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라오스

사건 3 · 소속 인물 5 · 출신 인물 5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국가 변천

  1. 1953 프랑스프랑스에서 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3전체보기

  1. 1945–19548월 혁명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베트민은 8월 혁명으로 권력을 잡고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2. 1955–1975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1954년 제네바 협정이 약속한 통일 선거가 무산되자,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에 맞서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3. 1973–1975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수립1975년 12월 라오스의 군주제가 폐지되고 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정당·세력·조직 3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5전체보기

수반나 푸마

ສຸວັນນະພູມາ
라오스 국가기관 민족주의 라오스 라오스 1901–1984 ○ 자연사

중립파를 이끈 라오스의 마지막 왕실 총리

1975년 11월, 왕정의 마지막 총리가 이복동생 수파누봉과 함께 국왕 사왕 밧타나를 찾아가 퇴위를 권했다.

라오스 왕실 출신의 정치가로, 중립파를 이끌며 우파와 파테트라오 사이에서 여러 차례 연립정부를 이끈 총리였다. 왕정의 마지막 총리로서 1974년부터 제3차 연립정부 수반을 맡았다. 1975년 11월 수파누봉과 함께 루앙프라방으로 날아가 국왕 사왕 밧타나의 퇴위를 설득했고,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 직후 사임했다. 공화국 수립 뒤 새 정부의 고문으로 남아 1984년 비엔티안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이사라 임시정부 공공사업 장관
  • 1951–1954총리
  • 1956–1958총리 (민족화해·연립 내각)
  • 1960국민의회 의장·총리
  • 1962삼왕자 합의로 민족통일정부 총리
  • 1974–1975제3차 연립정부 총리
  • 1975사임, 새 정부 고문

수파누봉

ສຸພານຸວົງ

파테트라오와 초대 국가주석

1949년 미국 외교관에게 라오스를 ‘계급 없는 불교 국가’라 했던 왕자가, 뒷날 ‘붉은 왕자’로 불리는 공산 라오스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라오스 왕족 출신의 혁명 지도자로 파테트라오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연립정부와 민족화해 과정에 참여했으며 1975년 인민민주공화국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당과 정부를 이끈 카이손 폼비한과 국가 내 역할이 달랐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이사라 정부 외교장관·라오스 해방군 총사령관
  • 1950라오스자유전선(파테트라오) 창립·의장
  • 1956라오스애국전선(네오라오학삿) 의장
  • 1957–1958계획·재건·도시개발 장관
  • 1962–1963부총리 겸 경제계획 장관
  • 1974국가정치협의회 의장
  • 1975–1991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국가주석 (1986년부터 포우미 봉비칫이 대행)

누학 품사완

ໜູຮັກ ພູມສະຫວັນ

라오스 혁명 지도자·국가주석

1975년 12월 2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누학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정부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선출했다.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의장은 누학이 아닌 카이손 폼비한으로 기록되어 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창당 멤버이자 파테트라오 혁명의 핵심 지도자였다. 시암(현 태국) 무크다한의 라오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55년 창당 당시 정치국에서 카이손 다음 서열이었고 1972년 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에 들어가 경제 업무를 맡았다. 1975년 이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주석을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스 혁명운동 창립 참여
  • 1949동부지역 라오 저항위원회 의장
  • 1950라오 저항정부 재무장관
  • 1954제네바 회담 파테트라오 대표
  • 1955창당대회에서 정치국 서열 2위
  • 1972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진입, 경제 업무 담당
  • 1975부총리 겸 재무장관
  • 1989제2기 최고인민의회 의장
  • 1992국가주석

카이손 폼비한

ໄກສອນ ພົມວິຫານ

라오스 혁명과 경제개혁

1975년 12월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군주제 폐지와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지도자이자 1975년 공화국 수립 후 총리였다. 베트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재편했고, 1980년대에는 신경제체제로 이어지는 시장 지향 개혁을 이끌었다. 1991년 국가주석이 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42인도차이나공산당 입당
  • 1947라오스 북동부 저항 지도, 인민무장조직 구성
  • 1949라오인민해방군 창설
  • 1950저항정부 국방장관
  • 1955라오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75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 1986‘신경제체제’(찐타깐마이) 개혁 발표
  • 1991국가주석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5전체보기

