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프랑스

사건 35 · 소속 인물 215 · 출신 인물 207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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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793 모나코모나코병합
  2. 1804 아이티아이티독립
  3. 1810 네덜란드네덜란드병합
  4. 1813 네덜란드네덜란드독립
  5. 1814 모나코모나코독립
  6. 1896 마다가스카르마다가스카르병합
  7. 1943 레바논레바논독립
  8. 1945 베트남베트남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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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46 시리아시리아독립
  2. 1951 리비아리비아독립
  3. 1953 라오스라오스캄보디아캄보디아독립
  4. 1956 모로코모로코튀니지튀니지독립
  5. 1958 기니기니독립
  6. 1960 가봉가봉니제르니제르마다가스카르마다가스카르말리말리모리타니모리타니베냉베냉부르키나파소부르키나파소세네갈세네갈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차드카메룬카메룬코트디부아르코트디부아르콩고-브라자빌콩고-브라자빌토고토고독립
  7. 1962 알제리알제리독립
  8. 1975 코모로코모로독립
  9. 1977 지부티지부티독립
  10. 1980 바누아투바누아투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35전체보기

  1. 1789–1799프랑스 혁명왕정의 재정 위기에서 시작해 신분 특권과 군주제를 무너뜨린 혁명.
  2. 1791–1804아이티 혁명1791년 8월 생도맹그 북부 평원의 노예 봉기는 파리의 어떤 법령보다 앞섰다.
  3.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4. 1793–1796방데 전쟁1793년 3월 30만 명 징집령은 성직자 민사기본법과 국유재산 매각으로 쌓인 서부 농촌의 불만에 불을 붙였다.
  5. 1848–18491848년 혁명1845~1847년의 흉작과 산업 불황 속에서 1848년 1월 팔레르모, 2월 파리의 봉기가 「인민의 봄」을 열었다.
  6. 1848.01–1849.08이탈리아의 1848년 혁명과 제1차 독립전쟁빈 체제 아래 오스트리아가 북부를 지배하고 여러 군주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에서 1848년 1월 12일 팔레르모 봉기가…
  7. 1848.02–1851.12프랑스 1848년 혁명과 제2공화국재산 자격 선거로 인구의 1%만 투표하던 7월 왕정은 1846~1847년 흉작과 공황, 부패 추문 속에서 선거 개혁을 요구한…
  8. 1870–1871보불전쟁에스파냐 왕위를 둘러싼 호엔촐레른 후보 문제와 비스마르크가 손질해 공개한 엠스 전보로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9. 1870–1871파리 코뮌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제2제정이 무너지고 파리가 넉 달 동안 포위된 뒤, 왕당파 다수의 국민의회와 무장한 파리 국민방위군이…
  10. 1885.08.07–1938.07.19영국의 성개혁 운동: 와일드 재판에서 『고독의 우물』까지 (1885~1938)1877년 브래들로·베전트 재판은 피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드러냈고, 그 와중에 맬서스 연맹이 세워졌다.
  11. 1893–1896제2인터내셔널 초기의 분쟁1893년 취리히 대회는 「정치 행동」을 인정하는 정당과 노동조합만 받는 결의로 란다우어 등 아나키스트를 쫓아냈고, 폴란드…
  12. 1897.05.15–1935.09.01독일 성개혁 운동과 나치의 파괴 (1897~1935)1871년 형법의 제175조와 제218조에 맞서 1897년 히르슈펠트의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 1905년 슈퇴커의…
  13. 1907–1919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제2인터내셔널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와 1912년 바젤에서 전쟁에 맞서겠다고 결의했다.
  14.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15. 1915–19215·4 운동과 중국공산당의 창당1915년 『신청년』이 연 신문화운동은 유교와 낡은 문체를 공격했고, 1919년 5월 4일 베르사유의 산둥 결정에 항의한…
  16.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1918년부터 1922년까지 소비에트 공화국은 백군 장군들과 십여 개 열강의 개입군에 포위된 채 생존을 건 전쟁을 치렀다.
  17.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18. 1918.10–1919.08독일 11월 혁명1918년 11월 킬 수병 봉기가 전국의 노동자·병사 평의회로 번져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 1918.10–1919.08헝가리 평의회 공화국1918년 10월 과꽃 혁명으로 들어선 카로이의 인민공화국은 영토 상실과 경제난 속에 1919년 3월 빅스 각서로 무너졌고…
