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스페인

사건 6 · 소속 인물 32 · 출신 인물 33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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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811 파라과이파라과이독립
  2. 1816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독립
  3. 1818 칠레칠레독립
  4. 1819 콜롬비아콜롬비아독립
  5. 1821 과테말라과테말라니카라과니카라과멕시코멕시코베네수엘라베네수엘라엘살바도르엘살바도르온두라스온두라스코스타리카코스타리카파나마파나마페루페루독립
  6. 1822 에콰도르에콰도르독립
  7. 1825 볼리비아볼리비아독립
  8. 1861 도미니카 공화국도미니카 공화국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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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65 도미니카 공화국도미니카 공화국독립
  2. 1898 필리핀필리핀독립
  3. 1902 쿠바쿠바독립
  4. 1956 모로코모로코독립
  5. 1968 적도 기니적도 기니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6전체보기

  1. 1791–1804아이티 혁명1791년 8월 생도맹그 북부 평원의 노예 봉기는 파리의 어떤 법령보다 앞섰다.
  2.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3. 1885–1941.11.06유럽의 성개혁 운동과 1930년대의 반동 (1885~1941)19세기 말 성과학과 신맬서스주의, 사회주의의 가족론에서 자란 성개혁 운동은 독일 형법 제175조·제218조, 영국의…
  4. 1931–1941.11.06스페인 제2공화국의 성개혁과 프랑코 체제의 반동 (1931~1941)1931년 공화국 헌법은 남녀평등과 이혼권을 명문화했고, 의회는 캄포아모르와 켄트의 토론 끝에 여성 참정권을 의결했다.
  5. 1934–1939코민테른의 인민전선 전환1928년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주적으로 삼던 코민테른은 1933년 나치 집권과 1934년 프랑스·오스트리아의 반파시즘 투쟁을…
  6. 1936–1939스페인 내전1936년 7월 군부의 반란은 정부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무장으로 저지됐고, 그 자리에서 카탈루냐와 아라곤의 공장과 토지가…

정당·세력·조직 15

정당

세력·운동

국가기관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32전체보기

페르난도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Fernando Fernández de Córdova
스페인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스페인 스페인 1809–1883 ○ 자연사

1849년 스페인 원정군을 이끌고 가에타의 교황 곁으로 가 로마 공화국 진압에 나선 스페인 장군

180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해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 루이스와 함께 제1차 카를로스 전쟁에서 이사벨 2세 편에 서서 싸웠고, 온건당에 속했다. 1848년 9월 카탈루냐 총사령관이 되어 제2차 카를로스 전쟁의 반란 세력을 이듬해 초까지 진압했다. 1849년 5월 교황의 세속 권력을 되살리고 로마 공화국을 무너뜨리러 이탈리아로 파견되어, 스페인 병사 4,000명을 이끌고 가에타에서 비오 9세 휘하에 들어갔다. 뒤에 육군장관을 지냈고 1854년 7월 혁명적 위기 속에 하루 동안 총리를 맡았다. 1868년 혁명을 지지해 급진민주당에 들어갔고, 1873년 정계에서 물러났다. 1883년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48카탈루냐 총사령관
  • 1849교황령 원정 스페인군 사령관
  • 1854육군장관, 하루 동안 총리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Francisco Largo Caballero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린 UGT의 노동자 지도자, 혁명과 전쟁 사이에서 무너진 공화국 총리

1936년 11월, 라르고 카바예로는 CNT 지도자 네 명을 각료로 임명했다. 국가의 폐지를 강령으로 삼아 온 아나키스트들이 국가의 장관석에 앉은 것이다. 그중 보건장관 페데리카 몬세니는 스페인 역사상 첫 여성 각료였다.

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장공으로 일하다 노동조합 지도자가 된 사람. 노동총동맹(UGT)을 이끌며 1917년 8월 총파업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 아래에서는 국가참사원에 들어가 조직을 지켰는데 이 선택은 평생 논쟁으로 남았다. 제2공화국 노동장관으로 농촌 8시간 노동제를 밀어붙였고, 1934년 아스투리아스 봉기 전후로 급격히 좌경화해 지지자들에게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렸다. 1936년 9월 총리 겸 전쟁장관이 되어 11월에는 CNT 지도자 넷을 입각시켜 아나키스트를 처음으로 정부에 앉혔으나, 인민군 재건과 혁명의 속도를 놓고 공산당·소련 고문단과 계속 부딪쳤다. 1937년 5월 사태 뒤 POUM 금지 요구를 거부하다 각료들이 이탈하면서 물러났고, 망명지 프랑스에서 게슈타포에 붙잡혀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869마드리드의 가난한 집에서 출생, 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장공이 됨
  • 1890–1894건설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노동총동맹(UGT) 활동 시작, 1894년 PSOE 입당
  • 19178월 총파업 지도로 종신형 선고, 이듬해 하원의원 당선과 함께 석방
  • 1924–1930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 아래 국가참사원 노동 참사관, UGT 조직을 유지한 대가로 오랜 논쟁을 남김
  • 1925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사후 PSOE와 UGT의 최고 지도자로
  • 1931–1933제2공화국 노동장관, 농촌 8시간 노동제를 비롯한 노동 입법 추진
  • 1934–1935「스페인의 레닌」으로 불릴 만큼 좌경화, 10월 아스투리아스 봉기 실패로 수감됐다 무죄 석방
  • 1936.09.04총리 겸 전쟁장관 취임
  • 1936.11CNT 각료 네 명을 입각시키고 정부를 발렌시아로 이전
  • 1937.05.175월 사태 뒤 POUM 금지를 거부하다 총리직에서 물러남
  • 1937–1938UGT 지도부에서도 밀려남
  • 1939공화국 패배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 1943–1945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수감, 해방으로 생환
  • 1946.03.23파리에서 사망, 1978년 유해가 마드리드로 돌아옴