수반나 푸마

ສຸວັນນະພູມາ
라오스 국가기관 민족주의 라오스 라오스 1901–1984 ○ 자연사

중립파를 이끈 라오스의 마지막 왕실 총리

1975년 11월, 왕정의 마지막 총리가 이복동생 수파누봉과 함께 국왕 사왕 밧타나를 찾아가 퇴위를 권했다.

라오스 왕실 출신의 정치가로, 중립파를 이끌며 우파와 파테트라오 사이에서 여러 차례 연립정부를 이끈 총리였다. 왕정의 마지막 총리로서 1974년부터 제3차 연립정부 수반을 맡았다. 1975년 11월 수파누봉과 함께 루앙프라방으로 날아가 국왕 사왕 밧타나의 퇴위를 설득했고,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 직후 사임했다. 공화국 수립 뒤 새 정부의 고문으로 남아 1984년 비엔티안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이사라 임시정부 공공사업 장관
  • 1951–1954총리
  • 1956–1958총리 (민족화해·연립 내각)
  • 1960국민의회 의장·총리
  • 1962삼왕자 합의로 민족통일정부 총리
  • 1974–1975제3차 연립정부 총리
  • 1975사임, 새 정부 고문

수파누봉

ສຸພານຸວົງ

파테트라오와 초대 국가주석

1949년 미국 외교관에게 라오스를 ‘계급 없는 불교 국가’라 했던 왕자가, 뒷날 ‘붉은 왕자’로 불리는 공산 라오스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라오스 왕족 출신의 혁명 지도자로 파테트라오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연립정부와 민족화해 과정에 참여했으며 1975년 인민민주공화국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당과 정부를 이끈 카이손 폼비한과 국가 내 역할이 달랐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이사라 정부 외교장관·라오스 해방군 총사령관
  • 1950라오스자유전선(파테트라오) 창립·의장
  • 1956라오스애국전선(네오라오학삿) 의장
  • 1957–1958계획·재건·도시개발 장관
  • 1962–1963부총리 겸 경제계획 장관
  • 1974국가정치협의회 의장
  • 1975–1991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국가주석 (1986년부터 포우미 봉비칫이 대행)

누학 품사완

ໜູຮັກ ພູມສະຫວັນ

라오스 혁명 지도자·국가주석

1975년 12월 2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누학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정부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선출했다.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의장은 누학이 아닌 카이손 폼비한으로 기록되어 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창당 멤버이자 파테트라오 혁명의 핵심 지도자였다. 시암(현 태국) 무크다한의 라오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55년 창당 당시 정치국에서 카이손 다음 서열이었고 1972년 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에 들어가 경제 업무를 맡았다. 1975년 이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주석을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스 혁명운동 창립 참여
  • 1949동부지역 라오 저항위원회 의장
  • 1950라오 저항정부 재무장관
  • 1954제네바 회담 파테트라오 대표
  • 1955창당대회에서 정치국 서열 2위
  • 1972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진입, 경제 업무 담당
  • 1975부총리 겸 재무장관
  • 1989제2기 최고인민의회 의장
  • 1992국가주석

카이손 폼비한

ໄກສອນ ພົມວິຫານ

라오스 혁명과 경제개혁

1975년 12월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군주제 폐지와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지도자이자 1975년 공화국 수립 후 총리였다. 베트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재편했고, 1980년대에는 신경제체제로 이어지는 시장 지향 개혁을 이끌었다. 1991년 국가주석이 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42인도차이나공산당 입당
  • 1947라오스 북동부 저항 지도, 인민무장조직 구성
  • 1949라오인민해방군 창설
  • 1950저항정부 국방장관
  • 1955라오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75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 1986‘신경제체제’(찐타깐마이) 개혁 발표
  • 1991국가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