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1945

혁명의 물결과 세계대전 333명

10월 혁명 뒤 유럽과 아시아로 번진 혁명의 물결, 코민테른 시대의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전간기 각국의 정치가, 파시즘과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의 지도자와 지휘관들.

페데리카 몬세니

Federica Montseny

공화국 정부에 참여한 스페인 아나키스트

1936년 11월 장관직을 수락했다. 정부 참여를 둘러싼 에마 골드만과의 논쟁은 같은 혁명을 지지하는 아나키스트들 사이에도 전략적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스페인의 아나키스트이자 작가. CNT 계열 활동가로서 1936년 11월부터 1937년 5월까지 공화국 정부의 보건·공공부조 장관을 지냈다. 전쟁 중 의료와 구호 정책을 추진했지만, 국가권력을 거부하는 아나키즘의 원칙과 장관직 수행 사이의 긴장은 운동 내부의 논쟁을 낳았다. 에마 골드만과의 서신은 반파시즘 전쟁과 사회혁명의 관계를 둘러싼 이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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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열다섯 살에 첫 단편소설 『비극의 시간』을 발표하며 집필 활동 시작
  • 1927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AI)에 가담
  • 1931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 CNT에 가입, 연설가로 두각을 나타냄
  • 19367월 쿠데타 이후 FAI 반도위원회와 CNT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 193611월 공화국 정부의 보건·사회부조 장관으로 임명
  • 19375월 바르셀로나 5월 사건 뒤 내각 총사퇴로 장관직에서 물러남
  • 1939프랑스로 망명, 이후 툴루즈를 거점으로 망명 CNT 재건과 아나키스트 언론 활동을 이어감

후안 모데스토

Juan Guilloto León
군사·지휘 스페인 공화파 스페인 스페인 1906–1969 ○ 자연사

패배한 공화국의 현장 지휘관

민병대 지휘관들을 평가한 한 보고서는 '도면 하나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자는 모데스토뿐'이라고 적었다.

후안 모데스토는 스페인 공산당의 군사 조직가에서 출발해 공화군의 핵심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그는 제5연대와 제5군단을 이끌며 민병대를 정규 군대로 통합하는 전쟁의 변화를 구현했다. 1938년 에브로군 사령관으로서 공화국의 마지막 대공세를 지휘했지만, 장기 소모전은 병력과 물자의 열세를 뒤집지 못했다. 패전 뒤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자신의 전쟁 경험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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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스페인 공산당 가입
  • 1933–1936마드리드 노동자·농민 반파시스트 민병대 조직 책임자
  • 1936제5연대 창설 조직자·초대 지휘관
  • 1936–1937제4사단 지휘관, 중령 승진
  • 1937–1938제5군단 사령관, 브루네테·벨치테·테루엘 전투 지휘
  • 1938.04–11에브로군 사령관, 에브로 공세 지휘
  • 1939공화군 중장 및 중앙군 사령관, 3월 망명
  • 1944–1969소련·불가리아·프라하에서 망명 군인·공산주의자로 활동
군사·지휘 영국 국가기관 영국 영국계 1906–1997 ○ 자연사

그리스 저항운동에 투입된 영국 공병 장교

1942년 11월 25일, 마이어스의 일행은 그리스 파르티잔 약 150명의 지원을 받아 고르고포타모스 철교를 폭파했다.

에드먼드 마이어스는 영국 왕립공병대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특수작전집행부의 그리스 군사사절단을 이끌었다. 그는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철교 파괴 작전을 설계하고 지휘하며 ELAS와 EDES의 협력을 조정했다. 군사 목표를 수행한 그의 임무는 전후 그리스의 정치 질서와 영국의 개입 문제에 얽혔고, 그는 회고록에서 그 경험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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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영국 왕립공병대 임관
  • 1942–1944점령 그리스 영국 군사사절단장, 특수작전집행부
  • 1942고르고포타모스 철교 파괴 작전 지휘
  • 1943아소포스 철교 파괴 작전 참여
  • 1944제1공수사단 왕립공병대 지휘관, 아른험 전투
  • 1955회고록 《Greek Entanglement》 출간

아르소 라디보예프 요바노비치

Арсо Радивојев Јовановић

파르티잔 전쟁을 조직한 참모 장교

1948년 8월, 루마니아로 향하던 국경에서 그의 전쟁 경력은 망명 시도와 함께 끝났다.

