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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프 문서집 (1923~1939)

인물니콜라이 예조프, 이오시프 스탈린, 겐리흐 야고다, 레프 트로츠키, 라브렌티 베리야, 미하일 톰스키, 게오르기 몰차노프, 미하일 프리놉스키, 세르게이 키로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레프 카메네프, 알렉세이 리코프, 니콜라이 부하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라자르 카가노비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게오르기 말렌코프, 안드레이 비신스키, 카를 파우케르, 바실리 울리히, 니콜라이 리치코프, 시몬 페틀류라, 네스토르 마흐노, 세묜 피린, 막심 고리키,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게오르기 퍄타코프, 그리고리 소콜니코프, 카를 라데크, 레오니트 세레브랴코프, 알렉산드르 우스펜스키, 아르투르 아르투조프, 미하일 투하쳅스키, 얀 가마르니크, 이오나 야키르, 이에로님 우보레비치, 아우구스트 코르크, 로베르트 에이데만, 보리스 펠트만, 비토프트 푸트나, 아벨 예누키제, 프세볼로트 발리츠키, 그리고리 오르조니키제, 겐리흐 류시코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파벨 포스티셰프, 알렉산드르 포스크료비셰프, 블라디미르 레닌, 스타니슬라프 레덴스, 레오니트 자콥스키, 야코프 아그라노프, 안드레이 즈다노프, 아나스타스 미코얀, 마트베이 시키랴토프, 세르게이 므라치콥스키, 이반 스미르노프, 니콜라이 우글라노프, 바실리 시미트, 레본 미르조얀, 레프 카라한, 피에르 라발, 앤서니 이든, 니콜라이 블라시크, 마르테먄 류틴, 이즈라일 다긴, 블라디미르 쿠르스키, 세르게이 미로노프, 빅토르 주라블료프, 미하일 리트빈, 레프 벨스키, 레오니트 니콜라예프, 야코프 리프시츠, 마트베이 베르만, 스타니스와프 코시오르, 블라디미르 체사르스키, 세라피마 리조바, 게오르기 프로코피예프, 그리고리 예브도키모프, 레오폴트 아베르바흐, 이오시프 운쉴리흐트, 글레프 보키, 보리스 셰볼다예프, 니키타 피보바로프, 알렉산드르 벨로보로도프, 알렉산드르 슬렙코프, 니콜라이 골로데트, 알렉산드르 체르뱌코프, 로베르트 에이헤, 블라스 추바리, 세르고 고글리제, 그리고리 그린코, 폴리카르프 므디바니, 빌헬름 크노린, 오시프 퍄트니츠키, 예브헨 코노발레츠,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이그나티 소스놉스키, 알렉산드르 콜차크, 안톤 데니킨, 니키타 흐루쇼프, 미르 자파르 바기로프, 파벨 불라노프, 블라디미르 넵스키, 게오르기 블라고느라보프 용어내무인민위원부(NKVD), 대숙청, 예조프시나, NKVD 작전명령 제00447호, 민족 작전, 폴란드 작전, 트로이카, 제1범주 / 제2범주 사건대숙청

1937년 6월 당 중앙위원회 총회 보고 요지 (6월 23일)

1937년 6월 23일

보고 계획

I. 서론.

1. 지난 3개월 동안 NKVD 기관은 전 트로츠키주의자, 우파, 사회혁명당원 등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파시스트 반소비에트 조직을 적발했다.

2. 이들 반소비에트 조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가). 붉은 군대의 최고위 지휘관들인 투하쳅스키, 가마르니크, 야키르, 우보레비치, 코르크, 에이데만 등이 이끄는 군사 파시스트 음모.

나). NKVD 내에서 야고다가 이끄는 우파-파시스트 음모.

다). 예누키제가 이끄는 크렘린 우파-파시스트 음모 그룹.

라). 운쉴리흐트, 로가놉스키, 돌레츠키 등이 이끄는 최대의 간첩 조직 “폴란드군사조직(ПОВ)”.

마). 골로데트와 체르뱌코프가 이끄는 벨라루스의 폴란드 민족민주주의자 그룹.

바). 셰볼다예프, 피보바로프, 라린 등이 이끄는 아조프-흑해 주 및 오르조니키제 주의 반소비에트 우파-트로츠키주의 그룹. 트로츠키주의자와 우파뿐 아니라 최대의 반소비에트 카자크 조직과 파르티잔·봉기 조직까지 통합했다.

사). 변강당위원회 제1서기 라주모프가 이끄는 동시베리아의 반소비에트 우파-트로츠키주의 그룹.

아). 스베르들롭스크 주당위원회 제1서기 카바코프가 이끄는 우랄의 우파 반소비에트 그룹.

자). 주당위원회 서기 루먄체프가 이끄는 서부 주의 반소비에트 우파-파시스트 그룹.

차). 변강 집행위원회 의장 크루토프, 시미트 등이 이끄는 극동의 최대 우파-트로츠키주의 간첩 조직.

카). 특별이주민들 사이의 파르티잔·봉기 간부를 통합한 서시베리아의 대규모 우파 조직.

타). 주 집행위원회 의장 바실리예프와 시 소비에트 의장 카시린이 이끌며, 러시아전군연합(РОВС)과 연계되어 카자크 및 봉기 간부를 통합한 오렌부르크 주의 반소비에트 카자크 조직.

파). 농업인민위원부와 국영농장인민위원부 기관 내의 파괴분자 우파-트로츠키주의 반소비에트 그룹.

3. 가장 중요한 것만 열거했다. 이 밖에도 거의 모든 변강과 주에서 우파, 트로츠키주의자, 지노비예프주의자, 사회혁명당원, 멘셰비키 등이 블록을 이룬 반소비에트 조직이 적발되었다.