  20. 1919–1921코민테른의 창설1919년 3월 볼셰비키는 세계 혁명이 임박했다고 보고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21. 1919–1938호르티 체제: 백색테러에서 우경화까지1919년 평의회 공화국이 무너진 뒤 호르티의 국민군 장교 부대들은 공산당원·사회민주당원·유대인을 겨냥한 헝가리 백색테러를…
  22. 1934–1938프랑스 인민전선과 1936년 총파업1934년 2월 극우 동맹들의 폭동을 계기로 사회당·공산당·급진당이 결성한 인민전선은 1936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해 레옹…
  23. 1934–1939코민테른의 인민전선 전환1928년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주적으로 삼던 코민테른은 1933년 나치 집권과 1934년 프랑스·오스트리아의 반파시즘 투쟁을…
  24. 1934.01–071934년 2월 6일 파시스트 폭동1934년 2월 6일 저녁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극우 동맹들이 하원 의사당을 향해 밀어붙이다 경찰 발포로 15명이 죽었다.
  25. 1939–1945추축국 점령하의 유럽: 협력과 저항1941~1942년 절정기에 추축국은 유럽 대륙 인구의 절반 이상을 다스렸다.
  26. 1940–1944프랑스 침공과 비시 정부이 사건은 1940년 5월 10일부터 1944년 해방까지 독일의 프랑스 정복과 제3공화국의 붕괴, 비시의 통치를 가리킨다.
  27. 1940–1944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해방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해방은 1940년 독일의 프랑스 패배와 비시 정부 수립에서 시작되어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프로방스…
  28. 1940.06.10–1943.05.13북아프리카 전역1940년 6월 이탈리아의 참전으로 시작된 북아프리카 전역은 이집트를 침공한 이탈리아군이 컴퍼스 작전으로 무너지고, 독일이…
  29. 1941–1944제2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제2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은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뒤 제기된 서유럽 재개전 요구가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30. 1945–19548월 혁명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베트민은 8월 혁명으로 권력을 잡고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31. 1947–1948마셜 플랜과 냉전의 시작1947년 미국이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을 내놓자, 소련은 그것을 미국 자본에 유럽을 종속시키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32. 1948–1949베를린 봉쇄와 공수베를린 봉쇄(1948년 6월 24일–1949년 5월 12일)는 소련이 서방 연합국이 장악한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33. 1955–1975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1954년 제네바 협정이 약속한 통일 선거가 무산되자,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에 맞서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34. 1961베를린 장벽 건설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을 둘러싸며 쌓은 156km의 경계 요새 시설이다.
  35. 1975헬싱키 협정헬싱키 협정(1975년 8월 1일)은 유럽 33개국과 미국, 캐나다 등 35개국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서명한…

정당·세력·조직 56

정당

세력·운동

무장 조직

기관·단체

국가기관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215전체보기

샤를 에메 드 루아랑

Charles Aimé de Royrand

방데 남부 전선을 지킨 중부군 사령관, 앙트람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1726년 생퓔장에서 태어나 나바르 보병연대와 아르마냐크 연대에서 복무하고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뒤 1780년 영지로 물러났다. 1793년 봉기가 일어나자 주민들의 추대를 망설이다 받아들여 방데 남부 전선을 지키는 중부군의 지휘관이 되었고, 야전 지휘는 부관 사피노 드 라레리에게 맡겼다. 6월과 7월 뤼송을 공격했으나 격퇴되었고 8월 14일 뤼송 전투에서도 졌다. 갈레른 행군에서 10월 26일 앙트람 전투 때 라로슈자클랭과 함께 중앙을 이끌어 서부군을 무너뜨렸으나 치명상을 입었고, 12월 5일 보제 근처에서 숨졌다. 동생 샤를 오귀스탱도 1793년 3월 봉기를 이끌다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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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0왕정 군대에서 퇴역
  • 1793방데 중부군 지휘관
  • 1793앙트람 전투에서 치명상