아르소 요바노비치는 왕립 유고슬라비아군 출신의 교육받은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최고사령부의 참모총장을 맡아 작전 지휘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전후 유고슬라비아군 초대 총참모장이 되었지만, 1948년 티토와 스탈린의 결별에서 소련의 입장을 지지하며 정치적 고립에 놓였다. 루마니아로 탈출하려다 국경에서 사망했으며, 공식 발표와 후대 증언이 엇갈려 죽음의 경위는 논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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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1928베오그라드 왕립 군사학교 하급과정 생도
  • 1932–1934왕립 군사학교 고급과정 수학
  • 1939『보병대대 전술』 출간, 보병학교 교관·지휘관
  • 1941몬테네그로 봉기 임시 최고사령부 사령관
  • 1942–1945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최고사령부 참모총장
  • 1945유고슬라비아군 초대 총참모장
  • 1946–1948모스크바 보로실로프 고등군사학교 유학
  • 1948인포르비로 결의 지지, 루마니아 탈출 시도 중 사망

오토 스코르체니

Otto Skorzeny
군사·지휘 나치당·나치 정권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계 1908–1975 ○ 자연사

나치 특수작전의 지휘관이자 선전의 산물

그란사소에서 무솔리니 앞에 선 장면은 실제 지휘권보다 선전의 공로가 더 크게 기록된 순간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스코르체니는 Waffen-SS 장교로서 나치 독일의 사보타주와 특수작전을 지휘했다. 1943년 그란사소 작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위치를 찾고 SS 분견대를 이끌어 현장에 참여했지만, 작전 전체의 계획과 지휘는 공수부대 장교 하랄트 모르스와 쿠르트 슈투덴트의 몫이었다. 나치 선전은 그를 ‘무솔리니의 구출자’로 내세웠고, 그는 헝가리 정권 전복과 아르덴 공세의 위장작전에도 관여했다. 전후 전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스페인에서 극우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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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오스트리아 나치당 가입
  • 1938오스트리아 병합 과정에서 SS 대원으로 활동
  • 1943RSHA 제6국 특수공작 부문 지휘
  • 1943그란사소 작전에서 SS 분견대 지휘
  • 1944헝가리 판처파우스트 작전 관여
  • 1944아르덴 공세 그라이프 작전 지휘
  • 1947다하우 군사재판에서 무죄 판결
  • 1953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군사 고문

앙리 롤탕기

Henri Rol-Tanguy
군사·지휘 프랑스 국가기관 프랑스 프랑스인 1908–2002 ○ 자연사

파리 봉기를 지휘한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지도자

1944년 8월 21일, 그는 파리 전역에 바리케이드를 세우라는 명령을 게시했다.

앙리 롤탕기는 금속 노동자 출신의 프랑스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여단 참전자로, 스페인 내전과 반나치 레지스탕스에서 군사적 경험을 쌓았다. 그는 1944년 8월 파리 지역 프랑스 국내군(FFI) 사령관으로서 동맹군이 입성하기 전에 봉기를 조직하고 지휘했다. 그의 활동은 노동운동의 조직 경험과 무장 저항을 결합해 수도 해방을 내부에서 추진한 사례였다. 전후에는 군과 프랑스 공산당에서 활동하며 레지스탕스의 독자적 역할을 공적으로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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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탈보 금속공장 노동자, 공산주의 청년동맹 가입
  • 1936파리 지역 금속노동조합 CGT 서기
  • 1937–1938스페인 국제여단 제14여단 정치위원, 에브로 전투 참전
  • 1941–1942파리 지역 무장조직 책임자, FTP 창설 지도부
  • 1943파리 지역 FTP 재편, FFI 지역 참모부 합류
  • 1944파리 지역 FFI 사령관, 파리 봉기 지휘
  • 1945–1962프랑스 육군 중령, 전후 군사 보직
  • 1962–1987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

스테판 반데라

Степан Андрійович Бандера
정치·당 지도 소속 미확정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1909–1959 ✕ 독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치가이자 OUN-B 지도자다.

