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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프 문서집 (1923~1939)

인물니콜라이 예조프, 이오시프 스탈린, 겐리흐 야고다, 레프 트로츠키, 라브렌티 베리야, 미하일 톰스키, 게오르기 몰차노프, 미하일 프리놉스키, 세르게이 키로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레프 카메네프, 알렉세이 리코프, 니콜라이 부하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라자르 카가노비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게오르기 말렌코프, 안드레이 비신스키, 카를 파우케르, 바실리 울리히, 니콜라이 리치코프, 시몬 페틀류라, 네스토르 마흐노, 세묜 피린, 막심 고리키,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게오르기 퍄타코프, 그리고리 소콜니코프, 카를 라데크, 레오니트 세레브랴코프, 알렉산드르 우스펜스키, 아르투르 아르투조프, 미하일 투하쳅스키, 얀 가마르니크, 이오나 야키르, 이에로님 우보레비치, 아우구스트 코르크, 로베르트 에이데만, 보리스 펠트만, 비토프트 푸트나, 아벨 예누키제, 프세볼로트 발리츠키, 그리고리 오르조니키제, 겐리흐 류시코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파벨 포스티셰프, 알렉산드르 포스크료비셰프, 블라디미르 레닌, 스타니슬라프 레덴스, 레오니트 자콥스키, 야코프 아그라노프, 안드레이 즈다노프, 아나스타스 미코얀, 마트베이 시키랴토프, 세르게이 므라치콥스키, 이반 스미르노프, 니콜라이 우글라노프, 바실리 시미트, 레본 미르조얀, 레프 카라한, 피에르 라발, 앤서니 이든, 니콜라이 블라시크, 마르테먄 류틴, 이즈라일 다긴, 블라디미르 쿠르스키, 세르게이 미로노프, 빅토르 주라블료프, 미하일 리트빈, 레프 벨스키, 레오니트 니콜라예프, 야코프 리프시츠, 마트베이 베르만, 스타니스와프 코시오르, 블라디미르 체사르스키, 세라피마 리조바, 게오르기 프로코피예프, 그리고리 예브도키모프, 레오폴트 아베르바흐, 이오시프 운쉴리흐트, 글레프 보키, 보리스 셰볼다예프, 니키타 피보바로프, 알렉산드르 벨로보로도프, 알렉산드르 슬렙코프, 니콜라이 골로데트, 알렉산드르 체르뱌코프, 로베르트 에이헤, 블라스 추바리, 세르고 고글리제, 그리고리 그린코, 폴리카르프 므디바니, 빌헬름 크노린, 오시프 퍄트니츠키, 예브헨 코노발레츠,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이그나티 소스놉스키, 알렉산드르 콜차크, 안톤 데니킨, 니키타 흐루쇼프, 미르 자파르 바기로프, 파벨 불라노프, 블라디미르 넵스키, 게오르기 블라고느라보프 용어내무인민위원부(NKVD), 대숙청, 예조프시나, NKVD 작전명령 제00447호, 민족 작전, 폴란드 작전, 트로이카, 제1범주 / 제2범주 사건대숙청

세미팔라틴스크 현 당위원회가 예조프에게 발급한 인물 평정서 (1923년 6월 22일)

1923년 6월 22일

인물 평정서

예조프 동지의 혁명 활동은 이미 2월 혁명 이전에 시작되었으며 매우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예조프 동지는 10월 혁명 뒤 비텝스크 시 소비에트 위원과 그 뒤 카잔 시 소비에트 위원, 철도 지구 분소 역 위원,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지구당위원회 위원, 세포 의장, 당 클럽 관리 책임자 등, 무선학교 부위원, 타타르 주당위원회 뷰로 위원과 타타르 중앙집행위원회 간부회 위원, 타타르 주당위원회 선전선동부장, 마리 주당위원회 비서를 차례로 지냈다. 그는 이렇게 얻은 경험을 잃지 않았고, 일의 범위가 넓어지는 데 따라 그 경험을 넓히고 깊게 할 줄 알았다.

이리하여 러시아공산당 세미팔라틴스크 현당위원회 책임비서로 일하는 지금의 예조프 동지는 이미 풍부한 경험과 폭넓은 진취성과 시야를 갖추고 능숙하게 지도할 줄 아는, 완전히 성숙한 당 일꾼이다.

예조프 동지는 기구를 강화하고 일꾼을 가려볼 줄 안다. 또 진취성을 억누르지 않고 사소한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기조를 잡아 주고 자신이 요구하는 노선을 관철시킬 줄 안다. 이는 현당위원회 기구 자체의 활동과 소비에트 기관에 대한 현당위원회의 지도에서 드러난다. 현지 사정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직을 다룰 줄 알며, 올바른 기조와 방향을 잡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노선을 끈질기고 단호하게 관철한다. 현재 맡은 직책에 쓰는 것이 가장 알맞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예조프 동지는 독학으로 상당한 소양을 쌓았고, 마르크스주의 방법을 훌륭히 구사하며 정치 정세에 밝다. 그러나 이론가라기보다는 실천가 마르크스주의자에 가깝다. 정기 간행물에 글을 싣는다.

