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적 배경

이탈리아

6 명

해당 인물

아마데오 보르디가

Amadeo Bordiga
비소련 혁명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1889–1970 ○ 자연사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한 좌파공산주의 이론가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을 붙이려는 것이다. 때가 오면 불꽃이 타오를 것이다." — 1912년, 나폴리 카를 마르크스 서클에서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자이자 좌파공산주의 이론가. 의회선거 거부와 '불변의 혁명 프로그램'을 주창했고 레닌과 직접 논쟁했다. 축출 후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하는 독자적 이론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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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이탈리아 사회당(PSI) 입당
  • 1912나폴리에서 카를 마르크스 서클 창설 — 금선거주의 좌파의 거점
  • 1920제2차 코민테른 대회 참석 — 의회주의를 둘러싸고 레닌과 논쟁
  • 1921리보르노 대회에서 이탈리아 공산당(PCd'I) 창당 — 초대 서기장
  • 1923–1924무솔리니 정권에 체포·구금; 석방 후 지도부 복귀 거부
  • 1926재차 체포, 우스티카 섬 유배 — 그람시와 재회
  • 1930'트로츠키주의' 혐의로 당에서 제명
  • 1951–1970국제공산당(ICP)에서 활동 — 『바탈리아 코무니스타』, 『프로메테오』에 기고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
비소련 혁명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1891–1937 ○ 병사

감옥이 20년간 멈추려 한 두뇌, 헤게모니의 이론가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것은 태어나지 못한다. 이 공위기에 온갖 병적 증상이 나타난다.” — 『옥중수고』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지배가 폭력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동의로 유지된다는 '헤게모니' 이론을 정립했다. 파시스트 옥중에서 『옥중수고』를 집필,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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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신질서』 창간 — 토리노 공장평의회 운동
  • 1921이탈리아공산당(PCd'I) 창립 참여
  • 1924–1926당 서기 겸 의원
  • 1926체포 — "이 두뇌를 20년간 멈춰야 한다"
  • 1929–1935옥중에서 『옥중수고』 33권 집필
  • 1937가석방 직후 병사
  • 1948–1951옥중 저술이 사후 《옥중수고》 선집 6권으로 처음 출간

팔미로 톨리아티

Palmiro Togliatti
비소련 혁명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1893–1964 ○ 자연사

「일 미리오레(Il Migliore)」: 40년간 서유럽 최대 공산당을 이끈 전략가

죽음을 앞두고 쓴 '얄타 각서'로 모스크바로부터의 자율, 다중심주의를 제창하다 (1964)

이탈리아공산당 창립자·서기장. 코민테른 인민전선을 주도했고 1944년 살레르노 전환으로 반파시스트 연정 참여를 이끌었다. 임종 직전 얄타 각서로 다중심주의를 제창, 유로코뮤니즘의 선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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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이탈리아공산당(PCd'I) 창립 참여
  • 1927–1964당 서기 — PCI를 서유럽 최대 공산당으로
  • 1935–1939코민테른 집행부,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전선 지도
  • 1944살레르노 전환 — 반파시스트 연립정부 참여
  • 1946–1948제헌의회 '헌법의 아버지', 1948년 암살 미수 생존
  • 1964얄타에서 사망 — '얄타 각서'로 다중심주의 제창

루이지 론고

Luigi Longo
비소련 혁명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1900–1980 ○ 자연사

스페인 내전과 레지스탕스의 지휘관 '갈로', 코민포름의 자아비판을 겪고 톨리아티의 뒤를 이은 PCI 사무총장

1964년 톨리아티의 뒤를 이어 PCI 사무총장이 되었을 때, 론고는 '나는 두목이 아니라 서기다'라고 선언했다.