반데라는 폴란드령 동부 갈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하조직 활동을 이끌었다. OUN 지도부였던 그는 1934년 폴란드 내무장관 브로니스와프 피에라츠키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1940년 OUN이 분열하자 급진파 OUN-B를 이끌었고,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직후 리비우에서 선포한 우크라이나 국가가 나치 독일과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독일 당국은 그를 구금하고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보냈으며, 전후 서독에서 OUN-B 망명 조직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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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에 가입했다.
  • 1931OUN 선전 책임자가 되었다.
  • 1933OUN의 폴란드 국내 지도부를 이끌었다.
  • 1934폴란드 내무장관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 1940OUN이 분열한 뒤 OUN-B 파벌의 지도자가 되었다.
  • 1941–1944독일 당국에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 1945OUN 해외 조직을 이끌었다.
  • 1959뮌헨에서 KGB 요원 보단 스타신스키에게 독살당했다.

르네 부스케

René Bousquet

점령자와 협상한 비시 경찰 수장

1942년 7월 2일, 그는 독일 점령 당국의 유대인 체포에 프랑스 경찰을 투입하겠다고 동의했다.

르네 부스케는 프랑스의 고위 관료로, 비시 정권의 경찰 협력을 국가 주권의 외형과 결합해 추진했다. 그는 독일 보안기관과 협상해 프랑스 경찰을 동원할 자율성을 확보하는 한편, 유대인 박해와 추방을 실행하는 체계에 경찰력을 제공했다. 1942년 7월 벨디브 검거에서 그의 행정적 결정은 대규모 체포와 강제 이송을 가능하게 했으며, 해방 뒤에는 숙청을 피하고 금융·정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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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홍수 때 구조 활동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음
  • 1931내무부 차관 피에르 카탈라의 보좌관
  • 1933부지사
  • 1939–1942마른현 지사 및 지역 지사
  • 1942–1943비시 경찰 사무총장
  • 1950년대–1993년금융·언론계 사업가 및 정치적 영향력자

지미 듀랜트

James Thom Durrant

장거리 공수의 한계를 감수한 전시 지휘관

1944년 바르샤바 공수작전을 앞두고 그는 군사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없고 손실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작전은 계속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장교 제임스 톰 듀랜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선의 폭격·정찰 부대를 지휘한 조종사였다. 그는 1944년 이탈리아의 영국 공군 제205그룹을 맡아 바르샤바 봉기 지원 공수작전을 지휘했으며, 전투적 필요와 정치적 의무가 충돌하는 임무의 한계를 드러냈다. 전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최고 책임자로 복무했지만, 국민당 정부의 탈영국화 정책과 국방장관과의 갈등 속에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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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1934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상비군 사관후보생 과정을 수료하고 조종사 자격을 취득
  • 1940–1941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제40비행대대 지휘관, 동아프리카 전선
  • 1941–1942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제24비행대대 지휘관, 서부사막 전역
  • 1942–1944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제3폭격비행단 지휘관, 북아프리카·시칠리아·이탈리아
  • 1944–1945영국 공군 제205그룹 지휘관, 이탈리아 기지에서 바르샤바 공수작전 지휘
  • 1945–1946영국 공군 제231중폭격그룹 항공사령관, 극동
  • 1946–1952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 최고 책임자

클라우스 바르비

Klaus Barbie
보안·정보·치안 나치당·나치 정권 독일 독일계 1913–1991 ○ 반인도적 범죄로 종신형

나치의 리옹 게슈타포 책임자

1987년 리옹 재판에서 그는 이지외 급습을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레지스탕스와 싸웠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클라우스 바르비는 나치 친위대와 보안방첩대에서 활동한 장교로, 점령기 리옹 게슈타포를 지휘하며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박해했다. 그는 칼뤼르에서 장 물랭을 체포하고 고문했으며, 이지외의 유대인 아동 44명과 교사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데 책임이 있었다. 전후 미국 정보기관의 반공 작전에 이용되어 볼리비아로 도피한 그는 오랫동안 처벌을 피했지만, 1987년 리옹 재판에서 반인도적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사례는 나치 범죄의 연속성과 냉전 반공주의가 만든 면책의 구조를 함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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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5친위대 입대, 보안방첩대 복무
  • 1940–1941암스테르담 보안방첩대, 유대인·공산주의자 탄압
  • 1942디종 파견, 점령 프랑스 보안 업무
  • 1942–1944리옹 게슈타포장, 레지스탕스 탄압과 유대인 강제이송
  • 1947–1951미군 방첩대 정보원
  • 1951–1983볼리비아에서 클라우스 알트만으로 활동
  • 1987리옹 재판, 반인도적 범죄 유죄 및 종신형
  • 1991리옹 교도소에서 사망

페코 답체비치

Пеко Дапчевић
군사·지휘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 1913–1999 ○ 자연사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으로 이어진 파르티잔 지휘관

1944년 10월 20일, 답체비치가 지휘한 유고슬라비아군과 소련군이 베오그라드에 입성했다.

