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적 배경

핀란드

19 명

해당 인물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Carl Gustaf Emil Mannerheim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 1867–1951 ○ 자연사

러시아 제국군 중장에서 핀란드의 원수가 되어 두 차례 소련과 맞선 귀족 군인

"요새도, 대포도, 외국의 원조도, 모든 병사 각자가 자신이 조국의 수호자임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30년간 복무한 스웨덴계 핀란드 귀족으로,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중장까지 올랐다. 1918년 핀란드 내전에서 백군 총사령관으로 적위대를 진압하고 섭정이 되어 독립을 공고히 했으며, 런던 타임스에 "핀란드의 역사적 사명은 볼셰비즘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소련군에 맞서 싸웠고, 독일과 공동전선을 폈으나 레닌그라드 공격은 거부했다. 1944년 대통령에 취임해 소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라플란드 전쟁으로 독일군을 축출하여,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점령을 면한 국가로 핀란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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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9–1917러시아 제국군 기병 장교, 1917년 중장으로 퇴역
  • 1918핀란드 백군 총사령관으로 내전 승리
  • 1918–1919핀란드 섭정(국가원수)
  • 1931–1939핀란드 국방위원회 의장
  • 1939–1944핀란드 방위군 총사령관 (겨울전쟁·계속전쟁)
  • 1944–1946핀란드 공화국 제6대 대통령

배이뇌 보이온마

Väinö Voionmaa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69–1947 ○ 자연사

역사학과 사회민주주의를 잇다

1940년 모스크바에서 그는 겨울전쟁의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배이뇌 보이온마는 핀란드의 역사학자이자 교수, 사회민주당 정치가로 독립 초기 공화국의 형성에 관여했다. 그는 노동자 교육기관을 세우고 의회에서 외교와 사회정책을 다루며 학문을 대중적 정치 활동과 결합했다. 1940년 겨울전쟁을 끝낸 모스크바 강화조약 협상에서 핀란드 대표단의 사회민주당계 인사로 서명에 참여했으며, 전쟁과 강대국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핀란드의 조건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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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헬싱키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03–1918헬싱키대학교 북유럽사 도슨트
  • 1917토코이 원로원 경제부문 의원, 교통위원회 수장
  • 1919–1947핀란드 의회 사회민주당 의원
  • 1920타르투 평화협상 핀란드 대표단원
  • 1926–1927외무장관
  • 1937–1939상공장관, 1938년 외무장관 직무대행
  • 1940모스크바 강화조약 핀란드 대표단원 및 서명자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Juho Kusti Paasikivi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70–1956 ○ 자연사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은 핀란드의 현실주의 외교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 스탈린에게서 빌려와 평생의 외교 원칙으로 삼은 말.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 시절부터 시작해 핀란드 독립·내전·겨울전쟁·계속전쟁·냉전을 모두 통과한 정치가다. 독립 직후인 1918년 첫 총리를 지내며 친독일·군주제 노선을 밀었고,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했다. 1939년 가을 스톡홀름 주재 공사에서 소환되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몰로토프와 직접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전쟁이 터지자 무임소장관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이끌었다. 1946년 대통령에 오른 뒤로는 '현실 인정이 지혜의 시작'이라며 소련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추구했고, 이 파시키비 독트린은 냉전기 핀란드 외교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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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1913핀란드 의회 의원 (핀란드당)
  • 1908–1909원로원 재무분과장
  • 1918.5–11핀란드 총리
  • 1914–1934KOP 은행 총재
  • 1936–1939주스웨덴 공사
  • 1940–1941주모스크바 공사
  • 1944–1946핀란드 총리
  • 1946–1956핀란드 대통령

퀴외스티 칼리오

Kyösti Kallio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73–1940 ○ 자연사

농민 개혁과 전시 타협의 대통령

“이 괴물 같은 조약에 서명하는 손이여, 썩어라.”

