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135 명

소속 인물

버논 켈로그

Vernon Lyman Kellogg
연구자 미국 미국인 1867–1937 ○ 자연사

과학과 국제구호를 잇고 성인 급식을 확장한 조사관

“부모가 죽도록 내버려 두면서 아이들만 먹이는 것으로 그칠 수 있는가?”

버논 켈로그는 곤충학자이자 과학 행정가로, 스탠퍼드에서 동물학과 곤충 분류를 연구하고 미국 과학 연구의 제도화에 기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허버트 후버의 벨기에 구호 활동을 도운 인연은 그를 전후 국제구호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1921년 볼가 유역을 직접 시찰한 그는 아동만이 아니라 부모와 성인도 구호해야 한다고 워싱턴에 보고했고, 이는 미국구호행정의 사업 확대를 뒷받침했다. 그의 경력은 전문 과학자가 기근 앞에서 행정과 윤리적 판단의 주체가 된 사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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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7–1894캔자스에서 성장하고 캔자스대학교·스탠퍼드대학교·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생물학과 곤충학을 공부했다.
  • 1894–1920스탠퍼드대학교 동물학 교수로 재직하며 동물학과를 세우고 곤충 분류와 진화를 연구했다.
  • 1915–1916벨기에 미국구호위원회 책임자로 전쟁 난민과 민간인 구호를 조직했다.
  • 1917–1920구호와 전쟁 경험을 저술하고 후버의 식량·국제구호 활동을 지원했다.
  • 1921년 9월미국구호행정 특수 조사관으로 첫 구호 열차를 타고 볼가 유역을 조사했다.
  • 1921년 말워싱턴에서 후버에게 성인까지 포함하는 구호 확대의 필요성을 보고했다.
  • 1921–1933국가연구위원회 초대 상임 서기로 일하고 과학연구 제도와 대중 과학을 조직했다.

E. H. 카

E. H. Carr
연구자 영국 영국 1892–1982 ○ 자연사

14권 『소비에트 러시아사』의 저자, 네프의 "시장과 계획의 잠재적 양립불가능성"을 진단한 역사가

'신경제정책의 원리와 계획의 원리 사이에는 잠재적 양립불가능성이 있었다.' 『계획경제의 기초』(1969)에서.

영국 외교관 출신 역사가로, 14권의 『소비에트 러시아사』(1950–1978)를 집필해 초기 소비에트 권력의 정치·경제·사회를 총체적으로 기록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20년의 위기』(1939)로 현실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역사란 무엇인가』(1961)에서 역사 서술을 사실 축적이 아닌 해석의 과정으로 재정의했다. 네프에 관해 '신경제정책의 원리와 계획의 원리 사이에는 잠재적 양립불가능성이 있었다'고 진단했으며, 이는 네프의 생존 가능성을 둘러싼 4대 역사학적 입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말년까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로 소비에트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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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1936영국 외무부 외교관, 파리 강화회의(1919) 및 리가 대사관(1925~1929) 근무
  • 1936–1947애버리스트위스 우드로 윌슨 국제정치학 교수
  • 1941–1946『타임스』 부편집장
  • 1950–197814권 『소비에트 러시아사』 간행
  • 1953–1955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 정치학 펠로
  • 1955–1982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셰르바코프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Щербаков
연구자 소련 러시아계 1893–1966 ○ 자연사

우라늄 탐사의 지질학적 설계자

1943년, 그는 광범위한 우라늄 탐사 대신 중앙아시아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드미트리 셰르바코프는 중앙아시아와 희소금속을 연구한 소련의 지질학자·지구화학자·지리학자이자 과학 조직가였다. 그는 파미르와 중앙아시아 탐사를 이끌며 광상 분포를 예측하는 금속생성학적 방법을 발전시켰고, 전시에는 전략 자원 탐사에 기여했다. 1943년 우라늄위원회에 참여해 소련의 우라늄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중앙아시아 탐사에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이 선택은 초기 소련 원자력 사업에 필요한 우라늄 탐사망을 조직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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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페르가나 라듐 탐사대 선임 채집원
  • 1921–1930자연생산력연구위원회 연구원
  • 1925–1930국립 라듐 연구소 광물·지구화학 부문 책임자
  • 1928–1936파미르·중앙아시아 종합 탐사대 학술 책임자
  • 1930–1938지구화학연구소 및 지질과학연구소 부소장
  • 1942–1943소련 과학아카데미 지질과학연구소 코카서스 탐사대 대장
  • 1943전연방 광물원료연구소 우라늄위원회 위원
  • 1953–1966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제임스 마틴 스태그

James Martin Stagg
연구자 영국 스코틀랜드 1900–1975 ○ 자연사

전쟁의 결정을 바꾼 기상학자

1944년 6월 4일 밤, 스태그는 폭풍 뒤 6월 6일 새벽까지 이어질 짧은 호전을 예보했다.

제임스 스태그는 영국 기상청 출신의 스코틀랜드 기상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기상 자문을 맡았다. 그는 해상 관측, 정찰 비행, 암호 해독 자료를 종합해 군사작전에 필요한 예보를 만들었고, 기상학을 지휘부의 작전 판단과 연결했다. 1944년 6월 4일 폭풍 뒤 6월 6일의 짧은 호전 가능성을 제시해 노르망디 상륙의 실행 조건을 판단하게 했으며, 이는 완벽한 날씨가 아니라 감수 가능한 위험을 과학적으로 규정한 결정이었다. 전후에도 기상청에서 일하며 자신의 경험을 『오버로드 예보』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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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에든버러대학교에서 우등 문학석사 취득
  • 1924영국 기상청 조수
  • 1932–1933영국 북극 캐나다 탐험대 지휘
  • 1939큐 천문대 감독관
  • 1943–1945연합군 최고사령부 작전 오버로드 수석 기상장교
  • 1944영국 공군 지원예비역 소장 대우의 그룹 대령
  • 1945–1960전후 영국 기상청 근무, 1960년 서비스국장 퇴임
  • 1971『오버로드 예보』 출간

필리프 예고로비치 미헤예프

Филипп Егорович Михеев
연구자 소련 러시아인 1902–1975 ○ 옥고 후 재활

숙청에 휩쓸린 당 조직의 실무 책임자

“진심으로 뉘우치니 죄를 씻을 기회를 달라”고 그는 최후진술에서 말했다.

필리프 미헤예프는 레닌그라드의 당 조직에서 실무와 행정을 맡은 소련 공산당 간부였다. 전쟁 중 레닌그라드 방어에 참여했지만, 전후 숙청은 지도부뿐 아니라 조직의 운영을 떠받친 실무자에게도 닥쳤다. 그는 레닌그라드 사건의 중앙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고, 1954년 불법 수사로 자백이 조작된 사실이 확인되어 재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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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트베리현 체르노야로보 마을에서 출생
  • 1923프스코프 소비에트당 학교에서 수학
  • 1924–1926붉은군대 복무
  • 1926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입당
  • 1936–1940데츠코셀스키 지구당위원회 부서기 및 제1서기
  • 1940–1949레닌그라드 시·주 당위원회 관리국장
  • 1941–1944레닌그라드 방어에 참여
  • 1950–1954레닌그라드 사건으로 10년형, 1954년 재활

솔리 주커먼

Solly Zuckerman
연구자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1904–1993 ○ 자연사

과학을 전쟁정책의 실험실로 옮긴 자문가

시칠리아 철도 폭격 분석에서 그는 기관차와 수리시설을 끊어야 철도망 전체가 멈춘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솔리 주커먼은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공무원으로, 과학적 관찰과 실험을 정부 정책에 결합한 운용연구의 선구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폭격 효과를 조사하고 지중해 전선의 경험을 분석해, 노르망디 상륙을 앞두고 프랑스 철도망을 마비시키는 교통계획을 설계했다. 이 계획은 독일군 증원을 늦추는 데 기여했지만 프랑스 민간인 피해와 폭격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남겼다. 전후에는 영국 최초의 정부 수석과학고문으로 과학과 국가정책의 관계를 제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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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케이프타운대학교에서 동물학 학위 취득
  • 1928–1932런던동물학회 해부학 연구자
  • 1934–1945옥스퍼드대학교 해부학 교수
  • 1943–1945영국 폭격조사단 과학국장, 연합군 공군 자문가
  • 1946–1968버밍엄대학교 해부학 교수
  • 1960–1966국방부 수석과학고문
  • 1964–1971영국 정부 최초의 수석과학고문
  • 1977–1984런던동물학회 회장
  • 1971버넘소프의 주커먼 남작으로 종신귀족 서임

레오니트 미하일로비치 네메노프

Леонид Михайлович Неменов
연구자 소비에트인 러시아계 1905–1980 ○ 자연사

전쟁 속에서 원자력 가속기를 세운 물리학자

“우리는 비행기로 호이노야까지 간 뒤 어둠을 기다렸다가 라도가호 상공을 저공비행했다.”

레오니트 네메노프는 핵물리학과 입자가속기 기술을 연구한 소비에트 물리학자였다. 그는 쿠르차토프의 지시로 포위된 레닌그라드에 들어가 피지테흐 사이클로트론의 핵심 부품을 회수했고, 실험실 2에서 1944년 가동한 사이클로트론 건설을 이끌었다. 이 장치는 최초의 미량 플루토늄을 얻어 화학적 분석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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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졸업
  • 1929–1939레닌그라드 물리기술연구소 연구원
  • 1939–1944대형 사이클로트론 설계와 건설 참여
  • 1943–1944실험실 2 사이클로트론 건설 책임
  • 1949공학박사 학위 취득
  • 1962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교수
  • 1968–1980가속기 물리기술·전파기술 측정 전연방연구소 소장
  • 1980모스크바에서 사망

레프 일리치 루시노프

Лев Ильич Русинов
연구자 소련 러시아계 1907–1960 ○ 자연사

핵분열과 핵이성질체를 탐구한 실험물리학자

레프 루시노프는 레닌그라드 물리기술연구소에서 핵물리학의 실험 기반을 넓힌 소련의 물리학자였다. 그는 1939년 게오르기 플료로프와 우라늄 핵분열에서 한 번의 분열마다 둘 이상의 중성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해 연쇄반응 조건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인공 방사성 핵의 이성질체와 중성자·감마선의 상호작용을 연구했으며, 전후에는 연구용 원자로 건설과 핵물리학 연구 집단의 조직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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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1930레닌그라드 공과대학 물리기계학부 학생
  • 1930–1944레닌그라드 물리기술연구소 쿠르차토프 연구실 연구자
  • 1939–1940플료로프와 우라늄 핵분열 중성자 실험 수행
  • 1944핵이성질체 연구로 물리·수학 박사학위 취득
  • 1948실험물리학 교수
  • 1946–1960소련 원자 프로젝트 및 연구용 원자로 개발 참여
  • 1950s고중성자 특성 연구용 원자로 프로젝트 과학책임자

버넷 볼로튼

Burnett Bolloten
연구자 미국 영국 1909–1987 ○ 자연사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 집요한 사료 연구자

그는 전쟁을 취재하러 갔다가, 패배한 혁명의 기록을 평생 수집하는 역사가가 되었다.

버넷 볼로튼은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기자이자, 공화파 내부의 권력투쟁과 혁명 억압을 추적한 역사가였다. 그는 전쟁 중 공산당에 우호적이었으나, 1937년 5월의 충돌과 POUM 탄압을 조사하며 공산주의 세력이 공화국의 혁명적 동맹을 억눌렀다고 보게 되었다. 난민 증언과 방대한 신문·문서 자료를 수십 년간 모아 《스페인 혁명》과 유고작 《스페인 내전》을 남겼고, 그의 연구는 내전의 정치사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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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웨일스에서 태어남
  • 1936–1938유나이티드 프레스 스페인 특파원
  • 1940년대–1980년대멕시코와 미국에서 내전 자료 수집·연구
  • 1961《대위장》 출간
  • 1979《스페인 혁명》 출간
  • 1987캘리포니아에서 사망
  • 1991유고작 《스페인 내전》 출간

고든 스킬링

Harold Gordon Skilling
연구자 캐나다 캐나다 1912–2001 ○ 자연사

프라하의 봄을 기록한 캐나다 정치학자

그는 프라하의 봄을 ‘중단된 혁명’으로 명명해 개혁의 가능성을 역사적 질문으로 남겼다.

고든 스킬링은 체코슬로바키아 현대사와 정치의 권위 있는 연구자로 활동한 캐나다 정치학자였다. 그는 《중단된 혁명》에서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좌절된 실험이 아니라 외부 개입으로 중단된 개혁 혁명으로 분석해, 개혁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에 오래 남을 틀을 제시했다. 토론토대학교에서 동유럽 연구 기반을 세운 그는 학술 연구와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세력에 대한 연대를 함께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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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런던대학교 박사 연구를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처음 방문
  • 1938–1939프라하에서 라디오 방송과 NBC·CBS 뉴스 업무
  • 1959토론토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60–1974러시아·동유럽 연구센터 창립 및 초대 소장
  • 1976《체코슬로바키아의 중단된 혁명》 출간
  • 1981왕립캐나다학회 이니스-게랭 메달 수상
  • 1992바츨라프 하벨에게 체코슬로바키아 백사자훈장 수훈

블라디미르 제르야비치

Vladimir Žerjavić
연구자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계 1912–2001 ○ 자연사

전쟁 인구 손실을 다시 계산한 인구학자

블라디미르 제르야비치는 크로아티아계 경제학자이자 인구학자로, 경제개발 자문과 인구 통계를 연구한 뒤 제2차 세계대전의 유고슬라비아 인명 손실을 분석한 연구자로 알려졌다. 그는 전후 인구조사와 예상 인구를 비교해 실제 사망자와 인구학적 손실을 구분하려 했고, 1989년 유고슬라비아의 전쟁 사망자를 약 102만 7천 명으로 추산했다. 그의 수치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을 포함한 여러 세력의 희생과 전후 보복을 둘러싼 기존 서사를 재검토하게 했지만, 자료와 방법을 둘러싼 비판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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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크리시에서 출생
  • 1930년대자그레브 경제학부 졸업, 민간 부문에서 근무
  • 1945–1958유고슬라비아 산업부·석유연구소·경제연구소 등에서 근무
  • 1958–1982해외 산업개발 자문
  • 1964–1982유엔 아프리카 경제위원회 산업개발 자문 및 인구 분석 전문가
  • 1989제2차 세계대전 유고슬라비아 인구 손실 연구 발표
  • 1990년대전쟁 및 전후 희생자 추산에 관한 저술 지속

아서 M. 슐레진저

Arthur M. Schlesinger Jr.
연구자 미국 미국계 1917–2007

자유주의를 변호한 역사가이자 권력의 내부 기록자

피그만 침공 뒤 그는 결정적 회의에서 더 크게 경고하지 못한 자신을 두고 "나는 몹시 자책했다"고 회고했다.

아서 M. 슐레진저 주니어는 미국 자유주의와 대통령 권력의 역사를 탐구한 역사가이자 공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특별보좌관으로 라틴아메리카 문제와 연설문을 다루며 피그만 침공에 반대했지만, 결정적 회의에서 침묵한 책임도 훗날 인정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국가안보회의 집행위원이 아니었으나 유엔 주재 대사 애들레이 스티븐슨의 위기 발표 작성을 도왔다. 1965년의 『A Thousand Days』는 케네디의 위기 관리를 정교한 지도력의 서사로 각인시켰고, 이후 연구자들은 그 영웅적 기억이 배제한 쿠바와 소련의 행위, 비밀 합의, 구조적 위험을 다시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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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하버드대학교 학사, 최우등 졸업
  • 1939–1942하버드대학교 펠로
  • 1943–1945전략정보국 분석관
  • 1946–1962하버드대학교 역사학 교수
  • 1961–1964케네디 대통령 특별보좌관
  • 1966–1994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인문학 교수
  • 1965『A Thousand Days』 출간, 1966년 퓰리처상 수상

로버트 콘퀘스트

George Robert Acworth Conquest
연구자 영국인 영국계 1917–2015 ○ 자연사

스탈린 시대를 해부한 냉전기 역사가

『The Great Terror』 개정판은 기록관 공개 뒤에도 그의 핵심 문제 제기가 남았음을 보여 주었다.

로버트 콘퀘스트는 소련의 정치적 폭력과 농업 집산화를 연구한 영국계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다. 1968년 『The Great Terror』는 공개된 문서와 망명자 증언을 엮어 대숙청을 모스크바 재판만이 아닌 국가적 테러 체계로 서술했고, 영어권에서 그 시대를 부르는 이름을 널리 정착시켰다. 그의 희생자 추계와 전체주의 해석은 이후 기록관 공개와 연구 성과로 일부 뒷받침되었지만, 규모와 인과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다. 그는 반공 정보 활동과 문학 활동에도 관여해, 학술 연구와 냉전 정치의 경계가 얽힌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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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1939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영국 공산당에 가입
  • 1940–1946영국 육군 장교로 복무
  • 1944–1948불가리아 주재 영국 공관 및 연합군 통제위원회 연락장교
  • 1948–1956영국 외무부 정보연구부에서 대소련 정보·선전 업무
  • 1962–1963『스펙테이터』 문학 편집자
  • 1968『The Great Terror: Stalin's Purge of the Thirties』 출간
  • 1986『The Harvest of Sorrow』 출간
  • 1981–2015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스라엘 게츨러

ישראל גצלר
연구자 독일·이스라엘 폴란드 1920–2012 ○ 자연사

크론시타트 봉기를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최후'로 해석한 역사가

어느 날 오전 11시에 논쟁을 중단해야 했는데, 그가 다섯 시간 뒤 돌아와서는 연결하는 말 한마디 없이 바로 '일곱째로, 레닌은…' 하고 중단된 지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베를린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나치 시절 시베리아 금광촌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고, 1971년 이후 히브리대학 교수로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했다. 마르토프 평전(1967)으로 멘셰비키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을 조명했으며, 『크론시타트 1917-1921』(1983)에서는 페트로파블롭스크호와 세바스토폴호 승무원의 93.9%가 1917년 이전 입대자임을 함대 명부로 입증해 봉기 참여자들이 '농민 복장의 백위파'가 아니라 혁명의 구주역들이었음을 실증했다. 소련사에서 개인과 집단의 선택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정착촌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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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나치에 의해 가족과 함께 폴란드로 추방
  • 1941소련 당국에 의해 시베리아 금광촌으로 이주
  • ~1945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
  • ~1950s애들레이드 대학에서 역사학 학위 취득, 이후 교수 임용
  • ~1960s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에서 기록연구
  • 1967『마르토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정치적 평전』 출간
  • 1971히브리대학 교수 취임
  • 1983『크론시타트 1917-1921: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운명』 출간
  • 2002『니콜라이 수하노프: 러시아 혁명의 기록자』 출간

보골류브 코초비치

Bogoljub Kočović
연구자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계 세르비아인 1920–2013 ○ 자연사

전쟁 희생자 수를 다시 계산한 독립 통계학자

1985년 그는 전쟁 손실을 실제 손실과 인구학적 손실로 나누어 제시했다.

보골류브 코초비치는 사라예보 출신의 세르비아계 법률가이자 통계학자로,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인구와 전쟁 손실을 분석했다. 그는 1985년 저서에서 1921년·1931년·1948년 인구조사를 비교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실제 손실을 약 101만 4천 명, 인구학적 손실을 약 198만 5천 명으로 추산했다. 그의 연구는 국가가 제시한 170만 6천 명이라는 수치와 구별되는 독립적 추계로, 전쟁 희생자 수를 둘러싼 역사논쟁의 핵심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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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7–1952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 조교
  • 1949파리에서 법학 박사 취득
  • 1956시카고 루스벨트대학교 경제학 석사 취득
  • 1963–1984파리에서 미국 기업의 행정·재무 책임자로 활동
  • 1985『유고슬라비아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출간
  • 1997『과학, 민족주의와 선전』 출간
  • 2005『신화의 장례』 출간

게이브리얼 잭슨

Gabriel Jackson
연구자 미국 미국계 1921–2019 ○ 자연사

스페인 공화국과 내전을 해석한 미국 역사학자

게이브리얼 잭슨은 미국의 스페인 현대사 연구자이자 역사가, 저널리스트였다. 1965년 저서 《스페인 공화국과 내전》은 영어권에서 제2공화국과 내전을 종합적으로 다룬 초기 연구로, 공화파 내부의 정치적 갈등까지 분석한 작업이었다. 그는 공화파의 제도적 개혁과 PCE의 전쟁 수행을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한 반면, POUM과 혁명적 좌파의 전략을 비현실적으로 보았으며, 이 해석은 내전사 논쟁의 한 축이 되었다. 매카시즘으로 학문 경력이 지연되었지만 UC 샌디에이고에서 현대 유럽사를 가르쳤고, 은퇴 뒤에도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역사에 관한 저술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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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2하버드대학교 역사·문학 학사
  • 1942–1946미군 복무, 항공기 정비·사진 판독·지도 제작
  • 1950스탠퍼드대학교 현대사 석사
  • 1952툴루즈대학교 현대·현대사 박사
  • 1965–1983UC 샌디에이고 현대 유럽사 교수
  • 1965–1969UC 샌디에이고 역사학과장
  • 1969–1971UC 샌디에이고 교수평의회 의장
  • 1983–2019명예교수·스페인 역사 저술가

미하일 이바노비치 세미랴가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Семиряга
연구자 소련 러시아인 1922–2000 ○ 사망

겨울전쟁의 실제 전사자 53,522명을 최초로 공개하며 소련 공식 기록을 깨뜨린 군사사학자

1989년 『오고뇨크』 22호에 「네즈나메니타야 보이나(빛나지 않은 전쟁)」를 발표하며, 1940년 몰로토프가 공식 발표한 소련군 전사자 48,475명이라는 숫자가 허구임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전후 소련군정청에서 복무한 군사사학자로, 평생을 소련의 전쟁사 연구에 바쳤다. 1989년 잡지 『오고뇨크』에 겨울전쟁의 실제 소련군 전사자가 53,522명임을 공개하며 50년간 유지된 공식 통계를 처음으로 깨뜨렸고, 이후 비밀의정서와 카틴 학살 문서를 최초로 출판하는 등 폐쇄된 기록의 문을 열었다. 만년에는 나치 점령지 협력 문제를 다룬 방대한 연구로 소련사의 마지막 금기를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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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붉은군대 징집
  • 1941–1945대조국전쟁 참전 (돈·스탈린그라드·제3우크라이나·제1벨로루시 전선)
  • 1945–1950독일 주둔 소련군정청 근무
  • 1953역사학 후보 박사 (루자티아인 연구)
  • 1962역사학 박사
  • 1967소련 국방부 군사사연구소 연구원, 『제2차 세계대전사』 9권 책임편집, 국가상 수상
  • 1989『오고뇨크』에 겨울전쟁 실제 사상자 최초 공개
  • 1992『스탈린 외교의 비밀』 출간

마틴 에드워드 말리아

Martin Edward Malia
연구자 미국 미국인 1924–2004 ○ 자연사

소련 붕괴를 예견한 역사 해석자

그는 ‘Z’라는 이름으로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의 모순을 넘지 못하리라 썼고, 훗날 그 글의 필자를 인정했다.