페코 답체비치는 스페인 내전과 유고슬라비아 인민해방전쟁을 거친 몬테네그로계 공산주의 지휘관이었다. 그는 몬테네그로 봉기에서 출발해 사단과 군단을 지휘했고, 1944년 베오그라드 해방에서 소련군과 함께 작전한 제1군집단을 이끌었다. 1945년 제1군 사령관으로서 스렘 전선 돌파와 전후 군대의 정규화를 맡았으며, 훗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냈다. 그의 경력은 혁명적 전투조직이 국가의 상설 군대로 전환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생긴 정치적 긴장을 함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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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1939스페인 공화국군 국제여단 자원병, 중대 지휘관
  • 1941로브첸 파르티잔 분견대 사령관, 몬테네그로 봉기
  • 1942제4 몬테네그로 프롤레타리아 충격여단 사령관
  • 1942–1943제2 프롤레타리아 사단 사령관
  • 1943–1944제2 충격군단 사령관
  • 1944제1군집단 사령관, 베오그라드 작전
  • 1945–1949제1군 사령관, 이어 유고슬라비아군 총감찰관
  • 1953–1955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총참모장

후안 푸홀 가르시아

Juan Pujol García

허구의 첩보망으로 전황을 뒤흔든 이중간첩

1944년 6월 9일, 그는 노르망디 상륙을 양동으로 보이게 하는 보고를 독일군 수뇌부에 보냈다.

후안 푸홀 가르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기에 독일 정보기관에 침투한 뒤 영국에 충성한 스페인계 이중간첩이었다. 그는 리스본에서 공개 자료만으로 영국에 존재하지 않는 요원망을 꾸며 독일 지휘부의 신뢰를 얻었다. 영국 정보기관과 협력한 뒤에는 가공의 요원들과 제한된 진짜 정보를 엮어 독일의 판단을 유도했다. 특히 포티튜드 작전에서 노르망디 상륙이 양동이고 주공이 파드칼레에 온다는 이야기를 강화해 연합군의 기만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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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스페인군 기병·포병 부대에서 의무복무
  • 1936–1939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와 국민파 양쪽에 복무
  • 1941–1942리스본에서 독일 아브베어의 자발적 공작원으로 활동
  • 1942영국 MI5 이중간첩으로 전환, 가르보라는 암호명 사용
  • 1943–1944토마스 해리스와 함께 가공의 요원망을 운영
  • 1944포티튜드 작전에서 파드칼레 주공설을 유포
  • 1944영국 국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 MBE 수훈

김정숙

김정숙
군사·지휘 소속 미확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17–1949 ○ 출산 중 사망

백두산 항일 빨치산에서 '3대장군'의 하나로 추앙된 여장군

어느 날 부대가 행군할 때 갈대밭에서 적 5~6명이 장군님을 겨누었다. 김정숙 동지는 몸으로 장군님을 가리고 리볼버로 적을 쓰러뜨렸다.

김정숙은 동북항일연군에서 김일성 휘하 여군 부대장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여성 빨치산으로, 생전의 전공보다는 사후 '백두여장군'으로 추앙받아 '3대장군' 백두혈통 정치신화의 모성적 핵심이 된 인물이다.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어머니로서 해방 뒤 조선민주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다 1949년 출산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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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5동북항일연군 입대
  • 1936김일성 부대 친위전사 및 신갈파부대 여군 부대장
  • 1937보천보 전투 참가; 중국공산당 입당
  • 1937–1938국내 신파·풍산·단천 등지에서 혁명조직 확대 활동
  • 1940김일성과 결혼, 소련으로 이동
  • 1945해방 후 평양 귀환
  • 1946–1949조선민주여성동맹 창립 및 여성운동 참여

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

Christopher Montague Woodhouse
군사·지휘 영국 국가기관 영국 영국계 1917–2001 ○ 자연사

저항과 제국의 경계에 선 그리스 전문가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작전 뒤 그는 철수하지 않고 그리스에 남아 저항세력과 카이로를 잇는 사절단을 세웠다.