4. 이 모든 반소비에트 파시스트 그룹은 저마다 특별한 임무를 띠고 따로 활동했지만, 서로 극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대략 1933년, 우파와 트로츠키주의자 등의 패배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을 때, 여러 그룹의 발의로 연합 중앙들의 중앙(일부는 접촉 중앙이라고 부른다)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우파, 트로츠키주의자, 지노비예프주의자, NKVD 출신 군사 음모가들, 사회혁명당원, 멘셰비키 등을 통합했다.

5. 연합 중앙들의 중앙에 들어간 자들은 다음과 같다. 우파,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측에서 리코프, 톰스키, 부하린, 군사 그룹과 체카 음모가 그룹 측에서 예누키제, 지노비예프주의자 측에서 카메네프(나중에는 소콜니코프), 트로츠키주의자 측에서 퍄타코프.

6. 반소비에트 파시스트 조직들의 연합 중앙들의 중앙이 내세운 주된 임무는 소비에트 권력의 전복과 소련에서의 자본주의 복원이었다.

이를 위해 소비에트 정부를 전복할 여러 계획을 세웠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가) 이른바 “궁정 쿠데타”.

나) 무장 봉기와 외국 간섭군의 지원.

다)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전쟁에 대비한 패배 준비와, 이들에 대한 정치적·영토적 양보를 토대로 한 권력 장악.

7. 중앙들의 중앙은 한편으로 독일, 일본, 폴란드의 파시스트 정부 집단과 연결되고, 다른 한편으로 반소비에트 당파인 트로츠키주의자, 멘셰비키, 사회혁명당의 해외 대표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집단과 접촉하면서 양면분자의 수법을 이용해 권력 장악 계획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중앙들의 중앙은 다음과 같이 했다.

가). 자기의 모든 조직을 외국 파시스트 정보기관에 복무하게 하고, 그 임무에 따라 정보기관의 간첩 지시를 모두 수행했다.

나). 전쟁에 대비한 파괴 공작 요원을 만들고, 우리 경제와 국방의 여러 주요 부문에서 소련의 방위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파괴 공작를 조직했다.

다). 국민경제에서 파괴 공작을 광범하게 전개했다.

라). 전쟁 시 봉기를 조직하기 위해 전 파르티잔, 백군 카자크, 쿨라크, 이주민, 형사범 등에서 봉기 요원을 양성하고 모집했다.

마). 당과 소비에트 정부의 지도자들에 대한 개인 테러를 임무로 하는 테러 그룹의 광범한 망을 조직했다.

8. 전 반대파에서 백위대까지 모든 반소비에트 조직이 통합되는 과정의 합법칙성.

이 통합의 기초는 다음과 같다.

가). 목표의 공통성 — 자본주의의 복원.

나). 전복 공작 수법의 공통성(양면분자 행위 등). 그 결과로 드넓은 근로대중 사이에 사회적 기반도 영향력도 갖지 못한 것.

다). 상호 이해관계. 한편으로 파시스트 국가와 파시스트 정보기관은 반소비에트 조직의 활동에 이해관계가 있고, 반대로 파시스트 반소비에트 조직은 외국과 외국 파시스트 정보기관의 지원에 이해관계가 있다. 그 지원 없이는 이들이 권력을 잡을 수 없다.

9. 음모의 전반적 양상은 전원회의 위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적발된 파시스트 그룹의 반소비에트 활동은 구체적으로 다음 사실들로 특징지어진다.

NKVD 내 음모

지난번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나는 이미 지적했다. NKVD가 트로츠키주의 도적떼와 우파 배신자들의 반소비에트 활동을 적발하는 데 최소 4년이나 어처구니없이 늦은 것은 국가안전 기관의 사업에 있는 일반적 결함 때문만이 아니라, 체카 일부 일꾼들의 구체적이고 범죄적이며 배신적인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사실들의 바탕에 깔린 원인을 아직 충분히 드러낼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이 현상들의 참된 뿌리와 원천을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추가 수사로 다음 사실이 아주 정확하게 확인되었다. 트로츠키주의-지노비예프주의 및 우파 개새끼들은 여러 해 동안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파괴 행위, 파괴 공작, 간첩 행위, 테러, 키로프 동지의 흉악한 살해를 저질렀고, 그 목적은 소비에트 권력의 전복과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복원이었다. 이들의 이런 배신적 반혁명 활동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반혁명과의 투쟁을 사명으로 하는 바로 그 국가기관 안에 오랫동안 파시스트 음모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 음모를 이끈 자는 이 기관의 전 지도자이자 역겨운 조국 배신자, 형사범이자 독일 간첩인 야고다와 NKVD 내 그의 최측근들이었다.

NKVD 내 음모는 결코 NKVD에서 일하는 사람들 일부의 고립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트로츠키주의자와 우파 배신자들의 더 광범한 음모의 일부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NKVD 내 음모는 트로츠키주의-우파 연합 중앙과도, 투하쳅스키, 우보레비치, 코르크 등의 군사 간첩 패거리와도, 그리고 음모의 모든 가담자와 지도자가 오래전부터 복무해 온 외국 정보기관들과도 극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야고다의 배신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그는 당이 트로츠키주의자 및 지노비예프주의자와 투쟁하던 중에 당 몰래 트로츠키주의 입장에 서서 양면분자 전술을 폈다.

1928년 당내에서 우파 반대파가 형성될 때, 야고다는 그 지도자들인 리코프, 부하린, 톰스키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우파 지하 조직에 들어갔고 그 주요 지도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파가 당에 반대해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이 문제로 리코프와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코프는 내게 우파의 강령을 설명하고, 그들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맞서 공공연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 뒤 내게 곧바로 ‘누구 편이냐’고 물었다. 나는 리코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한다. 나는 당신들 편이다. 그러나 내가 OGPU 부의장 자리에 있기 때문에 공공연히 당신들 편에 설 수는 없고 그러지도 않겠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그러면 나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맞선 당신들의 투쟁을 내 쪽에서, OGPU 쪽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돕겠다.’”