마틴 말리아는 러시아와 유럽의 지성사를 연구한 미국 역사가로, 버클리에서 러시아사 연구와 교육을 이끌었다. 그는 《소련의 비극》에서 레닌주의 사회주의의 자기완결적 설계가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함께 잠식해 소련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1990년에는 ‘Z’라는 필명으로 「스탈린 묘에 부쳐」를 발표해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공산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해석은 소련 붕괴를 설명하는 강력한 한 극을 이루었지만, 사회주의의 역사적 가능성을 이념 자체의 결함으로 환원한다는 논쟁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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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4예일대학교 프랑스어 학사
  • 1951하버드대학교 역사학 박사
  • 1954–1958하버드대학교 역사학 조교수
  • 1955미 의회도서관 러시아 도서 교환 특별 보좌
  • 1958–1991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역사학 교수
  • 1991–2004버클리 명예교수, 저술 활동
  • 1994《소련의 비극》 출간

로버트 W. 데이비스

Robert W. Davies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25–2021 ○ 자연사

소련 공업화의 연대기를 7권으로 쌓은 영국의 경제사가

마지막 권에서 그는 썼다: "소비에트 역사에 대한 나의 견해는 변했지만… 역사의 세부가 선입견과 충돌할 때는 후자가 양보해야 한다… 나는 좌파로 남아 있으며, 더 나은 사회의 조직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영국의 경제사가. E. H. 카와 함께 『계획경제의 기초』를 집필했고, 카의 작업을 이어받아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업화』 전7권을 완성했다. 휘트크로프트와 공저한 『기아의 해』(2004)에서 구소련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1932–1933년 기근 사망자를 550만~650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기근을 계획된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조달 우선 정책·흉작·지도부의 뒤늦은 대응이 결합된 결과로 설명했다. 젊은 시절 영국 공산당원이었으나 1956년 헝가리 침공 후 탈당했고, 좌파로서 "더 나은 사회의 조직은 가능하다"는 신념을 평생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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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1946영국 공군 통신병 복무
  • 1950런던대 SSEES 학사
  • 1954버밍엄대 박사 (소비에트 재정)
  • 1954–1956글래스고대 소비에트연구소 강사
  • 1956–1965버밍엄대 연구원·강사·선임강사
  • 1963–1979버밍엄대 CREES 초대 소장
  • 1965–1988버밍엄대 소비에트경제학 교수
  • 1988정년퇴임, 명예교수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쿠르노소프

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урносов
연구자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26–1998 ○ 자연사

체르노빌 4호기를 봉인한 '대피호'의 저자이자 기술 책임자

그는 파괴된 원자로를 조사하기 위해 기중기 갈고리에 매달린 '바티스카프'에 직접 올라탔다.

탐보프 출신의 소련 원자력 건설 기술자로, 1953년 레닌그라드 공학건설연구소를 졸업한 뒤 ВНИПИЭТ에 입사해 평생 한 연구소에서 일했다. 1957년 키시팀 사고 수습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1986년 체르노빌에서는 불과 206일 만에 4호기를 봉인하는 '대피호'(석관) 프로젝트의 저자 겸 기술 책임자로서, 방사능 현장을 직접 '바티스카프'에 매달려 조사하며 세계 유례없는 공학적 해법을 설계했다. 훗날 ВНИПИЭТ의 총책임자(1989~1998)로 재직하며 아르자마스 사고와 키로바칸 지진 복구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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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ВНИПИЭТ 입사, 엔지니어로 시작
  • 1957키시팀 사고(첼랴빈스크-65) 수습 프로젝트 책임자
  • 1985–1989ВНИПИЭТ 주임기사
  • 1986체르노빌 4호기 '대피호'(석관) 프로젝트 저자 겸 기술 책임자
  • 1989–1998ВНИПИЭТ 총책임자(원장)
  • 1996러시아 연방 공훈건설자 칭호 수여

피에르 브루에

Pierre Broué
연구자 프랑스 프랑스계 1926–2005 ○ 자연사

혁명운동의 기록자

그는 스페인의 혁명을 전쟁의 부수적 사건이 아니라 패배한 사회혁명으로 읽었다.

피에르 브루에는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 역사가이자 교사운동 활동가로, 공산주의와 20세기 혁명운동의 역사를 연구했다. 에밀 테밈과 함께 쓴 『스페인의 혁명과 전쟁』은 1930년대 스페인에서 혁명 과정이 패배한 원인을 공화국 내부의 계급투쟁과 스탈린주의적 정책의 충돌 속에서 분석했다. 그는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문헌을 발굴하고 편집하며, 혁명적 실천과 역사 서술을 결합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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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4국제공산당에 입당해 트로츠키주의 운동을 시작
  • 1953프랑스 혁명사 연구로 역사학 초기 저술을 발표
  • 1960–1965중등학교 역사·지리 교사
  • 1961에밀 테밈과 『스페인의 혁명과 전쟁』 출간
  • 1965–1975그르노블 정치학교에서 현대사 강의, 국제주의 공산주의 조직 활동
  • 1972『독일 혁명, 1917–1923』 출간
  • 1977레옹 트로츠키 연구소 설립
  • 1997『코민테른사, 1919–1943』 출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푸르센코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Фурсенко
연구자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27–2008 ○ 사망

소련 기록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처음 재구성한 역사가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번스는 그를 '20세기 미국사에 관한 가장 유능한 소련 전문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전후 세대 최초로 소련에서 미국사 연구의 학문적 기초를 세운 역사가. 레닌그라드대학에서 국제관계사를 전공하고 레닌그라드 역사연구소에서 평생 연구하며 석유정치, 미국 혁명, 미소 관계를 아우르는 300여 편의 저작을 남겼다. 티머시 나프탈리와 함께 소련 공산당·크렘린 문서고를 처음 열어 쿠바 미사일 위기의 내막을 밝힌 『One Hell of a Gamble』(1997)은 냉전사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어진 『Khrushchev's Cold War』(2006)로 영국 왕립연합군사연구소의 올해의 군사사 서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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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역사학 후보학위 취득
  • 1954–1988레닌그라드 역사연구소 선임·주임 연구원
  • 1966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87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88–2008레닌그라드 역사연구소 세계사 부장
  • 1990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아카데미크)
  • 1996–2002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역사부 아카데미크 서기

올레크 티모페예비치 보골몰로프

Олег Тимофеевич Богомолов
연구자 소련 러시아계 1927–2015 ○ 자연사

사회주의권 경제 통합과 개혁을 연구한 경제학자

그는 소련 경제의 정체가 페레스트로이카에 첫 자극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올레크 보골몰로프는 사회주의권의 국제경제 관계를 연구한 소련 경제학자이자 학술기관 운영자였다. 그는 동유럽의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개혁 경험을 비교 연구하며 계획경제의 경직성과 시장 메커니즘의 가능성을 함께 검토했다. 안드로포프가 경제 개혁 준비를 추진한 1983년에는 관련 위원회에 참여해 개혁 논의에 전문 지식을 제공했다. 이후에도 시장과 사회적 보호를 결합하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며 페레스트로이카의 경제적 선택지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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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대외무역부 고등무역학교 졸업
  • 1954국제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 1962–1969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대외무역 관련 기관에서 근무
  • 1967–197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해외 사회주의 국가 경제지리학 강좌장
  • 1969–1991사회주의체제세계경제연구소 소장
  • 1981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83안드로포프 경제 개혁 준비 위원회 참여
  • 1989–1991소련 인민대회 대의원

세르고 아나스타시예비치 미코얀

Серго Анастасович Микоян
연구자 소련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1929–2010 ○ 자연사

냉전의 비공개 기록을 복원한 역사학자

세르고 미코얀은 라틴아메리카와 소련 대외정책을 연구한 소련·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아나스타스 미코얀의 아들이었다. 1962년 아버지를 수행해 쿠바를 방문한 경험과 개인 기록을 바탕으로, 공개된 미사일 철수 뒤에도 소련 전술핵이 쿠바에 남아 있었고 협상 과정이 쿠바 지도부와의 균열을 낳았음을 밝혔다. 그는 학술지 《라틴아메리카》를 이끌며 이 지역 연구를 조직했고, 훗날 소련과 미국 연구자들의 공동 냉전사 연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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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졸업
  • 1956동 대학원 수료
  • 1957–1960《세계경제와 국제관계》 학술 편집자
  • 1960–1990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
  • 1962아나스타스 미코얀의 쿠바 협상 수행원
  • 1970–1990월간지 《라틴아메리카》 편집장
  • 1990년대미국 대학·문서보관소와 공동 연구
  • 2000년대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율리 야코블레비치 오를세비치

Юлий Яковлевич Ольсевич
연구자 소련 러시아인 1929–2016 ○ 노환으로 사망

코시긴 개혁의 '두 규제자' 비양립성을 분석한 소련 경제학자

「한 기업에 동시에 두 개의 이질적 규제자가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자동차에 두 명의 운전자와 두 개의 핸들이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회고로 본 계획체제』(2000)에서 코시긴 개혁의 실패를 요약하며.

소련 및 러시아의 경제학자로, 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우랄공대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1965년부터 사망까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해외 경제이론 비판적 연구 분과를 이끌었고, 후기에는 경제체제 전환 이론과 러시아 경제사상사 연구에 집중했다. 2000년 폴 그레고리와 공저한 『회고로 본 계획체제』에서 1965년 코시긴 개혁의 핵심 모순을 지령적 계획과 준시장이라는 두 이질적 규제자의 한 기업 내 양립 불가능성으로 분석하여, 개혁 연구의 '두 규제자' 학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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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1957우랄공대 정치경제학 강사
  • 1957–1962외국문학출판사 경제편집부 편집자·부장
  • 1962–1965IMEMO 선임연구원
  • 1965–1968소련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세계가격분과장
  • 1968–1992경제연구소 해외경제이론비판분과장
  • 1969–2016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 1992–2016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주력연구원

그리고리 표도토비치 크리보셰예프

Григорий Фёдорович Кривошеев
연구자 소련 러시아계 1929–2019 ○ 자연사

기밀 해제된 전쟁 손실의 계량자

그리고리 크리보셰예프는 소련군에서 출발해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까지 오른 군인이자 군사역사가였다. 그는 1988년부터 군사역사 연구단을 이끌어 비밀 해제 자료를 바탕으로 소련과 러시아 군대의 전쟁 손실을 통계화했고, 그 결과는 1993년 저서로 출간됐다. 이 연구는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의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12만 6,875명으로 제시해 널리 인용됐지만, 후속 연구자들은 누락과 중복 가능성을 지적하며 더 높은 수치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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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소련군 입대, 포병연대 복무
  • 1953튜멘 군사보병학교 졸업, 소대장
  • 1964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졸업
  • 1973제161차량화소총사단 사단장
  • 1979투르키스탄 군관구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 1984소련군 서부집단군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генерал-полковник
  • 1987소련군 총참모부 조직·동원총국장, 부총참모장
  • 1988–1993군사 손실 통계 연구단 책임자

폴 에이브리치

Paul Avrich
연구자 미국 러시아 1931–2006 ○ 자연사

『크론시타트 1921』로 러시아·미국 아나키즘사를 개척한 역사가

명예교수로 임명됐을 때 그를 소개하며 인용된 말, '진정 좋은 사람이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구나 아나키스트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오데사 출신 유대인 이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퀸스 칼리지에서 평생 러시아와 미국의 아나키즘 운동사를 가르친 개척적 역사가였다. 『크론시타트 1921』(1970)으로 볼셰비키가 그 봉기를 반혁명 음모로 규정한 신화를 실증적으로 깨뜨렸으며, 훗날 게츨러의 명부 연구가 더 정밀한 수치를 내놓자 그 우위를 인정했다. 아나키스트를 '부도덕하고 폭력적'으로 보는 편견에 맞서 그들을 '사회정의의 선구자'로 복원하려 했고, 평생 모은 2만 점의 자료를 미국 의회도서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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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뉴욕 브루클린 출생
  • 1952코넬대학교 졸업
  • 1950년대 초미 공군으로 한국전쟁 참전
  • 1961컬럼비아대학교 박사 학위, 퀸스 칼리지 강사 임용
  • 1967첫 책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 출간
  • 1970『크론시타트 1921』 출간
  • 1984『헤이마켓 비극』으로 필립 태프트 노동사 도서상 수상
  • 1999퀸스 칼리지에서 퇴임

휴 토머스

Hugh Thomas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31–2017 ○ 자연사

스페인 내전을 세계사적 서사로 만든 역사가

휴 토머스는 1961년 저서 《스페인 내전》으로 전쟁을 국제 독자에게 널리 알린 영국 역사가다. 그는 외교 자료와 참전자들의 기록, 인터뷰를 바탕으로 공화파의 투쟁과 내부 폭력을 공산주의 진영이나 반공주의 진영의 논리 어느 한쪽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서술했다. 이 책은 프랑코 독재 아래의 스페인에서 clandestine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며, 사실과 해석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출발점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쿠바와 스페인 제국, 세계사를 연구했고 정치적으로는 노동당에서 보수당을 거쳐 자유민주당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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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1952윈저 출생, 셔본 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 수학
  • 1952–1953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트라이포스에서 최우등, 케임브리지 유니언 회장
  • 1954–1957영국 외무부 근무, 유엔 군축위원회 영국 대표단과 파리 대사관에서 활동
  • 1957왕립육군사관학교 샌드허스트에서 강의, 첫 소설 《세계의 게임》 출간
  • 1961《스페인 내전》 초판 출간, 1962년 서머싯 몸상 수상
  • 1966–1976리딩 대학교 역사학 교수
  • 1971–2014쿠바, 멕시코 정복, 스페인 제국을 다룬 대작과 세계사 저술
  • 1981–2017스위너턴의 토머스 남작으로 귀족원 의원, 2017년 사망

블라디슬라프 알렉산드로비치 쿠투조프

Владислав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утузов
연구자 소련 러시아인 1933–2016 ○ 자연사

레닌그라드 사건 연구의 기초를 놓은 소련 역사학자

1989년, 『CPSU사 문제』에 실린 그의 논문 「이른바 '레닌그라드 사건'」은 이 사건을 '즈다노프 그룹 대 말렌코프-베리야 그룹'의 파벌 투쟁으로 정식화했다. 이후 30년 넘게 이 틀이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소련의 역사학자. 레닌그라드대학 사학부를 우등 졸업하고 토르조크에서 교사와 당 일꾼으로 일한 뒤, 1966년부터 레닌그라드 당역사연구소에서 25년간 봉쇄·전후복구·당 간부들의 정치 전기를 연구했다. 1989년 『CPSU사 문제』에 발표한 「이른바 '레닌그라드 사건'」에서 이 사건을 즈다노프 그룹과 말렌코프-베리야 그룹 사이의 파벌 투쟁으로 해석하는 틀을 처음 제시했고, 이듬해 빅토르 데미도프와 함께 편찬한 동명의 책은 20만 부 발행으로 대중적 폭발을 일으켰다. 이 작업으로 '레닌그라드 사건' 연구의 포스트소비에트 역사학 전체를 열었으며, 1991년부터 사망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로 후속 세대를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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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칼리닌주 토르조크 출생, 노동자 가정
  • 1952–1957레닌그라드대학 사학부 우등 졸업
  • 1957–1962르제프 중등학교 교사, 이후 토르조크 시당위 선전선동부 지도원·부장
  • 1965후보학위 취득, 「제1차 5개년계획기 레닌그라드 CCC-RKI 활동」
  • 1966–1991레닌그라드 당역사연구소(후일 역사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 1987–1989『대화』에 '레닌그라드 사건' 첫 논문 게재, 『CPSU사 문제』에 획기적 논문 발표, 박사학위 취득, KGB상 수상
  • 1990V. I. 데미도프와 『레닌그라드 사건』 편찬, 20만 부 발행
  • 1991–2016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역사학부 러시아현대사 교수, 150편 이상 논문·저서 발표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야블로코프

Алексей Владимирович Яблок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33–2017

체르노빌의 장기 피해를 추적한 생태학자

그가 편집한 체르노빌 연구서는 6,000여 개 자료를 검토해 장기 피해를 추산하며 공식 사망자 수 중심의 서술에 이의를 제기했다.

알렉세이 야블로코프는 동물학과 생태학을 연구한 소련·러시아 생물학자이자 환경정책가였다. 그는 체르노빌의 장기적 건강·환경 피해를 강조하며 공공 논쟁에 참여했고, 공동 저술서의 높은 사망 추정치는 재난 피해 규모를 둘러싼 논쟁의 한 극단을 이루었다. 과학 연구와 환경운동, 의회·대통령 자문 활동을 오가며 생태 문제를 국가 의제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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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6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생물·토양학부 졸업
  • 1966생물학 박사 취득, 세베르초프 동물 형태학 연구소 선임연구원
  • 1969–1989콜초프 발달생물학연구소 연구실장 및 선임연구원
  • 1984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 correspondent 선출
  • 1988–1991그린피스 소련 창립자·공동의장
  • 1989–1991소련 인민대의원, 최고회의 생태위원회 부위원장
  • 1992–1997러시아 대통령 환경·보건 자문 및 환경안보 부처간위원회 의장
  • 2007–2009『체르노빌: 사람과 환경에 미친 재난의 결과』 공동 편집·저술

예브게니 그리고리예비치 야신

Евгений Григорьевич Ясин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계 1934–2023 ○ 자연사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설계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예브게니 야신은 소련 말기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는 개혁 구상을 발전시킨 경제학자였다. 그는 샤탈린 그룹의 500일 프로그램 공동 작성자로 참여해 급진적 시장 전환의 청사진을 제시했으며, 소련의 해체 뒤에는 러시아의 개혁 국가기구에서 일했다. 옐친 정부의 경제부 장관으로서 시장개혁을 추진했지만, 전환의 사회적 비용과 국가 역량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자유주의 노선을 대표했다. 이후 고등경제대학과 자유주의 사상 재단을 이끌며 러시아의 경제정책과 공론장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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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오데사 수문공학연구소 졸업, 교량 건설기사
  • 1963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 1964–1973중앙통계국 연구소 부서장·연구실장
  • 1973–1989소련 과학아카데미 중앙경제수학연구소 연구실장
  • 1989–1991소련 각료회의 경제개혁 국가위원회 부서장, 500일 프로그램 공동 작성자
  • 1994–1997러시아 연방 경제부 장관
  • 1998–2021고등경제대학 학술감독
  • 2000–2019자유주의 사명 재단 대표

알렉산더 예브게니예비치 라비노비치

Alexander Evgen'evich Rabinowitch
연구자 미국 미국 1934–2026 ○ 노환으로 사망

냉전 쿠데타 테제를 기록으로 뒤집은 러시아 혁명의 수정주의 역사가

나는 오히려 당의 내적으로 비교적 민주적이고 관용적이며 분권화된 구조와 운영 방식, 그리고 당시 대중의 정서에 대한 민감성을 강조할 것이다.