퀴외스티 칼리오는 핀란드 농민정당의 지도자로서 토지개혁과 의회정치를 추진한 정치가였다. 그는 네 차례 총리와 여러 차례 의회 의장을 지냈고, 1922년 토지 없는 농민의 정착을 지원한 이른바 칼리오 법을 이끌었다. 대통령으로서 겨울전쟁을 이끌며 영토 양보에 저항했지만, 1940년 3월 모스크바 평화조약을 받아들여야 했다. 조약 서명을 두고 남긴 저주는 그해 여름 오른팔 마비로 현실의 아이러니가 되었고, 건강 악화로 사임한 뒤 같은 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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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1906핀란드 의회 신분제 의회 농민계급 대표
  • 1907–1937핀란드 의회 의원, 농민연합 지도자
  • 1917–1922농업 담당 장관, 독립 상원과 정부에서 재임
  • 1922칼리오 법으로 불린 토지 정착 개혁 추진
  • 1922–1924, 1925–1926, 1929–1930, 1936–1937핀란드 총리 네 차례
  • 1920–1936핀란드 의회 의장, 여러 회기 재임
  • 1937–1940핀란드 대통령, 겨울전쟁과 모스크바 평화조약 시기

루돌프 발덴

Karl Rudolf Walden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78–1946 ○ 자연사

산업과 전쟁을 잇댄 군사 조직가

만네르헤임은 그를 산업가의 경험과 군대 조직 능력을 함께 지닌 동료로 기억했다.

루돌프 발덴은 핀란드의 제지산업을 키운 기업가이자 군사·국가 조직가였다. 1918년 내전에서 백군의 후방과 보급을 정비한 경험은 만네르헤임과의 긴 협력으로 이어졌고, 겨울전쟁에는 본부 대표로 내각에 참여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국방장관이 되어 모스크바 강화조약에 핀란드 측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영토를 잃고 독립을 지켜야 했던 국가의 전환을 맡았다. 노동운동에 보수적이었던 그의 태도는 겨울전쟁의 공동방위 속에서 노동조합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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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하미나 사관학교 졸업, 핀란드 근위대 소위
  • 1918백군 후방지구·본부 후방 참모 책임자
  • 1918–1919핀란드 전쟁장관
  • 1920타르투 평화조약 핀란드 대표
  • 1939–1940겨울전쟁 전시내각 본부 대표
  • 1940–1944핀란드 국방장관, 모스크바 강화조약 서명자
  • 1942보병대장 진급
  • 1944모스크바 휴전협정 핀란드 대표단장
  • 1946사망

아이모 카얀데르

Aimo Cajander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79–1943 ○ 자연사

숲의 과학자에서 전쟁 전야의 총리로 변한 중재자

“모델 카얀데르”라는 이름은 겨울전쟁 당시 예비병이 개인 외투와 소총, 허리띠에 의존해야 했던 현실을 가리켰다.

아이모 카얀데르는 산림 유형론을 발전시킨 식물학자이자 산림행정가였으며, 학문과 국가 산림정책을 연결했다. 그는 세 차례 총리를 지낸 자유주의 정치가로서 사회민주당과 농민당의 연립을 중재했다. 1939년 소련의 요구와 전쟁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국방 투자를 늦춘 내각의 책임은 그의 정치적 유산을 규정했으며, 겨울전쟁 발발 뒤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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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3식물학 박사학위 취득, 산림 유형 연구 착수
  • 1911–1934헬싱키대학교 산림학 교수
  • 1918–1943핀란드 산림공원청 지휘, 1934년부터 총국장
  • 1922핀란드 총리, 제1차 관료 내각
  • 1924핀란드 총리, 제2차 관료 내각
  • 1928–1929국방장관
  • 1933–1943국민진보당 의장
  • 1937–1939핀란드 총리, 제3차 내각과 겨울전쟁 초기

쿨레르보 아킬레스 만네르

Kullervo Achilles Manner
비소련 혁명가 핀란드 핀란드 1880–1939 ✕ 옥사

1918년 핀란드 적색혁명 정부의 수반, 이후 망명 공산당과 코민테른을 오간 혁명가

1917년 7월 만네르의 "자유로운 핀란드로!"라는 외침과 함께 에두스쿤타는 '최고권력법'을 가결했고, 방청석은 핀란드 국가로 화답했다.

핀란드의 사회주의 혁명가. 1918년 내전 당시 핀란드 인민대표단 의장으로 적색정부를 이끌었고, 패배 후 소련으로 망명하여 핀란드 공산당을 공동 창당하고 14년간 당을 이끌며 코민테른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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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헬싱키 대학 졸업, 포르보 신문사 기자
  • 1906사민당 입당, 노동자 신문 『튀욀래이넨』 창간·주필
  • 1910–1914, 1917핀란드 의회 의원 (우시마 선거구)
  • 1917핀란드 의회 의장 겸 사민당 의장
  • 1918.01–04핀란드 인민대표단 의장 (적색정부 수반), 4월에는 적위대 총사령관 겸임
  • 1918.08모스크바에서 핀란드 공산당(SKP) 공동 창당
  • 1920–1934핀란드 공산당 의장, 코민테른 집행위원 (1920, 1928 선출)
  • 1934–1935코민테른 중남미 담당 보고관으로 전보
  • 1935–1939체포·10년형 선고, 우흐타-페초라 수용소에서 사망

