, 사회 입법, 시민적·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그 성과를 얻어 낸 기본 도구, 곧 그 조직까지 뒤흔들림도 싸움도 없이 빼앗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냉정한 길로」 파시즘에 이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항복을 뜻한다.

베르너 히르슈의 이론적 논의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스탈린의 이론적 계시를 더 밀고 나가면서 동시에 지금 공산당의 선동 전체를 일반화한다. 그 선동의 주된 노력은 바로 브뤼닝 체제와 히틀러 체제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쏠려 있기 때문이다. 텔만과 레멜레는 지금 여기서 볼셰비키 정책의 정수를 본다.

문제는 독일에 그치지 않는다. 파시스트의 승리가 새로운 것을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지금 코민테른의 모든 지부에서 열심히 선전되고 있다. 프랑스 잡지 『볼셰비즘 노트』 1월호에서 우리는 이런 글을 읽는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실천에서 브라이트샤이트처럼 행동하면서, 사회민주당의 저 유명한 차악론을 받아들인다. 그 이론에 따르면 브뤼닝은 히틀러만큼 나쁘지 않고, 히틀러 밑에서보다 브뤼닝 밑에서 굶어 죽는 편이 덜 불쾌하며, 프리크보다 그뢰너에게 총을 맞는 편이 한없이 낫다.」 이 인용문이 가장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공정하게 말하면 충분히 어리석기는 하지만. 그러나 아아, 그것은 코민테른 지도자들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문제는 스탈린파가 두 체제를 속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교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브뤼닝 체제에 형식적 「민주주의」 잣대를 들이대면 결론은 분명하다. 그 자랑스럽던 바이마르 헌법에서 남은 것은 뼈와 가죽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것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문제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이것이, 부패하는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경찰 반동이 어디서 언제 파시즘 체제로 바뀌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유일하게 믿을 만한 잣대다.

브뤼닝이 히틀러보다 「나은지」(더 호감이 가는지?) 하는 문제는 솔직히 우리에게 별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 조직의 지도를 훑어보기만 해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독일에서 파시즘은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그 승리로 가는 길에는 아직 거대한 장애물과 힘이 버티고 있다.

지금의 브뤼닝 체제는 관료 독재 체제, 더 정확히 말하면 군사·경찰 수단으로 행사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다. 파시스트 소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조직은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 조직이 소비에트로 묶여 있다면, 공장위원회가 생산 통제를 위해 싸우고 있다면, 이중권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갈라져 있고 그 전위가 전술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정한 조건에서 파시즘에 결정적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막강한 노동자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히틀러를 권력에 다가서지 못하게 하고, 관료 기구에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준다.

브뤼닝 독재는 보나파르트주의의 희화다. 이 독재는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으며,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적 균형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낡은 균형이 곧 무너지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직접적으로는 작은 부르주아 소수에게만 기대고, 노동자들의 뜻을 거슬러 사회민주당의 관용을 받으며, 파시즘의 위협을 받는 브뤼닝은 법령으로 천둥을 칠 수는 있어도 실제 천둥을 칠 수는 없다. 의회의 동의를 얻어 의회를 해산하는 것, 노동자를 겨냥한 법령 몇 개를 내놓는 것, 그 그늘에서 잇속 몇 가지를 챙기려고 성탄 휴전을 선포하는 것, 집회 백 개를 해산하고 신문 열 개를 폐간하는 것, 시골 약사에게나 어울릴 편지를 히틀러와 주고받는 것, 브뤼닝의 힘이 닿는 것은 거기까지다. 그 이상을 하기에는 손이 짧다.

브뤼닝은 오늘은 아직 권력을 히틀러에게 넘길 결심을 하지 못하고 노동자 조직을 없앨 독자적인 힘도 없기 때문에 노동자 조직의 존재를 참지 않을 수 없다. 브뤼닝은 노동자의 승리를 죽도록 두려워하기 때문에 파시스트를 참고 그들을 비호하지 않을 수 없다. 브뤼닝 체제는 파국에 앞선 과도적이고 짧은 체제다. 지금의 정부가 버티는 것은 오직 주된 진영들이 아직 힘을 겨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앞에 있다. 싸움 전의 휴지, 힘을 공공연히 견주기 전의 휴지를 관료적 무력함의 독재가 채우고 있다.

「브뤼닝과 히틀러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현자들은 실제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조직이 아직 살아 있든 이미 부서졌든 상관없다. 이 겉보기에 급진적인 미사여구 밑에는 가장 비열한 수동성이 숨어 있다. 어차피 패배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스탈린파 잡지에서 인용한 글을 주의 깊게 다시 읽어 보라. 문제 전체가 누구 밑에서 굶는 것이 나은가, 브뤼닝 밑에서인가 히틀러 밑에서인가로 줄어든다. 우리는 어떻게, 어떤 조건에서 죽는 것이 나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를 묻는다. 우리의 결론은 이렇다. 브뤼닝의 관료 독재가 파시즘 체제로 바뀌기 전에, 다시 말해 노동자 조직이 짓밟히기 전에 총결전을 벌여야 한다. 부분적인 싸움을 펼치고 넓히고 날카롭게 함으로써 총결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올바른 전망을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아직 승리에서 멀리 떨어진 적을 승자로 선포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문제의 중심이 있다. 여기에 정세를 푸는 전략적 열쇠가 있다. 여기에 투쟁의 출발 진지가 있다. 생각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더구나 공산주의자라면 누구나, 브뤼닝과 히틀러가 같은 것이라는 스탈린주의 관료의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하찮고 썩어 빠졌는지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은 헷갈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대답한다. 당신들은 어려움 앞에서 놀라, 위대한 과제 앞에서 겁에 질려 부끄럽게도 헷갈리고 있다. 당신들은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고, 우리가 이미 패배했다고 선언한다. 당신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갈라져 있고, 개량주의자들 때문에 약해졌으며, 자기 전위의 동요 때문에 방향을 잃었지만, 아직 부서지지 않았고 그 힘은 다하지 않았다. 아니다,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는 막강하다. 그 혁명적 에너지가 행동의 무대로 길을 열 때, 가장 낙관적인 계산도 헤아릴 수 없이 뛰어넘게 될 것이다.