훌리안 베스테이로

Julián Besteiro

공화국 의회 의장 지낸 사회당 우파, 네그린 정부 전복하고도 마드리드에 남았다

「대다수, 민중은 떠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왔고, 그들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입니다」, 사회당 기관지 《라 보스》에, 1939년 3월

마드리드 대학 철학 교수로 출발해 1925년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뒤를 이어 사회당(PSOE)과 UGT를 이끈 마르크스주의 수정파였다. 제2공화국 제헌의회 의장(1931)을 지내며 온건한 의회주의 노선을 고수했고, 1934년 10월 무장봉기에 반대하며 당내 주류에서 밀려났다. 내전 발발 후에도 마드리드에 남아 평화 협상을 모색했고, 1939년 3월 카사도 대령의 네그린 전복에 합류해 국방평의회 외무담당이 되었으나 프랑코는 무조건 항복만을 받아들였다. 다른 평의회 구성원들이 망명하는 날에도 홀로 마드리드에 남아 ‘노동자들과 늘 함께 살아왔으니 그들의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말했고, 프랑코 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카르모나 감옥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2PSOE·UGT 입당; 마드리드 대학 논리학 교수 임용
  • 1917혁명적 총파업 위원회 참여, 종신형 선고 후 1918년 사면
  • 1925–1931PSOE·UGT 의장;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에 협조 노선
  • 1931–1933제2공화국 제헌의회 의장
  • 193410월 무장봉기에 반대, UGT 의장 사임
  • 1937.05조지 6세 대관식 공화국 대표로 런던 방문, 이든과 평화 중재 모색
  • 1939.03카사도 쿠데타 합류, 국방평의회 외무담당
  • 1939.03–1940.09프랑코군에 체포, 군사재판서 30년형 선고, 카르모나 감옥에서 사망

아우로라 로드리게스 카르바예이라

Aurora Rodríguez Carballeira
독립 활동 스페인 스페인 1879–1955 ○ 정신병원에서 사망

딸 일데가르트를 「미래의 여성」으로 길러 낸 뒤 살해한 어머니

1933년 6월 9일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나려던 딸을 잠든 사이 총으로 쏘아 죽였고, 끝내 뉘우치지 않은 채 정신병원에서 숨졌다.

페롤의 부유한 자유주의자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서재에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읽으며 독학했다. 언니가 맡긴 조카 페피토 아리올라를 음악 신동으로 키운 경험에서 교육·개혁·우생학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아버지가 죽은 뒤 1914년 여성 권리를 지킬 「미래 여성의 모범」을 낳으려고 아이에게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아버지를 골라 딸 일데가르트를 낳았다. 딸이 정치에 깊이 뛰어들고 독립하려 하자 1933년 6월 9일 잠든 딸을 쏘아 죽였다. 26년 형을 받아 시엠포수엘로스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1955년 숨졌다.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33전체보기

페르난도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Fernando Fernández de Córdova
스페인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스페인 스페인 1809–1883 ○ 자연사

1849년 스페인 원정군을 이끌고 가에타의 교황 곁으로 가 로마 공화국 진압에 나선 스페인 장군

180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해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 루이스와 함께 제1차 카를로스 전쟁에서 이사벨 2세 편에 서서 싸웠고, 온건당에 속했다. 1848년 9월 카탈루냐 총사령관이 되어 제2차 카를로스 전쟁의 반란 세력을 이듬해 초까지 진압했다. 1849년 5월 교황의 세속 권력을 되살리고 로마 공화국을 무너뜨리러 이탈리아로 파견되어, 스페인 병사 4,000명을 이끌고 가에타에서 비오 9세 휘하에 들어갔다. 뒤에 육군장관을 지냈고 1854년 7월 혁명적 위기 속에 하루 동안 총리를 맡았다. 1868년 혁명을 지지해 급진민주당에 들어갔고, 1873년 정계에서 물러났다. 1883년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48카탈루냐 총사령관
  • 1849교황령 원정 스페인군 사령관
  • 1854육군장관, 하루 동안 총리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Francisco Largo Caballero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린 UGT의 노동자 지도자, 혁명과 전쟁 사이에서 무너진 공화국 총리

1936년 11월, 라르고 카바예로는 CNT 지도자 네 명을 각료로 임명했다. 국가의 폐지를 강령으로 삼아 온 아나키스트들이 국가의 장관석에 앉은 것이다. 그중 보건장관 페데리카 몬세니는 스페인 역사상 첫 여성 각료였다.