오토 빌레 쿠시넨

Otto Wille Kuusinen
코민테른 소련 핀란드 1881–1964 ○ 자연사

코민테른의 마지막 생존자에서 흐루쇼프의 이론가로

1920년 2월, 핀란드와 러시아의 노동운동 지도부는 쿠시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추도 연설을 올렸다. 페트로그라드의 핀란드 공산주의자들은 집회 장소를 '쿠시넨 클럽'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고, 헬싱키에 은신 중이었다.

핀란드 사회민주당 출신으로, 코민테른 서기로 18년간 국제공산운동을 이끌었다. 흐루쇼프 시기 '전인민국가' 테제를 정식화한 탈스탈린화 이론가로, 코민테른 간부 중 유일하게 CPSU 최고 지도부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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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핀란드 사회민주당 입당
  • 1905알렉산드로프 대학 철학사
  • 1908–1917핀란드 의회 의원 (SDP)
  • 1911–1917핀란드 사회민주당 의장
  • 1918핀란드 혁명정부 교육담당 인민위원
  • 1918핀란드 공산당 창립 참여
  • 1921–1939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서기
  • 1939–1940핀란드 민주공화국 정부 수반 겸 외무장관
  • 1940–1956카렐로-핀 SSR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
  • 1940–1958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 부의장
  • 1952–1953, 1957–1964CPSU 중앙위 상임간부회 위원
  • 1957–1964CPSU 중앙위 서기
  • 1959《마르크스-레닌주의 기초》 편집 책임

배이뇌 알프레드 탄네르

Väinö Alfred Tanner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81–1966 ○ 전범재판 실형 1946–1948

협동조합 운동에서 시작해 겨울전쟁 외무장관으로 스탈린과 마주한 핀란드 사민당의 현실주의 지도자

1939년 11월 9일, 핀란드가 축소된 요구를 거부하자 '맞은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탈린이 물었다: '이노마저도 내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핀란드 사회민주당을 1918년 내전의 잿더미에서 의회 민주주의 정당으로 재건한 정치가다. 1926년 핀란드 최초의 좌파 정부 수반이 되었고,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는 파시키비와 함께 실무 대표로 나서 영토 교환에 응하라고 헬싱키를 설득했다. 1939년 11월 9일 마지막 회담에서 핀란드가 축소된 요구마저 거부하자 스탈린과 몰로토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훗날 기록한 이도 탄네르였다. 전후 소련의 압력으로 5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았으나, 출옥 뒤 의회로 돌아와 1960년대 초까지 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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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의회 의원 (사회민주당)
  • 1917재무 담당 상원의원
  • 1926–1927총리
  • 1927–1945국제협동조합연맹 의장
  • 1937–1939재무장관
  • 1939–1940외무장관
  • 1942–1944재무장관
  • 1957–1963사회민주당 당수

아르노 사카리 아르마스 위리외코스키넨

Aarno Armas Sakari Yrjö-Koskinen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85–1951 ○ 자연사

전쟁 직전 모스크바의 핀란드 외교관

1939년 11월 26일 저녁, 그는 몰로토프의 마이닐라 포격 항의각서를 받고 즉시 헬싱키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아르노 위리외코스키넨은 독립 핀란드의 법률가이자 외교관으로, 외무부의 정치 업무와 대외 협상을 맡았다. 모스크바 공사로서 그는 1939년 11월 마이닐라 포격을 둘러싼 몰로토프의 항의와 핀란드의 회답을 전달하며 전쟁 직전 외교의 최전선에 섰다. 그는 소련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에도 참여했지만, 협상으로 안보 갈등을 봉합하려던 외교는 겨울전쟁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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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철학 칸디다트 학위
  • 1913법학 칸디다트 학위
  • 1920파리 핀란드 공사관 서기관
  • 1924외무부 정치국장
  • 1931외무장관, 모스크바 공사
  • 1932소련·핀란드 불가침조약 서명
  • 1939마이닐라 외교 교환을 담당
  • 1940앙카라 공사관장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 1889–1956 ○ 전쟁책임 10년형, 1949년 사면

겨울전쟁 중 총리로 등장하여 모스크바 평화 조약을 협상한 핀란드 대통령

이 재판은 익살극이다. 실제 기소자는 핀란드 국가가 아니라 한 초강대국의 정부이며, 실제 피고는 핀란드 국민이다.

