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핀란드

시민권 17 · 민족·국가 20 · 사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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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인물 17전체보기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Pehr Evind Svinhufvud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 1861–1944 ○ 사망

핀란드 독립을 선언하고 내전에서 독일의 개입을 요청한 원로원 수반

유형지 톰스크에서 2월혁명 소식을 들은 그는 경찰서로 걸어가, 나를 여기 보낸 자가 체포되었으니 이제 집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1917년 12월 핀란드 독립 선언을 이끈 원로원 수반으로 1918년 내전에서 백색정부를 이끌며 독일의 개입을 요청했다. 1931년부터 193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4귀족원 대표로 의회 활동 시작
  • 1907–1912핀란드 의회 의장
  • 1914–1917러시아화 반대로 톰스크 유형
  • 1917–1918원로원 수반(초대 정부 수반)
  • 1918섭정(국가 원수)
  • 1930–1931핀란드 총리
  • 1931–1937핀란드 대통령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Carl Gustaf Emil Mannerheim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 1867–1951 ○ 자연사

러시아 제국군 중장에서 핀란드의 원수가 되어 두 차례 소련과 맞선 귀족 군인

"요새도, 대포도, 외국의 원조도, 모든 병사 각자가 자신이 조국의 수호자임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30년간 복무한 스웨덴계 핀란드 귀족으로,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중장까지 올랐다. 1918년 핀란드 내전에서 백군 총사령관으로 적위대를 진압하고 섭정이 되어 독립을 공고히 했으며, 런던 타임스에 "핀란드의 역사적 사명은 볼셰비즘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소련군에 맞서 싸웠고, 독일과 공동전선을 폈으나 레닌그라드 공격은 거부했다. 1944년 대통령에 취임해 소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라플란드 전쟁으로 독일군을 축출하여,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점령을 면한 국가로 핀란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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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9–1917러시아 제국군 기병 장교, 1917년 중장으로 퇴역
  • 1918핀란드 백군 총사령관으로 내전 승리
  • 1918–1919핀란드 섭정(국가원수)
  • 1931–1939핀란드 국방위원회 의장
  • 1939–1944핀란드 방위군 총사령관 (겨울전쟁·계속전쟁)
  • 1944–1946핀란드 공화국 제6대 대통령

배이뇌 보이온마

Väinö Voionmaa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69–1947 ○ 자연사

역사학과 사회민주주의를 잇다

1940년 모스크바에서 그는 겨울전쟁의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배이뇌 보이온마는 핀란드의 역사학자이자 교수, 사회민주당 정치가로 독립 초기 공화국의 형성에 관여했다. 그는 노동자 교육기관을 세우고 의회에서 외교와 사회정책을 다루며 학문을 대중적 정치 활동과 결합했다. 1940년 겨울전쟁을 끝낸 모스크바 강화조약 협상에서 핀란드 대표단의 사회민주당계 인사로 서명에 참여했으며, 전쟁과 강대국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핀란드의 조건을 드러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4헬싱키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03–1918헬싱키대학교 북유럽사 도슨트
  • 1917토코이 원로원 경제부문 의원, 교통위원회 수장
  • 1919–1947핀란드 의회 사회민주당 의원
  • 1920타르투 평화협상 핀란드 대표단원
  • 1926–1927외무장관
  • 1937–1939상공장관, 1938년 외무장관 직무대행
  • 1940모스크바 강화조약 핀란드 대표단원 및 서명자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Juho Kusti Paasikivi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70–1956 ○ 자연사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은 핀란드의 현실주의 외교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 스탈린에게서 빌려와 평생의 외교 원칙으로 삼은 말.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 시절부터 시작해 핀란드 독립·내전·겨울전쟁·계속전쟁·냉전을 모두 통과한 정치가다. 독립 직후인 1918년 첫 총리를 지내며 친독일·군주제 노선을 밀었고,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했다. 1939년 가을 스톡홀름 주재 공사에서 소환되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몰로토프와 직접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전쟁이 터지자 무임소장관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이끌었다. 1946년 대통령에 오른 뒤로는 '현실 인정이 지혜의 시작'이라며 소련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추구했고, 이 파시키비 독트린은 냉전기 핀란드 외교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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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1913핀란드 의회 의원 (핀란드당)
  • 1908–1909원로원 재무분과장
  • 1918.5–11핀란드 총리
  • 1914–1934KOP 은행 총재
  • 1936–1939주스웨덴 공사
  • 1940–1941주모스크바 공사
  • 1944–1946핀란드 총리
  • 1946–1956핀란드 대통령

민족·국가적 배경 인물 20전체보기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Pehr Evind Svinhufvud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 1861–1944 ○ 사망

