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아이티

사건 4 · 소속 인물 10 · 출신 인물 9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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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변천

  1. 1804 프랑스프랑스에서 독립
  2. 1844 도미니카 공화국도미니카 공화국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4전체보기

  1. 1789–1799프랑스 혁명왕정의 재정 위기에서 시작해 신분 특권과 군주제를 무너뜨린 혁명.
  2. 1791–1804아이티 혁명1791년 8월 생도맹그 북부 평원의 노예 봉기는 파리의 어떤 법령보다 앞섰다.
  3. 1792–1802프랑스 혁명 전쟁제1·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배경과 전개.
  4. 1914–1918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정당·세력·조직 0

현재 이 나라의 정당·세력·조직에 소속으로 기록된 인물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10전체보기

조르주 비아수

Georges Biassou

1791년 노예 봉기의 초기 지도자로 스페인 편에 서서 투생과 싸우고 플로리다에서 죽은 장군

1741년 생도맹그의 설탕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1791년 8월 부아 카이망 의식에서 부크만이 장프랑수아·장노와 함께 봉기를 이끌 사람으로 지목했고, 봉기 첫 몇 달 동안 장프랑수아와 함께 가장 중요한 반란 지도자로 약 4만 명을 이끌었다. 해방을 조건으로 봉기를 멈추겠다고 프랑스에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1793년 스페인 편에 서서 카를로스 4세의 흑인 보조군이 되었고, 프랑스로 돌아선 루베르튀르에게 패한 뒤에도 스페인에 충성했다. 1795년 바젤 조약 뒤 스페인령 플로리다의 세인트오거스틴으로 옮겨 이름을 호르헤로 바꾸고 흑인 민병대를 지휘했으며, 1801년 술자리 싸움 중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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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1북부 노예 봉기 지도자
  • 1793–1795스페인의 흑인 보조군 장군
  • 1796–1801스페인령 플로리다 흑인 민병대 지휘관

투생 루베르튀르

Toussaint Louverture

노예 출신으로 생도맹그를 통일해 1801년 헌법으로 종신 총독이 된 아이티 혁명의 지도자

1743년 생도맹그 브레다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나 1770년대에 해방되어 노예를 부리는 소농장주가 되었다. 1791년 봉기 뒤 비아수의 비서·부관으로 가담했고, 1793년 스페인군에 들어갔다가 프랑스의 노예제 폐지 뒤인 1794년 5월 프랑스 편으로 돌아섰다. 1796년 부총독이 되었고 1797년 송토나를 추방했으며 1798년 메이틀랜드와 영국군 철수 조약을 맺었다. 남부 전쟁에서 리고를 꺾고 1801년 1월 산토도밍고를 점령한 뒤 7월 종신 총독과 노예제 폐지, 농장 강제노동을 담은 헌법을 공포했다. 1802년 르클레르에게 항복했다가 체포되어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1803년 4월 7일 주 요새에서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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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1비아수 휘하 반란군의 비서·부관
  • 1793–1794스페인군 장교
  • 1794프랑스 공화국 편으로 전향
  • 1796생도맹그 부총독
  • 1797–1802생도맹그 총독, 1801년부터 종신
  • 1802–1803주 요새 수감

장자크 데살린

Jean-Jacques Dessalines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아이티 아이티 1758–1806 ✕ 암살

루베르튀르의 부관으로 원주민군을 이끌어 1804년 아이티 독립을 선포하고 황제 자크 1세가 된 혁명 지도자

1758년 생도맹그 북부 코르미에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나 감독까지 올랐고, 그를 산 자유 유색인의 성을 물려받았다. 1791년 봉기에 가담해 장프랑수아의 부관이 되었고, 1794년부터 투생 루베르튀르의 주요 부관으로 1799년 여단장에 올랐다. 1802년 크레타피에로에서 1,300명으로 20일간 포위를 버텼고, 르클레르에게 투항했다가 노예제 복원 움직임에 10월 페티옹과 함께 다시 봉기해 반란군을 이끌었다. 1803년 11월 베르티에르에서 로샹보를 꺾고 1804년 1월 1일 고나이브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남은 프랑스인 3,000~5,000명의 학살을 명령했고 10월 황제 자크 1세로 대관했으며, 농장 노동을 강제해 반감을 사 1806년 10월 17일 퐁루주에서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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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1장프랑수아 휘하 반란군 부관
  • 1794–1802투생 루베르튀르의 부관, 1799년 여단장
  • 1803원주민군 총사령관
  • 1804아이티 종신 총독
  • 1804–1806아이티 황제 자크 1세

앙드레 리고

André Rigaud

남부의 자유 유색인 군대를 이끌다 1799~1800년 남부 전쟁에서 루베르튀르에게 패한 물라토 지도자

1761년 레카이에서 부유한 프랑스인 농장주 아버지와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보르도에서 금세공을 배웠다. 돌아와 오제와 레몽의 뒤를 이어 자유 유색인의 권리를 대변했고, 1790년대 중반 서부·남부에서 군대를 이끌어 폴브렐로부터 통치권을 받았으며 1794년 레오간을 되찾고 티뷔롱을 탈환해 영국군을 막았다. 남부의 권력을 투생 루베르튀르에게 내주려 하지 않았고 에두빌의 부추김 속에 1799년 6월 남부 전쟁이 터졌다. 패한 뒤 1800년 프랑스로 떠났고, 1802년 르클레르 원정군과 함께 돌아왔다가 추방되어 투생과 같은 주 요새에 갇혔다. 1810년 12월 세 번째로 아이티에 돌아와 페티옹과 크리스토프 모두에 맞서 남부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1811년 9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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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3–1798서부·남부의 자유 유색인 군대 지휘관
  • 1799–1800남부 전쟁에서 투생 루베르튀르와 대결
  • 1800–1802프랑스 망명
  • 1802르클레르 원정군과 함께 귀환, 다시 추방
  • 1810–1811남부국 대통령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9전체보기