브뤼닝 체제는 준비 체제다. 무엇을 위한 준비인가? 파시즘의 승리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위한 준비다. 이 체제가 준비 체제인 것은 두 진영이 아직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브뤼닝을 히틀러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싸움 전의 처지를 패배 뒤의 처지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고, 패배를 미리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항복하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스탈린주의 관료도 이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히틀러가 자기 지옥의 포장도로를 깔 선한 의도가 아니라, 정책의 객관적 의미, 그 방향, 그 경향을 보아야 한다. 스탈린, 마누일스키, 텔만, 레멜레의 정책이 지닌 수동적이고 비겁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항복주의적이고 말만 앞세우는 성격을 끝까지 폭로해야 한다. 혁명적 노동자들이 이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진지의 열쇠는 공산당이 쥐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는 그 열쇠로 혁명적 행동으로 가는 문을 잠그려 하고 있다.

제3장 관료적 최후통첩주의

새로 생긴 사회주의노동자당(SAP)[6]의 신문들이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당 이기주의」를 비난할 때, 자이데비츠가 자기에게는 「계급 이익이 당 이익 위에 있다」고 다짐할 때, 그들은 정치적 감상주의에 빠지거나, 더 나쁘게는 감상적인 문구로 자기 당의 이익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쓸모없는 길이다. 반동이 「민족」의 이익을 계급 이익 위에 두라고 요구할 때,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동이 「전체」의 이익이라는 탈을 쓰고 착취 계급의 이익을 관철하고 있음을 밝힌다. 민족의 이익은 지배계급이나 지배를 노리는 계급의 관점에서가 아니고는 정식화할 수 없다. 계급의 이익은 강령의 꼴로가 아니고는 정식화할 수 없다. 강령은 당을 만들지 않고는 지킬 수 없다.

그 자체로 놓고 본 계급은 착취의 재료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 역할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즉자적 사회 계급에서 대자적 정치 계급이 되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당을 통하지 않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당은 계급이 자기의식에 이르는 역사적 기관이다. 「계급은 당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날것의 계급이 자기의식으로 나아가는 계급보다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틀렸을 뿐 아니라 반동적이다. 통일전선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데 이런 속물적 이론은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

계급이 자기의식으로 나아가는 운동, 곧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끄는 혁명적 당을 만들어 내는 일은 복잡하고 모순에 찬 과정이다. 계급은 동질적이지 않다. 계급의 여러 부분은 여러 길로, 여러 때에 자기의식에 이른다. 부르주아지는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 안에 자기 기관을 만들거나 있는 기관을 이용해, 노동자의 한 층을 다른 층과 맞세운다.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는 여러 당이 동시에 활동한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역사의 대부분 동안 정치적으로 갈라진 채로 남는다. 바로 여기서, 어떤 시기에는 유달리 날카롭게, 통일전선의 문제가 나온다.