(야고다의 진술에서)[1].

내무인민위원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반혁명과 싸우는 기관으로서 막대한 정치적 의의를 지니므로, 우파 중앙의 일원이 NKVD 수장으로 있다는 것은 우파와 트로츠키주의자, 그 밖의 반혁명 세력에게 이른바 각별한 가치를 지닌 일이었다.

우파 중앙의 일원이었던 야고다는 1928년부터 중앙의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했고, 우파에게 OGPU의 비밀 자료를 제공했으며, 우파는 이를 당에 맞선 투쟁에 이용했다. 또 당 중앙위원회의 조치들을 그들에게 알려 주는 등, 한마디로 우파 배신자들이 당과 소비에트 권력에 맞선 투쟁에서 벌인 전복 활동 전체에 적극 가담했다.

1928~1929년에 당이 우파를 분쇄한 뒤, 우파 중앙은 야고다에게 우파 조직이 완전히 적발되지 않도록 지켜 내라고 지시한다. 부분적으로 적발될 경우에는 조직의 적발을 온갖 방법으로 얼버무리고 늦추며 그 중앙을 감싸라는 것이었다. 우파 중앙이 야고다에게 맡긴 임무의 핵심은 야고다가 OGPU 지도자로서 OGPU 기구를 이용해 우파의 전복 활동이 앞으로 더 전개될 수 있는 온전한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있었다. 야고다는 그 자신이 수사에서 진술했듯이 이 임무를 수행했다.

“...우파 중앙은 내게 조직을 완전한 적발로부터 지켜 내는 임무를 맡겼다. 이 일로 리코프와 대화하면서 나는 내 입장을 이렇게 규정했다. ‘당신들은 행동하라. 나는 당신들을 건드리지 않겠다. 그러나 어디선가 터져 나와 내가 탄압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면, 우파 사건을 국지적 그룹들로 축소하려고 애쓰겠다. 조직 전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하물며 조직의 중앙은 건드리지 않겠다.’”

(야고다의 진술에서).

당에 맞선 공공연한 투쟁에서 완전히 파산한 우파는 제16차 당대회 뒤 다음을 자기 임무로 삼는다. 폭력적 쿠데타와 당·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를 통한 소비에트 권력의 전복,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소련의 패배, 소련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복원이다. 야고다의 직접적인 도움 덕분에 트로츠키주의자와 우파의 반혁명 활동은 당에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벌을 받지 않는다.

트로츠키주의-우파 연합 중앙의 임무에 따라 움직인 야고다는 NKVD 내부에 음모를 조직한다. 이 음모는 우파와 트로츠키주의자의 전반적인 반소비에트 파시스트 음모의 일부였다.

음모에는 야고다가 포섭한 OGPU의 다음 지도급 일꾼들이 가담했다.

  1. 프로코피예프 — 소련 내무부인민위원. 전 트로츠키주의자이며, 야고다 자신의 시인에 따르면 뼛속까지 반당적인 인물.
  2. 몰차노프 — NKVD 비밀정치부장. 과거 형사범 부류로, 형사 범죄로 여러 차례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자기 당력을 위조했고, 이바노보의 우파 조직 구성원.
  3. 파우케르 — NKVD 작전부장. 정부 위원들의 경호를 직접 관장했다. 오랜 독일 간첩으로, 야고다와 가장 가깝고 그에게 충직한 인물.
  4. 가이 — NKVD 특수부장. 독일 및 일본 간첩으로, 완전히 타락한 범죄자이며 매독 환자.
  5. 샤닌 — NKVD 수송부장.
  6. 아르투조프 — 전 NKVD 해외정보부장이자 붉은 군대 정보국 부국장. 간첩으로, 간첩 경력이 거의 30년에 이르며 독일, 영국, 폴란드, 프랑스 정보기관에 동시에 복무했다.
  7. 오스트롭스키 — NKVD 행정경리국장. 독일 간첩으로, 철저히 타락한 부류.
  8. 볼로비치 — NKVD 작전부 부부장. 독일 정보기관의 레지덴트로, 적기 훈장을 범죄적으로 가로챘다.
  9. 루리예 — NKVD 공병건설부장. 독일 간첩으로, 밀수품을 야고다에게 가져다주고, 해외에서 다이아몬드를 팔고, 외화를 송금하는 등 야고다의 가장 비열한 지시를 수행했다.
  10. 피린 — NKVD 굴라크 부국장. 독일 간첩.
  11. 불라노프 — NKVD 참사회 서기. 야고다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순전히 형사 범죄 성격의 가장 추악한 지시를 야고다를 위해 수행했다.
  12. 비네츠키 — NKVD 작전부 일꾼. 독일 간첩이자 뇌물 수수자.
  13. 체르토크 — NKVD 경제부장 보좌. 독일 간첩.
  14. 보키 — NKVD 스페츠오트델 부장. 오랜 프리메이슨이자 영국 간첩으로, 가장 역겨운 변태의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진 자이자 사디스트.
  15. 마르카리얀 — 민경총국 부국장. 타락한 인물.

야고다는 중앙 기구에서 음모 가담자를 포섭하는 것 말고도 지방에도 자기 망을 심는다. 고리키 변강 내무인민위원부 지방국(УНКВД) 국장 포그레빈스키를 음모 가담자로 포섭했는데, 그는 야고다와 가까운 측근으로 형사 범죄 세계와 긴밀히 연결된 자였다.

사라토프 변강 지방국장 필랴르, 오랜 폴란드 간첩이자 전 발트 지역 남작 필랴르 폰 필하우 [원문대로].

자포로제츠 - OGPU 레닌그라드 전권대표 대리, 전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원이자 독일 간첩, 그 밖의 자들.