조르주 비아수

Georges Biassou

1791년 노예 봉기의 초기 지도자로 스페인 편에 서서 투생과 싸우고 플로리다에서 죽은 장군

1741년 생도맹그의 설탕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1791년 8월 부아 카이망 의식에서 부크만이 장프랑수아·장노와 함께 봉기를 이끌 사람으로 지목했고, 봉기 첫 몇 달 동안 장프랑수아와 함께 가장 중요한 반란 지도자로 약 4만 명을 이끌었다. 해방을 조건으로 봉기를 멈추겠다고 프랑스에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1793년 스페인 편에 서서 카를로스 4세의 흑인 보조군이 되었고, 프랑스로 돌아선 루베르튀르에게 패한 뒤에도 스페인에 충성했다. 1795년 바젤 조약 뒤 스페인령 플로리다의 세인트오거스틴으로 옮겨 이름을 호르헤로 바꾸고 흑인 민병대를 지휘했으며, 1801년 술자리 싸움 중에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791북부 노예 봉기 지도자
  • 1793–1795스페인의 흑인 보조군 장군
  • 1796–1801스페인령 플로리다 흑인 민병대 지휘관

투생 루베르튀르

Toussaint Louverture

노예 출신으로 생도맹그를 통일해 1801년 헌법으로 종신 총독이 된 아이티 혁명의 지도자

1743년 생도맹그 브레다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나 1770년대에 해방되어 노예를 부리는 소농장주가 되었다. 1791년 봉기 뒤 비아수의 비서·부관으로 가담했고, 1793년 스페인군에 들어갔다가 프랑스의 노예제 폐지 뒤인 1794년 5월 프랑스 편으로 돌아섰다. 1796년 부총독이 되었고 1797년 송토나를 추방했으며 1798년 메이틀랜드와 영국군 철수 조약을 맺었다. 남부 전쟁에서 리고를 꺾고 1801년 1월 산토도밍고를 점령한 뒤 7월 종신 총독과 노예제 폐지, 농장 강제노동을 담은 헌법을 공포했다. 1802년 르클레르에게 항복했다가 체포되어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1803년 4월 7일 주 요새에서 옥사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791비아수 휘하 반란군의 비서·부관
  • 1793–1794스페인군 장교
  • 1794프랑스 공화국 편으로 전향
  • 1796생도맹그 부총독
  • 1797–1802생도맹그 총독, 1801년부터 종신
  • 1802–1803주 요새 수감

쥘리앵 레몽

Julien Raimond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프랑스 아이티 1744–1801 ○ 자연사

파리에서 자유 유색인의 평등권 운동을 이끌고 1801년 생도맹그 헌법 기초에 참여한 쪽빛 염료 농장주

생도맹그 남부에서 프랑스인 식민자 아버지와 유색인 어머니 사이에 자유 유색인으로 태어나, 1780년대 노예 100명 넘게 가진 쪽빛 염료 농장주가 되었다. 1785년 프랑스로 건너가 자유 유색인 차별법 개혁을 식민부에 요구했고, 1789년 12월 다른 대표들과 국민제헌의회에 청원서를 냈다. 오제, 그레구아르 신부, 흑인우호협회(뒤에 그 지도자가 되었다)와 함께 자유 유색인의 평등권을 의회의 주요 식민지 문제로 만들어 1791년 5월 15일 법령을 끌어냈다. 점진적 노예 해방을 구상했으나 송토나의 해방이 앞질렀다. 정부 대표로 돌아가 플랜테이션 재건을 도왔고, 1801년 루베르튀르의 헌법을 기초한 위원 10명 가운데 하나로 일한 직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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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5프랑스로 건너가 차별법 개혁 요구
  • 1789국민제헌의회에 자유 유색인 청원
  • 17915월 15일 법령으로 자유 유색인 투표권 획득
  • 1801생도맹그 헌법 기초 위원

장자크 데살린

Jean-Jacques Dessalines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아이티 아이티 1758–1806 ✕ 암살

루베르튀르의 부관으로 원주민군을 이끌어 1804년 아이티 독립을 선포하고 황제 자크 1세가 된 혁명 지도자

1758년 생도맹그 북부 코르미에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나 감독까지 올랐고, 그를 산 자유 유색인의 성을 물려받았다. 1791년 봉기에 가담해 장프랑수아의 부관이 되었고, 1794년부터 투생 루베르튀르의 주요 부관으로 1799년 여단장에 올랐다. 1802년 크레타피에로에서 1,300명으로 20일간 포위를 버텼고, 르클레르에게 투항했다가 노예제 복원 움직임에 10월 페티옹과 함께 다시 봉기해 반란군을 이끌었다. 1803년 11월 베르티에르에서 로샹보를 꺾고 1804년 1월 1일 고나이브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남은 프랑스인 3,000~5,000명의 학살을 명령했고 10월 황제 자크 1세로 대관했으며, 농장 노동을 강제해 반감을 사 1806년 10월 17일 퐁루주에서 암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791장프랑수아 휘하 반란군 부관
  • 1794–1802투생 루베르튀르의 부관, 1799년 여단장
  • 1803원주민군 총사령관
  • 1804아이티 종신 총독
  • 1804–1806아이티 황제 자크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