공산당은 올바른 정책을 편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익을 표현한다. 공산당의 과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변혁은 그렇게 해서만 가능하다. 공산당은 노동계급 안팎의 다른 모든 당과 조직에 대해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정치적·조직적 독립을 지킬 때에만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이 기본 요구를 어기는 것은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대한 모든 범죄 가운데 가장 무거운 범죄다. 1925~1927년 중국 혁명이 파멸한 것은 바로 스탈린과 부하린이 이끈 코민테른이 중국 공산당을 중국 부르주아지의 당인 국민당에 들어가 그 규율에 복종하게 했기 때문이다. 국민당에 대한 스탈린의 정책의 경험은 지도자들이 혁명을 파멸로 이끄는 사보타주의 본보기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다. 동방을 위한 스탈린의 「노동자·농민 이원적 정당」론은 국민당과 함께한 실천을 일반화하고 정당화한 것이다. 이 이론을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조선에 적용한 것은 공산주의의 권위를 떨어뜨렸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발전을 여러 해 늦추었다. 본질적으로 배신적인 이 같은 정책은, 그만큼 뻔뻔하지는 않았지만, 1928년까지 미국과 영국과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펼쳐졌다.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든, 프롤레타리아트 발전의 어떤 단계에서든 공산당과 그 정책이 완전하고 무조건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좌익반대파의 투쟁은, 스탈린이 장제스, 왕징웨이, 퍼셀, 라디치, 라폴레트 등과 블록을 이루던 시기에 반대파와 스탈린 분파의 관계를 극도로 날카롭게 만들었다. 텔만과 레멜레도, 브란들러와 탈하이머도 이 투쟁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에 맞서 전적으로 스탈린 편에 섰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우리가 스탈린과 텔만에게서 공산당의 독자적 정책을 배울 일은 없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학교 계단을 오르듯 혁명적 자기의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쉼 없는 계급투쟁을 거쳐 나아간다. 싸우려면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대열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것은 한 사업장 안에서 벌어지는 부분적 경제 분쟁에도, 파시즘 격퇴 같은 「전국적」 정치 투쟁에도 똑같이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통일전선 전술은 우연하거나 인위적인 무엇, 무슨 교활한 책략이 아니다. 아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발전의 객관적 조건에서 전적으로 나온다.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맞서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 말고 다른 목적이나 과제를 갖지 않는다는 『공산당 선언』의 말은, 계급의 다수를 얻으려는 당의 투쟁이 전투 대열의 단결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결코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로테 파네』가 「계급 이익은 당 이익 위에 있다」는 말을 비난하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실제로 올바르게 이해된 계급 이익과 올바르게 정식화된 당의 과제는 일치한다. 이 역사철학적 주장에 머무는 한 『로테 파네』의 입장은 공격할 데가 없다. 그러나 거기서 끌어내는 정치적 결론은 마르크스주의를 대놓고 조롱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과 공산당의 과제가 원칙적으로 같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오늘 이미 자기 이익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도 아니고, 당이 어떤 조건에서든 그 이익을 올바르게 정식화한다는 뜻도 아니다. 당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역사적 이익에 대한 완성된 이해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다. 당의 과제는 투쟁의 경험 속에서 지도할 권리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증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스탈린주의 관료는 코민테른 도장이 찍힌 당원증을 근거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종을 그냥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리 공산당의 지도 아래 서지 않는 통일전선은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반한다고 『로테 파네』는 되풀이한다. 공산당의 지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그것만으로 「반혁명분자」다. 노동자는 공산주의 조직을 미리, 말만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과 계급의 과제가 원칙적으로 같다는 데서 관리는 계급에게 명령할 자기 권리를 끌어낸다. 공산당이 앞으로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 곧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자기 깃발 아래 모으는 일을 관료는 최후통첩으로, 노동계급의 관자놀이에 들이댄 권총으로 바꿔 버린다. 변증법적 사고가 형식주의적, 행정적, 관료적 사고로 바뀐다.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이미 풀린 것으로 여긴다. 얻어 내야 할 신뢰를 이미 얻은 것으로 인정한다. 물론 이것이 가장 간단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일이 별로 나아가지 않는다. 정치에서는 바라는 것이나 앞으로 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끝까지 밀고 나간 스탈린주의 관료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당의 부정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텔만과 레멜레의 지도를 미리 인정해야 한다면, 당의 역사적 일이란 모두 무엇이 되겠는가?

공산주의자 대열에 들어오려는 노동자에게 당은 이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너는 우리의 강령, 우리의 규약, 우리가 선출한 기관의 지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정한 전투 과제를 위한 공동 행동이 문제일 때, 노동 대중이나 노동자 조직에 똑같은 선험적 요구를, 아니 그 일부라도 내미는 것은 무의미하고 범죄적이다. 그것은 계급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만 자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당의 토대 자체를 허무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모욕하는 일방적 최후통첩을 내밀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공동 행동 강령을 제안해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지도권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최후통첩주의는 노동계급을 설득하지 못할 때 노동계급을 겁탈하려는 시도다.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이 텔만, 레멜레, 노이만의 지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러분이 통일전선을 만들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악랄한 적이라도 공산당 지도자들이 스스로 빠져드는 처지보다 더 불리한 처지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파멸로 가는 확실한 길이다.

독일 공산당 지도부가 호소문에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공산주의적 견해를 미리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궤변적으로 단서를 달 때, 그것은 자기의 최후통첩주의를 더 뚜렷이 드러낼 뿐이다. 그 말은 변명할 수 없는 정책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당이 다른 조직과는 어떤 협상에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회민주당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조직과 갈라서서 공산주의자라고 자칭하지 않고도 공산당의 지도 아래 서도 좋다고 허락한다면, 바로 이것이 가장 순수한 최후통첩주의다. 「공산주의적 견해」에 관한 단서는 정말 우스꽝스럽다. 공산주의 지도 아래 투쟁에 참여하려고 오늘 당장 자기 당과 갈라설 준비가 된 노동자라면 자기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데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 술수나 딱지 놀음은 노동자에게 낯설다. 노동자는 정책과 조직을 그 실질로 본다. 노동자는 공산주의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는 동안에는 사회민주당에 남는다. 사회민주당 노동자의 다수가 오늘 아직 자기 당에 남아 있는 것은 개량주의 지도부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공산주의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이미 파시즘과 싸우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공동 투쟁의 가장 가까운 단계를 가리켜 준다면, 그들은 자기 조직이 그 길에 들어서라고 요구할 것이다. 조직이 버틴다면 그들은 조직과 갈라서기까지 할 수 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사회민주당 노동자들이 경험을 통해 자기 길을 찾도록 돕는 대신, 노동자들에 맞서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을 돕고 있다. 싸우기 싫은 마음, 싸움에 대한 두려움, 싸울 능력이 없음을 벨스와 힐퍼딩 같은 자들은 지금 공산당이 공동 투쟁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아주 성공적으로 가리고 있다. 공산당이 통일전선 정책을 고집스럽고 우둔하고 무의미하게 거부하는 것은 지금의 조건에서 사회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원이 되었다. 그래서 사회민주당은 그 특유의 기생성으로 스탈린과 텔만의 최후통첩주의 정책에 대한 우리의 비판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이다.