러시아 혁명사 연구의 수정주의 학파를 대표하는 미국 역사학자. 1960년대부터 소련 기록보관소에서 작업한 최초의 서방 연구자 중 한 명으로, 1976년 저서 『볼셰비키 권력 장악』에서 10월 혁명이 소수 쿠데타가 아니라 평화·토지·빵을 요구한 대중의 폭넓은 지지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실증적으로 밝혀 파이프스의 냉전적 쿠데타 테제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1917년 볼셰비키 당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분권화된 조직'이었다는 그의 발견은 혁명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으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배치되는 결론을 기록 자료에 근거해 기꺼이 받아들인 역사가로서도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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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1999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 역사학 교수
  • 1975–1984인디애나 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소 소장
  • 1986–1993인디애나 대학교 국제 프로그램 학장
  • 1976『볼셰비키 권력 장악』 출간: 서방 혁명사 연구의 전환점
  • 2007『볼셰비키 집권기』 출간: 혁명 첫해의 페트로그라드를 기록으로 재구성
  • 2013–2026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연구소 부설 연구원
  • 2026『볼셰비키 생존』 출간: 페트로그라드 1919년 연구로 4부작 완성

앨런 밀워드

Alan S. Milward
연구자 영국 영국 1935–2010 ○ 사망

마셜 플랜 불필요론으로 전후 서유럽 부흥 서사를 뒤흔든 영국의 경제사학자

"1947년 여름 서유럽의 이른바 경제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의 투자·생산 붐이 초래한 외환 부족이었을 뿐이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앨런 밀워드는 전후 서유럽 경제 재건과 통합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정주의 학자였다. 1984년 저서 『서유럽의 재건, 1945-1951』에서 마셜 플랜이 유럽 회복에 필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1947년의 '위기'는 경제 붕괴가 아니라 투자·생산 붐이 초래한 달러 부족이었고 소비를 1947년 수준으로 동결한다는 반사실적 가정 아래 대부분의 수혜국은 원조 없이도 수입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논증했다. 이후 『국민국가의 유럽적 구출』(1992)에서는 유럽 통합이 초국가적 이상이 아니라 파시즘 도전 이후 개별 국민국가를 구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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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1965에든버러대학교 경제사 강사
  • 1965–1968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 강사·선임강사
  • 1968–1971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 부교수
  • 1971–1983UMIST 유럽학 교수
  • 1983–1986유럽대학연구소(EUI) 교수
  • 1986–1996LSE 경제사 교수
  • 1993내각부 공식 사료편찬관
  • 1996–2002유럽대학연구소(EUI) 교수

니콜라이 야코블레비치 페트라코프

Николай Яковлевич Петраков
연구자 소련 러시아 1937–2014 ○ 자연사

가격 이론에서 시장 전환까지 나아간 경제학자

그는 500일 프로그램을 통해 가격 형성 연구를 소련 경제의 시장 전환 구상으로 밀어붙였다.

니콜라이 페트라코프는 가격 형성과 경제적 균형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며 계획경제의 작동 원리를 연구한 소련 경제학자였다. 그는 시장 메커니즘과 가격 개혁을 탐구했고, 1990년 스타니슬라프 샤탈린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500일 프로그램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 구상은 사유화와 가격 자유화, 공화국으로의 권한 이양을 통해 소련 경제를 시장으로 전환하려 했으며, 페트라코프의 연구와 정책 활동은 학술적 모델과 급박한 정치적 선택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 준다. 그는 이후 시장문제연구소를 세워 시장 전환과 경제정책 연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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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모스크바국립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 1963경제학 후보학위 취득, 산업 생산의 수익성과 가격 형성 연구
  • 1970–1989모스크바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 1972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계획경제의 가격 형성 연구
  • 1984–1990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
  • 1990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경제 담당 보좌관, 이후 소련 대통령 경제 담당 보좌관
  • 1990샤탈린-야블린스키 500일 프로그램 공동 저자
  • 1990–2014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장문제연구소 설립자 겸 초대 원장
연구자 미국 미국 1938–2020 ○ 폐암

부하린 전기로 '잃어버린 대안'을 제기하고 소련 개혁 가능성을 끝까지 주장한 미국의 러시아사 학자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스탈린의 등장과 흐루쇼프의 몰락과 소련의 종말, 각각에 대안이 존재했다."

스티븐 코언은 소비에트학계에서 소련 체제가 본질적으로 개혁 불가능했다는 통념에 가장 체계적으로 반박한 학자였다. 1973년 『부하린과 볼셰비키 혁명』에서 니콜라이 부하린의 정치노선을 스탈린주의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하며, 소련사가 단선적 필연이 아니라 분기점들의 연쇄였음을 주장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고 부하린의 사후 복권에 기여했으며, 소련 붕괴 후에는 미국의 대러 정책을 '실패한 십자군'으로 비판하면서 냉전 이후에도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워싱턴의 합의에 맞섰다. 말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게이트를 둘러싸고 친푸틴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미국 언론의 러시아 보도가 냉전기보다 더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주장하며 고립을 무릅쓰고 소신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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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1998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82–1987『더 네이션』 칼럼 '소비에티쿠스' 연재
  • 1985–1991CBS 뉴스 고르바초프 개혁 자문·해설
  • 1998–2011뉴욕대학교 러시아·슬라브학 교수
  • 2011–2020뉴욕대학교 명예교수, 저술·방송 활동
  • 2015–2020미국 동서화합위원회 공동 설립 이사

유리 니콜라예비치 주코프

Юрий Николаевич Жук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38–2023 ○ 자연사

기록보관소에서 스탈린 시대의 책임을 다시 물은 역사가

그의 연구는 해빙의 공식 기억 뒤에 가려진 가해자의 책임을 다시 기록보관소로 돌려놓았다.

유리 주코프는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가로, 러시아 역사연구소에서 스탈린 시대와 소비에트 정치사를 연구했다. 그는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니키타 흐루쇼프를 대숙청의 집행자이자 책임 있는 정치가로 재평가하는 논의를 제기했다. 동시에 스탈린의 대중 탄압 책임을 축소하는 ‘다른 스탈린’ 해석으로 학계의 강한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작업은 탈스탈린화 이후의 역사 기억이 지닌 정치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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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모스크바 국립역사·기록보관학연구소 졸업
  • 1962–1973노보스티 통신사 기자
  • 1976역사학 후보학위 취득
  • 1981–2023러시아 역사연구소 연구원, 수석연구원
  • 1992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93『에르미타시 작전』 출간
  • 2003『다른 스탈린』 출간
  • 2022그리고리 지노비예프 연구 출간

알렉산드르 안토노비치 랴홉스키

Александр Антонович Ляховский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46–2009 ○ 자연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록한 장군 역사가

그는 『아프간의 비극과 용맹』에서 소련군의 전투와 철군을 내부 자료와 참가자 증언으로 다시 묶었다.

알렉산드르 랴홉스키는 소련군 장교이자 군사 저술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작전과 정책 결정을 내부 경험과 문서 자료로 기록했다. 그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 국방부 작전집단에서 복무하며 발렌틴 바렌니코프의 보좌관으로 철군 국면을 지켜보았다. 1995년 출간한 『아프간의 비극과 용맹』은 개입 결정의 오류와 전쟁의 복합적 결과를 분석해, 소련의 패배 여부를 둘러싼 수정주의적 논쟁의 핵심 러시아어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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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바쿠 고등 제병지휘학교 졸업, 소련군 장교로 임관
  • 1968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군 작전에 참가
  • 1977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졸업, 총참모부 작전총국 선임 장교
  • 1985–1987보로실로프 총참모부 군사아카데미 수학
  • 1987–1989아프가니스탄 소련 국방부 작전집단 근무, 바렌니코프의 수석 보좌관
  • 1990소련 지상군 총참모부 작전국 제1부국장
  • 1995『아프간의 비극과 용맹』 출간
  • 2002예편

루스템 마흐무토비치 누레예프

Рустем Махмутович Нурее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 (타타르계) 1950–2023 ○ 별세

코시긴 개혁 50년 논쟁을 한 권의 표제로 수렴한 제도경제학자

1977년 그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심사받았을 때, 심사 기관인 CPSU 중앙위 산하 사회과학아카데미는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라는 요지의 평가서를 제출했다.

모스크바 태생 타타르계 제도경제학자로, MSU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며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관한 논쟁적 박사논문으로 주목받았다. 1993년 쿠즈미노프와 함께 고등경제대학(ВШЭ) 설립에 참여해 초대 경제학과장과 초대 부총장을 지냈고, 러시아 제도경제학파의 핵심 구축자로 자리잡았다. 2017년 출간된 집단 논문집 『놓친 기회인가, 마지막 안전판인가?』의 책임편집자로서, 코시긴 개혁을 둘러싼 역사학계의 양극화된 평가를 표제 하나로 응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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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MSU 경제학부 우등 졸업
  • 1975–1993MSU 경제학부 정치경제학 강좌 부교수
  • 1993–1996ВШЭ 초대 부총장 겸 경제이론학과장
  • 1997–2013ВШЭ 정교수, 제도경제학 및 경제분석 학과장
  • 2013–2017러시아 정부 금융대학 경제이론 학과장
  • 2017『놓친 기회인가, 마지막 안전판인가?』 책임편집

J. 아치 게티

J. Arch Getty
연구자 미국 미국인 1950–2025 ○ 자연사

소련 정치사의 revisionist 역사가

그는 기록보관소를 자신이 설명해야 할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연구하는 실험실에 비유했다.

J. 아치 게티는 소련 정치사와 스탈린 시대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로, UCLA에서 러시아·소련사 연구와 교육을 이끌었다. 1985년 저서 『대숙청의 기원』에서 스탈린 체제를 단일한 중앙 통제의 산물로 보지 않고, 취약한 당 조직과 지역의 자율성, 지도부 내부의 갈등이 정책 형성에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 접근은 흐루쇼프의 비밀연설과 스탈린주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서방 수정주의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지만, 테러에 대한 스탈린과 당 지도부의 책임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소련 기록보관소 개방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억압의 규모와 국가 폭력을 새 자료로 재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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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펜실베이니아대학교 학사
  • 1979보스턴 칼리지 박사
  • 1985–1986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역사학 교수, 올해의 우수 교육자
  • 1985『대숙청의 기원』 출간
  • 1993『스탈린주의 테러』 공동 편집, 중앙당 문서고 연구 안내서 공동 편찬
  • 1999올레크 나우모프와 『테러로 가는 길』 공동 저술
  • 2015–2016UCLA 제119회 교수 연구 강연자
  • 2024『스탈린주의에 대한 성찰』 공동 편집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피지코프

Александ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ыжик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65–2019 ○ 자연사

해빙기의 소련 정치를 파고든 역사학자

피지코프는 제22차 당대회 결의에서 반당 그룹에 대한 언급이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보다 거의 네 배 많았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피지코프는 1950~1960년대 소련의 정치 변동을 연구한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국가 관료였다. 그는 스탈린 격하와 흐루쇼프 시기의 권력투쟁을 다룬 연구로, 1957년 반당 그룹의 패배가 당 정치의 언어와 경계를 어떻게 재편했는지 추적했다. 그의 분석은 제22차 당대회 결의가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보다 반당 그룹 공격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점을 짚어, 탈스탈린화가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라 현재 권력의 정당화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학술 활동과 함께 교육부 차관을 지냈으며, 말년에는 러시아 역사에 관한 논쟁적인 문명론적 주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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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모스크바주 교육대학 역사학부 졸업
  • 1990년대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연구원
  • 19981953~1964년 소련 사회의 사회정치 발전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991950~1960년대 소련 사회의 정치개혁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2000러시아 연방 통신정보부 장관 보좌관
  • 2000–2003러시아 연방 정부 의장 보좌관
  • 2003–2004러시아 연방 교육부 차관
  • 2010년대모스크바 국립교육대학교 현대 러시아사 교수

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코스티르첸코

Геннадий Васильевич Костырченко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54–

스탈린 시대 국가 반유대주의를 기록으로 실증한 역사가

스탈린의 유대인 추방은 로흐네스의 괴물과 같은 것이 되었다: 많은 이가 봤다고 하나 단 하나의 확실한 증거도 제시된 적 없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스탈린 시대 연구자로, 소련 국가 반유대주의의 기록을 발굴해 학계의 표준을 세웠다. 그의 저서 『붉은 파라오의 포로』(1994)와 『스탈린의 비밀 정책: 권력과 반유대주의』(2001)는 의사들의 음모와 반세계주의 캠페인을 포함한 스탈린 말기 유대인 탄압의 전모를 기록으로 실증한 기념비적 작업이다. 2003년 '데포르타치야: 미스티피카치야' 논문에서 스탈린이 유대인 대량 추방을 계획했다는 통설에 대해 '로흐네스의 괴물과 같다'고 비판하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입장은 브렌트·나우모프의 『스탈린의 마지막 범죄』와 대비되는 대표적 학설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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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항공산업 인민위원회에 관한 후보자 학위논문 심사 통과
  • 1994『붉은 파라오의 포로』 출간
  • 2001『스탈린의 비밀 정책: 권력과 반유대주의』 출간 (2003년 개정판)
  • 2003러시아 유대인공동체연맹 '올해의 인물 5762' 선정
  • 2008박사학위 논문 심사 통과: 소련 정치 지도부와 유대계 인텔리겐치야(1936–1953)
  • 2015『스탈린의 비밀 정책』 신판(전2권, 1,176쪽) 출간
  • 현재러시아과학원 러시아사연구소 수석연구원

그레이엄 앨리슨

Graham Allison
연구자 미국 미국 1940–

쿠바 미사일 위기 분석으로 외교정책 결정 이론을 재편한 정치학자

우리는 지금 케네디가 몰랐던 것을 안다. 소련은 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 외에 전술핵무기 100기를 쿠바에 배치했고, 현지 소련군 사령관은 모스크바의 추가 승인 없이도 이를 발사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정치학자로, 1971년 저서 『결정의 본질』에서 합리적 행위자·조직 과정·관료정치라는 세 분석 모델을 제시하며 외교정책 결정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설립 학장(1977~1989)으로 이 학교를 세계적 공공정책 대학원으로 키웠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로 구소련 4개국 비핵화를 주도해 국방부 최고 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케네디가 위기 당시 핵전쟁 확률을 '3분의 1에서 반반'으로 보았다는 그의 분석은 이후 모든 쿠바 미사일 위기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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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하버드대 조교수
  • 1971『결정의 본질』 출간
  • 1972하버드대 정교수
  • 1977–1989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
  • 1993–1994미 국방부 차관보
  • 1995–2017하버드 벨퍼센터 소장
  • 2017『투키디데스의 함정』 출간

기르시 이사코비치 하닌

Григорий Исаакович Ханин
연구자 소련 → 러시아 러시아 1937–

소련 통계의 허구를 폭로한 대안적 경제사가

「형성된 경제 메커니즘은 명령경제와 시장경제의 모든 최악의 측면을 결합했다」: 1965년 개혁에 대한 평결.

그는 1970년대부터 소련 공식 통계를 독자적 방법으로 재계산하여, 1928~1985년 국민소득 증가가 공식 84.4배가 아닌 6.6배에 불과하다는 충격적 결과를 도출한 경제학자다. 1987년 바실리 셀류닌과 함께 『노비 미르』에 발표한 「기만적 숫자」는 소련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러시아 현대 경제사』 전집을 집필하며 소련 계획경제의 성취와 실패를 냉철히 분석했고, 1965년 코시긴 개혁에 대해서는 '명령경제와 시장경제의 모든 최악의 측면을 결합한 개혁'이라는 평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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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레닌그라드 재정경제대학 졸업
  • 1959–1962리가 산업체 경제사
  • 1965–1973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 강사
  • 1979–1986이스키팀 건자재산업 연수원 강사
  • 1986–1991투바 종합연구부 СО АН СССР 경제연구실장
  • 1992중앙경제수리연구소 경제학 박사
  • 1995–현재노보시비르스크 국립기술대학 교수
  • 2003–2011『러시아 현대 경제사』 1~3권 출간

낸시 치안

Nancy Qian
연구자 미국 중국계 1975–

역사 자료로 국가정책의 효과를 추적한 경제학자

낸시 치안은 개발경제학·정치경제학·경제사를 넘나들며 제도와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효과를 대규모 자료와 엄밀한 실증분석으로 연구한 경제학자다. 중국 경제와 권위주의 국가를 다룬 연구로 알려졌으며, 성별 격차와 교육, 기근의 정치경제를 연결해 분석했다. 안드레이 마르케비치, 나탈랴 나우멘코와 함께한 2021년 연구는 우크라이나 기근의 지역별 사망률과 곡물 조달을 비교해 민족적 편향과 중앙계획 조달정책의 역할을 계량적으로 제시했다. 이 작업은 홀로도모르를 생산량만이 아니라 국가의 분배와 강제 조달이 빚은 결과로 파악하는 논쟁에 자료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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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텍사스대학교 오스틴 학사
  • 2005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경제학 박사
  • 2005–2009브라운대학교 경제학 조교수
  • 2007–2009하버드대학교 아카데미 펠로
  • 2009–2016예일대학교 경제학 교수, 부교수
  • 2017–현재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경영대학원 제임스 J. 오코너 교수
  • 2021「우크라이나 기근 사망률의 원인」 공동저자

니나 투마르킨

Nina Tumarkin
연구자 미국 러시아계 1945–

레닌 숭배와 대조국전쟁 기억 정치를 파헤친 소련사의 탁월한 기록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언제나 가져온 것은 상실이었다."

1945년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1975년부터 웰즐리 칼리지에서 소비에트 역사와 기억 정치를 가르쳐 온 미국의 러시아사 학자다. 『레닌은 살아 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레닌 숭배』(1983)로 윌슨상을 수상했고, 결정적 저작 『산 자와 죽은 자: 러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숭배의 흥망』(1994)에서 스탈린이 전쟁 기억을 억압하고 브레즈네프가 숭배로 격상시켰으며 1985년 이후 그 숭배가 흔들렸음을 실증했다. 1985년 제네바 정상회담을 앞두고 레이건을 브리핑한 6인의 소비에트 전문가 중 한 명이었으며, 클린턴은 1995년 모스크바 승전 기념일 방문에 앞서 그녀의 책을 읽고 '위대한 책'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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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웰즐리 칼리지 역사학과 교수
  • 1983『레닌은 살아 있다』 출간, 윌슨상 수상
  • 1985레이건 대통령 소비에트 문제 고문, 제네바 정상회담 브리핑
  • 1994『산 자와 죽은 자』 출간
  • 2000s–웰즐리 칼리지 러시아 지역학 프로그램 디렉터
  • 1970s–하버드 대학교 데이비스 센터 연구원

니키타 유리예비치 피보바로프

Никита Юрьевич Пивовар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현재 ○ 현역 역사학자

소련 산업관리 개혁의 제도적 한계를 추적한 역사가

2025년 연구에서 피보바로프는 산업부 복원이 명목상 중앙집권화였지만 기업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없었다고 밝혔다.

니키타 피보바로프는 소련 경제사와 산업관리 제도의 변화를 연구하는 러시아 역사가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 국가경제·행정 아카데미의 응용역사 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문서와 제도 설계를 통해 후기 소련 개혁을 분석한다. 2025년 연구에서 그는 코시긴 개혁의 산업부 복원을 추적해, 브레즈네프와 코시긴의 충돌 속에서 중앙집권화가 처음부터 절충된 형태였고 산업부가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권한을 갖지 못했다고 논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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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2025「코시긴 개혁과 산업관리 체계의 변화」 발표
  • 현재러시아 대통령 국가경제·행정 아카데미 응용역사 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현재소련 경제사와 산업관리 제도 연구

다론 아제모을루

Daron Acemoğlu
연구자 미국 아르메니아계 1967–

코시긴 개혁의 구조적 실패를 제도로 설명한 노벨상 경제학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는 선진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창조적 파괴가 부재했기 때문에 1970년대에 이르러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아르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MIT 경제학 교수가 된 다론 아제모을루는, 국가 간 번영 격차의 제도적 기원을 규명한 공로로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도경제학의 대표적 학자다. 로빈슨과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소련 계획경제 아래 가격은 실물 가치와 유리되어 혁신을 평가할 수 없고, 상여금이 총임금기금에 연동되어 기업이 자동화를 기피하게 되므로 코시긴 개혁은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포용적 제도 없이 지속적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통찰로 발전경제학과 정치경제학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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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요크대학교 경제학 학사
  • 1992LSE 경제학 박사
  • 1993–MIT 경제학 교수 (2000년 정교수)
  • 2010–MIT 킬리언 석좌교수
  • 2019–MIT 인스티튜트 프로페서
  • 2012『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출간
  • 2024노벨 경제학상 수상

대니얼 코왈스키

Daniel Kowalsky
연구자 미국 미국 1966–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로 스페인 내전 개입사를 재검토한 미국 역사가

오리건 번스 출신. 위스콘신대학-매디슨에서 스탠리 G. 페인의 지도 아래 200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스탈린과 스페인 내전』(Columbia University Press)을 출간하여,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를 바탕으로 스탈린의 작전 X가 '엄청난 야심에도 불구하고 작전상 실패'였음을 논증했다. 벨파스트 퀸스대학에서 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며 전간기 유럽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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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위스콘신대학-매디슨 박사 (지도교수 스탠리 G. 페인)
  • 2001–2005워싱턴대학, 카이로 미국대학, 브리스틀대학에서 강의
  • 2004『스탈린과 스페인 내전』 출간
  • 2005–현재퀸스대학 벨파스트 역사학·인류학부 교수
  • 2005–2010『영국 외교문서집』 소련·핀란드권 시리즈 편집장

데이비드 마플스

David Marples
연구자 영국 영국계 1952–현재 ○ 생존

체르노빌과 동유럽 현대사를 잇는 역사가

데이비드 마플스는 캐나다의 역사학자로 앨버타대학교에서 벨라루스·러시아·우크라이나의 현대사와 정치를 연구했다. 그는 체르노빌의 사회·정치적 영향을 일찍부터 분석했으며, 사고 직후 출간된 『Chernobyl and Nuclear Power in the USSR』와 후속 연구로 핵에너지 정책, 안전, 주민과 국가의 대응을 함께 조명했다. 이후 연구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민족사, 기근, 소비에트 붕괴로 확장되었고, 체르노빌이 소련 해체에 미친 영향은 중요하지만 단일 원인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신중한 평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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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런던대학교 학사
  • 1980앨버타대학교 역사학 석사
  • 1985셰필드대학교 경제·사회사 박사
  • 1987『Chernobyl and Nuclear Power in the USSR』 출간
  • 1988『The Social Impact of the Chernobyl Disaster』 출간
  • 1991『Ukraine Under Perestroika』 출간
  • 2004–2014앨버타대학교 우크라이나현대사 스타시우크 프로그램 책임자
  • 2010–2015북미 벨라루스학회 회장

데이비드 브랜든버거

David Brandenberger
연구자 미국 미국 b. 1970

레닌그라드 사건의 세 해석 학파를 정리한 미국의 소련사학자

브랜든버거는 2004년 논문에서 레닌그라드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 공산당 창당' 루머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고 주장해, 정치적 파벌 투쟁으로 보는 기존 해석에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추가했다.