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

François Christophe de Kellermann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프랑스 프랑스 (작센계) 1735–1820 ○ 파리에서 사망

발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한 장군, 제국 원수

1792년 9월 20일 발미에서 켈레르만은 뒤무리에의 요청으로 중부군을 이끌고 합류해 서쪽 구릉에 포병을 배치했다. 탄약 마차 폭발로 동요한 보병을 안정시키고 ‘Vive la Nation’을 외쳐 사기를 결집했으며 프로이센군은 철수했다.

1735년 5월 28일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프랑스 군인이다. 작센 출신 가문이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했고 조부 대에 귀족이 되었다. 1750년(또는 1752년) 왕립군에 입대해 7년 전쟁에 참전했고, 1788년 준장이 되어 구체제에서 장성이 된 유일한 제국 원수가 되었다. 1789년 혁명에 호의적이었고 1792년 9월 20일 발미 전투에서 중부군을 이끌어 프로이센군을 격퇴한 공로로 ‘발미의 승리자’로 불렸다. 1793년 11월 불충성 혐의로 13개월 수감되었다가 로베스피에르 몰락 후 석방·복직했다. 1804년 제국 원수, 1808년 발미 공작이 되었고 1814년 상원에서 나폴레옹 퇴위에 찬성한 뒤 루이 18세 치하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1820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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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50프랑스 왕립군 입대(1750년 또는 1752년)
  • 1788마레샬 드 캉(준장) 진급
  • 1792중부군 사령관, 발미 전투 지휘
  • 1799상원의원
  • 1804제국 원수 임명(5월 19일)
  • 1808발미 공작(6월 3일)
  • 1814상원에서 나폴레옹 퇴위에 찬성, 왕정복고기 귀족원 의원

루이 조제프 드 부르봉콩데

Louis Joseph de Bourbon, prince de Condé

망명군 콩데군을 지휘한 부르봉 왕족

부르봉 왕가의 왕족이자 콩데 공으로, 혁명 초 프랑스를 떠나 콩데군을 이끌며 혁명 프랑스와 싸웠다.

부르봉 왕가의 콩데 공으로 혁명 직후 프랑스를 떠났다. 망명귀족으로 구성된 콩데군을 조직해 오스트리아군 등과 함께 혁명 프랑스에 맞서 싸웠다. 나폴레옹 몰락 뒤 프랑스로 돌아왔다.

상세 이력 보기
  • 1736–1740부르봉 왕가 방계로 태어나 1740년 아버지 루이 앙리 1세 사망으로 콩데 공위를 계승했다.
  • 1753베르사유에서 샤를로트 드 로앙과 혼인해 왕실 내 지위를 굳혔다.
  • 1750년대–1760년대루이 15세와 루이 16세의 왕실에서 그랑 메트르 드 프랑스를 지냈고, 7년 전쟁에 육군 장성으로 참전했다.
  • 1791코블렌츠에 근거를 두고 망명귀족 부대를 조직해 지휘했다.
  • 1792–1801콩데군을 이끌며 오스트리아군과 함께 싸웠고, 이후 영국·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부대는 1801년 해산되었다.
  • 1814–1818나폴레옹 몰락 후 파리로 돌아와 루이 18세의 왕실에서 다시 그랑 메트르를 맡았고, 1818년 사망했다.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Charles-François du Périer Dumouriez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프랑스 프랑스 1739–1823 ○ 영국에서 병사

프랑스 혁명전쟁의 장군·정치인, 1793년 오스트리아로 전향

1792년 발미와 즈마프의 승리로 혁명을 구했으나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한 뒤 파리 진군을 기도했고, 국민공회가 보낸 위원들을 오스트리아에 인도한 뒤 전향했다. 그 전향은 지롱드파를 매장했다.