코민테른의 공식 지도자들은 지금 심오한 얼굴로 당의 이론 수준을 높이자느니 「볼셰비즘의 역사」를 공부하자느니 늘어놓는다. 실제로는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고, 볼셰비즘의 교훈은 잊히고 일그러지고 짓밟히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당의 역사에서 지금 독일 중앙위원회 정책의 선구자를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최후통첩주의(또는 소환주의)의 창시자인 고(故) 보그다노프다. 이미 1905년에 그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가 사회민주당의 지도를 미리 인정하지 않는 한 볼셰비키가 거기에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보그다노프의 영향 아래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페테르부르크 뷰로는 1905년 10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에 당의 지도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소비에트에서 탈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볼셰비키 중앙위원이던 젊은 변호사 크라시코프가 소비에트 전체 회의에서 이 최후통첩을 내밀었다. 노동자 대의원들은, 볼셰비키 대의원들까지, 어리둥절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소비에트에서 나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곧 레닌이 외국에서 돌아와 최후통첩주의자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최후통첩으로 대중이 자기 정치 발전의 필수적인 단계를 건너뛰게 만들 수는 없다, 결코 없다고 그는 가르쳤다.

그러나 보그다노프는 자기 방법론을 버리지 않았고, 뒤에 「최후통첩파」 또는 「소환파」라는 분파를 통째로 만들었다. 「소환파」라는 이름은 위에서 내민 최후통첩, 곧 「우리의 지도를 미리 인정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조직에서 볼셰비키를 불러들이려는 그들의 경향 때문에 붙었다. 최후통첩파는 자기 정책을 소비에트에만이 아니라 의회 활동에도, 노동조합에도, 노동계급의 모든 합법·반합법 조직에도 적용하려 했다.

최후통첩주의에 맞선 레닌의 투쟁은 당과 계급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위한 투쟁이었다. 옛 볼셰비키당에서 최후통첩파는 한 번도 조금이나마 중요한 역할에 오르지 못했다. 그랬다면 볼셰비즘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계급에 대한 주의 깊고 섬세한 태도가 볼셰비즘의 힘이었다. 레닌은 권력을 잡은 뒤에도 최후통첩주의와의 투쟁을 이어 갔고, 특히 노동조합에 대해 그랬다. 그는 이렇게 썼다. “지금 러시아에서, 러시아와 협상국의 부르주아지에 대해 전례 없는 승리를 2년 반 동안 거둔 뒤에, 우리가 노동조합에 「독재의 인정」을 가입 조건으로 내건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고, 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을 망치는 것이며, 멘셰비키를 돕는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과제는 모두 뒤처진 사람들을 설득할 줄 알고 그들 사이에서 일할 줄 아는 데 있지, 지어낸 유치한 「좌익」 구호로 그들과 담을 쌓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공산주의 내의 「좌익」 소아병』) 노동계급의 소수일 뿐인 서방 공산당들에게는 더더욱 이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그러나 최근 소련에서는 사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권력으로 무장한 공산당은 이미 전위와 계급 사이의 다른 관계를 뜻한다. 이 관계에는 강제의 요소가 들어온다. 당과 소비에트의 관료주의에 맞선 레닌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사무실의 나쁜 조직이나 늑장 행정이나 엉성함 따위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기구가 계급에게 명령하는 것, 당 관료가 새로운 「지배」층으로 바뀌는 것에 맞선 투쟁이었다. 중앙위원회에서 독립한 프롤레타리아 통제위원회를 만들고 스탈린과 그 분파를 당 기구에서 물러나게 하라는 레닌의 임종 전 조언은 당의 관료적 변질을 겨냥한 것이었다. 여기서 들어갈 수 없는 여러 이유로 당은 이 조언을 지나쳐 버렸다. 최근 몇 해 동안 당의 관료적 변질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스탈린의 기구는 명령만 한다. 명령의 언어는 최후통첩주의의 언어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중앙위원회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결정이 무오류라는 것을 미리 인정해야 한다. 정책이 그릇될수록 무오류의 주장은 더 커졌다.

코민테른의 기구를 손에 넣은 스탈린 분파는 자연히 자기 방법을 외국 지부들, 곧 자본주의 나라의 공산당들에도 옮겨 놓았다. 독일 지도부의 정책은 모스크바 지도부의 정책의 반영이다. 텔만은 스탈린주의 관료가 자기의 무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자를 모두 반혁명분자로 선포하며 명령하는 것을 본다. 텔만이 스탈린보다 못할 게 뭔가? 노동계급이 그의 지도 아래 고분고분 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동계급이 반혁명적이기 때문이다. 텔만에게 최후통첩주의가 파멸을 부른다고 지적하는 자들은 두 배로 반혁명적이다. 가장 반혁명적인 책 가운데 하나가 레닌 저작집이다. 스탈린이 그 책들, 특히 외국어판에 그토록 가혹한 검열을 하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니다.