버지니아 리치먼드대학 러시아·소련사 교수. 스탈린 시대 선전·이데올로기와 러시아 민족 정체성의 형성을 연구하며, 『국가 볼셰비즘』(2002)에서 스탈린의 루소중심적 동원 선전이 의도치 않게 근대 러시아 민족 정체성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집필 중인 『스탈린의 후계자 후보들 숙청』은 레닌그라드 사건(1949~1952)에 관한 20여 년의 연구로, 파벌 투쟁·스탈린의 레닌그라드 불신·후견-의뢰 네트워크의 자초라는 세 해석 학파를 정리하면서도 결정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카이브가 여전히 폐쇄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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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매캘리스터 칼리지 역사학·소비에트 지역학 학사
  • 1999하버드대학교 역사학 박사
  • 1999–2003하버드·예일·코네티컷 칼리지에서 역사학 강사
  • 2003–현재리치먼드대학 역사학과 교수 (2016년 정교수)
  • 2002『National Bolshevism』 출간 (하버드대 출판부)
  • 2011『Propaganda State in Crisis』 출간 (예일대 출판부)
  • 2019–현재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 부설연구원

데이비드 코츠

David M. Kotz
연구자 미국 미국 1946–현재 ○ 생존

소련 체제 변동을 연구한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M. 코츠는 제도 변화와 정치경제를 연구한 미국의 경제학자다. 그는 프레드 위어와 함께 소련의 해체를 경제 붕괴와 대중 봉기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당·국가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넓히려 체제를 해체한 과정으로 분석했다. 대표 저서인 『Revolution from Above』는 소련의 정체, 페레스트로이카, 자본주의 연합의 형성과 그 이후 러시아를 연결해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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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미국 대기업의 은행 지배』 공동 저자
  • 1994『사회구조적 축적』 공동 편집자
  • 1997프레드 위어와 『위로부터의 혁명』 출간
  • 2007프레드 위어와 『고르바초프에서 푸틴까지 러시아의 길』 출간
  • 2015『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흥망』 출간
  • 2021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학교 경제학 명예교수

라슬로 리테르

Ritter László
연구자 헝가리 헝가리인 1977–

냉전 군사사의 기록보관소 연구자

라슬로 리테르는 헝가리의 현대사 연구자로, 정보기관·국가안보와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관계를 주로 연구했다. 그는 티토-스탈린 분열 뒤 소련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는 벨러 키라이의 회고를 헝가리와 국제 기록보관소 자료로 재검토했다. 그의 연구는 당시 헝가리군의 남부 방어와 전면전 대비를 침공 준비와 구별하며, 스탈린의 군사적 의도를 둘러싼 사료적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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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외트뵈시 로란드대학교 역사학 전공 졸업
  • 2001중앙유럽대학교 중부유럽사 석사
  • 2001–2010헝가리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 보조원
  • 2005유고슬라비아 군사계획 관련 사료 발표, 세르비아 현대사연구소
  • 2007국제정보사학회 연례회의에서 티토 유고슬라비아 비밀전쟁 발표
  • 2008「War on Tito’s Yugoslavia?」 출간 및 바르샤바 학술회의 발표
  • 2010헝가리과학원 역사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자

라파엘 레우베니

Rafael Reuveny
연구자 미국 (이스라엘 이중국적) 이스라엘계 미국인 1957–

소련-아프간 전쟁이 소련 붕괴로 이어지는 인과 메커니즘을 정립한 이스라엘계 정치경제학자

라파엘 레우베니는 이스라엘 출신의 국제정치경제학자로, 인디애나대학교 공공환경대학 교수이다. 1999년 아심 프라카시와 공동 집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의 붕괴」는 소련-아프간 전쟁이 인식 효과, 군사 효과, 정당성 효과, 글라스노스트 효과라는 네 가지 경로를 통해 소련 해체를 촉발했음을 논증하여 이 분야의 표준적 인과 메커니즘 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연구는 경제 세계화, 기후 이주, 자연자원과 전쟁의 관계, 문명 붕괴 모델링 등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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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테크니온 공대 학사 졸업 (최우등)
  • 1978–1985이스라엘 방위군 장교 복무
  • 1985미국 이주
  • 1996인디애나대학교 MBA
  • 1997인디애나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97–현재인디애나대학교 공공환경대학 교수
  • 1999「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의 붕괴」 발표 (아심 프라카시와 공저)

레오니드 아나톨리예비치 나우모프

Леонид Анатольевич Наумов

대테러의 지역별 편차를 통계로 읽어 낸 모스크바의 역사 교사

모스크바에서 역사 교사와 학교 운영자로 일하며 대숙청기 국가보안기관을 연구해 온 역사가다. NKVD 지도부 내부 투쟁을 다룬 첫 연구(2006)에 이어 『「피의 난쟁이」 대 인민의 수령: 예조프의 음모』(2009)와 『스탈린과 NKVD』(2013)를 펴냈고, 대테러의 집행을 지역별 통계 편차와 예브도키모프의 '북캅카스파' 같은 체키스트 집단의 인맥 분석으로 재구성한다. 이 서가에 실린 두 연구서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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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936~1938년 NKVD 지도부 내부 투쟁』 출간
  • 2009『「피의 난쟁이」 대 인민의 수령: 예조프의 음모』 출간
  • 2013『스탈린과 NKVD』 출간

레오니트 야노비치 기비안스키

Леонид Янович Гибианский
연구자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36–

아카이브로 스탈린-티토 결별 연구를 다시 쓴 역사학자

소련 역사학자로 유고슬라비아 현대사와 냉전기 동유럽 국제관계를 전공했다. 1966년부터 인슬라브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1980년대 말 아카이브 개방 이후 스탈린과 유고·불가리아 공산당 지도자들의 회담 기록을 발굴해 스탈린-티토 결별의 기원에 대한 탈냉전기 재평가의 토대를 놓았다. 노먼 네이마크와 공동 편집한 『동유럽 공산정권의 수립』(1997)을 비롯한 수백 편의 저작과 코민포름 회의록 출판으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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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졸업 (남·서슬라브사 전공)
  • 1962–1966소련 과학아카데미 슬라브학 연구소 아스피란투라
  • 1966–2022슬라브학 연구소 연구원, 선임연구원, 국제관계사 부문장(1990–1993), 수석연구원
  • 1987『소비에트 연방과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1941–1947』 출간
  • 1997노먼 네이마크와 『동유럽 공산정권의 수립, 1944–1949』 공동 편집
  • 1998『코민포름 회의, 1947·1948·1949: 문서와 자료』 공동 편집
  • 2014『소련-유고슬라비아 최고위급 회담, 1946–1964』 편집·서문
  • 2021인슬라브 연구소 스레즈넵스키 금메달 수상

로널드 그리고르 수니

Ronald Grigor Suny
연구자 미국 아르메니아계 1940–

소련이 민족을 파괴했다는 냉전 통념을 뒤집고, 소비에트 정책이 오히려 민족을 만들었다고 주장한 역사학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련이 파시즘을 물리치고 전쟁 이후 샌프란시스코 크기의 도시들을 건설했다는 발표를 했더니 선생님은 얼굴이 하얘졌다. 그날부터 졸업할 때까지 나는 '수니 동무'로 불렸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역사학자로, 소련 민족 문제 연구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인물이다. 1993년 저서 『과거의 복수』에서 소비에트 체제가 민족들을 탄압하고 러시아화했다는 기존의 냉전적 통념을 뒤집고, 소련의 민족 정책이 오히려 영토·언어·관료제를 통해 민족 정체성을 제도화하고 구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연방을 파괴할 민족들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이 '과거의 복수' 테제는 소련 해체 이후 소비에트 민족 연구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되었다. 코카서스 3국 각각에 대한 연구로도 저명하며, 2020년 출간된 스탈린 전기로 도이처 기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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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1981오벌린 칼리지 역사학 조교수·부교수·정교수
  • 1981–1995미시간 대학교 알렉스 마누키언 근대 아르메니아사 석좌교수
  • 1995–2005시카고 대학교 정치학·역사학 교수
  • 2005미국 슬라브학 진흥협회(AAASS) 회장
  • 2005–2015미시간 대학교 찰스 틸리 사회·정치사 석좌교수
  • 2015–2022미시간 대학교 윌리엄 H. 수얼 주니어 석좌교수
  • 1993『과거의 복수』 출간: 소련 민족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
  • 2021『스탈린: 혁명으로 가는 길』로 도이처 기념상 수상

로널드 라도시

Ronald Radosh
연구자 미국 미국 1937– ○ 생존

공산주의에서 반공 보수주의로 이동한 역사가

모스크바 문서고의 공개 자료는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의 역할을 다시 묻게 했다.

로널드 라도시는 미국의 역사가이자 저술가로, 공산주의 가정에서 성장해 미국 공산당과 신좌파를 거쳤다. 로젠버그 사건을 재검토하며 소련 간첩 활동에 관한 기존 신념을 바꾸었고, 이 과정은 그의 반공 보수주의적 전환을 굳혔다. 그는 메리 하벡, 그리고리 세바스티아노프와 함께 『스페인 배신』을 편집해 모스크바 архив 문서를 바탕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의 정책과 코민테른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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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뉴욕에서 출생
  • 1950년대미국 공산당 주변에서 성장하고 활동
  • 1960년대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신좌파 활동
  • 1970년대미국 현대사와 보수주의 비판을 연구하고 저술
  • 1983『로젠버그 파일』을 공동 저술
  • 2001『스페인 배신』 공동 편집, 스페인 내전의 소련 정책을 분석
  • 2000년대허드슨 연구소에서 연구와 저술 활동

로버트 서비스

Robert Service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47– ○ 생존

소련사를 둘러싼 논쟁적 전기 작가

로버트 서비스는 영국의 소련사 연구자이자 역사가로, 혁명부터 스탈린 사망까지의 정치사를 폭넓게 다뤘다. 레닌·스탈린·트로츠키 전기를 통해 개인의 선택과 혁명 국가의 구조를 함께 해석했다. 베리야 처형을 그의 범죄뿐 아니라 전후 개혁 구상을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읽은 그의 서술은 역사해석 논쟁을 촉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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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혁명 속의 볼셰비키당』 출간
  • 1986–1995레닌 정치전기 3부작 출간
  • 1998–2013옥스퍼드대학교 러시아사 교수
  • 1998–현재영국학술원 회원
  • 2000『레닌: 전기』 출간
  • 2004『스탈린: 전기』 출간
  • 2009『트로츠키: 전기』 출간, 더프 쿠퍼상 수상
  • 2011『스파이와 인민위원』 출간

로버트 앨런

Robert C. Allen
연구자 미국 미국 1947–

소련 산업화를 20세기 가장 성공적인 개발 사례로 재평가한 옥스퍼드 경제사학자

"소련 경제는 대개 실패로 치부된다. 그러나 나는 소련 경제가 훌륭히 작동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20세기 가장 성공한 개발도상국이었지만, 소련은 바로 그 뒤를 이었다."

옥스퍼드대학교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은 2003년 저서 『농장에서 공장으로: 소비에트 산업혁명의 재해석』에서 소련의 산업화가 20세기 가장 성공적인 개발 사례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그의 추계에 따르면 1928년부터 1937년까지 1인당 소비는 약 30% 증가했으며, 이는 기존 연구(버그슨·채프먼)의 소비 감소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결과였다. 그는 계량모형을 바탕으로 집단화 없는 NEP 지속 경로가 GDP 성장률 면에서는 실제 성과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반사실적 시뮬레이션도 제시해, 소련 산업화의 비용과 성과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 참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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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1975해밀턴 칼리지 조교수
  • 1975–2001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2000–2013옥스퍼드대학교 경제사 교수·너필드 칼리지 펠로
  • 2012–2013경제사학회 회장
  • 2014–현재뉴욕대학교 아부다비 글로벌 석좌교수

로버트 오언 팩스턴

Robert Owen Paxton
연구자 미국 미국 1932– ○ 생존

비시 프랑스의 협력을 재구성한 역사가

“비시 정권은 패배 뒤 프랑스를 재편하려는 자체의 적극적 계획을 갖고 있었다.”

로버트 팩스턴은 미국의 현대 유럽사 연구자로, 비시 프랑스와 파시즘의 사회적·정치적 조건을 분석했다. 독일 점령기 문서와 프랑스 자료를 함께 읽어 비시 정권이 독일의 수동적 도구가 아니라 자체적인 국가 재편 구상을 지닌 협력자였음을 밝혔다. 마이클 마루스와 함께 쓴 『비시 프랑스와 유대인』은 비시의 초기 반유대 법령이 독일의 직접 명령 없이 추진된 정책임을 논증해 프랑스의 전후 기억과 역사학을 바꾸었다. 그의 연구는 협력과 저항을 도덕적 신화가 아니라 국가기관, 사회세력, 전쟁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보게 했으며 세부 해석을 둘러싼 논쟁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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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워싱턴 앤드 리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음
  • 1961옥스퍼드 대학교 머턴 칼리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음
  • 1963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음
  • 1966『비시의 행진과 정치』를 출간
  • 1969컬럼비아 대학교 역사학과에 합류
  • 1972『비시 프랑스』를 출간해 협력 연구의 전환을 촉발
  • 1981마이클 마루스와 『비시 프랑스와 유대인』을 출간
  • 1997모리스 파퐁 재판에서 비시 협력에 관한 전문가 증언
  • 2004『파시즘의 해부』를 출간
  • 2009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 서훈

리처드 B. 프랭크

Richard B. Frank
연구자 미국 미국계 1947– ○ 생존

태평양전쟁의 사료 중심 군사사가

리처드 B. 프랭크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을 연구한 군사사가다. 그는 과달카날 전투부터 일본 제국의 종말까지 작전과 정책, 일본 지도부의 판단을 함께 추적하며 전쟁의 귀결을 설명했다. 특히 『Downfall』은 일본의 항복을 둘러싼 군사적 붕괴와 원자폭탄 투하,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결합해 논쟁적인 종결 과정을 분석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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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미주리대학교 졸업
  • 1969–1973미 육군 복무, 제101공수사단 소대장으로 베트남전 참전
  • 1976조지타운대학교 법학센터 졸업
  • 1990『과달카날』 출간, 미국 해병대 월리스 M. 그린상 수상
  • 1999『Downfall』 출간
  • 2007『MacArthur』 출간
  • 2020『Tower of Skulls』 출간

마이클 돕스

Michael Dobbs
연구자 미국 영국 1950– ○ 생존

냉전의 위기를 기록한 사료 기반 저널리스트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정상회담의 신화가 아니라 우발적 사건들이 겹친 시간대별 위기로 다시 펼쳐 보였다.

마이클 돕스는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로, 냉전 종식과 국제분쟁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의 동유럽·파리·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하며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그 국제적 결과를 기록했다. 『자정 1분 전』은 미국·소련·쿠바 자료를 대조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하고, 핵전쟁의 위험이 기존 통념보다 훨씬 컸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작업은 정상 지도자들의 대결이라는 서사를 넘어 현장 지휘관과 우발적 사건이 위기를 어떻게 증폭했는지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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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
  • 1972요크 대학교 경제학·경제사 학사
  • 1974–1975로이터 로마 특파원
  • 1977–1980벨그라드 주재 특별특파원, 티토 사망 등 취재
  • 1980–1981워싱턴 포스트 동유럽 지국장,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취재
  • 1982–1986워싱턴 포스트 파리 지국장
  • 1988–1993워싱턴 포스트 모스크바 지국장
  • 2008『자정 1분 전』 출간

마크 N. 카츠

Mark N. Katz
연구자 미국 미국 1954–현재 ○ 현역 연구자

철군 뒤의 전쟁을 다시 읽은 국제정치학자

마크 N. 카츠는 러시아 정치와 외교정책, 혁명, 테러와의 전쟁을 연구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소련과 러시아의 제3세계 정책 및 혁명 운동의 국제적 차원을 가르치고 저술했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분석하며, 소련군 철수 뒤에도 소련의 군사·경제 원조가 나지불라 정권을 3년 넘게 지탱했고 철군이 곧 붕괴를 뜻하지 않았다고 논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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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국제관계학 학사
  • 1978존스 홉킨스 대학교 고등국제학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 1982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82미 국무부 소련 문제 분석관
  • 1988조지 메이슨 대학교 정부·정치학 조교수
  • 1998조지 메이슨 대학교 정부·정치학 정교수
  • 2011「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에서 얻는 교훈」 발표
  • 2024조지 메이슨 대학교 명예교수로 퇴직

마크 베이신저

Mark R. Beissinger
연구자 미국 미국 1954–

소련 붕괴가 구조적 필연이 아니라 사건의 파도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정치학자

「민족주의는 행동의 원인일 뿐 아니라 행동의 산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고 베이신저는 말했다. 사건이 구조를 반영할 뿐 아니라 구조 자체를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미국 비교정치학자로, 소련 민족주의 동원과 국가 붕괴의 관계를 사건 데이터로 실증한 연구자이다. 2002년 저서 『Nationalist Mobilization a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State』에서 소련 해체가 구조적 필연이 아니라, 한 공화국의 민족운동이 다른 공화국으로 확산되는 '조수(tidal)' 효과로 사건들이 누적되며 초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선리(Ronald Suny)의 구조적 설명과 대비되는 이 입장은, 민족운동의 전염성과 사건의 우발성이 제도의 제약을 압도할 수 있다고 보며 이후 색깔혁명 연구로도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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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듀크대학교 정치학 학사 (magna cum laude)
  • 1982하버드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82–1987하버드대학교 조교수
  • 1988–2006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정치학 교수
  • 2001–2004위스콘신대학교 정치학과장
  • 2006–프린스턴대학교 헨리 W. 퍼트넘 정치학 석좌교수
  • 2007슬라브·동유럽·유라시아학회(ASEEES) 회장
  • 2022『The Revolutionary City』 출간

마크 크레이머

Mark Kramer
연구자 미국 미국 현재 ○ 현역 역사학자

냉전의 기록을 해독한 역사학자

폴란드어로 번역된 비밀연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마크 크레이머는 냉전과 소련, 사회주의권 및 탈공산주의 동유럽의 정치 변화를 연구한 미국 역사학자다. 하버드대학교 데이비스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센터에서 냉전연구 프로그램을 이끌며, 동유럽과 서방의 개방된 기록보관소를 폭넓게 활용해 왔다. 그는 1956년 흐루쇼프 비밀연설이 폴란드 공산당 지도부와 사회에 유통된 경로를 추적해, 비밀로 남기려던 문서가 탈스탈린화의 정치적 동력이 된 과정을 밝혔다. 연구와 편집을 통해 냉전사를 국가 지도부의 결정만이 아니라 문서와 정보가 이동하는 국제적 과정으로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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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하버드대학교 데이비스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센터 냉전연구 프로그램 디렉터
  • 현재《냉전연구 저널》 편집자
  • 현재하버드 냉전사 연구 총서 편집자
  • 2006「스탈린 폐위: 1956년 폴란드와 그 유산」 발표
  • 2000년대동유럽 탈스탈린화와 냉전 국제사 연구
  • 1990년대 이후구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와 서방의 기록보관소 연구

마크 해리슨

Mark Harrison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49–

네프 실패에 관한 3유형론으로 소련 경제사 해석의 틀을 세운 영국의 경제사가

네프는 왜 실패했는가? 나는 이 물음에 답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하고자 한다: 합리적 포기, 비합리적·정치적 결정, 제약된 선택.

