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에스토니아

시민권 15 · 민족·국가 24 · 사건 4

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시민권 인물 15전체보기

얀 퇴니손

Jaan Tõnisson
외국 정치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68–1941? 실종 · 사망 추정

타르투 강화를 체결한 에스토니아 총리, 「포스티메스」의 발행인

1940년 6월 소련의 점령이 닥치자 그는 페츠 대통령에게 상징적으로라도 무장 저항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포스티메스」를 이끈 에스토니아 자유주의 민족운동의 대표로 1919~1920년 총리를 지내며 타르투 강화를 체결했다. 1934년 페츠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해 밀려났고 1940년 소련 점령 뒤 체포되어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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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6「포스티메스」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민족운동의 기관지로 키움
  • 1906러시아 제1두마 의원, 비보르크 호소 서명
  • 1917에스토니아 임시지방의회(마패브) 의원
  • 1919–1920총리로 타르투 강화 조약 체결
  • 1923–1925리가코구 의장
  • 1927–1928국가원로
  • 1931–1932외무장관
  • 1933국가원로(마지막 정부)

콘스탄틴 페츠

Konstantin Päts
외국 정치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74–1956 ○ 옥사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의 정부 수반, 뒤에 「침묵의 시대」의 독재자

「우리가 이룬 가장 위대한 것은 에스토니아 국가의 창건이다」고 1940년 6월 승리절 연설에서 말했다.

1918년 2월 에스토니아 독립 선언을 이끌고 독립전쟁 첫 겨울 임시정부 수반으로 나라를 지켰다. 1934년 라이도네르와 함께 「침묵의 시대」의 권위주의 체제를 세웠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56년 구금 중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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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탈린 부시장 취임
  • 1917에스토니아 자치주 임시정부 의장
  • 1918구국위원회 위원, 임시정부 수반으로 독립 선언 주도
  • 1921-24국가원로(사실상 총리) 2회 역임
  • 1934라이도네르와 함께 자기 쿠데타로 권위주의 체제 수립
  • 1938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 취임

요한 라이도네르

Johan Laidoner
외국 정치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84–1953 ○ 옥사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의 총사령관

1919년 1월 3일 반격을 개시해 11일 만에 제1사단을 200킬로미터 동진시키며 타르투와 나르바를 되찾았다.

1918년 12월 에스토니아군 총사령관이 되어 1919년 1월 반격과 6월 체시스 전투를 이끌었다. 1934년 페츠의 계엄 체제를 떠받쳤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53년 블라디미르 감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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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러시아 제국군 입대
  • 1917–1918제1에스토니아사단장
  • 1918에스토니아군 총사령관 취임
  • 1918–1920독립전쟁 승리 주도
  • 1920–1929국회의원
  • 1934–1940군 총사령관
  • 1939대장 진급

빅토르 킹기세프

Viktor Kingissepp
비소련 혁명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88–1922 ✕ 처형

독립 에스토니아에서 지하 공산당을 이끌다 처형된 볼셰비키

로카트 음모와 카플란 사건을 수사한 체카 수사관이었던 그는, 1922년 메이데이 시위 뒤 체포되어 그날 밤 유예미스테 호숫가 숲에서 총살되었다.

1917년 에스토니아의 10월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로 독립 공화국에서 지하 공산당을 지도하다 1922년 탈린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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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아렌스부르크(쿠레사아레) 학생 마르크스주의 서클에서 혁명운동 시작
  • 1906페테르부르크로 이주,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 입당
  • 1906–1913페테르부르크와 레벨(탈린)에서 당 활동, 에스토니아어 신문 「키르」 발간 참여
  • 1917에스틀랸트 지역 군사혁명위원회 부위원장,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행정부장
  • 1918최고혁명재판소·체카 수사관,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 1918–1922지하로 에스토니아 공산당 지도, 중앙위원·정치국원
  • 19223일 체포되어 그 다음날 밤 총살