최후통첩주의가 어떤 조건에서든 해롭다면, 소련에서 그것이 당의 도덕적 자본을 까먹는 일을 뜻한다면, 이제 막 도덕적 자본을 쌓아야 하는 서방 당들에서 그것은 두 배로 설 자리가 없다. 소련에서는 승리한 혁명이 적어도 억압 기구라는 꼴로 관료적 최후통첩주의의 물질적 전제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독일을 포함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최후통첩주의는 무력한 희화로 바뀌어 공산당이 권력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텔만과 레멜레의 최후통첩주의는 무엇보다 우습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움은 사람을 죽인다. 혁명의 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를 잠시 영국의 무대로 옮겨 보라. 그곳에서 공산당은 (스탈린주의 관료의 파멸적인 오류의 결과로) 아직도 프롤레타리아트의 보잘것없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당의 것을 뺀 모든 형태의 통일전선이 「반혁명적」이라고 인정한다면, 영국 프롤레타리아트는 분명히 공산당이 자기의 앞장에 설 때까지 혁명적 투쟁을 미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계급 자신의 혁명적 경험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계급의 앞장에 설 수 없다. 그런데 그 경험은 수백만 대중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않고는 혁명적 성격을 띨 수 없다.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대중, 더구나 조직된 대중을 투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통일전선 정책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관료적 최후통첩주의의 길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마법의 원에 갇힌다. 그러나 혁명적 변증법은 오래전에 출구를 가리켰고, 가장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본보기로 그것을 보여 주었다. 권력을 위한 투쟁과 개혁을 위한 투쟁의 결합, 노동조합의 통일을 지키면서 당의 완전한 독자성을 지키는 것, 부르주아 체제의 제도를 이용하면서 그 체제와 싸우는 것, 의회 연단에서 의회주의를 화해 없이 비판하는 것, 부분적 과제를 위해 개량주의자들과 실천적 협정을 맺으면서 개량주의와 무자비하게 싸우는 것이 그것이다.

영국에서는 공산당이 극도로 약하기 때문에 최후통첩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독일에서는 당원 수가 상당하고 그 수가 늘고 있어서 최후통첩주의의 파멸적 성격이 어느 정도 가려져 있다. 그러나 독일 당이 자라는 것은 지도부의 정책 덕분이 아니라 정세의 압력 덕분이다. 최후통첩주의 덕분이 아니라 그것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당원 수의 증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당과 계급 사이의 정치적 관계가 결정한다. 이 기본 선에서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독일 당은 자기와 계급 사이에 최후통첩주의라는 가시 울타리를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제8장 통일전선을 거쳐 통일전선의 최고 기관인 소비에트로

「좌익」 집단 안에서는 소비에트를 말로 숭배하는 일이, 소비에트의 역사적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다. 소비에트는 흔히 권력 투쟁의 기관, 봉기의 기관, 끝으로 독재의 기관으로 규정된다. 이 규정들은 형식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소비에트의 역사적 기능을 결코 다 말해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권력 투쟁에 왜 하필 소비에트가 필요해지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렇다. 노동조합이 경제투쟁에서 통일전선의 기초 형태이듯이,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 투쟁의 시대에 들어설 때 통일전선의 가장 높은 형태다.

소비에트 자체에 무슨 기적 같은 힘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강점과 약점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대표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오직 그 점에서, 소비에트는 서로 다른 정치 경향과 서로 다른 발전 수준에 있는 노동자들이 권력을 위한 혁명적 투쟁에서 힘을 합칠 조직적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지금 같은 혁명 전야의 정세에서 독일의 선진 노동자들은 통일전선의 기관으로서 소비에트가 지니는 역사적 기능을 특히 분명하게 생각해 두어야 한다.

만일 공산당이 준비 시기에 다른 모든 당을 노동자 대열에서 완전히 밀어내고,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정치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자기 깃발 아래 모을 수 있었다면, 소비에트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이 증언하듯이, 어떤 나라에서든(오랜 자본주의 문화를 지닌 나라에서는 뒤처진 나라에서보다 더더욱) 공산당이, 그것도 프롤레타리아 변혁 전에, 노동자 대열 안에서 그토록 논란의 여지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리라고 기대할 근거는 전혀 없다.

바로 오늘의 독일이 보여 주듯이, 직접적인 권력 투쟁의 과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공산당의 깃발 아래 완전히 하나로 모이기 훨씬 전에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놓인다. 정치의 평면에서 보면 혁명적 정세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집단과 층이, 적어도 그 압도적 다수가, 현존 체제를 바꾸려고 힘을 합치려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는 뜻이 아니며, 더구나 그들 모두가 오늘 당장 자기 당과 갈라서서 공산주의 대열로 넘어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아니다, 계급의 정치의식은 그렇게 계획적으로 고르게 익지 않는다. 모든 과정이 비약으로 이루어지는 혁명의 시대에도 깊은 내부 차이는 남는다. 그러나 동시에 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당을 넘어선 조직의 필요가 특히 날카로워진다. 이 필요에 형태를 주는 것, 이것이 소비에트의 역사적 사명이다. 이것이 그 위대한 기능이다. 혁명적 정세의 조건에서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 단결의 최고의 조직적 표현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소비에트 문제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텔만, 노이만, 레멜레는 앞으로 올 「소비에트 독일」에 관해 얼마든지 연설하고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의 정책으로 독일에서 소비에트가 생겨나는 것을 사보타주하고 있다.

사건에서 떨어져 있어서 대중에게서 직접 인상을 얻지 못하고 날마다 노동계급의 맥박에 손을 얹어 볼 수 없는 처지에서는, 독일에서 소비에트를 만들어 내게 될 과도적 형태를 미리 짐작하기가 아주 어렵다. 나는 다른 맥락에서 독일의 소비에트가 공장위원회가 펼쳐진 형태가 될 수 있으리라고 짐작한 바 있다. 그때 나는 주로 1923년의 경험에 기댔다. 그러나 물론 이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실업과 궁핍의 압력, 다른 한편으로는 파시스트의 공세 아래서, 혁명적 단결의 필요는 공장위원회를 건너뛰고 단번에 소비에트의 꼴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어떤 길로 생겨나든,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강점과 약점, 그 내부 차이와 그 차이를 극복하려는 공동의 열망을 조직적으로 표현하는 것, 한마디로 계급 통일전선의 기관 말고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노동계급 다수에 대한 영향력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노동자들을 떨쳐 내려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 공산당 지도부는 노동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다. 그 결과 세력 관계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하게 비교적 천천히 바뀌는 가운데 제3의 당이 생겨난다. 그러나 공산당이 가장 올바른 정책을 펴더라도, 계급의 혁명적 결집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계급 안에서 공산당이 우세해지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빨리 자라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에트를 만들 필요는 고스란히 남았을 것이다.