마크 해리슨은 케임브리지에서 경제학을, 옥스퍼드에서 현대사를 공부한 영국의 경제사가로, 1975년부터 워릭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가르치며 소련 경제사를 연구해 왔다. 1980년 논문 「네프는 왜 실패했는가」에서 네프 폐기를 합리적 포기, 비합리적·정치적 결정, 제약된 선택의 세 입장으로 정리해 이후 네프사 서술의 분석틀을 제공했다. 그의 연구는 전시 경제, 국가 비밀, 강제의 경제학으로 확장되었으며, 1996년 『전쟁의 회계』로 영국 슬라브·동유럽학회 앨릭 노브 상을, 2023년 『비밀의 리바이어던』으로 소비에트 체제의 정보 통제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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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워릭대학교 경제학과 임시강사
  • 1975워릭대학교 경제학과 강사
  • 1985워릭대학교 경제학과 선임강사
  • 1993워릭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Reader)
  • 1998워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2004후버연구소 저명 초빙 연구원
  • 2019워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영국 학사원 회원(2020)

마틴 매콜리

Martin McCauley
연구자 영국 아일랜드 1934– ○ 생존

소련 현대사를 해석한 영국 역사가

마틴 매콜리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소련과 동유럽의 정치사를 연구한 역사가다. 그는 UCL 슬라브·동유럽학부에서 가르치며 스탈린주의, 흐루쇼프 시대, 냉전과 소련의 흥망을 폭넓게 다뤘다. 20차 당대회 비밀연설을 그는 당을 효율적인 기구로 되돌리려는 개혁이자, 흐루쇼프가 경쟁자들의 권위를 약화한 권력투쟁으로도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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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1956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측량학 수학
  • 1961파리 소르본에서 프랑스 문명 연구
  • 1962–1968런던대학교에서 학위 과정 및 박사학위 취득
  • 1968–1978런던대학교 슬라브·동유럽학부 선임강사
  • 1975『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국가』 편집·출간
  • 1976『흐루쇼프와 소비에트 농업 발전』 출간
  • 1995『흐루쇼프 시대, 1953~1964』 출간
  • 2007『소련의 흥망』 출간

바실 마로치코

Василь Марочко
연구자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인 1956– ○ 활동 중

홀로도모르의 제도와 기억을 추적한 역사학자

바실 마로치코는 1920~1930년대 우크라이나 농촌과 홀로도모르를 연구해 온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다. 그의 연구는 기근을 추상적 재난이 아니라 곡물 징발과 농촌 통제를 결합한 국가 정책의 결과로 분석한다. 그는 흑색명부가 우크라이나 SSR 405개 구역 중 252개를 포괄했다는 계산을 제시하며, 식량 박탈과 행정적 격리가 농민 사회를 어떻게 압박했는지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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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1995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대학원생·연구원
  • 1985「우크라이나 집단농촌의 소비에트 생활양식 형성」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 취득
  • 1996「우크라이나 농민 협동조합」으로 역사학 박사 논문 방어
  • 1996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연구자협회 회장
  • 2008–2015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연구자협회 회장
  • 2013–우크라이나 역사 전공 교수
  • 2022홀로도모르 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립 홀로도모르-제노사이드 박물관

발레리 알렉산드로비치 티시코프

Вале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ишк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41– ○ 현역 학자

민족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은 민족학자

그는 민족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정치가들이 독점하려 다투는 강력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발레리 티시코프는 민족성·민족주의·민족분쟁을 연구한 러시아 민족학자이자 사회인류학자다. 그는 민족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실체라기보다 정치적 행위자와 엘리트가 동원하고 재구성하는 범주로 분석했으며, 이 관점은 저서 『Ethnicity, Nationalism and Conflict in and after the Soviet Union: The Mind Aflame』에 집약됐다. 1992년 민족문제 담당 장관을 지내며 학술적 민족성 논의를 국가의 다민족 현실과 분쟁 예방의 문제에 연결했다. 그의 구성주의적 해석은 민족주의의 자율성과 대중적 경험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과 함께 후기 소련 및 러시아 민족정치 논쟁의 한 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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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모스크바국립대학교 역사학부 졸업
  • 1969–1972마가단 국립교육대학 역사·문헌학부 학장
  • 1972–1976소련과학아카데미 세계사연구소 연구원
  • 1976–1981소련과학아카데미 역사분과 학술서기
  • 1989–2015러시아과학아카데미 민족학·인류학연구소 소장
  • 1992러시아연방 민족문제 담당 장관
  • 2015–민족학·인류학연구소 학술 지도자

배리 아이켄그린

Barry Eichengreen
연구자 미국 미국 1952– ○ 생존

국제통화 질서를 역사로 분석한 경제학자

마셜 플랜을 원조 사업이 아니라 전후 유럽의 경제 질서를 바꾼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읽었다.

배리 아이켄그린은 국제통화·금융 체제의 역사를 현재의 정책 문제와 연결해 분석해 온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경제사가다. 그는 금본위제가 대공황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킨 구조를 밝히며, 통화 제도와 국가 정책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마셜 플랜 연구에서는 원조액 자체보다 원조에 붙은 조건이 서유럽의 전후 혼합경제를 시장과 무역 중심으로 재편한 효과에 주목했다. 이 연구는 경제 재건에서 자금과 제도적 조건의 관계를 묻는 논쟁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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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즈 학사
  • 1986예일 대학교 경제학 박사
  • 1987–현재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경제학·정치학 교수
  • 1991J. 브래드퍼드 디롱과 「마셜 플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 공동 집필
  • 1992『황금의 족쇄』 출간
  • 1997–1998국제통화기금 선임 정책자문관
  • 2010–2011경제사학회 회장

보이텍 마스트니

Vojtěch Mastný
연구자 미국 체코슬로바키아계 1936–현재 ○ 생존

냉전의 архив를 개방한 역사가

그는 1962년 소련 유람선에서 튀니스에 내려 미국행 비자를 신청했다.

보이텍 마스트니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미국 역사학자로, 냉전과 소련 대외정책을 연구했다. 계급 배경 때문에 정규 중등교육 대신 공장 노동과 기록관 실무를 거친 경험은 그의 사료 중심 연구 태도와 맞물렸다. 그는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처음부터 단일한 군사동맹으로 보지 않고, 정치적 협상 수단과 소련의 규율 장치 사이의 긴장 속에서 해석했으며, 공개 기록을 통해 그 실제 작동을 추적했다. 평행사 프로젝트를 이끌며 동구권 군 관계자들의 증언과 문서를 국제 연구 공간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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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6프라하에서 출생
  • 1950년대공장 기계공으로 일하며 노동자학교에서 수학
  • 1950년대 후반–1962국립박물관 보조 기록관, 카를대학교에서 중세사와 기록학 전공
  • 1962미국으로 이주해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수학
  • 1970년대–현재컬럼비아대학교, 일리노이대학교, 보스턴대학교,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 등에서 역사와 국제관계 강의
  • 1996–1998NATO 최초 만프레트 뵈르너 펠로
  • 1990년대–현재평행사 프로젝트에서 NATO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사료 연구를 조정
  • 2005말콤 번과 함께 《A Cardboard Castle?》 출간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연구자 미국 미국 1943–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재규정한 수정주의 역사학의 대표 주자

내전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도래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미국의 동아시아사 학자로, 『한국전쟁의 기원』(1981, 1990) 2권을 통해 한국전쟁을 냉전의 국제적 충돌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후 사회 갈등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재규정했다. 시카고 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학계의 한국전쟁 이해를 근본적으로 전환시켰고, 이 공로로 미국역사협회 존 K. 페어뱅크상과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업은 전통주의 냉전 서사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현대 한국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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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1968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
  • 1975컬럼비아 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80–1987워싱턴 대학교 교수
  • 1987–1999노스웨스턴 대학교 교수
  • 1999–2015시카고 대학교 석좌교수 및 역사학부장
  • 2007김대중 학술상 수상

블라디미르 드미트리예비치 쿠즈네쳅스키

Владимир Дмитриевич Кузнечевский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44– ○ 생존

소련사에서 러시아 문제를 추적한 역사학자

블라디미르 드미트리예비치 쿠즈네쳅스키는 소련과 러시아의 정치사를 연구한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역사학 박사이다. 그는 스탈린 시대의 권력과 국가 민족정책을 다룬 저술을 발표했으며, 특히 레닌그라드 사건을 러시아공화국의 지위와 러시아계 지도층을 둘러싼 갈등으로 해석했다. 그의 해석은 사건을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소련 체제의 ‘러시아 문제’와 연결해 보려는 논쟁적 역사서술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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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s소련 및 러시아 정치사 연구자
  • 2013『레닌그라드 사건. 소비에트 대 러시아인』 출간
  • 2016러시아전략연구소(RISI)에서 『레닌그라드 사건』 출간
  • 2017『레닌그라드 사건』 개정·확장판 발표
  • 현재소련사와 ‘러시아 문제’에 관한 저술 활동

블라디미르 콘토로비치

Владимир Конторович
연구자 미국 소련 1950–

부분 개혁이 계획체계를 파괴할 뿐이라고 본 경제사학자

고르바초프의 경제학자들」을 분석한 글들에는 '사기꾼'이나 '무식한 자'라는 말이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경제학자로,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수학했다. 1988년 논문 「1965년 소련 경제개혁의 교훈」에서 코시긴 개혁에 대한 중앙 부처와 고스플란의 저항이 단순한 관료적 이기심이 아니라, 부분적 시장 개혁이 중앙계획 체계를 파괴하면서도 작동 가능한 대안은 내놓지 못한다는 합리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엘먼과 함께 『소련 경제체제의 파괴』를 편집했으며, 이 체제 비양립성 테제는 소련 개혁 실패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중심 논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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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노보시비르스크 대학 경제학 디플로마
  • 1985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제학 박사
  • 1984–2002계획경제연구소(Command Economies Research, Inc.) 설립·대표, 미 국방부·CIA 계약 연구 수행
  • 1987–해버포드 칼리지 경제학과 조교수→부교수→정교수
  • 1988「1965년 소련 경제개혁의 교훈」 발표 (Soviet Studies)
  • 1992/1998마이클 엘먼과 『소련 경제체제의 붕괴』·『소련 경제체제의 파괴』 공동 편집
  • 2008『뉴 팔그레이브 경제학 사전』 '소련 경제개혁' 항목 집필

블라디미르 트레믈

Vladimir Treml
연구자 미국 미국 1932– ○ 생존

소련 경제의 숨은 흐름을 계량한 연구자

공식 판매량이 줄어도 사모곤은 통계 밖에서 계속 소비되었다.

블라디미르 트레믈은 소련 경제에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득과 소비를 간접 지표로 추정한 미국의 경제학자다. 그는 사모곤을 포함한 실제 주류 소비량과 국가 재정에서 보드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해, 주류 판매 통계만으로는 소련 사회의 음주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음을 보였다. 1982년 저서 《소련의 알코올》은 이 연구를 집약했으며, 소련에서는 도서관 제한 열람 자료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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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s소련 경제와 비공식 소득 연구
  • 1970s소련의 비공식 경제와 소비 추정
  • 1977소련 제2경제 연구에 기여
  • 1982《소련의 알코올》 출간
  • 1987소련의 음주와 알코올 남용 연구 발표
  • 1989마이클 알렉세예프와 소련 제2경제의 불안정화 연구

블라디미르 티스머네아누

Vladimir Tismăneanu
연구자 미국 루마니아 1951–

망명한 루마니아계 미국 정치학자, 1989년 혁명 연구의 권위자

1990년 6월 부쿠레슈티에서 광부들이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고, 이를 '가장 조잡하고 역겨운 형태의 야만성'에 대한 통찰을 준 경험이라고 기록했다.

루마니아 공산당 엘리트 가정에서 태어나 1981년 망명한 정치학자로, 스탈린주의와 동유럽 공산 체제의 몰락을 비교정치학적 시각에서 분석해 왔다. 2003년 『모든 계절을 위한 스탈린주의』로 루마니아 공산주의사의 결정적 종합을 제시했고, 2006년 루마니아 대통령 직속 공산독재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공산주의 과거사 청산 보고서를 이끌었다. 1989년 혁명의 원인·의미·결과를 다룬 2009년 논문은 혁명 이후 민족 갈등과 권위주의적 반동에도 불구하고 그 '관대한 메시지'는 훼손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1989년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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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1981부쿠레슈티 표준건축설계연구소 사회학자
  • 1983–1990필라델피아 외교정책연구소(FPRI) 연구원
  • 1985–1990펜실베이니아대학교 강사
  • 1990–메릴랜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98–2004『East European Politics and Societies』 편집장
  • 2006루마니아 공산독재연구 대통령위원회 위원장
  • 2009「1989년 혁명: 원인, 의미, 결과」 『Contemporary European History』 발표

블라디슬라프 마르티노비치 주보크

Владислав Мартинович Зубок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 1958–

소련 붕괴를 '완벽한 폭풍과 무능한 선장'의 인재로 해석한 냉전사학자

그는 소련 붕괴의 원인을 이렇게 압축했다: '완벽한 폭풍과 무능한 선장.' 소련은 피할 수 없는 몰락이 아니라 고르바초프의 실기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출신의 냉전사학자로, 모스크바국립대학 역사학부와 소련 과학아카데미 미국·캐나다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1985년 동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 국가안보아카이브 연구원을 거쳐 템플대학 교수를 지냈고, 2013년부터 런던정경대학(LSE) 국제사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출간한 《Collapse: The Fall of the Soviet Union》에서 소련 붕괴는 필연이 아니었으며 고르바초프의 개혁 실패가 '완벽한 폭풍과 무능한 선장'의 결과였다고 주장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 책으로 2022년 컨딜 역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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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1985소련 과학아카데미 미국·캐나다연구소 대학원생
  • 1985–1993소련 과학아카데미 미국·캐나다연구소 연구원
  • 1994–2001조지워싱턴대학 국가안보아카이브 연구원
  • 2004–2013템플대학 역사학과 교수
  • 2013–현재런던정경대학(LSE) 국제사 교수, 냉전연구 프로그램장
연구자 영국 영국계 유대인 1965–현재 ○ 생존

권력의 사적 세계를 파고든 역사 저술가

그는 스탈린의 죽음 곁에 있던 베리야를 독살설의 증거와 함께 검토하며, 궁정의 사적 장면을 역사적 쟁점으로 바꾸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로, 권력자의 사적 세계와 정치적 폭력을 함께 그리는 역사 서술로 알려졌다. 『붉은 차르의 궁정』은 스탈린의 통치와 측근들을 새 문서와 회고 자료로 재구성했으며, 스탈린 말년의 베리야와 독살설을 둘러싼 증언을 검토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후 『젊은 스탈린』, 『예루살렘』, 『로마노프 왕조』 등으로 시야를 넓혀 혁명과 제국, 왕조의 장기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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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런던에서 출생
  • 1983케임브리지 곤빌 앤드 키스 칼리지에서 역사학 수학
  • 1991첫 소설 『왕의 행렬』 출간
  • 2001『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템킨』 출간
  • 2003『붉은 차르의 궁정』 출간
  • 2007『젊은 스탈린』 출간
  • 2011『예루살렘』 출간 및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진행
  • 2016『로마노프 왕조』 출간

선즈화

沈志华
연구자 중국 중국 1950–현재 ○ 현역 역사학자

냉전 문서로 중소관계를 다시 읽은 역사가

선즈화는 중국 냉전사와 소련사, 중소관계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이며 화둥사범대학 냉전국제사연구센터를 이끌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해제 문서를 직접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 문서집을 편찬해 중국 냉전사 연구의 자료 기반을 넓혔다. 그의 연구는 중소분열을 국가이익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관계가 교차한 과정으로 분석하며, 중국의 선택을 이념적 연대만으로 설명하는 공식 서술에 질문을 던졌다. 한국전쟁과 중소동맹에 관한 저술은 중국과 소련, 조선 사이의 상호 계산을 추적해 중국 학계의 냉전 해석을 국제적으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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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베이징에서 출생
  • 1971–1978스징산 발전소 노동자·선전 부문 간부
  • 1978–1982중국사회과학원 세계사 연구생
  • 1983–1984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수감, 조기 석방
  • 1993–2002동방역사연구센터 설립·소련 역사档案 편찬
  • 2004–현재화둥사범대학 종신교수·냉전국제사연구센터 주임

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라드첸코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Радченко
연구자 영국 러시아 1980–

중소분열의 원인을 동맹 내 불평등과 민족적 이해충돌에서 찾은 냉전사가

이데올로기적 불일치는 권력투쟁의 덮개에 불과했으며… 그 안에서 이데올로기는 수단일 뿐이었다.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소련 출신 영국 역사학자로, 냉전 시기 중소관계와 소련 외교정책을 연구해 왔다. 첫 저서 『하늘의 두 태양』(2009)은 중소분열의 원인을 이념보다 동맹 내 구조적 불평등과 중국의 민족적 굴욕감에서 찾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시한 로렌츠 뤼티의 해석에 대한 주요 반론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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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BSc 국제관계학, 런던정치경제대학 (LSE)
  • 2005PhD 국제사, LSE
  • 2005–2007피츠버그주립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
  • 2007–2009LSE 국제사학과 펠로
  • 2009–2013닝보 노팅엄대학 강사
  • 2013–2016애버리스트위스대학교 부교수
  • 2016–2021카디프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
  • 2021–존스홉킨스대학교 SAIS 윌슨 E. 슈미트 석좌교수

세르히 미콜라요비치 플로히

Сергій Миколайович Плохій
연구자 미국 우크라이나 1957–

체르노빌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주장한 하버드대 역사학자

체르노빌 이야기 없이는, 소련의 붕괴는 심각하게 불완전할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석좌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을 지낸 역사학자로, 동유럽과 냉전의 지성사·국제사를 연구해 왔다. 2018년 『체르노빌: 비극의 역사』로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글라스노스트를 촉발하고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의 기반을 형성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제국』, 『유럽의 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소련 해체와 동유럽 민족 정체성의 역사적 기원을 재해석하며 현대 동슬라브 역사서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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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드니프로페트롭스크 대학교 역사·사회과학 학사
  • 1982민족우호대학교 대학원 수료
  • 1983–1991드니프로페트롭스크 대학교 교수
  • 1990키예프 대학교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96–2007앨버타 대학교 캐나다 우크라이나 연구소 교수
  • 2007–현재하버드대학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석좌교수
  • 2013–2025하버드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
  • 2018『체르노빌: 비극의 역사』로 베일리 기퍼드상 수상

쉴라 피츠패트릭

Sheila Fitzpatrick
연구자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1941–

소련 사회사를 '아래로부터' 재구성한 수정주의 역사학의 선구자

'실패만큼 확실한 실패는 없다. 혁명 100주년을 맞는 역사가들에게 소련의 소멸은 그늘을 드리운다.' (「What's Left?」, LRB, 2017)

소련사 연구의 수정주의 학파를 이끈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역사가. 1970~80년대 『교육과 사회 이동』, 『러시아 혁명』, 『스탈린의 농민들』, 『일상의 스탈린주의』를 잇달아 내며 국가와 지도자가 아닌 노동자·농민·도시민의 시선으로 소비에트 체제를 읽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개척했다. 2017년 LRB 기고문 「What's Left?」에서 10월 혁명 100주년의 역사서들을 평하며 혁명사 서술의 세 흐름(전체주의 모델, 수정주의 사회사, 포스트소비에트 '역사의 막다른 골목' 합의)을 정리했고, 혁명이 스탈린주의로 귀결된 경로를 숙명이 아닌 사회적 동학의 산물로 분석해 냉전기와 그 후의 학계 모두에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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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멜버른 대학교 학사 졸업
  • 1969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앤터니스 칼리지 박사
  • 1976컬럼비아 대학교 조교수·부교수
  • 1980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교수
  • 1990시카고 대학교 석좌교수 (2012년까지)
  • 2012오스트레일리아가톨릭대학교 교수, 시드니 대학교 명예교수

스탠리 페인

Stanley G. Payne
연구자 미국 미국 1934–

제2공화국의 급진화가 내전을 불렀다고 본 미국의 대표적 보수 역사학자

역사적 기억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어법이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매우 자주 오류에 빠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페인 현대사 연구자로, 위스콘신대학에서 37년간 봉직하며 파시즘 유형론과 스페인 내전 연구의 보수적 해석을 정립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제2공화국 붕괴의 일차적 원인이 우파 음모가 아니라 사회당 주도의 혁명적 급진화에 있다는 것으로, 내전을 혁명과 반혁명의 충돌로 읽는다. 2000년대 이후 프랑코 정권에 온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비냐스, 프레스턴 등 진보 진영의 주요 논쟁 상대가 되었으나, 그가 세운 수정주의적 틀은 스페인 내전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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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Pacific Union College에서 역사학 학사
  • 1960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지도교수 Shepard B. Clough)
  • 1962–1968UCLA 역사학 조교수
  • 1968–2005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역사학 교수; Hilldale-Jaume Vicens Vives 석좌교수
  • 1987스페인 왕립역사아카데미 통신회원
  • 2004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명예교수