핀란드 독립을 선언하고 내전에서 독일의 개입을 요청한 원로원 수반

유형지 톰스크에서 2월혁명 소식을 들은 그는 경찰서로 걸어가, 나를 여기 보낸 자가 체포되었으니 이제 집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1917년 12월 핀란드 독립 선언을 이끈 원로원 수반으로 1918년 내전에서 백색정부를 이끌며 독일의 개입을 요청했다. 1931년부터 193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4귀족원 대표로 의회 활동 시작
  • 1907–1912핀란드 의회 의장
  • 1914–1917러시아화 반대로 톰스크 유형
  • 1917–1918원로원 수반(초대 정부 수반)
  • 1918섭정(국가 원수)
  • 1930–1931핀란드 총리
  • 1931–1937핀란드 대통령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Carl Gustaf Emil Mannerheim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 1867–1951 ○ 자연사

러시아 제국군 중장에서 핀란드의 원수가 되어 두 차례 소련과 맞선 귀족 군인

"요새도, 대포도, 외국의 원조도, 모든 병사 각자가 자신이 조국의 수호자임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30년간 복무한 스웨덴계 핀란드 귀족으로,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중장까지 올랐다. 1918년 핀란드 내전에서 백군 총사령관으로 적위대를 진압하고 섭정이 되어 독립을 공고히 했으며, 런던 타임스에 "핀란드의 역사적 사명은 볼셰비즘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소련군에 맞서 싸웠고, 독일과 공동전선을 폈으나 레닌그라드 공격은 거부했다. 1944년 대통령에 취임해 소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라플란드 전쟁으로 독일군을 축출하여,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점령을 면한 국가로 핀란드를 남겼다.

상세 이력 보기
  • 1889–1917러시아 제국군 기병 장교, 1917년 중장으로 퇴역
  • 1918핀란드 백군 총사령관으로 내전 승리
  • 1918–1919핀란드 섭정(국가원수)
  • 1931–1939핀란드 국방위원회 의장
  • 1939–1944핀란드 방위군 총사령관 (겨울전쟁·계속전쟁)
  • 1944–1946핀란드 공화국 제6대 대통령

배이뇌 보이온마

Väinö Voionmaa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69–1947 ○ 자연사

역사학과 사회민주주의를 잇다

1940년 모스크바에서 그는 겨울전쟁의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배이뇌 보이온마는 핀란드의 역사학자이자 교수, 사회민주당 정치가로 독립 초기 공화국의 형성에 관여했다. 그는 노동자 교육기관을 세우고 의회에서 외교와 사회정책을 다루며 학문을 대중적 정치 활동과 결합했다. 1940년 겨울전쟁을 끝낸 모스크바 강화조약 협상에서 핀란드 대표단의 사회민주당계 인사로 서명에 참여했으며, 전쟁과 강대국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핀란드의 조건을 드러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4헬싱키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03–1918헬싱키대학교 북유럽사 도슨트
  • 1917토코이 원로원 경제부문 의원, 교통위원회 수장
  • 1919–1947핀란드 의회 사회민주당 의원
  • 1920타르투 평화협상 핀란드 대표단원
  • 1926–1927외무장관
  • 1937–1939상공장관, 1938년 외무장관 직무대행
  • 1940모스크바 강화조약 핀란드 대표단원 및 서명자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Juho Kusti Paasikivi
외국 정치가 핀란드 핀란드인 1870–1956 ○ 자연사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은 핀란드의 현실주의 외교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 스탈린에게서 빌려와 평생의 외교 원칙으로 삼은 말.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 시절부터 시작해 핀란드 독립·내전·겨울전쟁·계속전쟁·냉전을 모두 통과한 정치가다. 독립 직후인 1918년 첫 총리를 지내며 친독일·군주제 노선을 밀었고,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했다. 1939년 가을 스톡홀름 주재 공사에서 소환되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몰로토프와 직접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전쟁이 터지자 무임소장관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이끌었다. 1946년 대통령에 오른 뒤로는 '현실 인정이 지혜의 시작'이라며 소련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추구했고, 이 파시키비 독트린은 냉전기 핀란드 외교의 근간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7–1913핀란드 의회 의원 (핀란드당)
  • 1908–1909원로원 재무분과장
  • 1918.5–11핀란드 총리
  • 1914–1934KOP 은행 총재
  • 1936–1939주스웨덴 공사
  • 1940–1941주모스크바 공사
  • 1944–1946핀란드 총리
  • 1946–1956핀란드 대통령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6전체보기