소비에트를 만들려면, 공장에서부터 시작해 노동계급 안의 여러 당과 조직이 소비에트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그것을 만들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도 합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소비에트가 혁명 시대에 통일전선의 최고 형태라면, 소비에트가 생겨나기에 앞서 준비 시기에 통일전선 정책이 있어야 한다.

1917년 여섯 달 동안 러시아의 소비에트에서는 협조주의적인 사회혁명당·멘셰비키 다수파가 우세했다는 것을 또 상기시켜야 할까? 볼셰비키당은 당으로서의 혁명적 독자성을 한 시간도 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비에트 활동의 틀 안에서는 다수파에 대해 조직 규율을 지켰다. 독일에서 공산당은 첫 소비에트가 생기는 날부터 1917년 3월의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가 차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자리를 차지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공산주의자들이 아주 빨리 소비에트에서 다수를 얻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에트가 통일전선 기구로서의 의미를 조금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당원, 무당파, 가톨릭 노동자 등 소수파가 처음 얼마 동안은 그래도 수백만을 헤아릴 것이고, 이런 소수파를 뛰어넘으려 하다가는 가장 혁명적인 정세에서도 목이 부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미래의 음악이다. 오늘 소수파는 공산당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물론 소비에트로 가는 길이 반드시 벨스, 힐퍼딩, 브라이트샤이트 등과 미리 맺는 협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1918년에 힐퍼딩이 바이마르 헌법을 해치지 않고 소비에트를 그 헌법에 집어넣을 방법을 궁리했다면, 지금 그의 생각은 아마 사회민주당을 해치지 않고 파시스트 병영을 바이마르 헌법에 집어넣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반적 상태가 사회민주당 상층부의 뜻을 거슬러서라도 소비에트를 실현할 수 있게 될 때 소비에트 건설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사회민주당의 하층을 상층에서 떼어 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척해서는 이룰 수 없다. 바로 수백만 사회민주당 노동자를 그 반동적 지도자들에게서 갈라놓기 위해, 우리가 이 「지도자들」과 함께라도 소비에트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 노동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의 맨 꼭대기 층마저, 1918~1919년의 에베르트, 샤이데만, 하제 등의 책략을 되풀이해 보려고 소비에트라는 달군 철판 위에 다시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가능성을 미리 배제할 수는 없다. 여기서 일은 이 양반들의 악의보다는, 역사가 어느 정도로, 어떤 조건에서 그들을 자기 집게로 움켜쥐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공산당 노동자와 사회민주당 노동자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직으로서 대표되는 첫 대규모 지역 소비에트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독일 노동계급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민주당 노동자와 무당파 노동자뿐 아니라 가톨릭 노동자와 자유주의 노동자도 그 구심력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조직에 가장 끌리고 조직에 가장 능한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부분이 쇳가루가 자석 막대에 끌리듯 소비에트로 끌려갈 것이다. 소비에트에서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지도적 역할을 얻기 위한 투쟁에 새롭고 더없이 유리한 무대를 얻게 될 것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대중의 압력을 마비시키려는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을 그토록 열심히 돕지 않았다면, 사회민주당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와 사회민주당 기구의 아주 상당한 부분까지 이미 오늘 소비에트의 틀 안으로 끌려 들어왔으리라는 것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도 된다.

공산당이 일정한 실천 과제의 강령을 놓고 공장위원회, 사회민주당 조직, 노동조합 기관 등과 협정을 맺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사회민주당과 함께 소비에트를 만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순전히 공산주의자만의 소비에트는 있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므로, 공산당이 노동계급 안의 다른 당들과 협정과 공동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소비에트 건설을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로테 파네』는 아마 이 논의에 욕설을 퍼부어 대답하고, 내가 브뤼닝의 선거운동원이고 벨스의 비밀 동맹자라는 따위를 2 곱하기 2처럼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죄목에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로테 파네』도 다른 노동자 조직들에 대한 통일전선 정책 없이 독일에서 어떻게, 언제, 어떤 꼴로 소비에트를 만들 수 있는지를 독일 노동자들에게 설명해 준다면 말이다.

통일전선의 기관으로서 소비에트라는 문제를 밝히는 데는, 지방 공산당 신문 가운데 하나인 『클라센캄프』(할레메르제부르크)가 이 주제에 대해 펼친 논의가 아주 교훈적이다. 이 신문은 비꼬듯 이렇게 쓴다. 「모든 노동자 조직이 지금 있는 그대로, 그 모든 오류와 약점과 함께, 커다란 반파시즘 방어 연합으로 묶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긴 이론적 설명은 필요 없다. 이 문제에서는 역사 자체가 독일 노동계급의 엄한 선생이었다. 모든 노동자 조직의 형체 없는 죽 같은 통일전선의 대가를 독일 노동계급은 1918~1919년 혁명의 파멸로 치렀다.」 피상적인 빈말의 실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본보기다!

