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국가

동독

사건 10 · 소속 인물 22 · 출신 인물 2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역사 국가·지역의 영역은 현재 후계 국가 또는 행정구역을 합친 근사 표시이며, 당시의 정확한 국경선이 아닙니다.

국가 변천

  1. 1949 독일독일분단으로 성립
  2. 1990 독일독일에 통합되어 통일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10전체보기

  1. 1944–1949동유럽 인민민주주의 정권의 수립1944년 여름부터 붉은군대가 진주한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와 소련 점령지구 독일, 그리고 자력으로 해방을 이룬…
  2. 1945–1949동독: 소련 군정에서 독일민주공화국까지1945년 6월 카를스호르스트에 소련군정청이 세워졌고, 4월 말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울브리히트 그룹이 베를린 행정을 짰다.
  3. 1952.07–1953.071953년 동독 6월 봉기1952년 7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사회주의의 계획적 건설」을 선포하고 집단화·재무장·중공업 투자와 교회 탄압을…
  4. 1953헝가리의 새 노선1953년 6월 크렘린 회담에서 소련 지도부는 라코시의 과잉 공업화와 대량 탄압을 비판하고 너지 임레를 총리로 세웠다.
  5. 1953–1956스탈린 사후 동유럽의 위기, 1953–1956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자 말렌코프·베리야·흐루쇼프의 집단지도부는 동독과 헝가리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강행 공업화와…
  6. 1955바르샤바 조약 기구 창설바르샤바 조약 기구(공식 명칭: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는 1955년 5월 14일 소련과 동유럽 7개 사회주의 국가가 폴란드…
  7. 1961베를린 장벽 건설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을 둘러싸며 쌓은 156km의 경계 요새 시설이다.
  8. 1968프라하의 봄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둡체크가 이끈 개혁운동이다.
  9. 1985–1989신사고 외교와 냉전의 종식고르바초프는 핵전쟁에는 승자가 없으며 안보는 상대를 위협해서가 아니라 상대와 함께 얻는 것이라는 「신사고」를 내걸고 소련…
  10. 19891989년 동유럽 혁명1989년, 동유럽 전역에서 공산당 일당 체제가 잇따라 무너졌다.

정당·세력·조직 2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22전체보기

빌헬름 피크

Wilhelm Pieck

스파르타쿠스단에서 동독 국가원수까지, 독일 공산주의의 전 생애를 살아낸 유일한 생존 창립자

1919년 1월 15일 밤, 피크는 룩셈부르크·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체포되어 에덴 호텔로 끌려갔다. 그는 동지들의 마지막 신문에 입회한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마부의 아들로 가구공을 거쳐 1895년 사민당에 입당, 룩셈부르크의 영향을 받아 좌파로 성장했다. 1차대전 반전 활동으로 군사법정에 회부되었고, 스파르타쿠스단과 KPD 창립에 참여했다. 1919년 1월 룩셈부르크·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유일하게 생존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1921)과 상임위원(1931)을 거쳐, 나치 집권 후 모스크바에서 KPD 망명 지도부를 이끌며 코민테른 서기를 지냈다. 전후 귀국해 사민당과의 합당으로 SED를 창출했고, 1949년 동독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사망까지 국가 원수직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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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5마르부르크에서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했다.
  • 1905–1910브레멘 시의회 의원을 지냈고, 1906년 목수 일을 그만두고 브레멘 SPD 전임 제1서기가 되었다.
  • 1915.10–1917.10반전 시위로 구금되었다가 징집되어 서부전선에서 복무했고, 군사재판 뒤 다시 전선으로 보내지던 중 탈영했다.
  • 1918.02–10스파르타쿠스 그룹의 결정으로 암스테르담에 망명했다.
  • 1918.11.11새로 구성된 스파르타쿠스단 중앙의 일원으로 베를린 선전 활동을 맡았다.
  • 1918.12.30–1919.01.01야코프 발허와 함께 독일 공산당(KPD) 창립대회를 주재했다.
  • 1919.01.15룩셈부르크·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혼자 살아남았다.
  • 1920.12통합 당대회에서 KPD 중앙 서기로 선출되었다.
  • 1921–1933프로이센 주의회(1921~1928, 1932~1933)와 제국의회(1928~1933) 의원을 지냈다.
  • 1926.02–1929.11KPD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구 정치지도자를 지냈다.
  • 1928–1943코민테른 집행위원을 지냈고, 1931년 간부회 위원, 1935년 서기가 되었다.
  • 1935.10–1946.04파리를 거쳐 모스크바로 망명해 투옥된 텔만을 대신하는 KPD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 1943.07자유독일 국민위원회 결성을 주도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 1946.04–1950오토 그로테볼과 함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공동의장을 지냈다.
  • 1949.10–1960.09.07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초대이자 유일한 대통령으로 재임하다 사망했다.