야고다와 그 공범들의 자백으로 아주 정확하게 확인된 바에 따르면, 야고다는 위 인물들이 외국 정보기관에 간첩으로 복무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감추고 있는 범죄, 그들의 도덕적 타락과 형사 범죄 전력을 알고 있었다.

야고다는 이들의 범죄와 악덕에 관해 자기가 아는 바를 음모 가담자 포섭에 더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포섭 대상자들로서도 소비에트 권력 전복을 겨냥한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라는 외국 정보기관의 직접 임무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만큼 기꺼이 포섭에 응했다.

음모 가담자를 포섭하면서 야고다는 매수를 널리 이용했고, 이를 위해 막대한 외화 기금을 만들었다. 공갈 수법, 승진과 출세 약속, 자기 뜻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살해 위협 등도 이용했다.

음모 활동을 은폐하고 가담자를 더 효과적으로 포섭하기 위해 야고다는 자기가 만들어 낸 “이론”을 널리 이용했다. 국가 안에서 정보기관은 소비에트 정부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이른바 자립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야고다는 진술에서 NKVD를 당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체키스트들 사이에 특권 신분의 기풍을 기르는 노선을 음모 목적으로 아주 의식적으로 추진했다고 시인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당과의 거리감을 불어넣었고, 국가 정보기관은 당으로부터, 특히 정부로부터 극도로 독립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들의 의식 속에 길러 주었다. 그러면서 부르주아 국가들의 경험을 끌어대며, 그런 나라들의 정부는 바뀌어도 정보기관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고 논증했다.”

야고다는 NKVD 체계의 모든 주요 부문에 음모의 거점을 심고 이들 부문에 자기 사람들을 배치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NKVD의 거의 모든 부서와 작전 거점의 지도부는 예외 없이 음모가들의 손에 있었다. 심지어 체육 단체 “디나모” 안에도 간첩 테러 조직이 있어, 그 가담자들은 음모에 들어가 있었고, 야고다의 임무와 독일 정보기관의 직접 지시에 따라 당과 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NKVD 주요 부서장 자리를 차지한 음모가들이 자기 최측근 일꾼들 사이에서도 공범을 포섭하려 애썼고, 여러 경우에 성과가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야고다가 NKVD 내부에 조직한 음모 덕분에 독일, 영국, 폴란드, 일본 등의 정보기관은 국가안전 기관의 심장부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고, 특별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모든 비밀 자료에 접근했으며, 해외의 우리 정보망을 완전히 드러내고, 우리 정보기관에 대한 체계적인 허위 정보 공작을 조직할 수 있었다.

야고다가 NKVD 내부에 만든 음모 조직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소련의 패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NKVD 내 음모 조직은 야고다를 비롯한 우파 중앙 가담자들이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이를테면 몰차노프는 우파 중앙의 직접 결정으로 비밀정치부장에 임명되었다.

“...톰스키의 집에서 열린 회의에서, 우파의 사업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고, 새롭고 크게 확대되어 활발해지고 있는 토대 위에서 그들이 활동을 전개할 온전한 가능성을 OGPU 쪽에서 보장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나왔다. 나는 혼자서는 어렵고 비밀부에 내 사람을 앉히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대답했다. 톰스키는 OGPU 이바노보 현 지부장 몰차노프가 우파로 알려져 있으니 바로 그를 비밀부장에 앉혀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몰차노프는 OGPU 비밀정치부장에 임명되었다. 이미 1927년에 내게 몰차노프를 불리하게 만드는 자료가 들어와 있었다. 카프카스 어딘가에서 저지른 그의 형사 범죄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이바노보에서 불러 이 자료 이야기를 했다. 몰차노프는 그 자리에서 과거의 이 죄를 시인하고, 말하자면 고해하듯이 자신의 또 다른 죄, 당력을 부풀려 적어 넣은 일까지 이야기했다.

나는 내게 개인적으로 충성할 사람들이 필요하며, 이제 그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지만, 내 지시를 무엇이든 수행한다면 그에 관한 자료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몰차노프는 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야고다의 진술에서).

이 문제에 관해 몰차노프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야고다는 나를 OGPU 비밀정치부장 자리에 임명하는 일이 우파 중앙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내가 정치 활동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몰차노프의 진술에서).

야고다는 몰차노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 밑에서는 편안한 삶을 볼 수 없을 거요. 우파 밑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질 겁니다. 당신은 영국 장관들처럼 살게 될 것이고, 권력도 더 커질 겁니다.”

(몰차노프의 진술에서).

음모가들의 모든 활동은 외국 정보기관의 직접 임무에 따라 진행되었다.

신문을 받은 음모 가담자들은 수사에서, 자기 주인들인 외국 정보기관의 모든 지시를 수행하여 소비에트 기관의 정보 공작을 완전히 마비시키려 했다고 진술했다. 이를테면 아르투조프는 독일 정보기관 책임자 폰 브레도프의 임무에 따라 우리의 대독 공작을 억눌렀다. 그 밖에도 아르투조프는 특별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비밀 자료를 독일인들에게 넘겼다. 아르투조프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넘겨준 자료가 적지 않았다. 다소라도 값어치 있는 것은 모두 넘겼다. 무엇보다 먼저 독일 관련 공작에 관한 자료였다. 우리가 감시하던 여러 독일인에 관한 제8과의 보고 요약을 모두 넘겼다. 독일 정보기관에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넘겼다.”

아르투조프는 우리 비밀 요원들을 독일인에게 넘겨주는 공작을 활발히 벌였다. 그는 투하쳅스키의 군사 간첩 패거리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고 이 정보의 출처를 제거했다. 아르투조프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932년에 요원 270호의 정보로, 소련에 독일 국방군과 연결되어 독일을 위해 일하는 광범한 군사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조직은 소련 공산당 내부의 반대파 집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270호의 보고에 따르면, 이 조직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소련 장군 투르구예프였다(투하쳅스키가 이 성으로 독일을 다녀왔다). 270호의 공작을 발전시켰다면 NKVD 기관이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시테인브류크(독일 간첩으로 역시 NKVD 일꾼)는 이 요원을 독일인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270호는 제거되었다. 그는 살해되었다.”