민족·국가적 배경 인물 24전체보기

얀 퇴니손

Jaan Tõnisson
외국 정치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68–1941? 실종 · 사망 추정

타르투 강화를 체결한 에스토니아 총리, 「포스티메스」의 발행인

1940년 6월 소련의 점령이 닥치자 그는 페츠 대통령에게 상징적으로라도 무장 저항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포스티메스」를 이끈 에스토니아 자유주의 민족운동의 대표로 1919~1920년 총리를 지내며 타르투 강화를 체결했다. 1934년 페츠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해 밀려났고 1940년 소련 점령 뒤 체포되어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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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6「포스티메스」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민족운동의 기관지로 키움
  • 1906러시아 제1두마 의원, 비보르크 호소 서명
  • 1917에스토니아 임시지방의회(마패브) 의원
  • 1919–1920총리로 타르투 강화 조약 체결
  • 1923–1925리가코구 의장
  • 1927–1928국가원로
  • 1931–1932외무장관
  • 1933국가원로(마지막 정부)

콘스탄틴 페츠

Konstantin Päts
외국 정치가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874–1956 ○ 옥사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의 정부 수반, 뒤에 「침묵의 시대」의 독재자

「우리가 이룬 가장 위대한 것은 에스토니아 국가의 창건이다」고 1940년 6월 승리절 연설에서 말했다.

1918년 2월 에스토니아 독립 선언을 이끌고 독립전쟁 첫 겨울 임시정부 수반으로 나라를 지켰다. 1934년 라이도네르와 함께 「침묵의 시대」의 권위주의 체제를 세웠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56년 구금 중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5탈린 부시장 취임
  • 1917에스토니아 자치주 임시정부 의장
  • 1918구국위원회 위원, 임시정부 수반으로 독립 선언 주도
  • 1921-24국가원로(사실상 총리) 2회 역임
  • 1934라이도네르와 함께 자기 쿠데타로 권위주의 체제 수립
  • 1938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 취임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얀손

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Янсон
당 서기국 · 조직인사 소련 에스토니아 1882–1938 ✕ 처형

에스토니아 출신 볼셰비키, 강제수용소 체계를 구상한 소련 법무인민위원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열아홉 살 얀손은 아버지와 함께 겨울궁전 행진에 나섰다가 총격 속에서 아버지가 중상을 입는 장면을 목격했다.

에스토니아 출신 볼셰비키 혁명가로, 1905년 레벨(탈린) 노동자대표소비에트 의장을 지낸 후 미국 망명 시기 에스토니아 노동자 사회주의연맹을 조직했다. 1920년대 중앙통제위원회 간부로 당 숙청을 주도했으며, 1928년 톨마초프·야고다와 함께 기존 교도소 체계를 OGPU 강제수용소 모델로 전환할 것을 스탈린에게 제안했다. 이후 러시아공화국 법무인민위원, 소련 수상운수인민위원을 지냈으나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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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레벨 노동자대표소비에트 의장
  • 1907–1917에스토니아 노동자 사회주의연맹 서기 (미국)
  • 1921–1923금속노조 중앙위원회 서기
  • 1923–1927중앙통제위원회 서기
  • 1927–1930중앙통제위원회 당콜레기야 서기
  • 1928–1930러시아공화국 법무인민위원
  • 1931–1934소련 수상운수인민위원
  • 1935–1937글라브세브모르푸티 부국장

얀 안벨트

Jaan Anvelt
비소련 혁명가 소련 에스토니아 1884–1937 ✕ 옥사

에스토니아 노동 코뮌의 수반, 1924년 봉기의 지도자

1918년 11월 나르바에 선포된 에스토니아 노동 코뮌의 수반으로 두 달 남짓 에스토니아 동부를 통치했고 1924년 탈린 봉기를 조직했다. 1937년 체포되어 심문 중 구타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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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볼셰비키에 가담해 혁명 운동에 나선 교사
  • 1912나르바에서 노동자 신문 『키르』 편집자
  • 1917에스틀랴트 소비에트 집행위원장, 탈린 권력 장악 주도
  • 1918에스토니아 노동 코뮌 평의회 의장
  • 1921에스토니아 공산당 지하 지도자, 1924년 12월 봉기 지휘
  • 1926주콥스키 공군사관학교 정치위원
  • 1929민간항공총국 부국장, 이후 국장
  • 1935코민테른 국제통제위원회 위원 겸 책임비서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4전체보기