겨울전쟁 발발 직후 핀란드 총리가 되어 소련이 인정을 거부한 합법 정부를 이끌었고, 1940년 3월 모스크바 평화 조약을 협상했다. 핀란드은행 총재 출신의 경제 전문가로 대통령에 올랐으며, 계속전쟁에서 독일과 협력했으나 1944년 뤼티-리벤트로프 협정을 개인 자격으로 맺고 사임해 만네르헤임의 대소 강화를 열었다. 전후 전쟁 책임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49년 사면되었고, 오늘날 핀란드에서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지도자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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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1924, 1927–1929국회의원 (국민진보당)
  • 1921–1924재무장관
  • 1924–1939, 1944–1945핀란드은행 총재
  • 1925국민진보당 대통령 후보
  • 1939–1940핀란드 총리
  • 1940–1944핀란드 대통령

에리크 하인리히스

Axel Erik Heinrichs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계 1890–1965 ○ 자연사

전쟁과 외교의 경계에 선 핀란드 장군

에리크 하인리히스는 핀란드의 군인으로, 만네르헤임과 가까이 일하며 전쟁 지휘와 군사참모 업무를 함께 맡았다. 겨울전쟁에서 카렐리야 지협 방어를 지휘한 그는 1941년 독일과의 군사 협력을 조율한 뒤 카렐리야군 사령관으로 공세를 이끌었다. 전후에는 무기 은닉 사건의 여파로 군 경력을 마쳤지만, 1948년 모스크바 협상과 만네르헤임 전기 집필에 참여하며 군사 전문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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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18독일에서 핀란드 엽병으로 군사훈련과 동부전선 전투에 참여
  • 1918핀란드 내전에서 제7 엽병대대 지휘
  • 1931–1938제1사단 사령관
  • 1939–1940겨울전쟁에서 제3군단과 카렐리야 지협군 지휘
  • 1940–1941핀란드 육군 총참모장, 1941년 독일과의 군사 협의에 참여
  • 1941–1942카렐리야군 사령관으로 동카렐리야 공세 지휘
  • 1942–1944총참모장으로 전쟁 수행과 독일군 연락 담당
  • 1945핀란드 국방군 총사령관, 무기 은닉 사건 뒤 사임

햘마르 프리돌프 실라스부오

Hjalmar Fridolf Siilasvuo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인 1892–1947 ○ 자연사

수오무살미에서 두 개 소련 사단을 모티 전술로 궤멸시킨 핀란드의 예거 중장

사단도 채 갖춰지기 전이었다: 실라스부오는 완편되지 않은 제9사단으로 소련 163사단을 연말까지 격파했고, 이어 라테 도로에서 44사단을 포위해 모티 더미로 만들었다.

헬싱키 출신의 예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로 건너가 프로이센 예거대대에서 훈련받고 핀란드 내전에서 백군 중대장으로 싸웠다. 겨울전쟁 당시 대령으로 제9사단을 지휘, 수오무살미와 라테 도로에서 소련 제163·제44 사단을 모티 전술로 포위·궤멸시켜 오울루를 향한 소련의 핀란드 분단 계획을 무너뜨렸다. 이 전공으로 소장에 오르고 베스트셀러 『수오무살미 전투』를 썼으나,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계속전쟁과 라플란드 전쟁에서 제3군단장으로 북부 전선과 독일군 축출을 지휘했으며, 1944년 만네르헤임 십자훈장을 받고 54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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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18독일 제27프로이센 예거대대 훈련, 동부전선 참전
  • 1918핀란드 내전 백군 중대장, 탐페레·비푸리 전투
  • 1934–1939북포흐얀마 군관구 사령관, 오울루 시의원
  • 1939–1940제9사단장, 수오무살미·라테 도로에서 소련 2개 사단 격멸
  • 1941–1942제3군단장, 북부 핀란드-소련 전선 지휘
  • 1944카렐리야 지협 제3군단장, 부오크시 방어전
  • 1944–1945라플란드 전쟁 핀란드군 총괄 지휘관, 독일군 축출
  • 1944–1947제1사단장; 1947년 사망

악셀 이바노비치 베르그

Аксель Иванович Берг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소련 핀란드 1893–1979 ○ 자연사

