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투 강화를 체결한 에스토니아 총리, 「포스티메스」의 발행인
1940년 6월 소련의 점령이 닥치자 그는 페츠 대통령에게 상징적으로라도 무장 저항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포스티메스」를 이끈 에스토니아 자유주의 민족운동의 대표로 1919~1920년 총리를 지내며 타르투 강화를 체결했다. 1934년 페츠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해 밀려났고 1940년 소련 점령 뒤 체포되어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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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포스티메스」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민족운동의 기관지로 키움
- 1906러시아 제1두마 의원, 비보르크 호소 서명
- 1917에스토니아 임시지방의회(마패브) 의원
- 1919–1920총리로 타르투 강화 조약 체결
- 1923–1925리가코구 의장
- 1927–1928국가원로
- 1931–1932외무장관
- 1933국가원로(마지막 정부)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의 정부 수반, 뒤에 「침묵의 시대」의 독재자
「우리가 이룬 가장 위대한 것은 에스토니아 국가의 창건이다」고 1940년 6월 승리절 연설에서 말했다.
1918년 2월 에스토니아 독립 선언을 이끌고 독립전쟁 첫 겨울 임시정부 수반으로 나라를 지켰다. 1934년 라이도네르와 함께 「침묵의 시대」의 권위주의 체제를 세웠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56년 구금 중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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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탈린 부시장 취임
- 1917에스토니아 자치주 임시정부 의장
- 1918구국위원회 위원, 임시정부 수반으로 독립 선언 주도
- 1921-24국가원로(사실상 총리) 2회 역임
- 1934라이도네르와 함께 자기 쿠데타로 권위주의 체제 수립
- 1938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 취임
에스토니아 출신 볼셰비키, 강제수용소 체계를 구상한 소련 법무인민위원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열아홉 살 얀손은 아버지와 함께 겨울궁전 행진에 나섰다가 총격 속에서 아버지가 중상을 입는 장면을 목격했다.
에스토니아 출신 볼셰비키 혁명가로, 1905년 레벨(탈린) 노동자대표소비에트 의장을 지낸 후 미국 망명 시기 에스토니아 노동자 사회주의연맹을 조직했다. 1920년대 중앙통제위원회 간부로 당 숙청을 주도했으며, 1928년 톨마초프·야고다와 함께 기존 교도소 체계를 OGPU 강제수용소 모델로 전환할 것을 스탈린에게 제안했다. 이후 러시아공화국 법무인민위원, 소련 수상운수인민위원을 지냈으나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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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레벨 노동자대표소비에트 의장
- 1907–1917에스토니아 노동자 사회주의연맹 서기 (미국)
- 1921–1923금속노조 중앙위원회 서기
- 1923–1927중앙통제위원회 서기
- 1927–1930중앙통제위원회 당콜레기야 서기
- 1928–1930러시아공화국 법무인민위원
- 1931–1934소련 수상운수인민위원
- 1935–1937글라브세브모르푸티 부국장
에스토니아 노동 코뮌의 수반, 1924년 봉기의 지도자
1918년 11월 나르바에 선포된 에스토니아 노동 코뮌의 수반으로 두 달 남짓 에스토니아 동부를 통치했고 1924년 탈린 봉기를 조직했다. 1937년 체포되어 심문 중 구타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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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볼셰비키에 가담해 혁명 운동에 나선 교사
- 1912나르바에서 노동자 신문 『키르』 편집자
- 1917에스틀랴트 소비에트 집행위원장, 탈린 권력 장악 주도
- 1918에스토니아 노동 코뮌 평의회 의장
- 1921에스토니아 공산당 지하 지도자, 1924년 12월 봉기 지휘
- 1926주콥스키 공군사관학교 정치위원
- 1929민간항공총국 부국장, 이후 국장
- 1935코민테른 국제통제위원회 위원 겸 책임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