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는 영국 육군 장교이자 SOE·MI6 요원, 그리스 정치사 연구자였다. 그는 점령기 그리스에서 ELAS와 EDES를 잇는 영국 군사사절단을 조직하고 지휘하며 저항운동과 전후 국가질서 사이의 접점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의 활동은 군사 협력이 영국의 왕정 복귀와 영향권 정책으로 기울 수 있었던 긴장을 보여준다. 훗날 의원과 저술가로서 그리스 현대사를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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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영국 왕립포병대에 입대
  • 1941크레타 저항조직 지원을 위한 SOE 임무 수행
  • 1942고르고포타모스 작전의 하를링 부대 부지휘관
  • 1942–1943영국 군사사절단에서 ELAS·EDES와 연락
  • 1943–1945그리스 주재 연합군 군사사절단 지휘
  • 1945–1946아테네 영국대사관 2등서기관
  • 1959–1974옥스퍼드 하원의원, 보수당 정부 각료직 수행
  • 1976『그리스를 위한 투쟁』 출간

점령에 맞선 공산주의 무장투쟁의 선구자

“티티의 원수를 갚았다!”

피에르 조르주는 프랑스 공산주의자이자 레지스탕스 전사로, 스페인 내전에서 국제여단으로 싸우며 일찍부터 반파시즘 무장투쟁을 경험했다. 1941년 8월 21일 파리 바르베 지하철역에서 알퐁스 모제르를 사살한 행동은 프랑스 공산당의 무장 저항을 가시화했지만, 독일 점령군의 인질 처형과 저항 세력에 대한 탄압도 격화시켰다. 그는 프레도, 뒤에는 파비앵 대령이라는 이름으로 지하 전투원과 마키를 조직했고, 파리 해방 뒤에는 파비앵 부대를 이끌고 동부 전선으로 향했다. 1944년 지뢰 폭발로 사망하면서, 그의 생애는 점령에 맞선 결단과 그에 뒤따른 가혹한 보복의 긴장을 함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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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6–1939스페인 내전 국제여단 전투원
  • 1939–1940프랑스 공산당 청년운동 간부
  • 1940–1941점령 프랑스의 지하 공산주의 조직가
  • 1941–1942조직특별부대 군사위원
  • 1942–1943두 지역 FTP 마키 조직자
  • 1943–1944프랑스 전역 FTP 마키 지휘관
  • 1944파리 해방 전후 FTP·FFI 지휘관
  • 1944파비앵 부대 지휘관, 동부 전선 전사
  • 1941.08.21바르베 지하철역에서 독일 해군 장교 알퐁스 모제르 사살
  • 1944.12.27알자스 합셈에서 지뢰 폭발로 사망

미하이 1세

Mihai I
군주·왕실 루마니아 루마니아 루마니아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왕가) 1921–2017 ↓ 퇴위 강요 후 망명