사이버네틱스를 부르주아 사이비과학에서 국가전략으로 되살린 소련 레이더의 아버지

"사이버네틱스의 주된 목표는 인간이 복잡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과정의 통제 효율을 높이도록 돕는 것이다 — 인간의 역할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 1959년 과학아카데미 상임위원회 보고

핀란드계 스웨덴인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제정 해군 장교에서 붉은 함대 잠수함 지휘관이 된 악셀 베르그는 소련에서 레이더 기술의 기초를 닦고 사이버네틱스를 국가 과학정책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과학자-행정가이다. 1937년 체포되어 NKVD 특별설계국에서 군 통신체계를 개발하다 1940년 석방되었으며, 독소전쟁 발발 후 국방위원회 레이더 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소련 최초의 조기경보 레이더 체계를 구축했다. 1953년 국방차관에 올라 군수 전자공학과 컴퓨터 센터를 주도했고, 1959년 과학아카데미 사이버네틱스 과학위원회 의장을 맡아 스탈린 시기 '부르주아 사이비과학'으로 낙인찍혔던 사이버네틱스를 복권시키고 생체공학·구조언어학·인공지능 연구를 제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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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1918전함 체사레비치 항해사, 영국 잠수함 E8 연락장교 (제정 러시아 해군)
  • 1918–1922잠수함 판테라 항해사, 잠수함 리스·볼크·즈메야 함장 (붉은 함대); HMS 비토리아 격침 (1919)
  • 1925–1937해군공병학교 교관, 무선연구소 설립 → 해군통신·원격기계연구소장 (NIMIST)
  • 1937–1940체포, NKVD 특별설계국(샤라슈카)에서 군 통신체계 개발; 증거불충분 석방
  • 1943–1944전기공업 부인민위원; 전연방 레이더 과학연구소 창설·초대 소장
  • 1943–1947국방위원회 레이더 위원회 부위원장 (위원장: 말렌코프)
  • 1953–1957소련 국방차관
  • 1953–1955과학아카데미 무선공학·전자공학연구소 초대 소장
  • 1959–1979과학아카데미 사이버네틱스 과학위원회 의장

유카 랑겔

Jukka Rangell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 1894–1982 ○ 전쟁책임 6년형, 1949년 사면

1941년 의회에서 핀란드의 전쟁 돌입을 선언하고 전후 전쟁책임 재판에 선 총리

1941년 6월 25일 저녁 의회에서 "핀란드는 소련의 공격 대상이 되었으며, 소련은 핀란드를 상대로 전쟁 행위를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핀란드은행 간부로 리스토 뤼티의 측근이 된 그는, 뤼티가 1940년 대통령에 오르자 총리로 발탁되었다. 재임 중 핀란드는 독일과 함께 계속전쟁을 치르며 동카렐리야를 점령했고, 경제 문제보다 외교·군사 권한은 만네르헤임과 뤼티, 비팅 외무장관이 쥐고 있었다. 1942년 힘러 방문 때 "우리에게 유대인 문제란 없다"는 말로 핀란드 유대인 논의를 차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6년 전쟁책임 재판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49년 사면되었고, 이후 정치에 복귀하지 않고 IOC 위원으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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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1913세단뛰기 핀란드 선수권 2회 우승·국가기록 보유
  • 1925–1933OKO(협동조합은행) 법률부장·전무이사
  • 1937–1945핀란드은행 이사
  • 1939–1940, 1943–1944핀란드은행 총재 권한대행·총재
  • 1941–1943핀란드 총리 (계속전쟁기)
  • 1938–1967IOC 위원; 핀란드 올림픽위원회 의장 (1961–1963)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95–1965 ○ 사망

스탈린의 요구를 허세로 간주하고 만네르헤임의 타협론을 묵살한 겨울전쟁 직전의 핀란드 외무장관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라": 파시키비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에르코가 남긴 훈시.

헬싱긴 사노마트를 북유럽 최대 일간지로 키운 언론 재벌로, 1938년 12월 외무장관에 취임하여 소련과의 협상 전권을 장악했다. 모스크바로 떠나는 파시키비에게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라"고 훈시할 만큼 확신에 찬 강경파였으며, 스탈린의 영토 요구를 허세로 간주하고 만네르헤임 원수의 타협 권고를 묵살했다. 그가 소유한 헬싱긴 사노마트가 여론을 타협 불가 방향으로 이끈 가운데 협상은 결렬되었고, 겨울전쟁 발발 후 파시키비는 이를 "에르코의 전쟁"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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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백위대 장교로 핀란드 내전 참전
  • 1919–1927외무부 파리·탈린·런던 근무
  • 1927–1938헬싱긴 사노마트 주필 겸 사노마 Oy CEO
  • 1932무임소장관 겸 내무차관 (수닐라 2차 내각)
  • 1933–1936국회의원 (국민진보당)
  • 1938–1939외무장관 (카얀데르 3차 내각)
  • 1939–1940주스톡홀름 대리공사
  • 1945–1965사노마 Oy CEO·이사회 의장

