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인터내셔널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수석 이론가,『신시대』창간 편집자, 마르크스『자본론』제4권 편집자
「우리에게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사회적 생산은 비민주적 체제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 『프롤레타리아 독재』(1918)
제2인터내셔널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에르푸르트 강령을 집필하고 베른슈타인 수정주의를 논박했으며, 혁명 후 볼셰비키 독재 비판으로 사회민주주의와 레닌주의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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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5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자당 입당, 초기 저작 『다윈과 사회주의』 발표
- 1880–1883취리히 이주, 번스타인과 교류; 런던에서 마르크스·엥겔스와 개인적 친교
- 1883–1917『신시대(Die Neue Zeit)』 창간 및 35년간 편집장 — 제2인터내셔널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 1885–1890런던에서 엥겔스와 긴밀히 협력, 마르크스 유고 『잉여가치학설사』 편집 착수
- 1891–1892에르푸르트 강령 이론부 집필, 주해서 『계급투쟁』 출간 — 독일 사민당의 마르크스주의 정립
- 1899–1909베른슈타인 수정주의 논쟁에서 정통 마르크스주의 옹호; 『권력에의 길』 출간
- 1917전쟁 반대 입장으로 사민당 탈당, 독립사회민주당(USPD) 공동 창립
- 1918–1922『프롤레타리아 독재』 출간으로 볼셰비키 비판, 레닌의 반박서 촉발
나치 특수작전의 지휘관이자 선전의 산물
그란사소에서 무솔리니 앞에 선 장면은 실제 지휘권보다 선전의 공로가 더 크게 기록된 순간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스코르체니는 Waffen-SS 장교로서 나치 독일의 사보타주와 특수작전을 지휘했다. 1943년 그란사소 작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위치를 찾고 SS 분견대를 이끌어 현장에 참여했지만, 작전 전체의 계획과 지휘는 공수부대 장교 하랄트 모르스와 쿠르트 슈투덴트의 몫이었다. 나치 선전은 그를 ‘무솔리니의 구출자’로 내세웠고, 그는 헝가리 정권 전복과 아르덴 공세의 위장작전에도 관여했다. 전후 전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스페인에서 극우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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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오스트리아 나치당 가입
- 1938오스트리아 병합 과정에서 SS 대원으로 활동
- 1943RSHA 제6국 특수공작 부문 지휘
- 1943그란사소 작전에서 SS 분견대 지휘
- 1944헝가리 판처파우스트 작전 관여
- 1944아르덴 공세 그라이프 작전 지휘
- 1947다하우 군사재판에서 무죄 판결
- 1953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군사 고문
철의 장막을 가른 오스트리아 유럽주의자
1989년 6월 27일, 모크와 호른 줄러가 쇼프론 인근 철조망을 절단하며 국경 개방을 세계에 알렸다.
알로이스 모크는 오스트리아 국민당의 정치가로, 유럽 통합을 오스트리아 외교의 중심 과제로 삼았다. 외무장관으로서 헝가리의 국경 개방과 오스트리아의 유럽공동체 가입을 추진하며 냉전 종식기의 중부 유럽 재편에 관여했다. 1989년 6월 27일 호른 줄러와 국경 철조망을 상징적으로 절단한 장면은 동독 주민들의 탈출과 동구권 붕괴로 이어진 국경 개방의 국제적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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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빈대학교 법학 박사
- 1961–1966연방수상실 유럽경제공동체·유럽자유무역연합 담당관, 파리 OECD 대표부
- 1966–1969요제프 클라우스 수상 비서실장
- 1969–1970교육·과학·연구·예술·문화·체육 연방장관
- 1979–1989오스트리아 국민당 연방당수
- 1987–1989오스트리아 부총리
- 1987–1995오스트리아 외무장관
- 1990국방 행정 임시 관장
티토-스탈린 결별의 공산권 문서 증거로 기존 통념을 뒤집은 스위스 역사학자
페로비치는 새로 개방된 동구권 문서에서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문제)이 1948년 모스크바와의 결별을 촉발했으며,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은 사후 정당화된 신화였음을 입증했다.
스위스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취리히 대학교 동유럽사 교수 겸 동유럽학 센터(CEES) 소장이다. 2007년 《냉전연구》에 발표한 「티토-스탈린 결별: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본 재평가」에서, 기존의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병합 시도)이 분열의 실질적 원인이었음을 구소련권 문서로 입증했다. 북캅카스사, 소련 에너지 외교사 등에서도 주목할 저작을 남겼으며, 『코카서스 분석 다이제스트』 등 온라인 학술지를 창간·편집하며 동유럽 연구의 대중적 확산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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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1997취리히 대학교에서 역사·정치학·러시아 문학 수학
- 2001취리히 대학교 박사 학위 취득 (러시아 지역주의 연구)
- 1997–2005ETH 취리히 안보연구센터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 2008–2011바젤 대학교 역사학과 연구원
- 2011–현재취리히 대학교 동유럽사 교수
- 2014취리히 대학교 교수 자격 취득 (북캅카스사 연구)
- 2017취리히 대학교 동유럽학 센터(CEES) 설립·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