스티븐 G. 휘트크로프트

Stephen G. Wheatcroft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47–

소련 기근·탄압 통계를 기록보관소로 재구성한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사가

「우리는 스탈린에게 기근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드러낸 것은 잘못된 정책 탓에 초래되었지만 예상치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던 기근 위기와 씨름하는 소비에트 지도부의 모습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사가이자 소비에트 사회·경제·인구사 연구자. 로버트 W. 데이비스와 함께 『기아의 해』(2004)를 저술해 구소련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1932–1933년 기근 사망자를 약 450만~650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기근을 의도된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강제적 곡물 조달 정책·기상 재해·무분별한 공업화가 결합된 비극으로 설명했다. 1990년 「소련의 1930년대 탄압 규모와 초과 사망에 대한 추가 해명」으로 서방의 과장된 수치를 바로잡기 시작했고, 훗날 독일과 소련의 탄압 규모를 비교하는 작업으로까지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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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1969킬대에서 러시아어·경제학·역사 전공
  • 1970–1972영국문화원 교환장학생, 모스크바 플레하노프 연구소
  • 1972–1974버밍엄대 대학원 연구
  • 1990소련 탄압 규모 논문으로 학계 주목
  • 1990년대~멜버른대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소장
  • 2004『기아의 해』 출간 (데이비스 공저)
  • 2005오스트레일리아 사회과학아카데미 회원
  • 현재멜버른대 명예교수

스티븐 마크 코트킨

Stephen Mark Kotkin
연구자 미국 미국 1959–

소련은 죽어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 소련 붕괴의 구조적 분석가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서방과의 경쟁에서 분명히 패배했지만,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고 상당 기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소련사 연구의 구조적·제도적 전환을 이끈 미국의 역사가로, 스탈린주의를 하나의 '문명'으로 분석한 『마그니토고르스크』(1995)와 3권작 스탈린 평전으로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피한 아마겟돈』(2001)에서 그는 소련이 1985년까지도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으며, 체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시도 자체였다고 주장해 소련 붕괴 논쟁의 핵심 축을 재편했다. 프린스턴대에서 33년간 러시아·유라시아 연구를 이끌었고,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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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로체스터 대학교 영문학 학사
  • 1988UC버클리 역사학 박사
  • 1989–2022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
  • 1995『마그니토고르스크: 하나의 문명으로서의 스탈린주의』 출간
  • 2001『피한 아마겟돈: 소련 붕괴 1970–2000』 출간
  • 2014『스탈린: 권력의 역설 1878–1928』 출간, 퓰리처상 최종후보
  • 2017『스탈린: 히틀러를 기다리며 1929–1941』 출간
  • 2022–현재후버연구소 클라인하인츠 선임연구원

쓰요시 하세가와

長谷川 毅
연구자 미국 일본 1941– ○ 현역 연구자

전쟁 종결의 국제사를 다시 쓴 역사가

1945년 8월의 항복은 원폭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쓰요시 하세가와는 러시아·소련사와 냉전사, 러시아·일본 관계를 연구한 일본계 미국인 역사가다. 그는 러시아혁명, 일소 관계, 태평양전쟁 종결이라는 세 분야를 넘나들며 국가 간 외교와 사회 변동을 함께 분석했다. 대표작 《Racing the Enemy》는 1945년 8월 일본의 전략적 선택에서 히로시마 원폭만이 아니라 소련의 대일전 참전과 중립조약 파기가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해 항복 원인에 관한 논쟁을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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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도쿄대학교 교양학부 졸업
  • 1969워싱턴대학교 역사학 박사
  • 1970년대뉴욕주립대학교 오스위고 역사학 교수
  • 1980–1981《The February Revolution》 출간
  • 1980년대–1990년대홋카이도대학교 슬라브연구센터 교수
  • 1998《The Northern Territories Dispute and Russo-Japanese Relations》 출간
  • 2005《Racing the Enemy》 출간, 로버트 퍼렐상 수상
  • 2016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 역사학 교수 은퇴

아나톨 폴 리벤

Peter Paul Anatol Lieven
연구자 영국인 영국인 1960–현재 ○ 활동 중

발트 독립을 기록한 역사가이자 기자

“발트인들이 러시아계 소수자에게 더 호의적이 되리라 농담했지만, 이제는 농담이 아니다.”

아나톨 리벤은 영국의 기자·저술가·정책 분석가로, 현장 취재와 역사적 맥락을 결합해 국가와 민족주의의 문제를 다뤘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발트 지역에 상주한 《타임스》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 회복의 격동을 취재했고, 그 경험을 《발트 혁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발트 사회의 계급 구조와 민족적 긴장, 독립 이후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갈림길을 함께 분석했다. 리벤은 민족 정체성의 복원이 배타적 민족주의와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무조건적 시민권 부여와 국가들의 조건부 시민권 사이의 긴장을 단순한 도식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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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학사
  • 1986–1989인도 프리랜서 기자, BBC 대외방송 아시아 서비스 제작자·저자
  • 1989–1990《타임스》 남아시아·동유럽 특파원
  • 1990–1993《타임스》 발트 지역 상주 특파원
  • 1993《발트 혁명》 출간
  • 1996–1997미국평화연구소 초빙 선임연구원
  • 2000–2005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외교·안보정책 선임연구원
  • 현재퀸시 책임국정연구소 유라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킹스 칼리지 런던 방문교수

아시프 시디키

Asif Siddiqi
연구자 미국 벵골계 1966–

소련 우주사 연구의 기초를 세운 방글라데시계 미국 역사가

다카 출생의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역사가 시디키는, 소련 붕괴 후 개방된 기록물을 처음으로 체계 분석하여 소련 우주사 연구를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립했다. 2000년 NASA가 출간한 『Challenge to Apollo』는 소련 유인우주계획의 결정적 기록사로서 『월스트리트저널』 선정 '우주탐사 최고의 책 5선'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표준문헌으로 남아 있다. 2010년 『The Red Rockets' Glare』로 19세기 러시아 우주적 상상력의 문화사까지 영역을 넓혔고, 현재는 굴라그와 과학기술의 접점을 다룬 저작을 준비하며 포덤대학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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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NASA 역사시리즈로 『Challenge to Apollo』 출간
  • 2004카네기멜론대학교 역사학 박사
  • 2005–현재포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2010『The Red Rockets' Glare』 출간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
  • 2016구겐하임 펠로십 수상
  • 2016–현재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 과학기술사 시리즈 공동편집자

아이나스 라사스

Ainius Lašas
연구자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인 현대 ○ 현대 학자로 활동

발트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한 리투아니아 학자

아이나스 라사스는 리투아니아의 정치학자이자 발트 지역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2007년 논문에서 1991년 1월 빌뉴스와 리가의 유혈 진압을 둘러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무지 주장을 재검토하고, 이를 반박하는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그의 연구는 소비에트 해체기의 민족문제와 권력 책임을 문서와 정치적 맥락 속에서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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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대리투아니아 정치학자
  • 2007「피의 일요일」 저자, Journal of Baltic Studies
  • 2008발트해 지역 안보 협력 연구 공저자
  • 2000년대~현재발트 정치·국제관계 연구

아치 브라운

Archie Brown
연구자 영국 스코틀랜드계 영국인 1938–

고르바초프의 개인적 리더십을 소련 체제 변혁의 결정적 요인으로 논증한 영국 정치학자

개별 지도자가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고르바초프는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옥스퍼드대 정치학 교수이자 소련·러시아 정치 연구의 대가. 1996년 저서 『고르바초프 팩터』에서 구조적 결정론에 맞서 고르바초프의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선택이 소련 체제 변혁과 냉전 종식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는 '개인 지도자' 테제를 정립했다. 이 주장은 이후 역사논쟁의 한 축을 이루며, 페레스트로이카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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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1971글래스고대학교 강사
  • 1967–1968영국문화원 교환 학자, 모스크바국립대학교
  • 1971–1989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앤터니스칼리지 소련제도 강사
  • 1989–2005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96『고르바초프 팩터』 출간
  • 2005–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명예교수

안드레이 미하일로비치 마르케비치

Андрей Михайлович Маркевич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77– ○ 생존

러시아 경제사의 계량적 재구성자

2021년 연구는 기근 사망률의 지역 격차가 식량 생산성보다 민족적 편향과 더 밀접하다고 제시했다.

안드레이 마르케비치는 러시아 경제사를 통계와 제도 분석으로 재구성해 온 역사경제학자다. 그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국가, 시장, 산업화, 계획을 장기 자료로 분석했으며 러시아신경제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끌었다. 2021년 나탈리야 나우멘코, 낸시 치안과 함께한 연구는 1932~1933년 기근에서 우크라이나인의 높은 사망률이 식량 생산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민족적 편향이 반영된 조달 정책과 이동 제한이 사망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 작업은 대규모 지역 자료를 통해 기근의 경제적 메커니즘과 국가 정책의 책임을 함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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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1999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학생
  • 2002러시아과학아카데미 러시아사연구소 역사학 박사(칸디다트)
  • 2005–2007워릭대학교 경제학부 박사후연구원
  • 2011응용경제학 국가상 수상
  • 2012–러시아신경제학교 교수 및 제도경제학과장
  • 2021–Economic Journal 부편집인

안드레이 발레리예비치 수시코프

Андрей Валерьевич Сушк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75–

스탈린 말기 '레닌그라드 사건'의 원인을 지도부의 부패에서 찾은 역사가

안드레이 수시코프는 소련 시기 당·국가 권력체계와 지역 노멘클라투라의 통치 실천을 연구해 온 러시아 역사가다. 우랄 연방관구 기록보존소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문서고에서 발굴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된 동인이 엘리트 간 권력투쟁만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지도부의 만연한 부패와 공적 자원의 사적 유용이었다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 2018년 저서 『'레닌그라드 사건': '혁명의 요람'에 대한 총숙청』은 이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다룬 연구로 평가받으며, 전후 스탈린주의 정치사 연구의 주요 논쟁점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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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1998니즈니타길 국립사범대학 역사학부 학생
  • 1998–2001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박사과정
  • 2003역사학 후보자 학위 취득 (논문: 1957~1964년 소련공산당 중앙위 간부회 구성)
  • 2003–2004니즈니타길 국립사회사범아카데미 전임강사
  • 2004–2006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연구원
  • 2007–현재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안드레이 세라피모비치 그라초프

Андрей Серафимович Грачёв
연구자 소련 러시아 1941– ○ 활동 중

개혁의 붕괴를 기록한 권력 내부의 목격자

그는 자신의 임무를 두고 "소비에트 국가의 역사를 하루 연장했다"고 회고했다.

안드레이 그라초프는 동방학을 전공한 국제문제 전문가이자 기자로, 소비에트 개혁의 국제적 의미와 내부 정치에 관여했다. 그는 1991년 8월 쿠데타 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보좌관 겸 마지막 대통령 공보비서가 되어, 연방을 보존하려는 협상과 국가기구의 해체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의 회고록과 공개한 개인 문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민주화 약속이 연방 붕괴의 가속과 맞물린 긴장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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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1966소련 청년단체위원회 참사관
  • 1966–1973부다페스트 《세계의 청년》 편집부 소련 대표
  • 1973소련 청년단체위원회 제1부위원장
  • 1973–1978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참사관
  • 1978–1989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정치선전부
  • 1989–1991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차장
  • 1991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좌관 겸 공보비서
  • 1992–현재기자·정치평론가·저술가

알렉산드르 블라들레노비치 슈빈

Александр Владленович Шубин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65– ○ 생존

소련 해체를 권력투쟁으로 읽은 역사가

그는 소련 해체를 ‘반노멘클라투라 혁명’이 아니라 노멘클라투라의 불일치와 일관성 상실의 결과로 설명했다.

알렉산드르 슈빈은 러시아의 역사가이자 좌파 사회운동에 참여한 공공 지식인으로, 사회주의 사상과 혁명, 소련 사회의 역사를 연구해 왔다. 그의 대표작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놓친 가능성과 비공식 운동, 소련의 정치투쟁을 함께 분석하며 체제의 변화가 자동적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었음을 묻는다. 그는 소련 해체를 구조적 필연이라기보다 일관성을 잃은 지배 엘리트 내부의 권력투쟁과 정치적 선택이 빚은 결과로 해석해, 1980년대 말의 개혁과 당내 갈등을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에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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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1989모스크바 국립 레닌 교육대학 학생
  • 1985–1991사회주의 운동과 비공식 정치클럽 활동
  • 1989–1992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사연구소 대학원생
  • 1992–2001세계사연구소 연구원
  • 2001–2015세계사연구소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사 센터장
  • 2003–국립 인문대학 교수
  • 2007–2015세계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2015–세계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알렉세이 바실리예비치 사프로노프

Алексей Васильевич Сафрон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현재 ○ 생존

소련 경제를 개혁의 가능성과 한계로 읽는 역사가

알렉세이 사프로노프는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역사가로, 소련 경제의 전 시기를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그는 코시긴 개혁을 자유화와 컴퓨터화의 단순한 대립으로 보지 않고, 경제·수학적 방법과 물질적 유인을 결합하려 한 계획경제 개혁으로 해석한다. 그의 분석은 1965년 개혁의 구상이 당대의 통념보다 보수적이었으며, 실행의 불철저함이 성과와 한계를 함께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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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민경제·행정 아카데미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 2025『코시긴 개혁: 구상에서 축소까지』 발표
  • 2025『대소련 경제: 1917~1991』 저술
  • 2020소련 계획경제의 관리 컴퓨터화 연구 발표
  • 현재소련 경제사 및 개혁 논쟁 연구

앙리 루소

Henry Rousso
연구자 프랑스 프랑스계 1954– ○ 생존

비시와 전쟁 기억의 역사를 다시 쓴 역사가

앙리 루소는 제2차 세계대전기 프랑스와 비시 체제, 그리고 그 기억의 변화를 연구한 프랑스 역사가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대계 가정이 수에즈 위기 뒤 프랑스로 이주한 경험은 그의 역사적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작 《비시 증후군》은 해방 이후 프랑스 사회가 협력과 책임을 망각하거나 재구성해 온 과정을 분석했으며, 그는 레지스탕스의 규모와 국민적 단결을 과장하는 기억의 신화를 ‘레지스탕시알리슴’이라 불렀다. 그의 작업은 역사적 사실과 집단기억, 현재의 정치적 사용을 구별하면서도 서로의 관계를 추적하는 현대사 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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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1979생클루 고등사범학교 학생
  • 1977역사학 아그레가시옹 취득
  • 1981–현재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자
  • 1988–1990파리 정치대학 강사
  • 1994–2005현대사연구소 소장
  • 2001–2010파리 낭테르대학교 교수
  • 2019–현재테러 역사 국립박물관 설립준비위원회 위원장

앙헬 비냐스

Ángel Viñas
연구자 스페인 스페인 1941–

프랑코 정권의 신화를 문서고 증거로 무너뜨린 스페인 내전사가

보수나 신프랑코주의 역사가 중에 증거를 조작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그들이 파는 것은 뻔뻔한 거짓말이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정권에 관한 연구에서 문서고 실증으로 프랑코주의 역사 서사를 체계적으로 허물어 온 역사가이자 경제학자, 외교관이다. 대학원 시절 본에서 나치 독일의 프랑코 지원을 파헤친 것을 시작으로, 「모스크바의 금」 신화의 실체를 밝혔고 4부작 『공화국』 연작에서 무기 금수와 국제 외교가 전쟁의 승패를 어떻게 갈랐는지를 입증했다. 2011년 왕립역사아카데미가 프랑코를 독재자로도 적시하지 않은 『스페인 인명사전』을 내자 30여 명의 역사학자들을 규합해 976쪽의 대항 사전 『역사를 위한 싸움』(2012)을 출간했으며, 이는 스페인 '역사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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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국가 기술상무관 및 경제전문가단 입단, 수석 합격
  • 1971–1973주본 스페인 대사관 상무참사관
  • 1974『나치 독일과 7월 18일』 출간, 박사학위
  • 1976『스페인 내전의 금』 출간, '모스크바의 금' 신화 해부
  • 1982콤플루텐세 대학 응용경제학 교수, 외무장관 고문
  • 1986–2005EU 집행위원회 아시아·라틴아메리카 국장 등 역임, UN 주재 EU 대사
  • 2006–20094부작 『공화국』 연작: 『고독』 『방패』 『명예』 『붕괴』
  • 2012왕립역사아카데미 인명사전에 맞서 『역사를 위한 싸움』 편집

애덤 히긴보섬

Adam Higginbotham
연구자 영국 영국계 1968– ○ 생존

재난의 구조를 추적한 저널리스트

그의 체르노빌 서사는 폭발의 순간보다 그것을 둘러싼 설계와 침묵의 구조를 추적한다.

애덤 히긴보섬은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로, 잡지 편집과 국제 취재를 거쳐 역사적 재난을 서사적으로 복원해 왔다. 그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한밤중」은 1986년 원자로 사고를 기술적 실패에만 가두지 않고 설계, 관료제, 비밀주의, 현장 노동자와 주민의 경험이 얽힌 사건으로 재구성했다. 이 책은 체르노빌을 다룬 2018~2019년 영어권 역사서 흐름을 대표하며, 참사 이후 진실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긴장을 널리 알렸다. 이후 그는 챌린저 우주왕복선 참사를 다룬 책으로 재난의 역사화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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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1999「더 페이스」 편집장
  • 1990년대–2000년대「선데이 텔레그래프 매거진」 미국 특파원
  • 2000년대–현재「뉴요커」, 「와이어드」, 「뉴욕 타임스 매거진」 기고 작가
  • 2019「체르노빌의 한밤중」 출간
  • 2020앤드루 카네기 논픽션상 및 윌리엄 E. 콜비상 수상
  • 2024「챌린저」 출간

앤 애플바움

Anne Applebaum
연구자 미국 미국계 1964– ○ 생존

소련과 동유럽의 기억을 추적한 역사가

제20차 당대회의 탈스탈린화는 “두 걸음 전진한 뒤 한 걸음 물러선” 과정이었다.

앤 애플바움은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권위주의, 시민사회를 연구해 온 미국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굴라크』는 수용소 체계를 혁명기부터 해체기까지 архив 자료와 증언으로 재구성해 2004년 퓰리처 일반 논픽션상을 받았다. 『철의 장막』과 『붉은 기근』에서는 전후 동유럽의 소비에트화와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다루며, 제20차 당대회의 탈스탈린화가 해방과 통제의 재편을 동시에 낳았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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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6예일대학교 역사·문학 학사
  • 1987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 1988–1991『이코노미스트』 바르샤바 특파원 및 동유럽 담당 기자
  • 1992–1996『스펙테이터』 외교·부편집장, 이후 『이브닝 스탠더드』 정치 편집자
  • 2002–2006『워싱턴 포스트』 편집위원
  • 2003–2004『굴라크』 출간, 퓰리처 일반 논픽션상 수상
  • 2011–2016레가툼 연구소 전환 포럼 창립·운영
  • 2020–현재『애틀랜틱』 스태프 작가, 존스홉킨스대 SNF 아고라 연구소 선임연구원

야아코브 로이

יעקב רועי
연구자 이스라엘 이스라엘 1932– ○ 명예교수

소련 사회와 유대인의 역사를 잇댄 역사가

그는 전쟁의 장기적 국내 영향이 국제적 파장보다 훨씬 광범위했다고 분석했다.

야아코브 로이는 소련의 유대인, 이슬람, 중동 정책과 소비에트 사회를 연구한 이스라엘 역사가다. 그는 문서 연구와 사회조사를 결합해 국가 정책이 민족 공동체와 대중의 정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출혈하는 상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국내적 비용과 유산을 분석하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주민의 태도 차이를 통해 전쟁과 소련 붕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 실증 자료를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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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 학사
  • 1960–1965바이츠만 기록보관소 연구원
  • 1972–1974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강사
  • 1977–1982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센터 소장
  • 1982–1990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부교수
  • 1990–2003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정교수
  • 2001–2002컴밍스센터 소장
  • 2003–텔아비브대학교 명예교수

얀 파우어

Jan Pauer
연구자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950–

탱크와 기억의 전쟁 사이에서 프라하의 봄을 해석한 역사가

그 나라의 점령, 1968년 8월의 믿기 어려운 그 연대의 경험, 그것은 누구나 겪을 수 없는 아주 드문 역사적 순간들에 속하고, 그것을 경험한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얀 파우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목격하고 이듬해 서독으로 이주한 체코 출신 역사가다. 1995년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다룬 표준적 저작 『프라하 1968』을 출간했으며, 브레멘대학 동유럽연구소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현대사를 연구했다. 2011년 ENRS 기고문에서 그는 침공이 '시민사회 반대운동의 시작이자 개혁공산주의의 역사적 종말'이었다고 평가하며,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탱크와 탈냉전기 체코의 기억 정치에 의해 두 번 묻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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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서독으로 이주
  • 1990–1993체코 정부의 1967~1971년 역사연구위원회 위원
  • 1993–브레멘대학 동유럽연구소 연구원
  • 1995『프라하 1968: 바르샤바조약군의 진입』 출간
  • 2017『자율성을 위한 투쟁: 중동부 유럽의 반체제 담론』 공동 편집

에드바르트 스타니슬라보비치 라진스키

Эдвард Станиславович Радзинский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 1936– ○ 생존

기록과 극작으로 러시아의 비극을 재구성한 대중 역사가

에드바르트 라진스키는 러시아의 역사와 비극적 인물을 대중에게 전달한 역사가이자 극작가, 방송인이다. 모스크바 역사기록보관소에서 훈련받은 그는 연극으로 경력을 시작한 뒤 니콜라이 2세, 라스푸틴, 스탈린 등의 전기를 썼다. 1997년 스탈린 전기에서 새로 공개된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베리야가 스탈린을 독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이 주장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사망 원인을 둘러싼 논쟁의 한 해석으로 남아 있다. 그의 서사적이고 심리적인 역사 서술은 널리 읽혔지만, 사료의 출처와 해석을 둘러싸고 전문 역사가들의 비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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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모스크바 역사기록보관소 졸업
  • 1958–극작가로 활동 시작, 「내 꿈… 인도」 초연
  • 1960년대–「사랑에 관한 104쪽」 등 희곡 발표
  • 1976–러시아 역사 인물에 관한 역사서 집필
  • 1993「마지막 차르」 출간
  • 1997「스탈린」 출간, 비공개 기록과 증언으로 사망 논쟁 제기
  • 1990년대–「역사의 수수께끼」 방송 진행

에드워드 W. 워커

Edward W. Walker
연구자 미국 미국인 1955–현재 ○ 현역 연구자

소련 해체를 연방제의 역설로 분석한 정치학자

에드워드 W. 워커는 미국의 정치학자로 소련과 탈소련 공간의 민족정치, 연방제, 분리주의를 연구했다. 그는 버클리에서 소련·유라시아 연구 프로그램을 이끌며 공산주의 체제와 탈공산주의 정치의 연결을 분석했다. 대표작 Dissolution은 소비에트 연방제가 민족공화국을 통합하는 동시에 주권의 언어와 제도를 제공했으며, 중앙 통제가 약화되자 그 틀이 분리를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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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하버드대학교 학사
  • 1986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석사
  • 1992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97『소수자, 물라, 근대성』 편집
  • 1998–1999후버연구소 내셔널 펠로
  • 2003『해체: 주권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출간
  • 2000s–2017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정치학과 부교수 겸 유라시아·동유럽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

에이미 나이트

Amy Knight
연구자 미국 미국 1946–

베리야 전기로 스탈린의 집행자가 의외의 개혁가였다는 역설을 밝혀낸 미국 역사학자

《뉴욕 타임스》는 나이트를 두고 "서구 최고의 KGB 학자"라고 평했다.