1918~1919년의 통일전선은 주로 소비에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스파르타쿠스단원들은 소비에트에 들어가야 했는가, 말아야 했는가? 위에 인용한 글의 정확한 뜻대로라면 그들은 소비에트에서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단원들은 노동계급의 작은 소수였고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소비에트를 자기들만의 소비에트로 결코 대신할 수 없었으므로, 소비에트에서 고립되는 것은 그냥 혁명에서 고립되는 것을 뜻했을 것이다. 통일전선이 「형체 없는 죽」처럼 보였다면, 잘못은 통일전선 기관인 소비에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자신의 정치적 상태, 곧 스파르타쿠스단의 약함과 사회민주당의 엄청난 힘에 있었다. 통일전선은 일반적으로 강한 혁명적 당을 대신할 수 없다. 통일전선은 혁명적 당이 더 강해지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소비에트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약한 스파르타쿠스단은 다시없을 정세를 놓칠까 두려워 극좌적 행보와 때 이른 행동으로 내몰렸다. 스파르타쿠스단원들이 통일전선, 곧 소비에트 밖에 섰다면, 이런 부정적 특징은 틀림없이 더 날카롭게 드러났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1918~1919년 독일 혁명의 경험에서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좌익」 소아병』이라도 읽어 보았는가? 스탈린 체제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실로 끔찍하게 황폐하게 만들었다! 소련의 소비에트를 관료화한 아류들은 소비에트를 당 기구의 손에 든 기술적 도구로만 대한다. 소비에트가 노동자 의회로 세워졌다는 것, 당파의 차이와 관계없이 노동계급의 모든 부분을 한자리에 모을 가능성을 열어 주었기에 대중을 끌어당겼다는 것, 바로 여기에 소비에트의 거대한 교육적·혁명적 힘이 있었다는 것이 잊혔다. 모든 것이 잊히고, 모든 것이 뒤엉키고,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오, 세 번 저주받을 아류주의여!

당과 소비에트의 관계 문제는 혁명적 정치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금 공산당의 노선이 사실상 소비에트를 당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라면, 혼란을 보탤 기회를 놓치지 않는 후고 우르반스[7]는 당을 소비에트로 대신하려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우르반스는 노동계급을 지도하겠다는 공산당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1월 베를린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도권은 어느 한 정당의 바람과 재량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뽑은 소비에트의 손에 있을 것이다.」(열렬한 박수) 공산당이 최후통첩주의로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노동자들이 관료적 오만에 대한 항의라면 무엇에나 박수를 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에서도 우르반스의 입장이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소비에트를 뽑으리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전적으로 그들이 누구를 뽑느냐에 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조직과 함께, 그들이 있는 그대로, 「그 모든 오류와 약점과 함께」 소비에트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저절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투쟁을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잡한 소비에트 물신숭배를 퍼뜨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소비에트를 지도하는 당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우르반스와 달리 소비에트를 지도할 공산당의 권리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통일전선을 토대로, 오직 대중조직을 통해서만 공산당은 앞으로 생길 소비에트에서 지도적 위치를 얻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

결론

가축 장수가 황소들을 도살장으로 몰고 왔다. 도축꾼이 칼을 들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황소 한 마리가 제안했다. “모두 한 줄로 서서 이 망나니를 뿔로 들이받자!” 마누일스키의 기숙학교에서 정치 교육을 받은 황소들이 대답했다. “도축꾼이 몽둥이를 들고 우리를 여기로 몰고 온 가축 장수보다 나쁠 게 뭔가?” “하지만 그다음에는 가축 장수도 해치울 수 있잖아!” 원칙을 지키는 황소들은 조언자에게 대답했다. “아니다, 너는 왼쪽에서 적을 감싸 주고 있다. 너 자신이 사회백정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줄로 서기를 거부했다.

『이솝 우화』에서.

“베르사유 강화에서 벗어나는 것을 반드시, 무조건, 당장, 제국주의에 억압받는 다른 나라들을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해방하는 문제보다 앞자리에 놓는 것은 혁명적 국제주의가 아니라 (카우츠키, 힐퍼딩, 오토 바우어 일당에게나 어울리는) 속물적 민족주의다.”(레닌, 『공산주의 내의 「좌익」 소아병』, 저작집 제17권, 164쪽)

민족공산주의를 완전히 버리고, 「인민혁명」과 「민족해방」이라는 구호를 공공연히 그리고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 「베르사유 조약 타도!」가 아니라 「유럽 소비에트 합중국 만세!」다.

사회주의는 현대 기술의 최고 성과와 국제적 분업을 토대로 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은 자족적인 일국적 과정이 아니라 국제 혁명의 한 구성 부분이다.

독일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는 것은 소련 국경 안에서 닫힌 자족적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보다 헤아릴 수 없이 더 현실적이고 가까운 과제다.

첫 노동자 국가 소련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안팎 적들로부터 헌신적으로 지키자!

그러나 소련을 지키는 일은 눈을 가린 채 해서는 안 된다. 소비에트 관료에 대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제. 일국사회주의론으로 일반화된 그 관료의 민족개량주의적, 테르미도르적 경향에 대한 가차 없는 폭로.

공산당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코민테른 첫 네 차례 대회의 전략 학교로 돌아가는 것.

대중적 노동자 조직에 대한 최후통첩주의를 버리는 것. 공산주의 지도권은 강요할 수 없다. 오직 얻어 낼 수 있을 뿐이다.

사회민주당도 파시즘도 돕는 사회파시즘론을 버리는 것.

사회민주당과 파시즘 사이의 적대를 끈질기게 이용하는 것. 가) 파시즘과 더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나) 사회민주당 노동자들을 개량주의 지도부와 맞서게 하기 위해.

부르주아 지배의 정치 체제가 바뀌는 것을 평가하는 우리의 잣대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사활적 이익이다.