1918.11–1920.10

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

1918년 11월 독일이 무너진 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신생 정부는 붉은 군대, 러시아 백군, 독일 자유군단이라는 세 세력 사이에서 국가를 만들어야 했다. 영국 함대의 지원과 핀란드 의용군, 토지개혁으로 농민을 얻은 에스토니아는 1919년 초 붉은 군대를 밀어냈고, 자국 땅에서 출발한 유데니치의 북서군이 페트로그라드 앞에서 무너지자 이를 무장해제한 뒤 1920년 2월 타르투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첫 독립 승인 조약을 맺었다. 라트비아는 스투치카의 소비에트 정부, 폰 데어 골츠의 독일군과 니에드라의 친독 정부, 베르몬트-아발로프의 리가 공격을 차례로 이겨 냈고, 리투아니아는 리트벨을 물리쳤지만 폴란드에 빌뉴스를 잃었다. 1920년 한 해에 맺어진 타르투·모스크바·리가·타르투(핀란드) 조약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북서 국경을 그렸으나 폴란드-리투아니아 분쟁은 남았다.

1939.08–1940.08

독소 불가침조약과 동유럽 분할

독소 불가침조약은 1939년 8월 23일 밤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소련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서명한 조약으로, 공개된 불가침 조항과 함께 동유럽에서의 세력 범위를 나누는 비밀 추가 의정서를 담고 있었다. 영국·프랑스와의 집단안보 협상이 폴란드의 소련군 통과 거부로 교착된 상황에서, 스탈린은 독일과의 협정을 선택했다. 조약 체결 1주일 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9월 17일 소련도 폴란드 동부로 진격했다. 9월 28일 양국은 독소 우호 및 국경 조약을 체결하여 폴란드 분할을 확정했고, 비밀 의정서를 개정해 리투아니아를 소련 세력권으로 넘기는 대가로 루블린과 바르샤바 일부를 독일 측에 양보했다. 이 조약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파기될 때까지 소련의 발트 3국 합병, 핀란드 겨울전쟁, 베사라비아 점령의 발판이 되었다.

1939.11–1940.03

겨울전쟁

겨울전쟁은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해 1940년 3월 모스크바 강화조약으로 끝난 105일간의 소련-핀란드 전쟁이다.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로 핀란드를 자국 세력권에 넣은 소련은 레닌그라드 방위를 이유로 카렐리야 지협의 국경 이동과 항코 반도 조차를 요구했고, 핀란드가 거부하자 마이닐라 포격 사건을 구실로 공격했다. 병력과 장비는 압도적이었으나 대숙청으로 지휘부가 무너진 붉은 군대는 겨울 삼림전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수오무살미에서 사단째 포위·궤멸당하며 만네르헤임 선 앞에 멈춰 섰다.

1941–1945

대조국전쟁

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된 대조국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었다. 소련은 개전 첫 해의 파국적 손실을 딛고 공업 기반을 통째로 동쪽으로 옮겨 재무장했으며,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에서 전세를 뒤집고 1945년 베를린까지 진격해 나치 독일을 무너뜨렸다. 독일 국방군 지상 전투력의 약 80%가 동부전선에서 소모되었고, 파시즘 격파의 압도적 부담을 짊어진 것은 다민족 소비에트 인민이었다.

1941–1944

레닌그라드 봉쇄

레닌그라드 봉쇄는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독일군과 핀란드군이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육상에서 포위하고 포격과 폭격을 가한 사건이다.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은 도시를 점령해 발트해의 산업 및 해군 거점을 제거하려 했고, 핀란드군의 진격은 북쪽에서 도시와 교통로를 압박했다. 레닌그라드 전선, 발트 함대, 도시 당 조직과 주민들은 급히 방어선을 세우고 생산과 전투를 계속했지만, 식량과 연료가 고갈되어 1941~1942년 겨울 대규모 아사와 질병이 발생했다. 라도가호의 수운과 겨울철 빙상 도로가 유일한 생명선이 되었으며, 소련군은 1943년 1월 18일 포위망에 육상 통로를 열고 1944년 1월 레닌그라드-노브고로드 작전으로 독일군을 도시에서 밀어냈다.

1975

헬싱키 협정

헬싱키 협정(1975년 8월 1일)은 유럽 33개국과 미국, 캐나다 등 35개국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서명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최종의정서'이다. 소련은 1954년부터 유럽 전후 국경의 공식 승인을 목표로 유럽안보회의를 추진해 왔고, 1970년대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서방이 마침내 응했다. 1972년 사전 협의, 1973~1975년 제네바 실무 협상을 거쳐 35개국 정상이 헬싱키에 모였다. 최종의정서는 정치·군사(제1바스켓), 경제·과학(제2바스켓), 인권·인도적 협력(제3바스켓) 등 세 갈래로 구성되었다. 브레즈네프는 국경 불가침 원칙을 관철시켰다고 판단했으나, 제3바스켓의 인권 조항은 소련과 동구권 내 반체제 인사들에게 정부가 스스로 서명한 약속을 근거로 활동할 발판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