(아르투조프의 진술에서).

<야고다 음모의 또 다른 가담자 루리예는 자신의 간첩 활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나는 독일 국민 울리히를 통해 독일 정보기관의 일에 끌려 들어갔다. 그는 1927년 내가 당시 공무 출장 중이던 베를린에서 나를 포섭했다. 울리히는 내게 OGPU 기관의 구조, 인적 구성, OGPU 책임 일꾼들, 특히 OGPU 쪽에서 해외에 나가 일하는 자들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만날 때마다 울리히는 내게 임무를 주었고, 나는 그것을 수행했다. 독일 정보기관과 관계를 맺은 기간 내내 나는 OGPU의 구조, OGPU-NKVD 지도급 일꾼들에 관한 자료를 넘겼고,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했으며, 내가 아는 해외 OGPU 일꾼들의 이름을 댔고, 국경 시설 건설과 국경수비대의 배치 및 병력 수에 관한 자료를 정기적으로 넘겼다. 자료 일부는 울리히와 만날 때 그에게 직접, 서면으로도 구두로도 넘겼다. 나중에 울리히의 소련 입국이 금지되고 나도 해외 출장을 그만둔 뒤에는, 독일 정보기관에 넘길 자료를 봉인한 봉투에 넣어 서면으로 볼로비치를 통해 넘겼다. 볼로비치는 1935년에 독일 정보기관의 이름으로 내게 연락해 왔다. 나는 볼로비치를 통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극동, 레닌그라드 관구의 국경 시설 건설 자료와 이들 관구의 구조 및 병력 수에 관한 자료를 넘겼다. 볼로비치는 매번 사흘쯤 전에 자료를 모아야 한다고 내게 미리 알렸고, 나는 그것을 NKVD 청사의 그의 집무실로 가져다주었다.”

(루리예의 진술에서)>[4]

NKVD 음모 가담자 라핀은 제정군 전 2등 대위이자 체육 단체 “디나모”의 전 총서기, 전연방 체육·스포츠 협회 담당 책임자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나는 요스트(독일 정보기관 대표)에게 붉은 군대의 소총 무장과 전투 훈련, 그리고 전투용 소총·저격 무기 생산 문제의 검토에 관해 알려 주었다. 요스트는 정부 위원들이 ‘디나모’ 경기장을 자주 찾는지, 거기서 테러를 조직할 수 있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디나모’ 경기장에서 정부 위원들에 대한 테러의 조직을 맡기로 동의했다.”

(라핀의 진술에서).

NKVD 음모 가담자, 굴라크 부국장 피린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926년부터 나는 폴란드 정보기관과 연결되어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의 임무에 따라 일했다. 돔브롭스키(폴란드 정보기관 대표)와 만나는 동안 나는 일리이니치의 바르샤바 연락선을 폴란드 정보기관에 넘겼다. 그 밖에 정보국 요원 두 명을 더 넘겼으니, 사실상 정보국이 바르샤바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넘긴 셈이다. 내 도움으로 전권대표부 1등 서기관 아르카디예프가 포섭되었다. 소스놉스키(소련 내 폴란드 정보기관의 최고 레지덴트)는 극동 변강(ДВК)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준비하라고 내게 지시했다. 그 밖에 나는 폴란드 정보기관의 이익을 위해 사건 처리를 늦추었고, OGPU의 작전 타격을 제2부가 소련 내에 만든 간첩 기반에서 다른 쪽으로 돌렸다.”

(피린의 진술에서).

NKVD 내 음모 조직의 일원인 특수부장 가이는 1931년 해외 출장 중에 독일 정보기관에 포섭되었다. 가이는 독일 정보기관에 군수 산업에 관한 정보, 붉은 군대의 상태를 다방면으로 보여 주는 자료, 항공, 전차, 포병, 포탄 관리 실태, 잠수함 등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넘겼다.

1934년 야고다와의 대화에서 가이는 자기가 독일 정보기관에 복무하는 간첩이라고 고백했다.

“...야고다는 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늘 하던 욕설을 내게 퍼부었다. 주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모든 것을 자기에게 숨겼다고 욕했다. 내가 언제 체포되는지, 사건을 누구에게 넘겨야 하는지 묻자 야고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건을 넘기는 건 기다리시오. 당신을 총살할 시간이야 언제든 있소. 당신은 큰일에 쓸모가 되어야 하오.’ 그는 곧바로 내가 독일 정보기관을 위해 뭔가 해야 하며 달리 도리가 없다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야고다는 내 목숨을 살려 준다고 곧바로 강조하며, 자기의 어떤 지시든 군말 없이 수행할 것을 내게 요구했다.”

(가이의 진술에서).

자신도 독일과 폴란드 정보기관에 연결되어 있고 공범들도 그들과 연결시켜 주던 야고다는 음모 가담자들을 일본 정보기관에도 복무하게 끌어들였다.

이 문제에 관해 가이는 수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음모의 지도자로서 야고다는 NKVD 기구 안에서도 일본 정보기관이 활동할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결국, 하고 그는 말했다, 음모의 이익을 위해 일본인들에게 직접 봉사하든 그들의 가장 가까운 동맹자인 독일인을 통해 봉사하든 마찬가지 아니냐. 그들 사이에는 완전한 접촉이 있지 않느냐, 하고 야고다는 말했다. 야고다는 일본 정보기관 공작의 중요한 라인이 드러나는 것을 은폐하고 늦추라고 내게 지시했다.”

(가이의 진술에서).