프랑스 혁명전쟁기의 장군·정치인. 왕정 시대 왕군 장교로 7년 전쟁에 참전하고 셰르부르 항만 책임자를 지냈다. 혁명 후 자코뱅 클럽에 가담했으며 지롱드파의 지지로 1792년 3월 외무장관이 되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주도하고 잠시 육군장관을 겸했다. 루이 16세와 갈등해 사임한 뒤 북부군 사령관으로 켈레르만과 함께 발미(1792년 9월 20일)에서 프로이센군을 물리치고 즈마프(1792년 11월 6일)에서 승리했다.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한 뒤 파리 진군과 국민공회 해산, 1791년 헌법과 입헌군주정 복고를 기도했으나 군대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오스트리아 측으로 넘어갔다. 망명 생활 끝에 영국에서 사망했고 이름은 파리 개선문에 새겨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739캉브레에서 출생. 출처에 따라 1월 25일·26일·27일로 생년월일 기록이 갈린다.
  • 1792지롱드파 지지로 외무장관이 되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주도하고 잠시 육군장관을 지냈다.
  • 1792북부군 사령관으로 발미(9월 20일)와 즈마프(11월 6일)에서 승리했다.
  • 1793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하고 4월 오스트리아 측으로 전향했다.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207전체보기

샤를 에메 드 루아랑

Charles Aimé de Royrand

방데 남부 전선을 지킨 중부군 사령관, 앙트람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1726년 생퓔장에서 태어나 나바르 보병연대와 아르마냐크 연대에서 복무하고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뒤 1780년 영지로 물러났다. 1793년 봉기가 일어나자 주민들의 추대를 망설이다 받아들여 방데 남부 전선을 지키는 중부군의 지휘관이 되었고, 야전 지휘는 부관 사피노 드 라레리에게 맡겼다. 6월과 7월 뤼송을 공격했으나 격퇴되었고 8월 14일 뤼송 전투에서도 졌다. 갈레른 행군에서 10월 26일 앙트람 전투 때 라로슈자클랭과 함께 중앙을 이끌어 서부군을 무너뜨렸으나 치명상을 입었고, 12월 5일 보제 근처에서 숨졌다. 동생 샤를 오귀스탱도 1793년 3월 봉기를 이끌다 전사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780왕정 군대에서 퇴역
  • 1793방데 중부군 지휘관
  • 1793앙트람 전투에서 치명상

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

François Christophe de Kellermann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프랑스 프랑스 (작센계) 1735–1820 ○ 파리에서 사망

발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한 장군, 제국 원수

1792년 9월 20일 발미에서 켈레르만은 뒤무리에의 요청으로 중부군을 이끌고 합류해 서쪽 구릉에 포병을 배치했다. 탄약 마차 폭발로 동요한 보병을 안정시키고 ‘Vive la Nation’을 외쳐 사기를 결집했으며 프로이센군은 철수했다.

1735년 5월 28일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프랑스 군인이다. 작센 출신 가문이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했고 조부 대에 귀족이 되었다. 1750년(또는 1752년) 왕립군에 입대해 7년 전쟁에 참전했고, 1788년 준장이 되어 구체제에서 장성이 된 유일한 제국 원수가 되었다. 1789년 혁명에 호의적이었고 1792년 9월 20일 발미 전투에서 중부군을 이끌어 프로이센군을 격퇴한 공로로 ‘발미의 승리자’로 불렸다. 1793년 11월 불충성 혐의로 13개월 수감되었다가 로베스피에르 몰락 후 석방·복직했다. 1804년 제국 원수, 1808년 발미 공작이 되었고 1814년 상원에서 나폴레옹 퇴위에 찬성한 뒤 루이 18세 치하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1820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750프랑스 왕립군 입대(1750년 또는 1752년)
  • 1788마레샬 드 캉(준장) 진급
  • 1792중부군 사령관, 발미 전투 지휘
  • 1799상원의원
  • 1804제국 원수 임명(5월 19일)
  • 1808발미 공작(6월 3일)
  • 1814상원에서 나폴레옹 퇴위에 찬성, 왕정복고기 귀족원 의원