에이미 나이트는 소련과 러시아를 연구하는 미국 역사학자로, 《뉴욕 타임스》로부터 "서구 최고의 KGB 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 저서 《베리야: 스탈린의 제1부관》은 영어권 최초의 본격적인 라브렌티 베리야 학술 전기로, 새로 개방된 소련 기록보관소 자료를 활용해 가학적 비밀경찰 우두머리라는 캐리커처 너머의 복합적 인물을 드러냈다: 스탈린 사후 권력 공백 속에서 흐루쇼프에게 제거되기 전까지 소련 체제의 자유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라는 역설이다. 나이트의 작업은 키로프 암살 사건부터 푸틴 시대의 정치적 살인까지 아우르지만, 굴라그의 설계자가 잠시나마 개혁의 목소리를 냈다는 베리야 역설이 그녀의 결정적 학문적 기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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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런던정치경제대학(LSE)에서 러시아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 1977–1995미국 의회도서관 소련·러시아 전문 분석관
  • 1993《Beria: Stalin's First Lieutenant》 출간
  • 1993–1994우드로 윌슨 국제학술센터 펠로
  • 2017《Orders to Kill: The Putin Regime and Political Murder》 출간
  • 2024《The Kremlin's Noose》 출간

예로님 페로비치

Jeronim Perović
연구자 스위스 유고슬라비아계 1971–

티토-스탈린 결별의 공산권 문서 증거로 기존 통념을 뒤집은 스위스 역사학자

페로비치는 새로 개방된 동구권 문서에서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문제)이 1948년 모스크바와의 결별을 촉발했으며,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은 사후 정당화된 신화였음을 입증했다.

스위스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취리히 대학교 동유럽사 교수 겸 동유럽학 센터(CEES) 소장이다. 2007년 《냉전연구》에 발표한 「티토-스탈린 결별: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본 재평가」에서, 기존의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병합 시도)이 분열의 실질적 원인이었음을 구소련권 문서로 입증했다. 북캅카스사, 소련 에너지 외교사 등에서도 주목할 저작을 남겼으며, 『코카서스 분석 다이제스트』 등 온라인 학술지를 창간·편집하며 동유럽 연구의 대중적 확산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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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1997취리히 대학교에서 역사·정치학·러시아 문학 수학
  • 2001취리히 대학교 박사 학위 취득 (러시아 지역주의 연구)
  • 1997–2005ETH 취리히 안보연구센터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 2008–2011바젤 대학교 역사학과 연구원
  • 2011–현재취리히 대학교 동유럽사 교수
  • 2014취리히 대학교 교수 자격 취득 (북캅카스사 연구)
  • 2017취리히 대학교 동유럽학 센터(CEES) 설립·소장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 안드레예프

Евгений Михайлович Андрее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44–현재 ○ 생존

사망률과 기대수명을 해부한 수리 인구학자

1987년 남성 기대수명이 3.2년 늘어 65세에 이르렀다는 계산은 정책 논쟁을 사망률의 언어로 바꾸었다.

예브게니 안드레예프는 수학적 엄밀성과 통계 실무를 결합해 러시아와 소련의 사망률을 연구한 인구학자다. 그의 기대수명 분해 방법은 연령과 사망 원인이 수명 변화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는 표준 도구가 되었고, 1980년대 후반 남성 기대수명 반등을 3.2년, 65세까지로 산출한 작업은 금주 정책의 건강 효과를 평가하는 핵심 근거가 되었다. 그는 알코올 관련 사망률을 장기 자료와 방법론의 문제로 다루며, 정책 효과를 단순한 서사로 환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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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수학 전공 졸업
  • 1970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물리·수학 박사 취득
  • 1970–1975소련 국가통계위원회 인구학 부문 선임연구원
  • 1975–2000국가통계 연구기관 인구정보 연구실장
  • 2000–2005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국민경제예측연구소 사망률 분석·예측 연구실장
  • 2005–2011막스플랑크 인구학연구소 연구원
  • 2017–현재국립연구대학교 고등경제대학 국제인구·보건연구실장
연구자 영국 영국 1959– ○ 현존

혁명의 사회사와 인간 경험을 엮은 역사학자

그는 혁명을 추상적 사회 세력의 행진이 아니라 복잡한 개인들의 비극으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

오를란도 파이지스는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사회를 사회사와 개인의 경험을 함께 엮어 해석한 영국 역사학자다. 대표작 『인민의 비극』은 1891년부터 1924년까지를 다루며 1917년의 우연성과 대중의 행위, 볼셰비키 권력의 형성을 하나의 서사로 묶었다. 그의 해석은 수정주의적 사회사와 전체주의 학파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평가되지만, 혁명과 폭력의 관계를 비관적으로 읽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속삭이는 자들』에서는 구술 증언과 가족 기록으로 스탈린 시대의 사적 삶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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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런던 출생
  • 1982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 졸업
  • 1987케임브리지대학교 박사 취득
  • 1989『농민 러시아, 내전』 출간
  • 1996『인민의 비극』 출간
  • 1999버크벡 런던대학교 역사학 교수
  • 2007『속삭이는 자들』 출간
  • 2022버크벡 명예교수로 은퇴

올레크 비탈리예비치 흘레브뉴크

Олег Витальевич Хлевнюк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계 1959– ○ 생존

스탈린 시대를 문서로 해부한 역사학자

올레크 흘레브뉴크는 소련 스탈린 시대의 정치사와 굴라크를 연구한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기록문서 편집자다. 국가기록원 자료와 당·정부 문서를 바탕으로 대숙청을 지역의 자발적 폭발이 아니라 중앙의 결정과 집행 체계가 작동한 사건으로 해명했다. 그의 연구는 스탈린의 지시와 통제가 테러의 방향과 규모를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문서가 남기지 않는 동기와 과정을 신중하게 구분한다. 그는 학술서와 사료집을 통해 러시아 사회의 스탈린 신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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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빈니차 국립교육대 역사학과 졸업
  • 1985–1987소련사연구소 대학원 및 역사학 박사 취득
  • 1990년대–현재러시아 국가기록원 문서 연구·편찬
  • 1997정치국의 권력 메커니즘 연구로 역사학 박사 취득
  • 2011–2017모스크바 국립대 20~21세기 러시아사 교수
  • 2014–현재고등경제대 역사학 교수 및 연구자
  • 2015『스탈린: 한 지도자의 생애』 출간
  • 2023『사기꾼 기업』으로 계몽자상 수상

윌리엄 체이스 토브먼

William Chase Taubman
연구자 미국 미국 1941– ○ 생존

소련 현대사를 해석한 전기 작가

윌리엄 토브먼은 소련 정치와 냉전사를 연구한 미국 정치학자이자 역사가다. 그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삶과 시대를 장기간 연구해 2003년 전기를 출간했고, 이 책은 2004년 퓰리처 전기상을 받았다. 그의 작업은 흐루쇼프를 스탈린주의의 계승자이자 비판자로 함께 다루며, 제20차 당대회 비밀연설을 개인의 성격과 제도적 맥락 속에 놓는다. 또한 고르바초프와 스탈린의 대미 정책을 다룬 저서를 통해 소련 지도부와 국제정치의 관계를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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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2하버드대학교 학사
  • 1965컬럼비아대학교 석사 및 러시아연구소 수료
  • 1969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82『스탈린의 대미 정책』 출간
  • 2003『흐루쇼프: 인간과 시대』 출간
  • 2004『흐루쇼프』로 퓰리처 전기상 수상
  • 2009미국 슬라브·동유럽 연구 학회 회장
  • 2017『고르바초프: 그의 삶과 시대』 출간
연구자 미국 미국 1945–

한국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물'로 해석한 미국의 탈수정주의 외교사학자

"여러모로 한국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의 드레스 리허설이었다. 우리는 그 세 번째 세계대전을 피했기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매우 중요한 사건에 관여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외교사학자로, 한국전쟁을 국제적 시각에서 재구성한 대표적인 탈수정주의 연구자다. 1995년 『한국전쟁: 국제사』에서 이 전쟁이 시기와 경과, 결과 면에서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물로 기능했다고 주장했으며,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적 해석에 맞서 한국전쟁을 냉전의 국제정치적 맥락 속에 재배치했다. 그루지야대학교에서 30년 넘게 재직하며 한국전쟁 연구의 외교사적 패러다임을 정립했고, 이 전쟁을 '잊힌 전쟁'에서 냉전사의 중심 무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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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브라운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81『대결로 가는 길: 중국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 출간
  • 1982–2012그루지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퇴임 시 석좌연구교수
  • 1995한국외국어대학교 풀브라이트 석좌교수
  • 1995『한국전쟁: 국제사』(프린스턴대학출판부) 출간
  • 2002『한국전쟁 다시 생각하기: 새로운 외교·전략사』 출간

유리 마르코비치 골란드

Юрий Маркович Голанд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43– ○ 현재 생존

네프 연구로 출발해 코시긴 개혁 논쟁의 프레임을 만든 경제학자

개혁은 좌초되었고, 국가는 정체기에 접어들었으며, 이 정체가 궁극적으로 소련 사회주의 경제의 종말을 예고했다.

유리 골란드는 소련 신경제정책(NEP)과 화폐개혁 연구로 출발한 러시아 경제학자다. 모스크바국립대 물리학부를 졸업한 후 오랫동안 물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다 1990년대 경제학으로 전환, 네프와 관련한 논쟁사를 복원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2010년 알렉산드르 네키펠로프와 함께 발표한 논문 「코시긴 개혁: 놓친 기회인가 신기루인가」는 이 개혁을 둘러싼 탈소비에트 역사학 논쟁의 핵심 질문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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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모스크바국립대 물리학부 졸업
  • 1967–1995소련/러시아 과학원 물리문제연구소 연구원
  • 1991『네프를 파괴한 위기들』 출간
  • 1995–2002러시아 산업가·기업가연합 전문가연구소
  • 2002–2005러시아 과학원 국제경제·정치연구소
  • 2005–러시아 과학원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 2006『1921~1924년 화폐개혁기 경제정책 논쟁』 출간
  • 2010네키펠로프와 「코시긴 개혁: 놓친 기회인가 신기루인가」 발표

유리 미하일로비치 킬린

Юрий Михайлович Килин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61– ○ 생존

겨울전쟁 사상자 기록을 다시 계산한 역사학자

유리 킬린은 카렐리야와 소련의 대외·군사정책을 연구해 온 페트로자보츠크의 역사학자다. 그는 겨울전쟁에서 국가가 남긴 손실 기록을 비판적으로 대조하는 연구를 이끌었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업은 전사자 집계 문제를 다시 공론화했다. 2012년 그가 제시한 소련군 전사자 13만 8,533명은 이 전쟁의 인명 손실을 둘러싼 주요 수정안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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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카렐리야에서 출생
  • 1983페트로자보츠크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졸업
  • 1983–1986중등학교 역사 교사
  • 1986–1989소련 역사연구소 레닌그라드 분소 대학원생
  • 1989–1992소련 과학아카데미 카렐리야 분소 연구원
  • 1992–현재페트로자보츠크 국립대학교 교수
  • 2000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2006–2009겨울전쟁 붉은군대 손실 기록 수정 사업 주도

이고르 니콜라예비치 그랴진

Igor Nikolayevich Gräzin
연구자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인 1952–

법의 언어로 소련의 공식 서사를 흔든 에스토니아 법학자

야코블레프 위원회에서 그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법적으로 무효였다고 주장했다.

이고르 그랴진은 에스토니아의 법학자이자 정치가로, 법철학과 법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1989년 소련 인민대회에 진출한 그는 야코블레프 위원회에서 비밀 의정서와 발트 국가 병합의 법적 의미를 검토한 에스토니아 측 법률가였다. 그의 활동은 학술적 법률 논증을 소비에트 해체기의 주권과 역사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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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타르투에서 출생
  • 1975타르투 국립대학교 법학부 졸업
  • 1979–1987소련 국가·법 연구기관에서 법학 연구와 박사학위 취득
  • 1988–1989에스토니아 과학아카데미 철학·사회학·법학 연구소 법률부문 책임자
  • 1989–1991소련 인민대회 대의원, 야코블레프 위원회 위원
  • 1990–2000미국 노터데임대학교 법학 교수·연구자
  • 2005–2018에스토니아 리기코구 의원
  • 2018–2019유럽의회 의원

이반 요토프 크라스테프

Иван Йотов Кръстев
연구자 불가리아 불가리아 1965–

'서구 되기' 강요가 동유럽 일리버럴 반발을 낳았다고 분석한 불가리아 정치사상가

중동부 유럽의 권위주의적 쇼비니즘의 뿌리는 정치이론이 아니라 정치심리학에 있다, 1989년 이후 '모방 명령'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 말이다.

불가리아의 정치학자이자 소피아 자유전략센터 이사장. 1989년 이후 동유럽 정치를 '모방의 시대'로 규정하고, 서구를 따라야 한다는 탈냉전의 명령이 오히려 민족주의적 반발과 일리버럴 전환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스티븐 홈스와 함께 쓴 『빛의 실패』(2019)는 이 '모방 명령' 논제를 정치심리학으로 전개하여, 동유럽 포퓰리즘의 뿌리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적 굴욕감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외교협의회 창립 이사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탈공산주의 30년의 유산 논쟁에서 독창적 분석 틀을 제공한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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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불가리아 루코비트 출생
  • 1990년대소피아 자유전략센터(CLS) 설립·이사장
  • 2004–2006국제발칸위원회 사무총장
  • 2005–2011《포린 폴리시》 불가리아판 편집장
  • 2007유럽외교협의회(ECFR) 창립 이사
  • 2013『불신을 믿으며: 지도자를 믿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TED Books)
  • 2019스티븐 홈스와 『빛의 실패: 하나의 계산』 출간, 라이어널 겔버상 수상
  • 2020장 아메리 유럽 에세이상 수상, 『내일은 아직인가?』 출간

제니퍼 프로스트

Jennifer Frost
연구자 미국 미국 현재

우주 경쟁의 기준을 다시 묻는 미국사 연구자

“우주비행 능력으로 우주 경쟁을 정의한다면, 소련이 압도적으로 이겼다.”

제니퍼 프로스트는 미국의 여성사와 정치·문화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며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녀는 민권운동과 신좌파, 할리우드 정치, 역사교육을 다룬 저술을 통해 사회운동과 대중문화를 미국사의 핵심 자료로 읽어 왔다. 2019년 우주 경쟁 50주년 논평에서는 달 착륙이라는 단일 기준과 우주비행 능력 전반을 구분해, 소련의 연속된 선행 성과와 미국의 달 착륙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비교는 경쟁을 국가적 승패만이 아니라 군사적 맥락과 이후의 협력,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한 역사적 과정으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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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저서 《빈민의 인종연합 운동》 출간
  • 2011저서 《헤다 호퍼의 할리우드》 출간
  • 2018오클랜드대학교 역사학 부교수
  • 2019우주 경쟁의 승패를 우주비행 능력의 범위로 재평가하는 논평 발표
  • 현재오클랜드대학교 미국사 연구·교육

제이 바타차리아

Jayanta Bhattacharya
연구자 미국인 인도계 1968–현재 ○ 활동 중

건강정책의 인과관계를 추적한 보건경제학자

그의 연구는 러시아 사망률 위기의 원인을 체제 이행에서 운동의 종결로 다시 물었다.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된 의사이자 보건경제학자로, 의학적 증거와 공공정책·인구 건강의 관계를 연구했다. 정부 프로그램과 경제 조건, 의생명 혁신이 건강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분석했다. 2013년 고르바초프 반알코올 운동 연구에서는 자본주의 이행만이 아니라 운동의 종결이 1990년대 초 러시아 사망률 위기의 큰 몫을 설명한다고 주장해 탈소비에트 평가의 쟁점을 바꾸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방역 제한과 과학 권위를 둘러싼 논쟁적 공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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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인도 캘커타 출생
  • 1990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 학사·석사
  • 1997스탠퍼드대학교 의학박사
  • 2000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 1998–2001RAND 경제학자, UCLA 방문 조교수
  • 2001–2025스탠퍼드대학교 의학·경제학 교수
  • 2013「고르바초프 반알코올 운동과 러시아 사망률 위기」 공동 저자
  • 2025–현재미국 국립보건원장

제임스 하인젠

James Heinzen
연구자 미국 미국인 20세기–현재 ○ 생존

소비에트 농촌 국가를 해부한 역사가

제임스 하인젠은 현대 러시아와 소비에트 사회의 정치·사회·문화사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다. 그의 대표작은 농업인민위원부를 중심으로 1917년 혁명 뒤 국가가 농촌을 변혁하려 한 과정을 추적한 『소비에트 농촌 만들기』다. 그는 농촌의 후진성을 극복하려는 국가 기획과 사회주의 건설의 목표가 충돌하는 지점을, 관료제와 농민의 선택 및 갈등을 통해 분석했다. 이후에는 스탈린 시대의 뇌물과 일상적 부패를 연구해 국가 정책과 사회적 실천 사이의 긴장을 넓혀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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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s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러시아사 연구
  • 1980s–1990s예일대학교·프린스턴대학교에서 근대 러시아사 강의
  • 2004『소비에트 농촌 만들기』 출간
  • 2010s스탈린 시대 뇌물과 부패 연구
  • 2016『뇌물의 기술』 출간
  • 현재로언대학교 역사학 교수

조너선 브렌트

Jonathan Brent
연구자 미국 미국 1949–

스탈린의 마지막 음모를 기록한 미국의 역사가이자 출판인

「'굴라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20세기 최대의 재앙이다.」

미국 출판인·역사가로, 1991년 예일대 출판부에서 냉전 후 공개된 소련 아카이브 자료를 서방에 선보인 『공산주의 연대기』 시리즈를 창설했다. 2003년 블라디미르 나우모프와 공저한 『스탈린의 마지막 범죄』는 이전까지 폐쇄됐던 KGB 및 대통령 문서고 자료를 바탕으로 의사들의 음모 사건을 전면 재구성했으며, 스탈린이 유대인 인구의 대규모 강제 이주와 새로운 대숙청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논제를 제시했다. 2009년부터 YIVO 유대인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동유럽 유대인 문서유산 보존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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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1991노스웨스턴 대학 출판부 편집장 겸 국장
  • 1981문예지 《Formations》 창간
  • 1991–2009예일대 출판부 편집국장 겸 부국장, 『공산주의 연대기』 시리즈 창설
  • 2003『스탈린의 마지막 범죄』 출간
  • 2004–바드 칼리지 역사·문학 객원교수
  • 2008『스탈린 아카이브의 내부』 출간
  • 2009–YIVO 유대인 연구소 소장 겸 CEO

존 루이스 개디스

John Lewis Gaddis
연구자 미국 미국인 1941–

냉전사 후기수정주의를 창시하고 소련 기록공개 이후 정통주의로 회귀한 역사가

인과의 사슬을 최종적으로 고정시킨 것은 자신의 권위주의적·편집증적·자기애적 성향에 예측 가능하게 반응한 스탈린이었다.