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장공으로 일하다 노동조합 지도자가 된 사람. 노동총동맹(UGT)을 이끌며 1917년 8월 총파업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 아래에서는 국가참사원에 들어가 조직을 지켰는데 이 선택은 평생 논쟁으로 남았다. 제2공화국 노동장관으로 농촌 8시간 노동제를 밀어붙였고, 1934년 아스투리아스 봉기 전후로 급격히 좌경화해 지지자들에게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렸다. 1936년 9월 총리 겸 전쟁장관이 되어 11월에는 CNT 지도자 넷을 입각시켜 아나키스트를 처음으로 정부에 앉혔으나, 인민군 재건과 혁명의 속도를 놓고 공산당·소련 고문단과 계속 부딪쳤다. 1937년 5월 사태 뒤 POUM 금지 요구를 거부하다 각료들이 이탈하면서 물러났고, 망명지 프랑스에서 게슈타포에 붙잡혀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869마드리드의 가난한 집에서 출생, 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장공이 됨
  • 1890–1894건설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노동총동맹(UGT) 활동 시작, 1894년 PSOE 입당
  • 19178월 총파업 지도로 종신형 선고, 이듬해 하원의원 당선과 함께 석방
  • 1924–1930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 아래 국가참사원 노동 참사관, UGT 조직을 유지한 대가로 오랜 논쟁을 남김
  • 1925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사후 PSOE와 UGT의 최고 지도자로
  • 1931–1933제2공화국 노동장관, 농촌 8시간 노동제를 비롯한 노동 입법 추진
  • 1934–1935「스페인의 레닌」으로 불릴 만큼 좌경화, 10월 아스투리아스 봉기 실패로 수감됐다 무죄 석방
  • 1936.09.04총리 겸 전쟁장관 취임
  • 1936.11CNT 각료 네 명을 입각시키고 정부를 발렌시아로 이전
  • 1937.05.175월 사태 뒤 POUM 금지를 거부하다 총리직에서 물러남
  • 1937–1938UGT 지도부에서도 밀려남
  • 1939공화국 패배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 1943–1945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수감, 해방으로 생환
  • 1946.03.23파리에서 사망, 1978년 유해가 마드리드로 돌아옴

훌리안 베스테이로

Julián Besteiro

공화국 의회 의장 지낸 사회당 우파, 네그린 정부 전복하고도 마드리드에 남았다

「대다수, 민중은 떠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왔고, 그들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입니다」, 사회당 기관지 《라 보스》에, 1939년 3월

마드리드 대학 철학 교수로 출발해 1925년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뒤를 이어 사회당(PSOE)과 UGT를 이끈 마르크스주의 수정파였다. 제2공화국 제헌의회 의장(1931)을 지내며 온건한 의회주의 노선을 고수했고, 1934년 10월 무장봉기에 반대하며 당내 주류에서 밀려났다. 내전 발발 후에도 마드리드에 남아 평화 협상을 모색했고, 1939년 3월 카사도 대령의 네그린 전복에 합류해 국방평의회 외무담당이 되었으나 프랑코는 무조건 항복만을 받아들였다. 다른 평의회 구성원들이 망명하는 날에도 홀로 마드리드에 남아 ‘노동자들과 늘 함께 살아왔으니 그들의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말했고, 프랑코 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카르모나 감옥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2PSOE·UGT 입당; 마드리드 대학 논리학 교수 임용
  • 1917혁명적 총파업 위원회 참여, 종신형 선고 후 1918년 사면
  • 1925–1931PSOE·UGT 의장;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에 협조 노선
  • 1931–1933제2공화국 제헌의회 의장
  • 193410월 무장봉기에 반대, UGT 의장 사임
  • 1937.05조지 6세 대관식 공화국 대표로 런던 방문, 이든과 평화 중재 모색
  • 1939.03카사도 쿠데타 합류, 국방평의회 외무담당
  • 1939.03–1940.09프랑코군에 체포, 군사재판서 30년형 선고, 카르모나 감옥에서 사망

아우로라 로드리게스 카르바예이라

Aurora Rodríguez Carballeira
독립 활동 스페인 스페인 1879–1955 ○ 정신병원에서 사망

딸 일데가르트를 「미래의 여성」으로 길러 낸 뒤 살해한 어머니

1933년 6월 9일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나려던 딸을 잠든 사이 총으로 쏘아 죽였고, 끝내 뉘우치지 않은 채 정신병원에서 숨졌다.

페롤의 부유한 자유주의자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서재에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읽으며 독학했다. 언니가 맡긴 조카 페피토 아리올라를 음악 신동으로 키운 경험에서 교육·개혁·우생학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아버지가 죽은 뒤 1914년 여성 권리를 지킬 「미래 여성의 모범」을 낳으려고 아이에게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아버지를 골라 딸 일데가르트를 낳았다. 딸이 정치에 깊이 뛰어들고 독립하려 하자 1933년 6월 9일 잠든 딸을 쏘아 죽였다. 26년 형을 받아 시엠포수엘로스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1955년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