루이 조제프 드 부르봉콩데

Louis Joseph de Bourbon, prince de Condé

망명군 콩데군을 지휘한 부르봉 왕족

부르봉 왕가의 왕족이자 콩데 공으로, 혁명 초 프랑스를 떠나 콩데군을 이끌며 혁명 프랑스와 싸웠다.

부르봉 왕가의 콩데 공으로 혁명 직후 프랑스를 떠났다. 망명귀족으로 구성된 콩데군을 조직해 오스트리아군 등과 함께 혁명 프랑스에 맞서 싸웠다. 나폴레옹 몰락 뒤 프랑스로 돌아왔다.

상세 이력 보기
  • 1736–1740부르봉 왕가 방계로 태어나 1740년 아버지 루이 앙리 1세 사망으로 콩데 공위를 계승했다.
  • 1753베르사유에서 샤를로트 드 로앙과 혼인해 왕실 내 지위를 굳혔다.
  • 1750년대–1760년대루이 15세와 루이 16세의 왕실에서 그랑 메트르 드 프랑스를 지냈고, 7년 전쟁에 육군 장성으로 참전했다.
  • 1791코블렌츠에 근거를 두고 망명귀족 부대를 조직해 지휘했다.
  • 1792–1801콩데군을 이끌며 오스트리아군과 함께 싸웠고, 이후 영국·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부대는 1801년 해산되었다.
  • 1814–1818나폴레옹 몰락 후 파리로 돌아와 루이 18세의 왕실에서 다시 그랑 메트르를 맡았고, 1818년 사망했다.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Charles-François du Périer Dumouriez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왕정·왕당파 프랑스 프랑스 1739–1823 ○ 영국에서 병사

프랑스 혁명전쟁의 장군·정치인, 1793년 오스트리아로 전향

1792년 발미와 즈마프의 승리로 혁명을 구했으나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한 뒤 파리 진군을 기도했고, 국민공회가 보낸 위원들을 오스트리아에 인도한 뒤 전향했다. 그 전향은 지롱드파를 매장했다.

프랑스 혁명전쟁기의 장군·정치인. 왕정 시대 왕군 장교로 7년 전쟁에 참전하고 셰르부르 항만 책임자를 지냈다. 혁명 후 자코뱅 클럽에 가담했으며 지롱드파의 지지로 1792년 3월 외무장관이 되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주도하고 잠시 육군장관을 겸했다. 루이 16세와 갈등해 사임한 뒤 북부군 사령관으로 켈레르만과 함께 발미(1792년 9월 20일)에서 프로이센군을 물리치고 즈마프(1792년 11월 6일)에서 승리했다.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한 뒤 파리 진군과 국민공회 해산, 1791년 헌법과 입헌군주정 복고를 기도했으나 군대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오스트리아 측으로 넘어갔다. 망명 생활 끝에 영국에서 사망했고 이름은 파리 개선문에 새겨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739캉브레에서 출생. 출처에 따라 1월 25일·26일·27일로 생년월일 기록이 갈린다.
  • 1792지롱드파 지지로 외무장관이 되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주도하고 잠시 육군장관을 지냈다.
  • 1792북부군 사령관으로 발미(9월 20일)와 즈마프(11월 6일)에서 승리했다.
  • 17933월 18일 네르빈덴에서 패배하고 4월 오스트리아 측으로 전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