오토 누슈케

Otto Nuschke

카이저 뒤 동독 기독교민주연합을 이끌며 사회주의통일당 체제에 순응한 부총리

작센 프로보르크에서 태어나 언론인으로 일했고, 좌파 자유주의 정당을 거쳐 1918년 독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바이마르 국민의회와 프로이센 주의회 의원을 지냈다. 나치 집권 뒤 반대파에 섰고 1944년 암살 기도 뒤 숨어 지냈다. 1945년 소련 점령지구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을 함께 세웠고, 1947년 카이저와 레머가 소련 군정청에 의해 해임되자 대표 대행을 거쳐 1948년 대표가 되었다. 독일인민평의회 공동의장으로 동독 헌법 초안에 참여했고, 1949년 부총리 겸 교회청장이 되었다. 사회주의통일당 정권을 충실히 지지하며 따르지 않는 당원을 밀어냈다. 1957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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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독일민주당 창당 참여
  • 1921–1933프로이센 주의회 의원
  • 1945소련 점령지구 기독교민주연합 공동 창당
  • 1948–1957동독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 1949–1957동독 부총리 겸 교회청장

막스 페히너

Max Fechner

파업 노동자 처벌에 반대했다가 1953년 해임·투옥된 동독 초대 법무장관

베를린의 공구공 출신으로 1910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1928~1933년 프로이센 주의회 의원을 지냈다. 나치 시기 저항 단체에 가담해 두 차례 투옥되었다. 전후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강제 합당을 지지해 사회주의통일당 중앙위원이 되었고, 1949년 10월 동독 초대 법무장관이 되었다. 글라도프 일당 재판에서 사형이 가능하도록 성인 형법을 위법하게 적용하게 했다. 1953년 6월 30일 《노이에스 도이칠란트》 인터뷰에서 6월 17일 파업 참가자를 혐의만으로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가 「국가와 당의 적」으로 몰려 해임·제명·체포되었고,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1956년 석방·사면되고 1958년 복당했으며, 1973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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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사회민주당 입당
  • 1928–1933프로이센 주의회 의원
  • 1949–1953동독 법무장관
  • 1953해임·제명·체포
  • 1956석방과 사면
  • 1958복당

빌헬름 차이서

Wilhelm Zaisser

동독 초대 국가보안부 장관으로 1953년 울브리히트 퇴진을 꾀하다 숙청된 공산주의자

겔젠키르헨에서 헌병 하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가 되었고, 1920년 카프 폭동 때 루르 적군을 지휘했다. 소련 군사정보국(GRU) 요원과 코민테른 군사고문으로 중국 광저우 봉기 등에 관여했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고메스」라는 이름으로 국제여단을 이끌었다. 1947년 귀국해 사회주의통일당에 들어갔고, 1950년 초대 국가보안부 장관과 정치국원이 되어 슈타지를 키웠다. 1953년 6월 봉기 뒤 헤른슈타트를 제1서기로 세우자고 제안했으나, 울브리히트가 흐루쇼프의 지지를 얻자 7월 장관직과 모든 직위를 잃고 당에서 제명되었다. 번역가로 지내다 1958년 동베를린에서 죽었고, 1990년 뒤에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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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카프 폭동 때 루르 적군 지휘
  • 1927–1930코민테른 군사고문(중국)
  • 1936–1938스페인 내전 국제여단 지휘(「고메스」)
  • 1950–1953동독 국가보안부 장관, 정치국원
  • 1953모든 직위에서 해임, 당에서 제명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2전체보기

게르하르트 쉬러

Gerhard Schürer

동독의 파산을 경고했으나 체제를 구하지는 못한 국가계획위원장

내가 정치국에서 호네커에게 이 정책을 경고했을 때 나는 ‘사보타주’로 일축됐다.

게르하르트 쉬러는 1965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경제 관료였다. 그는 호네커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일’ 노선이 투자보다 소비에 치우쳐 국가를 파산으로 몰고 있다고 경고했으나, 정치국에서 ‘사보타주’라는 비난을 받으며 18년간 후보 위원에 머물렀다. 1989년 10월 30일 크렌츠의 요청으로 제출한 「동독 경제 상황 분석」에서 서방 부채 490억 발루타마르크와 임박한 지급불능을 폭로하며 국경 통제 완화를 대가로 한 서독 차관을 제안했고, 이 보고서는 체제의 절박함을 드러내는 결정적 문건이 되었다. 통일 후 ‘신뢰 남용’ 혐의로 18일간 구금됐다가 무혐의로 풀려났으며, 회고록 『모험과 상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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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6–1939기계공 훈련
  • 1939–1945루프트바페 복무, 비행 교관
  • 1948SED 입당
  • 1955–1958모스크바 공산당 고등학교 수학
  • 1960–1962SED 중앙위 계획·재정·기술부장
  • 1962–1965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1965년 위원장 승진
  • 1965–1989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겸 각료회의 간부위원
  • 1973–1989SED 정치국 후보위원, 1989년 11월 정위원

하랄트 예거

Harald Jäger

국경 통제관에서 장벽 개방의 명령자로

“내 부하들에게 장벽을 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랄트 예거는 동독 국가보안부에 복무한 국경 통제 장교로, 국가의 여행 통제와 정보활동을 집행했다. 1989년 11월 9일 그는 상관의 명확한 지시를 받지 못한 채 Bornholmer Straße에 몰린 군중과 폭력 위험에 직면했다. 그는 통제 체계의 일부였지만 그날 밤 장벽을 열어 수천 명의 동독 시민이 서베를린으로 건너게 했다. 이후 그는 동독 체제의 내부 모순과 장벽 붕괴의 자유를 함께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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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바우첸에서 출생
  • 1961독일 국경경찰 자원 입대
  • 1964–1989국가보안부 여권통제부대 복무
  • 1976–1981국가보안부 법률고등학교 수학, 법학사 취득
  • 1989Bornholmer Straße 국경통과소 부지휘관
  • 1989.11.09상관의 지시 없이 국경 통과소 장벽 개방 명령
  • 1990국가보안부 해체 과정에서 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