우파 중앙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야고다는 소비에트 권력 전복, 당과 정부 지도자 살해, 자본주의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반소비에트 파시스트 쿠데타를 적극 준비했다. 이를 위해 야고다는 비밀정치부장 몰차노프에게, 적발된 우파와 트로츠키주의자에 대한 수사를 그릇되게 끌고 가고 이 사건들을 얼버무려 동결함으로써 우파와 트로츠키주의자의 반혁명 활동을 직접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또 야고다와 그 공범들의 범죄를 폭로할 수 있는 일꾼들의 살해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 야고다는 수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NKVD 안의 배신 공작이 없었다면 지노비예프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우파의 중앙은 그 태동기인 1931~1932년에 적발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반혁명 활동에 관한 첩보 자료는 그 모든 해에 소련 곳곳에서 들어왔다. 우리는 이들 조직을 더 비호하다가는 우리 자신이 들통날 위험이 있을 때에만 타격에 나섰다. 류틴 그룹이 그랬다. 자료가 중앙위원회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그룹을 일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하린 ‘학파’도 그랬다. 그 일소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오로지 여기서 사건을 접어 버리려고 사건을 모스크바로 가져왔다. I. N. 스미르노프의 트로츠키주의 그룹도 그랬고, 끝으로 키로프 살해 뒤에도 그렇게 계속되었다. 우파든 트로츠키주의자든 지노비예프주의자든 조직의 들통난 개별 그룹을 어쩔 수 없이 일소하는 경우에도, 나와 내 지시를 받은 몰차노프는 그 그룹을 국지적인 것으로 그려 내려고 모든 조치를 취했고, 조직의 활동 중인 중앙을 감추려고 특히 애썼다.”

(야고다의 진술에서).

야고다의 가장 가까운 공범 몰차노프는 수사에서 그의 진술을 확인했다.

“...야고다와, 그의 방침에 따른 나는 체포되는 트로츠키주의자의 범위를 제한하고, 무엇보다 트로츠키의 오래되고 검증된 간부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사건을 끌고 갔다. 1936년 봄에 야고다는 트로츠키주의자 사건을 접으라고 내게 곧바로 명령했다.”

(몰차노프의 진술에서).

음모가들은 소비에트 권력 전복의 조직을 당과 정부 지도자 살해와 크렘린 장악을 동반하는 “궁정 쿠데타”로 생각했다.

“궁정 쿠데타”와 테러 행위를 준비하라는 우파 중앙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야고다는 소비에트 권력 전복 뒤 나라를 지도하는 데서 자기의 독자적 지위를 확보하려고, “궁정 쿠데타”를 직접 조직하고 실행하는 일을 온갖 방법으로 자기 손에 집중시키려 했다.

당과 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는 야고다가 자기 개인의 발의로도, 트로츠키주의-우파 연합 중앙의 제안으로도, 독일 총참모부의 직접 지시로도 준비했다.

테러를 실행하기 위해 야고다는 작전부장 파우케르와 그 부부장 볼로비치에게 스탈린, 몰로토프, 보로실로프 동지의 살해를 준비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이 문제에 관해 파우케르는 수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936년 봄, 대략 3~4월에 야고다가 나를 자기 집무실로 불렀다. 대화는 단둘이서 이루어졌다. 그는 카라한이 독일 총참모부 대표들과 벌인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내게 말했다. 행동할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탈린, 몰로토프, 보로실로프의 동시 살해를 조직하고 실행하기로 결정했소’ 하고 야고다는 내게 말했다. 이 자들을 없애는 것은 우리의 바람일 뿐 아니라 독일 총참모부의 조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살해 계획이 마련되었다. 첫째 계획은 1936년 11월 열병식과 시위가 끝난 뒤 테러리스트들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들이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 폭탄 몇 개를 던지거나 권총으로 바로 앞에서 쏘는 것이었다. 내 역할은 테러리스트들을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시차를 둔 살해라는 둘째 계획은 가이가 붉은 군대 가을 기동훈련에서 보로실로프를 죽이는 것이었다. 볼로비치는 몰로토프의 이동을 지켜보다가 테러 행위에 알맞은 때를 골라 그를 죽인다. 소스놉스키는 소치에서 돌아오는 스탈린을 죽여야 했다. 스탈린 살해의 조직에는 볼로비치도 참여해야 했는데, 그는 스탈린의 도착 시간과 장소를 소스놉스키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다. 수사 당국에 알려야 할 것은, 야고다가 해임된 뒤 소치에 왔다는 것이다. 그때 거기에 스탈린이 있었다. 야고다는 스탈린 살해를 조직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야고다는 자기가 직접 스탈린을 죽이겠다고 말했고, 그 목적으로 스탈린에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 했다. 야고다는 블라시크에게 전화를 걸어 스탈린을 방문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스탈린 살해가 두려워 블라시크에게 스탈린이 야고다를 접견하지 말도록 요청하라고 말했다. 블라시크는 그렇게 했고, 야고다는 스탈린을 죽일 수 없었다.”

(파우케르의 진술에서).

테러의 성공을 이중으로 보장하기 위해 야고다는 이와 동시에 다른 공범들인 피린과 푸지츠키에게도, 정치국 위원들, 무엇보다 스탈린 동지에 대한 테러 행위를 조직하라는 같은 임무를 주었다. 야고다의 지시에 따라 피린과 푸지츠키는 정부 위원들이 볼가-모스크바 운하를 방문할 가능성에 대비해 NKVD 수용소들에 테러 그룹을 만들어 테러를 실행해야 했다.

야고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피린은 볼가-모스크바 운하 기병대 지휘관 크랍초프를 포섭했고, 드미트로프 수용소에 수감된 형사범 가운데 가장 반혁명적인 분자들을 반혁명 조직에 포섭했다. 음모가들의 계획에 따르면 이 패거리들은 “궁정 쿠데타” 때 모스크바에서 반혁명 봉기를 일으켜야 했다.