1944년 8월 23일 안토네스쿠를 체포해 루마니아를 연합국 편으로 돌리고, 1947년 총구 앞에서 퇴위한 마지막 국왕

1947년 12월 30일 아침, 병력이 둘러싼 왕궁에서 그로자와 게오르기우데지는 퇴위 문서를 내밀었다. 거부하면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구금 중인 학생 1천 명이 총살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미하이는 망명 뒤 증언했다. 그날 오후 의회는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왕가의 카롤 왕세자와 그리스의 엘레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왕위 계승을 포기한 탓에 1927년 여섯 살에 섭정 아래 국왕이 되었고 1930년 카롤 2세가 귀국해 왕위를 되찾자 왕세자로 내려왔다. 1940년 9월 안토네스쿠가 카롤 2세를 퇴위시키자 열여덟 살에 다시 왕위에 올랐지만 실권은 안토네스쿠의 독재와 추축국 동맹에 있었다. 1944년 8월 23일 붉은 군대가 국경을 넘은 뒤 그는 궁정 쿠데타로 안토네스쿠를 체포하고 연합국과 휴전해 루마니아를 대독 전선으로 돌렸고, 이 공으로 소련의 승리훈장을 받은 극소수의 외국인이 되었다. 그러나 1945년 3월 비신스키의 압박으로 그로자 정부를 임명해야 했고, 그해 8월부터 법령 서명을 거부하는 「국왕 파업」으로 맞섰으나 1946년 조작 선거와 1947년 마니우 재판을 막지 못했다. 1947년 12월 30일 그로자와 게오르기우데지가 강요한 퇴위 문서에 서명했고 같은 날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48년 국적을 박탈당한 채 영국과 스위스에서 시험 비행사와 증권 중개인으로 살았으며, 1992년 부활절의 첫 귀국 때 부쿠레슈티에 백만 명이 모였다. 1997년 국적을 되찾았고 2017년 스위스에서 죽어 쿠르테아데아르제시의 왕가 묘지에 국장으로 안장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7–1930섭정 아래 첫 재위
  • 1930–1940왕세자
  • 1940안토네스쿠의 카롤 2세 퇴위로 재즉위
  • 19448월 23일 궁정 쿠데타, 안토네스쿠 체포·연합국 편 전환
  • 1945소련 승리훈장 수훈, 그로자 정부 임명 강요
  • 1945–1946「국왕 파업」, 법령 서명 거부
  • 194712월 30일 퇴위 강요, 망명
  • 1948국적 박탈
  • 1992첫 귀국 방문
  • 1997국적 회복

아포스톨로스 산타스

Απόστολος Σάντας
사회운동·조직 소속 미확정 그리스 그리스인 1922–2011 ○ 자연사

아크로폴리스에서 점령의 상징을 끌어내린 저항가

1941년 5월 30일 밤, 산타스와 마놀리스 글레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나치 깃발을 끌어내렸다.

아포스톨로스 산타스는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의 저항운동가로, 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한 일로 기억된다. 두 학생의 행동은 점령에 맞선 초기 공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독일 당국은 그들에게 궐석 사형을 선고했다. 산타스는 이후 EAM과 ELAS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해방 뒤에는 좌파라는 이유로 이카리아와 마크로니소스 등지에 유배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가 1962년 그리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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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1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했다.
  • 1942민족해방전선(EAM)에 참여했다.
  • 1943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에 참여해 중부 그리스에서 추축국에 맞서 싸웠다.
  • 1944해방 뒤 법학 공부를 마쳤다.
  • 1946–1948좌파적 신념 때문에 이카리아, 프시탈레이아, 마크로니소스로 유배되었다.
  • 1948–1962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로 탈출해 정치적 망명을 얻었다.
  • 1962–2011그리스로 돌아와 아테네에서 살았다.

페타르 2세

Petar II Karađorđević
군주·왕실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모계 루마니아 왕가) 1923–1970 ○ 사망

망명 속에서 왕정의 정통성을 지킨 마지막 국왕

1941년 3월 27일, 두산 시모비치가 그에게 말한 순간이었다. "폐하, 이제부터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페타르 2세는 아버지 알렉산다르 1세의 암살 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다. 1941년 3월 27일 쿠데타로 섭정 체제가 무너지고 즉시 성년으로 선포되었지만, 곧 추축국 침공으로 런던의 망명정부를 이끌어야 했다. 그의 왕권은 점령에 맞선 국가적 연속성을 상징했으나, 망명정부의 분열과 파르티잔의 군사적·정치적 승리 속에서 실제 통치 기반을 잃었다. 1945년 왕정이 폐지된 뒤에도 귀환하지 못한 그는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정통성을 둘러싼 미해결 긴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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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4국왕 즉위, 섭정 아래
  • 1934–1941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명목상 국왕
  • 1941.03.27쿠데타 뒤 성년 국왕으로 선포
  • 1941.04–06추축국 침공 뒤 정부와 함께 망명
  • 1941–1945런던 유고슬라비아 왕정 망명정부의 국가원수
  • 1944.09유고슬라비아 군인들에게 티토 합류를 호소
  • 1945왕정 폐지로 폐위
  • 1945–1970미국에서 망명 생활
  • 1970미국 덴버에서 사망

기 모케

Guy Môquet
사회운동·조직 소속 미확정 프랑스 프랑스인 1924–1941 ✕ 처형

점령 아래 처형된 공산주의 청년 활동가

그는 처형 전 편지에 “내 죽음이 무언가에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썼다.