1918.11–1920.10

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

1918년 11월 독일이 무너진 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신생 정부는 붉은 군대, 러시아 백군, 독일 자유군단이라는 세 세력 사이에서 국가를 만들어야 했다. 영국 함대의 지원과 핀란드 의용군, 토지개혁으로 농민을 얻은 에스토니아는 1919년 초 붉은 군대를 밀어냈고, 자국 땅에서 출발한 유데니치의 북서군이 페트로그라드 앞에서 무너지자 이를 무장해제한 뒤 1920년 2월 타르투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첫 독립 승인 조약을 맺었다. 라트비아는 스투치카의 소비에트 정부, 폰 데어 골츠의 독일군과 니에드라의 친독 정부, 베르몬트-아발로프의 리가 공격을 차례로 이겨 냈고, 리투아니아는 리트벨을 물리쳤지만 폴란드에 빌뉴스를 잃었다. 1920년 한 해에 맺어진 타르투·모스크바·리가·타르투(핀란드) 조약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북서 국경을 그렸으나 폴란드-리투아니아 분쟁은 남았다.

1939.08–1940.08

독소 불가침조약과 동유럽 분할

독소 불가침조약은 1939년 8월 23일 밤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소련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서명한 조약으로, 공개된 불가침 조항과 함께 동유럽에서의 세력 범위를 나누는 비밀 추가 의정서를 담고 있었다. 영국·프랑스와의 집단안보 협상이 폴란드의 소련군 통과 거부로 교착된 상황에서, 스탈린은 독일과의 협정을 선택했다. 조약 체결 1주일 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9월 17일 소련도 폴란드 동부로 진격했다. 9월 28일 양국은 독소 우호 및 국경 조약을 체결하여 폴란드 분할을 확정했고, 비밀 의정서를 개정해 리투아니아를 소련 세력권으로 넘기는 대가로 루블린과 바르샤바 일부를 독일 측에 양보했다. 이 조약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파기될 때까지 소련의 발트 3국 합병, 핀란드 겨울전쟁, 베사라비아 점령의 발판이 되었다.

1987–1991

발트 독립운동과 「발트의 길」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1940년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따라 소련에 병합된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고, 글라스노스트가 열리자 그 기억이 곧 정치가 되었다. 1987년 8월 탈린의 히르베파르크 집회가 비밀의정서를 처음 공개적으로 규탄했고, 1988년에는 세 공화국 모두에서 인민전선(에스토니아의 라흐바린네, 라트비아 인민전선, 리투아니아의 사유디스)이 결성되었다. 합창 축제의 전통 위에서 자란 이 대중운동은 「노래 혁명」이라 불렸다. 1988년 11월 에스토니아가 첫 주권 선언을 냈고, 1989년 8월 23일 조약 체결 50주년에는 200만 명이 세 나라의 수도를 잇는 600킬로미터의 인간 사슬 「발트의 길」을 만들었다. 그해 12월 인민대의원대회는 비밀의정서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효를 선언했다. 병합의 법적 근거가 소련 스스로의 손으로 부정된 것이다.

1991

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

1991년 8월, 신연방조약 체결을 막으려는 보수 강경파가 고르바초프를 감금하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크류치코프·야조프·파블로프 등이 주도한 이 쿠데타는 옐친이 전차 위에 올라 저항하고 시민이 결집하면서 사흘 만에 무너졌다. 쿠데타의 실패는 오히려 연방의 해체를 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