특수부장 가이는 야고다의 지시에 따라 붉은 군대에서 준동하던 군사 간첩 패거리와 연결을 맺고, 그 안에서 반혁명 봉기와 “궁정 쿠데타”에 참여할 사람들을 골랐다.

이 문제에 관해 피린은 수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권력 장악 자체를 야고다는 ‘궁정 쿠데타’의 방식으로, 곧 전쟁 개시에 맞추어 당과 정부의 지도부와 함께 크렘린을 장악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야고다는 붉은 군대의 패배를 기대했다. 그러면 NKVD 군대라는 버팀목을 가진 그가 나라의 상황을 좌우하는 주인이 될 것이었다. 크렘린의 정부를 장악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를 야고다는 파우케르에게 맡겼다. 파우케르는 볼로비치 및 자기 사람들과 함께 야고다를 위해 크렘린을 확보해야 했다. 권력 장악 계획에서 야고다는 드미트라크의 세력에 책임 있는 자리를 배정했다. 야고다는 수용소에서 수용자들로 튼튼한 전투 예비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형사범 세계에서 권위 있는 수감자들, 이른바 ‘두목’들로 이루어진 건설대장들을 이용해야 하며, ‘두목’은 저마다 언제라도 자기 건설대의 핵심 수감자들로 이루어진 전투 그룹의 대장으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야고다는 드미트라크의 전투 그룹이 테러 임무, 곧 당과 권력의 개별 대표자들을 붙잡아 처치하는 임무에 필요하며, 그 밖에 개별 기관과 기업의 장악 같은 전투 임무의 예비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전투대장은 저마다 엄선된 흉악범 수용자를 되도록 많이 자기 영향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험 분자들은 쿠데타 뒤에 처치하면 된다고 했다.”

(피린의 진술에서).

“궁정 쿠데타” 실행의 계산에서 야고다와 그 공범들은 파시스트 독일, 일본, 폴란드의 도움을 널리 이용하려 했다.

“...내 신변을 보장하고 미래 정부에서 일정한 역할을 준비하려고, 나는 독일 정부 집단과 접촉을 맺을 생각이었고, 음모 실현에 직접 도움을 줄 독일 군부 집단과 관계를 맺을 작정이었다.”

음모 활동에서 야고다는 어떤 흉악한 범죄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파시스트 독일의 이익을 위해 프랑스, 영국과 소련 사이의 단절을 이끌어 내고 이로써 소련에 대한 전쟁 개시를 앞당기려고, 야고다는 전대미문의 도발을 조직한다. 그는 공범인 파우케르, 볼로비치, 우만스키에게 프랑스 총리 라발과 영국 외무장관 이든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 그들을 살해하도록 조직하라고 지시한다. 야고다의 지시를 수행하여 파우케르, 볼로비치, 우만스키는 라발과 이든의 살해를 준비했다. 라발과 이든의 경호를 강화하라는 스탈린 동지의 끈질긴 요구와, 스탈린 동지가 이 요구의 이행을 거듭 점검한 것만이 음모가들을 놀라게 하여 준비 중이던 도발을 막았다.

권력 장악을 준비하면서 야고다는 미래의 반혁명 정부에서 역할 분담을 정한다. 자기에게는 각료회의 의장 역할을 배정한다. 프로코피예프에게는 내무부 장관 자리, 블라고느라보프에게는 교통부 장관 자리를 배정한다. 다른 음모 가담자들 사이에도 자리가 배분되었다. 이를테면 포그레빈스키에게는 내무부 차관 자리가 약속되었다.

쿠데타 뒤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고 야고다는 자기 인물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이를 위해 야고다는 키르숀, 아피노게노프, 아베르바흐 같은 매수된 작가와 언론인 무리를 주변에 두었고, 고리키의 더러운 측근들(크류치코프 등)도 이용했다. 피린, 포그레빈스키 등에게는 인쇄물, 책, 신문 등에서 야고다의 이름을 둘러싼 뻔뻔한 선전 소동을 조직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볼셰보 노동 코뮌에 관한 책, 벨로모르 운하 등).

“...미래의 인민위원회의 의장이라는 국가 활동가 역할을 위한 야고다의 준비는, 그의 임무에 따라 내가 그의 인물을 최고의 조직가이자 건설자로 구두와 인쇄물로 널리 알리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드미트라크부터 시작하겠다. 야고다는 특히 수용자들 사이에서 자기를 널리 알릴 것을 요구했다. 바로 수용소에서 무한한 권위를 이용하고 이 권위를 음모의 이익에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 수용자들 사이에서 나는 야고다를 위해 무한한 권위를 만들어, 그들을 권력 장악의 충실한 버팀목으로 바꾸어야 했다. 야고다는 또 그들을 선동가로 만들어야 하며, 그들이 수용소 형기를 마친 뒤 그를 위대한 인물로 칭송하는 명성을 온 나라에 퍼뜨릴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모스크바-볼가 건설을 나는 그, 야고다를 온 나라와 해외에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바꾸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서: 야고다는 나와 이야기하면서 쿠데타 뒤 자기의 미래 국가적 역할을 위해서는 자기 명성이 해외로 뻗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R. 롤랑이 고리키의 집에 머무는 동안 야고다는 나에게 특별히 고르키로 가서 롤랑에게 수감자 개조 사업과 그 일에서 야고다가 맡은 큰 역할을 자세히 이야기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야고다는 볼셰보 노동 코뮌 거의 전체를 직접 고리키의 집으로 데려갔다. 저녁 내내 코뮌 성원들이 발언했고 야고다는 R. 롤랑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작가 집단 사이에서 야고다를 널리 알리는 일은 한때 L. 아베르바흐가 조직하고 끌어갔다. 그가 떠난 뒤 이 일은 모두 키르숀에게 넘어갔는데, 야고다는 그를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만났다 [원문대로]. 작가 한 무리가 내 협조로 야고다와 그의 문화·계몽 활동가 역할에 관한 자료를 모아 펴내는 상시 작업에 끌려 들어왔다. G. 코라벨니코프, 아피노게노프, 브루노 야센스키, 그의 아내 베르지나, 고르부노프, 루즈긴, 체이틀린이 그러하다.”