기 모케는 파리 출신의 프랑스 공산주의 청년 활동가로, 아버지의 투옥 뒤 지하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40년 열여섯 살에 체포되어 프랑스 당국의 수감과 행정구금을 거쳤고, 1941년 샤토브리앙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독일 점령군은 낭트의 카를 호츠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인질로 선정해 1941년 10월 22일 처형했으며, 그의 죽음은 점령과 협력 체제가 젊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부과한 대가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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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4파리에서 출생
  • 1930년대 후반카르노 고등학교 학생, 공산주의 청년동맹 활동가
  • 1940.10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프렌 감옥에 수감
  • 1941.01–02무죄 판결 뒤에도 행정구금되어 상테와 클레르보 수감시설로 이송
  • 1941.05샤토브리앙의 쇼아젤 수용소로 이송
  • 1941.10.22샤토브리앙에서 인질로 처형

니키포르 흐리호리우

Никифор Григор'єв
군사·지휘 독립 활동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c.1885–1919 ✕ 살해

적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뒤 반란과 포그롬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 아타만

5월 반란을 선포한 「우니베르살」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인민이여! 권력을 직접 잡으라. 개인의 독재도, 당의 독재도 없어야 한다"고 외쳤다.

1919년 봄 소비에트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우크라이나 아타만으로 5월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부대는 옐리사베트흐라드 등에서 유대인을 학살했다. 7월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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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1907제국군에 자원입대해 러일전쟁에 참전하고 성 게오르기 십자훈장 3개를 받았다.
  • 1914–19161차 세계대전에서 남서부 전선 장교로 활약하며 참모대위까지 진급했다.
  • 1918헤르손 지역에서 빈농 의용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독일 점령군과 헤트만 정권에 맞섰다.
  • 1918–1919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디렉토리아)의 헤르손 사단장을 맡았다.
  • 1919-02적군으로 전향해 1차 자드니프롭스카 여단, 이어 제6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단을 지휘했고 4월 오데사를 점령했다.
  • 1919-05적군에 맞선 그리호리우 봉기를 주도했다.
  • 1919-07마흐노 부대에 사살되었다.

담바도르지

Дамбадорж
정치·당 지도 몽골 몽골 몽골 ?–1934 모스크바에서 사망, 중독 의혹 미확인

단잔 숙청에 가담하고 우경으로 몰려 밀려난 몽골인민혁명당 지도자

1924년 제3차 당대회에서 린치깅 엘베그도르지와 함께 솔린 단잔을 부르주아 세력으로 몰아 체포·처형했고, 그 뒤 당 우파를 이끌며 신경제정책을 본뜬 노선을 폈다.

몽골의 혁명가이자 언론인으로, 1921년 제1차 당대회에서 몽골인민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되어 서기와 부의장을 지냈고 1923~1928년에는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의장을 맡았다. 1924년 제3차 당대회에서 좌파의 린치깅 엘베그도르지와 함께 온건파 솔린 단잔을 부르주아로 몰아 체포·처형하는 데 가담했고, 이후 당 우파를 이끌며 신경제정책을 본뜬 노선을 폈다. 1928년 제7차 당대회에서 '우경'으로 제명되어 모스크바 주재 몽골 대사관 무역대표로 밀려났으며 1934년 6월 그곳에서 사망했다. 『아르딘 에르흐』, 『위넨』과 잡지 『몽골 아르딘 남』의 초대 편집인이자 엥겔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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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1920나이슬레l 후레와 히악트에서 전신·철도 통신 노동자
  • 1920가을부터 애국자 운동에 참여
  • 1921제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선출, 임시정부 대외관계부 관료; 3월 중앙위원회 대행 의장
  • 1921–1923중앙위원회 서기; 1922년 1~3월 부의장, 3월 15일~1923년 1월 12일 의장
  • 1921서부 국경 담당 전권 대표로 백위군과 싸우고 서부 국경 정부·인민당 위원회 수립에 참여
  • 1924–1928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의장 (1924년 8월 31일~1928년 10월 27일)
  • 1928–1929소련 주재 몽골 대사관 무역대표; 1929~1932년 모스크바 국민경제고등학교 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