1921년 리보르노 대회에서 이탈리아 공산당(PCI) 창당에 참여했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갈로'라는 이름으로 국제여단 총감독으로 싸웠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리발디 여단을 지휘하며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를 이끌었고, 전후 PCI 부서기로 톨리아티를 보좌했다. 1947년 코민포름 창립 회의(슈클라르스카 포렝바)에 에우제니오 레알레와 함께 PCI 대표로 참석해 프랑스 공산당과 함께 격렬한 자아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PCI의 노선을 강경 투쟁으로 전환시켰다. 1964년 톨리아티 사후 사무총장이 되어 '이탈리아식 사회주의' 노선과 모스크바에 대한 자율성을 추구했고,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지지하며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정식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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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리보르노 대회에서 PCI 창당 참여
  • 1936–1939국제여단 총감독 (스페인 내전), 별명 '갈로'
  • 1943–1945가리발디 여단 총사령관, CVL 부사령관
  • 1945–1964PCI 부서기
  • 1947.09코민포름 창립 회의 PCI 대표 (슈클라르스카 포렝바)
  • 1964–1972PCI 사무총장
  • 1972–1980PCI 명예 의장
비소련 혁명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1905–1986 ○ 자연사

코민포름 창립 회의의 이탈리아 대표로, 스탈린의 전화선을 목격한 공산주의자에서 반공 비판자로 전향한 인물

“스탈린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회의의 절대적 지배자였다. 토론 중에 우리가 이 사실을 의식하게 된 것은 슈클라르스카 포렝바 성과 크렘린 사이에 직통 전화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966년 회고록)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이자 의사로, 전후 연립정부에서 외무차관을 지냈고 폴란드 대사를 역임했다. 1947년 코민포름을 창립한 슈클라르스카 포렝바 회의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석했으며, 1966년 회고록은 크렘린으로 직통된 스탈린의 전화선과 프랑스·이탈리아 공산당에 대한 즈다노프의 사전 계획된 공격을 포함한 회의의 가장 상세한 목격 증언이 되었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계기로 이탈리아 공산당과 결별했고, 이후 반공 비판자로 활동하며 『사회주의 통신』을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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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이탈리아 공산당(PCI) 입당
  • 1932파시스트 특별재판소에서 10년형 선고
  • 1937–1939파리에서 『라 보체 델리 이탈리아니』 편집자
  • 1944–1947보노미, 파리, 데 가스페리 내각에서 외무차관
  • 1945–1947주폴란드 이탈리아 대사
  • 1947.09코민포름 창립 슈클라르스카 포렝바 회의 이탈리아 대표
  • 1948–1953이탈리아 공화국 상원의원
  • 1957PCI에서 제명; 『사회주의 통신』 공동 창간

엔리코 베를링구에르

Enrico Berlinguer
비소련 혁명가 이탈리아 이탈리아 1922–1984 ○ 뇌출혈

서구 최대 비집권 공산당을 이끈 유로코뮤니즘의 설계자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1981년 7월 28일)에서 이탈리아 정당 체제의 구조적 부패를 '도덕적 문제(questione morale)'로 명명하며: "오늘날 정당들은 무엇보다 권력과 후견주의의 기계다. 사회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지식은 빈약하거나 왜곡되어 있고, 사상·이상·정책은 거의 없거나 모호하며, 감정과 시민적 열정은 제로다." 이 표현은 이후 수십 년간 이탈리아 정치 담론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탈리아 공산당(PCI) 서기장(1972–1984). 소련 지도를 거부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인 유로코뮤니즘을 주창했으며, 1976년 총선에서 PCI 사상 최고인 34.4% 득표율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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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PCI 입당, 사사리 청년공산주의자 지부 창립
  • 1944반파시스트 빵 시위로 체포, 3개월 구금 후 무혐의 석방
  • 1949–1956이탈리아청년공산동맹(FGCI) 서기
  • 1962PCI 서기국 위원 겸 국제부 책임자
  • 1968–1984이탈리아 하원의원 (로마, 5선)
  • 1969PCI 부서기, 루이지 론고의 후계자로 내정
  • 1972–1984이탈리아 공산당(PCI) 서기장
  • 1979–1982유럽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