(피린의 진술에서).

미래의 파시스트 정부를 이끌 목적으로 “궁정 쿠데타”를 독자적으로 지도하는 노선을 추진하면서, 야고다는 동시에 트로츠키주의-우파 전체 중앙이 벌이던 쿠데타 준비에도 적극 가담한다. 이를테면 야고다는 우파 중앙의 일원으로서 그 임무에 따라 크렘린에서 음모를 준비하던 예누키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야고다는 예누키제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되자 수사를 질질 끌고, 그다음에는 수사의 방향을 음모 조직의 진짜 범인들에게서 돌려 버린다.

“궁정 쿠데타” 계획을 실행하면서 우파 트로츠키주의 중앙은 1934년에 제17차 당대회 전원의 체포를 계획했다.

이에 관해 야고다는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제17차 당대회 개막 한 달 전에 예누키제가 내게 알려 왔다. 음모 중앙의 회의가 열렸고, 거기서 리코프가 우파의 이름으로 제17차 당대회 대의원 전원을 체포하고 우파와 트로츠키주의-지노비예프주의 블록 구성원으로 새 정부를 곧바로 세우는 ‘국가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안이 실패한 뒤 트로츠키주의자 및 우파 음모가들의 연합 중앙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보로실로프에 대한, 레닌그라드에서 키로프 동지에 대한 테러 행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키로프에 대한 테러 실행을 보장하기 위해 트로츠키주의-우파 연합 중앙의 임무에 따라 야고다는 공범이자 NKVD 음모 가담자, 전 레닌그라드 OGPU 전권대표 대리, 독일 간첩이자 전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원인 자포로제츠를 레닌그라드에서 불러들였다.

“...나는 자포로제츠를 레닌그라드에서 불러들여 키로프에 대한 암살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이를 방해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자포로제츠는 야고다의 지시를 이행하기로 받아들였다. 레닌그라드 거리에서 키로프의 차를 감시하던 테러리스트 니콜라예프가 붙잡혔고, 체포 뒤 그에게서 키로프에 대한 테러를 준비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되었을 때, 그는 야고다의 임무에 따른 자포로제츠의 명령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자포로제츠는 키로프 살해 준비를 방해하지 말라는 내 지시를 이행하여 니콜라예프를 석방했다.”

(야고다의 진술에서).

키로프 동지가 살해된 뒤 야고다는 이 사건의 수사를 “꺼 버리고” 그렇게 하여 진짜 범인들의 흔적을 지우려고 모든 조치를 취한다.

“...이미 수사가 진행되면서, 키로프 동지 살해가 트로츠키주의-지노비예프주의 조직의 소행이라는 것이 입증되어 분명해졌을 때, 나는 수사를 지도하러 내가 직접 레닌그라드로 가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다.

내가 레닌그라드에 남아 있었다면 키로프 살해는 어떻게든 그려졌겠지만 진짜 범인인 트로츠키주의자와 지노비예프주의자에게는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 아주 분명하다. 그 대신 나는 모스크바에서 전 레닌그라드 체키스트 사건의 수사를 접어 버리고 거짓 방향으로 돌려 놓음으로써 벌충했다.

1. 수사를 지도하던 프로코피예프와 몰차노프에게 나는 두 가지 임무를 주었다. 자료에 중앙, NKVD 기구와 그 일꾼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할 것.

2. 사건을 단순 직무 태만으로 축소하여, 준비 중인 키로프 살해를 알고 있던 자포로제츠와 구빈을 감쌀 것.”

(야고다의 진술에서).

야고다가 이끈 NKVD 내 음모는 소련의 반혁명 조직들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야고다의 음모가 그 일부를 이룬 우파 및 트로츠키주의자 연합 중앙과의 연결은 말할 것도 없다. 야고다의 음모는 투하쳅스키의 군사 간첩 패거리 및 멘셰비키와도 연계를 유지했다.

이미 1928년에 리코프는 우파 중앙과 멘셰비키 중앙위원회 사이에 체계적인 연계가 있다는 것, 멘셰비키가 우파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것, 심지어 리코프의 2개년 계획이라는 구상조차 멘셰비키, 특히 멘셰비키 중앙위원 니콜라옙스키가 불러 준 것임을 야고다에게 이야기했다.

우파 중앙과 멘셰비키 중앙위원회의 연계를 조직하면서 야고다는 우파와 멘셰비키의 관계를 가리키는 첩보 자료가 문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수사에서 야고다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NKVD 자료를 통해 나는 소련 내 우파가 멘셰비키와 블록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NKVD 사업에서, 여러 지구와 주에서 이들의 활성화에 관한 자료가 들어오는데도 반소비에트 조직을 적발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연계를 알고, 그것을 직접 조직하고 유지하면서, 나는 멘셰비키가 적발되지 않도록 지켜 주었고 그들에게서 타격을 돌렸다. 그들이 우파와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6]

주석

  1. 여기와 이하에서 진술 날짜는 기입되어 있지 않다. ↩
  2. 꺾쇠괄호로 묶은 대목은 줄을 그어 지워져 있다. ↩
  3. “우파의 음모”, “군사 음모”, “크렘린의 반혁명 조직”, “소련 내 폴란드 정보기관의 파괴 공작·간첩망”, 그리고 여러 지역의 “트로츠키주의 테러”, “우파”, “간첩·파괴 공작”, “사회혁명당”, “군주주의” 중앙에 관한 보고 부분의 자료는 생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