미국의 냉전사가로, 1972년 첫 저서로 후기수정주의 학파를 창시했다. 냉전의 책임이 양측에 있다는 틀을 세웠으나, 소련 붕괴 후 기록보관소가 열리자 1997년 『우리는 이제 안다』에서 스탈린이 냉전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정통주의로 회귀했다. 조지 F. 케넌의 공식 전기로 201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예일대 교수로 『뉴욕타임스』로부터 '냉전사가들의 학장'이라 불렸다. 그의 궤적은 냉전사 서술이 증거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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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에서 학사 학위 취득
  • 1968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에서 박사 학위 취득
  • 1969–1997오하이오대학교 교수 (1983년 석좌교수)
  • 1972『미국과 냉전의 기원, 1941–1947』 출간: 후기수정주의 학파 창시
  • 1987오하이오대학교 현대사연구소 설립
  • 1991윌슨센터 냉전국제사프로젝트 설립 참여
  • 1997–현재예일대학교 로버트 A. 러벳 군사·해군사 석좌교수
  • 2012『조지 F. 케넌: 미국적 삶』으로 퓰리처상 전기 부문 수상

줄리언 잭슨

Julian Jackson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54– ○ 생존

프랑스 현대사의 정치적 갈등을 해명한 역사가

줄리언 잭슨은 20세기 프랑스사를 중심으로 연구한 영국 역사가로, 프랑스 대공황과 인민전선에서 점령과 드골주의까지 정치적 선택의 조건과 결과를 추적했다. 『프랑스 인민전선』은 개혁과 재무장, 민주주의 방어와 대중운동의 관계를 정치·사회·문화의 차원에서 분석해 이 시기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1940년 프랑스의 패배와 독일 점령, 전후 동성애 정치, 1968년 5월을 다루며 현대 프랑스사의 범위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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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영국에서 출생
  • 1982케임브리지 대학교 박사 취득
  • 1985『프랑스 대공황의 정치』 출간
  • 1988『프랑스 인민전선』 출간
  • 2001『프랑스: 암흑의 시대』 출간
  • 2003퀸메리 런던대학교 역사학과 합류
  • 2018드골 전기로 더프 쿠퍼상 수상
  • 2023페탱 연구서로 더프 쿠퍼상 수상

처버 벡시

Békés Csaba
연구자 헝가리 헝가리인 1957– ○ 현역 연구자

1956년을 냉전 국제정치 속에서 해석한 역사가

그의 연구에서 1956년 혁명은 냉전을 끝낸 돌파구가 아니라 냉전의 교착을 굳힌 세계정치의 사건이었다.

벡시 처버는 헝가리 현대사와 냉전 국제정치를 연구한 역사가로, 1956년 혁명을 국내 사건에 가두지 않고 세계정치의 교차점에서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혁명이 냉전의 균형을 무너뜨렸다기보다 그 교착을 굳히는 국제적 조건과 선택을 추적한다. 그는 문서 편찬과 다중 기록보관소 연구를 통해 헝가리의 경험을 동유럽 사회주의권과 세계 냉전사의 연결 속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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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1983세게드 요제프 아틸라 대학교에서 역사·영어 전공
  • 1993『1956년 헝가리 혁명이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서 차지한 자리』 편집
  • 1996『1956년 헝가리 혁명과 세계정치』 출간
  • 1998–부다페스트 냉전사 연구센터 창립 이사
  • 2002『1956년 헝가리 혁명: 문서로 보는 역사』 공동 편집
  • 2014헝가리 과학아카데미 박사 학위 취득
  • 2022『헝가리의 냉전』 출간
  • 2022헝가리 과학아카데미 아카데미상 수상

케이트 브라운

Kate Brown
연구자 미국 미국 1965–

체르노빌의 은폐된 사망자를 추적한 환경사학자

“저선량 피폭에 대한 무지는, 내가 주장해왔듯이, 부분적으로는 의도된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벨라루스의 기록보관소를 10년간 뒤져 핵 경관 연구를 다시 쓴 MIT의 과학·환경사학자. 『플루토피아』(2013)로 핸퍼드와 마야크의 플루토늄 재앙을 폭로해 러시아·미국·환경사 분야 최고상을 휩쓸었고,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 최종후보작 『생존 매뉴얼』(2019)에서는 IAEA와 체르노빌 포럼이 오염 식품을 통한 내부피폭 경로를 배제해 수만 명의 사망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 비판은 국제적 합의에 대한 중심적 역사학적 도전이 되었으며, 냉전기 핵 기관들이 저선량 방사선의 과학 자체를 형성해왔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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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메릴랜드대 볼티모어카운티 캠퍼스(UMBC) 교수 부임
  • 2004『장소 없는 전기』 출간, 미국역사학회 조지 루이스 비어상 수상
  • 2013『플루토피아』 출간, 러시아·미국·환경사 분야 최고 학술상 석권
  • 2015『디스토피아에서 온 소식』 출간, 구겐하임·카네기 펠로십 수상
  • 2018MIT 과학기술사회학과 교수 부임
  • 2019『생존 매뉴얼』 출간,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상 최종후보 및 ASEEES 젤닉상·슐먼상 수상
  • 2026『어디에나 작은 정원』 출간

크리스틴 고드시

Kristen Ghodsee
연구자 미국 미국계 푸에르토리코·페르시아계 1970–

1989년 이후 삶의 사회적 비용을 추적한 민족지학자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동유럽을 여행한 경험은 그녀가 체제전환의 희망과 비용을 함께 연구하게 한 전환점이었다.

크리스틴 고드시는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동유럽 연구자로, 사회주의와 체제전환이 평범한 사람들, 특히 여성의 삶에 남긴 흔적을 민족지학으로 연구했다. 불가리아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사회주의의 성과와 체제전환기의 상실을 함께 살피며, 반공 승리 서사가 지워 온 물질적 경험을 복원했다. 미첼 오렌스타인과 함께 쓴 『충격의 재고』는 1989년 혁명 이후 동유럽의 경제·사회 지표를 비교해 전환의 이익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었음을 분석했다. 그의 작업은 사회주의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전환의 결과를 경험 자료와 주민의 목소리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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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출생
  • 1992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크루즈에서 창작문예·연극예술 학사
  • 1990년대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에서 인류학 석사·박사 취득
  • 2005『붉은 리비에라』 출간, 불가리아 흑해 연안 관광산업의 여성 노동을 연구
  • 2012존 사이먼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
  • 2017–현재펜실베이니아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 교수
  • 2021미첼 오렌스타인과 『충격의 재고』 출간
  • 2022–현재펜실베이니아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학과 학과장
  • 2023『일상적 유토피아』 출간

키릴 아나톨리예비치 볼돕스키

Кирилл Анатольевич Болдовский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 1963– ○ 생존

레닌그라드 사건의 미해명을 추적하는 역사가

키릴 볼돕스키는 소련 후기와 현대 러시아의 정치사를 연구하는 러시아 역사학자다. 그는 레닌그라드 사건 전후의 당 apparatus와 봉쇄의 역사를 함께 다루며, 공개된 기록이 밝혀 주는 것과 여전히 남은 공백을 구분한다. 그의 연구는 이 사건을 단순한 숙청의 서사가 아니라 당 권력, 지역 통치, 기억의 충돌로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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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레닌그라드 출생
  • 2011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졸업
  • 2014러시아 현대사 박사학위 취득
  • 2018『봉쇄의 비서들의 몰락』 출간
  • 현재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 현재레닌그라드 봉쇄사 연구실 책임자

테리 마틴

Terry Martin
연구자 미국 캐나다계 미국인 1963–현재

소련을 '민족의 감옥'이 아닌 '긍정적 차별의 제국'으로 재정의한 역사학자

소련에서 나온 15개국은 1917년에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소련이 국가를 민족 원칙에 따라 조직한 결과였다.

소비에트 민족정책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캐나다 출신 역사학자. 2001년 저서 『긍정적 차별의 제국』에서 초기 소련을 민족을 억압한 '민족의 감옥'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소수민족 우대 정책을 체계적으로 시행한 '긍정적 차별의 제국'으로 재규정하며 리처드 파이프스의 전통적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로서 소련사, 스탈린주의, 민족·제국 연구를 가르치며 우크라이나 연구소(HURI)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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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하버드대 역사·문학 전공 학사
  • 1996시카고대 역사학 박사
  • 2001『긍정적 차별의 제국』 출간
  • 2001로널드 수니와 『국가들의 국가』 공동 편집
  • 2006하버드대 역사학과 정교수
  • 현재조지 F. 베이커 3세 러시아학 석좌교수 · 우크라이나 연구소(HURI) 소장

티모시 가튼 애시

Timothy Garton Ash
연구자 영국 영국 1955–

1989년 혁명을 목격하고 '개혁혁명(refolution)' 개념으로 평화적 체제 전환을 규정한 영국 역사가

프라하의 한 지하 술집에서 바츨라프 하벨을 만난 1989년 11월 23일, 하벨이 체제 전환의 속도에 놀라워하자 응수했다: '폴란드에서는 10년, 헝가리에서는 10개월, 동독에서는 10주 걸렸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0일이면 되지 않을까요?'

옥스퍼드대 유럽학 교수이자 《가디언》 칼럼니스트로, 중동부 유럽의 현대사와 1989년 공산 체제의 붕괴를 현장에서 추적해온 영국 역사가다. 1989년 바르샤바·부다페스트·베를린·프라하를 종횡하며 시민혁명을 목격하고 《마법의 랜턴》(1990)에 기록했으며, 개혁(reform)과 혁명(revolution)의 합성어인 '개혁혁명(refolution)' 개념을 제안해 평화적 체제 전환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했다. 조지 케넌이 '현재의 역사가'라 부른 뒤로도 40년 가까이 유럽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글쓰기를 이어왔으며, 2017년 샤를마뉴상을 비롯한 수상 경력은 그의 저작이 학계와 정책 결정 현장을 동시에 움직여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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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파업을 서방 언론 최초로 보도, 레흐 바웬사를 만남
  • 1986–1987우드로 윌슨 국제학술센터 펠로
  • 1989바르샤바·부다페스트·베를린·프라하에서 1989년 혁명 목격, 《마법의 랜턴》(1990) 집필
  • 2000–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펠로
  • 2004–옥스퍼드대 유럽학 교수, 《가디언》 국제정치 칼럼 연재
  • 2017샤를마뉴상 수상

파벨 루슬라노비치 팔라젠코

Павел Русланович Палажченко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49– ○ 현역 활동

정상회담의 언어를 조율한 통역자

그는 통역을 ‘두 언어 사이의 실을 찾아 잇는 일’이라고 회고했다.

파벨 팔라젠코는 냉전 말기 소련 외교의 핵심 대화 현장을 기록한 통역자이자 저술가다.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의 영어 통역을 맡아 제네바, 레이캬비크, 몰타 등 미소 정상회담에 참여했다. 회고록은 정상들의 발언뿐 아니라 군축 협상과 신뢰 형성이 작동한 실무 현장을 보여 주며, 평화로운 냉전 종식에 대한 소련 측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후 고르바초프 재단에서 국제관계와 언론 업무를 맡으며 통역과 정치 분석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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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1972모리스 토레즈 모스크바 외국어교육대학에서 통번역을 공부함
  • 1972–1974유엔 통역자 과정 수료 뒤 대학에서 통역과 강의를 함
  • 1974–1979유엔 사무국 러시아어 통역부에서 근무
  • 1980–1985소련 외무부 통역부와 미국·캐나다 부서에서 근무
  • 1985–1991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의 영어 수석 통역관, 미소 정상회담에 참여
  • 1991소련 대통령실에서 근무
  • 1992–현재고르바초프 재단 국제관계·언론 업무 책임자 및 분석가
  • 1997《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와 보낸 나의 세월》 출간

폴 R. 그레고리

Paul R. Gregory
연구자 미국 미국 1941–

소련 계획경제의 관료제를 추적한 경제사가

폴 R. 그레고리는 미국 경제사가이자 러시아·소련 경제 연구자다. 그는 소련 경제관료제와 계획의 작동을 통계 분석과 현장 인터뷰로 추적했으며, 소련 인터뷰 프로젝트를 이끌어 계획 담당자와 관료의 경험을 연구 자료로 남겼다. 유리 올세비치와 함께 쓴 2000년 소련 계획경제 회고 연구는 코시긴 개혁을 지령적 계획과 이윤 유인의 긴장을 해소하지 못한 시도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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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오클라호마대학교 경제학 학사
  • 1964오클라호마대학교 러시아학 석사
  • 1969하버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 1969–1972오클라호마대학교 경제학 조교수
  • 1972–현재휴스턴대학교 경제학 교수
  • 1979–1988소련 인터뷰 프로젝트 책임연구자
  • 1990『소련 경제관료제의 재편』 출간
  • 2000유리 올세비치와 소련 계획경제 회고 연구 공저

폴리 존스

Polly Jones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70–현재 ○ 현역 연구자

탈스탈린화의 기억과 문화 변화를 연구한 역사가

폴리 존스는 러시아·소비에트 문화와 권위주의 사회의 기억 정치를 연구하는 영국 역사가다. 그녀의 연구는 1956년 비밀 연설 이후 탈스탈린화가 당국의 개혁만이 아니라 작가와 시민들이 검열과 공식 기억을 협상한 과정이었음을 보여 준다. 대표 저서와 편저는 흐루쇼프 시대의 문화·사회 변화, 스탈린주의 과거의 신화와 기억, 해빙기의 이상과 실제 반응 사이의 긴장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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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공산주의 독재국가의 지도자 숭배』 공동 편집
  • 2006『탈스탈린화의 딜레마』 편집
  • 2007–2011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슬라브·동유럽학부 강사
  • 2013『신화, 기억, 트라우마』 출간
  • 2019『혁명을 다시 불붙이기』 출간
  • 2020–현재옥스퍼드대학교 러시아학 교수

프랜신 허쉬

Francine Hirsch
연구자 미국 미국 1967–

제정 시대의 제국적 민족지 관행이 소련으로 이어졌다는 연속성 테제를 제시한 미국 역사학자

제정 러시아의 민족지학자들이 볼셰비키 국가의 영토 구획과 인구 범주화를 실질적으로 설계했다는 연속성 테제로, 탈소비에트 시대 소련 민족 연구의 지형을 재편했다.

미국의 러시아·소련사 연구자로, 위스콘신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2005년 저서 『제국들의 민족지』에서 전직 제정 민족지학자들이 볼셰비키에 제공한 지식이 소련의 영토 경계와 민족 정책을 형성했으며, 소련은 제국의 민족지 관행을 단절하지 않고 계승했다는 연속성 테제를 제출했다. 이 저서는 허버트 백스터 애덤스 상을 수상하며 테리 마틴의 『차별적 조치의 제국』이 내세운 소비에트 민족 정책의 참신함 테제와 대비되는, 소련 민족 연구의 양대 해석 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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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Princeton University 역사학 박사
  • 1998–현재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사학과 교수
  • 2005『Empire of Nations: Ethnographic Knowledge and the Making of the Soviet Union』 출간 (Herbert Baxter Adams Prize, Wayne S. Vucinich Prize 수상)
  • 2020『Soviet Judgment at Nuremberg: A New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After World War II』 출간

프레더릭 켐프

Frederick Kempe
연구자 미국 독일계 1954– ○ 현역

냉전 위기를 추적한 저널리스트 역사가

프레더릭 켐프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저자로, 독일계 이민자 가정의 배경과 유럽 특파원 경험을 바탕으로 냉전의 정치와 대서양 관계를 다뤘다. 그의 대표작 『베를린 1961』은 새로 공개된 미국·소련·독일 문서와 인터뷰를 엮어 베를린 장벽 건설과 1961년 10월 체크포인트 찰리의 전차 대치를 재구성했다. 이 책은 케네디의 위기 대응을 약함으로 해석하고 흐루쇼프의 선택을 제약 조건 속에 놓았으며, 그 비대칭적 논지는 독립 서평에서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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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졸업
  • 1981『월스트리트 저널』 런던 특파원으로 입사
  • 1984『월스트리트 저널』 빈 지국 개설
  • 1990『월스트리트 저널』 베를린 지국장
  • 1992–1997『월스트리트 저널』 편집국 간부, 중부유럽 경제평론 창간
  • 2002–2005세계판 『월스트리트 저널』 유럽 편집자
  • 2007–애틀랜틱 카운슬 회장 겸 최고경영자
  • 2011『베를린 1961』 출간

피오 모아

Pío Moa
연구자 스페인 스페인 1948–

마오주의 게릴라에서 프랑코 수정사학으로 전향한 논쟁적 역사가

2008년 인터뷰에서 "프랑코는 스페인 국민 대다수의 감사와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마오주의 도시게릴라 조직 GRAPO의 창립 멤버에서 프랑코 옹호 역사 수정론자로 전향한 스페인의 논쟁적 저술가. 스페인 내전의 발발 책임이 좌익의 반민주적 혁명 기도에 있다고 주장하며, 1934년 10월 사회당 주도 봉기를 내전의 실질적 시작으로 보는 관점으로 포스트 프랑코 역사학계의 정설에 도전했다. 2003년 『내전의 신화』는 15만 부 판매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스탠리 G. 페인의 옹호와 폴 프레스턴 등 주류 역사학자들의 맹비판 사이에서 스페인 현대사 수정주의 논쟁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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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1974마드리드 국립언론학교 수학, 급진적 반프랑코 운동가로 활동
  • 1975마오주의 무장조직 GRAPO 공동 창립, 10월 1일 경찰관 살해 현장에 동행
  • 1977GRAPO에서 제명됨
  • 1983납치 공모로 징역 1년 선고, 사회 재편입 조치 수용
  • 1999–2001『내전의 기원』 등 3부작 출간, 수정주의적 내전 해석 제시
  • 2003『내전의 신화』 출간, 15만 부 판매 및 6개월 연속 베스트셀러
  • 2005–현재Libertad Digital 등에 칼럼 기고, 프랑코 옹호 역사서 다수 출간

헤나디 흐리호리요비치 예피멘코

Геннадій Григорович Єфіменко
연구자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인 1971– ○ 활동 중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국가와 사회를 추적한 역사가

헤나디 예피멘코는 20세기 전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사를 연구한 우크라이나 역사가다. 그는 홀로도모르 이후 농촌 재정착을 두 차례 파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국가가 곡물 생산 기반을 회복하려 경제적으로 추진한 정책과 이주민의 대규모 귀환을 함께 밝혔다. 그의 연구는 인구 이동을 민족 구성의 단순한 변화로 과장하지 않고, 기근 뒤 농촌의 노동력과 국가 통치가 맞물린 문제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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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1994루한스크 국립 교육기관 역사학부에서 수학
  • 1993–1997마르키우카 중등학교 역사 교사
  • 1997–2000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대학원
  • 2001「1932~1938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연방공산당의 민족·문화 정책」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2000–현재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연구소 20~30년대 우크라이나사 부문 연구원
  • 2013「기근 이후 시기 이주와 추방」에서 1933~1934년 재정착의 지역별 자료를 체계화
  • 2014–현재역사 대중화 프로젝트 ‘리크베즈’ 참여

헬렌 그레이엄

Helen Graham
연구자 영국 영국 1959–

스페인 내전을 '불이 꺼지기 전의 전쟁'으로 명명한 영국 역사가

스페인 내전은 어떤 의미에서 불이 꺼지기 전의 전쟁이었다. 권력 행위자들이 다르게 행동했다면 유럽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었던 전쟁.

리버풀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영국의 현대 유럽사 학자로, 왕립할러웨이 런던대학의 현대유럽사 명예교수이다. 2002년에 출간한 『전쟁 속의 스페인 공화국』은 스페인 내전 연구의 표준 저작으로 자리 잡았고, 2005년 『스페인 내전: 아주 짧은 입문』은 5만 부 이상 팔리며 다섯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녀의 연구는 서방 열강의 불개입 정책에 버려진 민주 공화국의 비극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유럽 파시즘에 맞선 최초의 국제적 전장이자 냉전적 해석 이전의 마지막 반파시즘 전쟁으로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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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s–1990sUniversity of Southampton에서 연구·강의
  • 1995Jo Labanyi와 『Spanish Cultural Studies』 공동 편집 (Oxford University Press)
  • 2002『The Spanish Republic at War』 출간 (Cambridge University Press)
  • 2005–Royal Holloway 런던대학 교수, 이후 명예교수
  • 2010뉴욕대학 King Juan Carlos I of Spain 석좌교수
  • 2018–2021Leverhulme Trust 주요 연구 펠로십 (프랑코 감옥 연구)

호프 M. 해리슨

Hope M. Harrison
연구자 미국 미국 1963– ○ 현역 역사학자

베를린 장벽을 다시 읽은 냉전사가

호프 M. 해리슨은 독일과 러시아, 냉전의 국제정치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다. 대표작은 동독과 소련의 관계를 동독 자료와 소련 자료로 재구성한 《소련을 장벽으로 몰아붙이기》다. 그녀는 1961년 국경 폐쇄를 흐루쇼프의 일방적 결정으로만 보던 강대국 중심 서술에 이의를 제기하며, 발터 울브리히트가 동독의 경제·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려 소련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고 논증했다. 이 해석은 작은 사회주의 국가의 행위와 동맹 내부의 긴장이 냉전의 고위정치를 형성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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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컬럼비아 대학교 학사
  • 1993컬럼비아 대학교 박사
  • 1999–현재조지 워싱턴 대학교 역사학·국제정치학 교수
  • 2003《소련을 장벽으로 몰아붙이기》 출간
  • 2004마셜 슐먼 도서상 수상
  • 2019《베를린 장벽 이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