브뤼닝 체제를 직접으로도 간접으로도 지지하지 말 것!

파시즘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을 대담하고 헌신적으로 지킬 것.

「계급 대 계급!」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조직이 부르주아지에 맞선 통일전선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통일전선의 실천 강령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조직들이 맺는 협정으로 정한다. 각 조직은 자기 깃발과 자기 지도부 아래 남는다. 각 조직은 행동에서 통일전선의 규율을 지킨다.

「계급 대 계급!」 사회민주당 조직과 개량주의 노동조합이 「철의 전선」의 배신적인 부르주아 동맹자들과 갈라서고 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모든 조직과 한 대열에 서도록 지칠 줄 모르고 선동해야 한다.

「계급 대 계급!」 프롤레타리아 통일전선의 최고 형태인 노동자 소비에트를 선전하고 조직적으로 준비할 것.

언제나, 어떤 조건에서도 공산당의 완전한 조직적·정치적 독립.

강령이나 깃발을 뒤섞지 말 것. 무원칙한 거래를 하지 말 것. 일시적 동맹자를 비판할 완전한 자유.

대통령직에 대한 텔만의 입후보는 말할 것도 없이 좌익반대파의 입후보다. 공식 공산당 후보의 깃발 아래 노동자를 동원하는 투쟁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맨 앞에 서야 한다.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승리한 혁명의 토대 위에서 기구의 지배를 반영하는 지금의 전연방공산당 체제가 아니라, 혁명을 승리로 이끈 당 체제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독일 공산당에서 기구의 명령 통치를 없애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당내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공산당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전략과 전술 문제에 대해 당 안에서 정직하고 진지한 토론을 쟁취해야 한다.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목소리를 당이 들어야 한다.

모든 측면에 걸친 토론 뒤에, 자유롭게 선출된 임시 당대회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회주의노동자당에 대한 공산당의 올바른 정책. 지도부의 어중간함에 대한 화해 없는(그러나 성실한, 곧 사실에 들어맞는) 비판, 좌파에 대한 주의 깊고 동지적이며 섬세한 태도, 그리고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실천적 협정을 맺고 그 혁명적 날개와 더 긴밀한 정치적 관계를 맺을 완전한 준비.

노동조합 정책에서 키를 크게 꺾을 것. 노동조합의 통일을 토대로 개량주의 지도부와 싸울 것.

사업장 안에서 체계적으로 펼치는 통일전선 정책. 일정한 요구 강령을 토대로 개량주의 공장위원회와 협정을 맺을 것.

물가 인하를 위한 투쟁. 임금 삭감에 맞선 투쟁. 이 투쟁을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 캠페인의 궤도로 옮길 것.

단일한 경제계획을 토대로 소련과 협력하자는 캠페인.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관련 조직들이 참여한 가운데 소련 기관들이 시안 계획을 만들 것.

이런 계획을 토대로 독일이 사회주의로 넘어가자는 캠페인.

상황이 가망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비관론자와 회의론자는 역병 환자처럼 프롤레타리아 대열에서 쫓아내야 한다.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내적 힘은 바닥나지 않는다. 그 힘은 스스로 길을 열 것이다.

주석

  1. 옮긴이: 「철의 전선」(Eiserne Front)은 1931년 12월 사회민주당, 사회민주당계 노동조합, 공화국 수호 단체 「흑적금 제국기단」, 노동자 체육 단체 등이 나치에 맞서려고 만든 연합체다. ↩
  2. 저자: 이 기사에는 「E. H.」라는 겸손한 머리글자가 서명되어 있다. 이 머리글자는 후세를 위해 새겨 둘 필요가 있다. 여러 나라 노동자 세대들은 헛되이 일하지 않았다. 위대한 혁명 사상가와 투사들은 땅 위를 흔적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E. H.는 존재하고, 깨어 있으며,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길을 가리킨다. 입이 험한 사람들은 E. H.가 전쟁 중 유달리 추잡한 국수주의로 이름을 더럽힌 E. 하일만과 친척뻘이라고 말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명석한 머리가…? ↩
  3. 옮긴이: 9월 14일은 나치당이 득표를 크게 늘린 1930년 9월 14일 제국의회 선거를 가리킨다. 라이프치히 당대회는 1931년 6월에 열린 사회민주당 대회이며, 프리츠 타르노는 사회민주당계 노동조합 지도자다. ↩
  4. 저자: 형이상학자들(반변증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추상이 두세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용도를 가지며, 그 용도가 정반대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우리가 들은 대로 「민주주의」 일반과 「파시즘」 일반은 서로 아무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 대신 세상에는 「노동자·농민 독재」(중국, 인도, 스페인을 위한)도 있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인가? 아니다. 자본주의 독재인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민주주의 독재다! 세상에는 아직 순수한, 계급을 초월한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는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민주주의 독재」는… 파시스트 독재와 다른가? 아주 순진한 사람이나 이 원칙적 질문에 대해 스탈린파에게서 진지하고 정직한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욕설 몇 마디 더,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 질문에 동방 혁명들의 운명이 걸려 있다. ↩
  5. 옮긴이: 에르콜리(Ercoli)는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가 코민테른에서 쓴 가명이다. ↩
  6. 옮긴이: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은 1931년 10월 사회민주당에서 제명된 좌파 의원들(막스 자이데비츠, 쿠르트 로젠펠트 등)이 만든 당이다. ↩
  7. 옮긴이: 후고 우르반스는 1920년대 중반 독일 공산당 좌파 지도자로, 1927년 제명된 뒤 레닌동맹(Leninbund)을 이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