파보 탈벨라

Paavo Talvela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인 1897–1973 ○ 자연사

만네르헤임의 베를린 밀사로 핀란드와 독일의 군사 협력을 매듭지은 예거 장군

1944년 휴전 후 힘러가 핀란드 무장 저항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하자, 탈벨라는 '만네르헤임 원수의 명령이 있을 경우에만' 응하겠다고 답했다.

핀란드 예거 운동으로 군에 입문한 탈벨라는 겨울전쟁에서 톨바얘르비 전투의 첫 승리를 지휘하며 장군으로 급부상했다. 1940년 가을 만네르헤임의 개인 대리인으로 베를린에 파견되어 독일 참모본부와 핀란드군의 비밀 군사 협력을 협상했고, 이는 계속전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고리가 되었다. 전후 사업가와 헬싱키 시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두 번째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자로서 1966년 보병대장으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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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예거 지원병, 제27프로이센 예거대대
  • 1918백군 대대장, 핀란드 내전; 소령
  • 1919–1922아우누스 원정군 총사령관; 비에나 원정군 대대장
  • 1926–1927사보 예거연대장
  • 1939.12–1940.04탈벨라 전단장(톨바얘르비 승리), 이어 제3군단장; 소장
  • 1940.09만네르헤임의 개인 대리인으로 베를린 파견, 독일-핀란드 군사 협력 협상
  • 1941.06–1942.01제6군단장, 카렐리야군;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1941.8.3)
  • 1942–1944독일 최고사령부 주재 핀란드군 대표; 중장; 1944년 아우누스 전단 사령관

우르호 케코넨

Urho Kekkonen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900–1986 ○ 자연사

중립 외교를 국가 전략으로 만든 장기 집권 대통령

1975년 헬싱키에서 35개국 정상과 대표를 맞이하며 분단된 유럽의 협상 무대를 열었다.

우르호 케코넨은 전후 핀란드의 국가 운영과 대외관계를 규정한 정치가로, 1956년부터 1981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소련과의 긴장을 관리하면서도 핀란드의 서방 경제·정치적 연결을 유지하는 중립 외교를 발전시켰다. 1972년 11월 디폴리 예비협의를 핀란드에 유치하고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틀을 다듬은 일은 그 외교의 절정이었다. 그의 통치는 안정과 국제적 중개의 성과를 남겼지만, 대통령 권한과 동방관계에 의존한 정치가 민주적 경쟁을 좁혔다는 논쟁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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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1932중앙탐정경찰청 법률가
  • 1936–1937법무부 장관
  • 1937–1939내무부 장관
  • 1950–1953핀란드 총리
  • 1954–1956핀란드 총리
  • 1956–1981핀란드 대통령
  • 1972–1975유럽안보협력회의 핀란드 개최와 중재

거스 홀

Gus Hall
비소련 혁명가 미국 핀란드계 1910–2000 ○ 당뇨 합병증 사망

41년간 미국 공산당을 이끈 핀란드계 노동운동가이자 네 차례 대선 후보

'미국의 사회주의는 투표함을 통해 올 것이다' — 1996년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와의 인터뷰에서.

핀란드계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철강 파업 현장에서 성장하여 41년간 미국 공산당을 이끈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 국제레닌학교에서 수학하고 스미스법으로 투옥된 후 당권을 장악, 모스크바 노선에 충실히 경도되어 네 차례 대선에 출마한 냉전기 미국 공산주의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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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7미국 공산당 입당, 청년공산주의동맹 조직가
  • 1931–1933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수학
  • 1935–1937철강노동자조직위원회(SWOC) 창립 참여, '리틀 스틸' 파업 주도
  • 1939클리블랜드 CPUSA 지도자
  • 1942–1946미 해군 기계병 복무 (괌)
  • 1948–1957스미스법 기소, 리븐워스 연방교도소에서 5년 이상 복역
  • 1959–2000CPUSA 서기장·의장
  • 1972–1984CPUSA 대통령 후보 (4회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