예조프 동지의 개인적 자질로는 정치적 굳건함, 정력, 대단한 끈기, 자제력, 요령, 자기 일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들어야 한다. 좋은 당 동지이며, 부하들과도 동지적 관계를 맺을 줄 안다. 조직 능력이 있고, 일에 전면적으로 접근한다.

러시아공산당 세미팔라틴스크 현당위원회 책임비서 대리 [서명 판독 불가].

메모: 우리 안대로도 [서명 판독 불가].

NKVD 지도부 회의를 앞두고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와 보고 자료 (1935년 1월 23일)

1935년 1월 23일

극비

스탈린 동지에게

1. 레닌그라드와 레닌그라드 체카 지도자들의 온갖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레닌그라드 체카의 결함은 더 넓은 차원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NKVD 조직들도, 중앙 기구까지 포함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같은 결함을 앓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체카 활동의 결함에 관한 내 생각 몇 가지와, NKVD 국가안전국의 활동을 개선하리라고 생각되는 조치 몇 가지를 당신께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요원 활동의 조직에 관한 메모를 보낸다. 며칠 안으로 수사 활동의 조직과 검찰과의 관계에 관한 내 생각을 제출하겠다(내가 보기에 검찰과의 관계는 당 중앙위원회가 개입해야 할 만큼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세 번째 메모는 체카 기관의 간부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 보내는 요원 활동 조직에 관한 메모에서 나는 결함만 다루고 활동의 긍정적인 면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들 아는 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NKVD 지도부가 요원 활동의 이 모든 결함에 맞서 꽤 정력적으로 투쟁하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당 중앙위원회의 진지한 도움 없이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 야고다 동지가 내게 전한 바에 따르면, 레닌그라드를 예로 들어 체카 활동의 결함을 비판하는 내 발언을 NKVD 전권위원 회의에서 하는 문제를 당신과 합의했다고 한다. 당신의 직접 지시 없이는 나는 발언할 수 없다.

3. 이 모든 문제에 관해 나를 직접 만나 주시기를 요청한다.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겠다.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나 주실 수 없고 내가 체키스트 회의에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보신다면, 당신께 보낸 메모의 취지대로 발언해도 되는지 지시해 주시기를 요청한다.

예조프.

부록

극비

스탈린 동지에게

레닌그라드와 레닌그라드 체카 지도자들의 온갖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레닌그라드 체카의 결함은 더 넓은 차원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NKVD 조직들도, 중앙 기구까지 포함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같은 결함을 앓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체카 활동의 결함에 관한 내 생각 몇 가지와, NKVD 국가안전국의 활동을 개선하리라고 생각되는 조치 몇 가지를 당신께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I. 요원망의 규모와 그 활동의 조직에 관하여

체카의 모든 탐색 활동의 기초는 요원망이다. 요원망의 규모와 요원망 활동은 다음과 같이 조직되어 있다.

1. 일반 정보 수집 요원망. 이른바 “정보원”이다. 정보망은 매우 크다. 주마다 수만 명을 헤아린다. 정보망의 규모를 중앙에서 조절하는 일은 전혀 없다. 각 주에서 규모는 제멋대로 정해지며, 주로 주 지도자들의 취향과 방법과 체키스트 활동에 대한 이해에 달려 있고, 더 흔하게는 체카 주 국의 평직원이나 그 하부 조직(지구 분과, 시 분과, 작전 구역)에 달려 있다.

충분히 정확하지는 않은 자료에 따르면 전 연방에 정보원이 270,777명 있다. 이 수 말고도 작전부는 비조직 주민을 맡는 정보원, 이른바 마당 정보망을 두고 있고, 군과 운수 부문을 맡는 특수 정보원망도 있다. 이 범주의 정보원은 집계되어 있지 않다. 어쨌든 전 연방의 정보원 총수는 대략 50만 명에 이를 것이다.

이 일에서 방임이 얼마나 지배적인지는 변강과 주별 정보원 수를 비교해 보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라토프 변강에는 정보원이 모두 1,200명인데 북부 변강에는 11,942명이 있다. 비교할 만한 다른 변강과 주들에서도 비율은 대략 이와 같다.

정보원은 내무인민위원부로부터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으며 무보수로 일한다.

정보망의 활동은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조직되어 있다. 가장 적극적인 정보원들 가운데서 이른바 레지덴트를 뽑는다. 레지덴트 한 명에게 평균 10명의 정보원을 딸린다. 레지덴트도 무보수로 일하며, 관공서나 생산 현장 등에서 하는 본업과 체카 일을 겸한다.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전 연방에 레지덴트가 27,650명 있다. (이 수는 내가 위에서 말한 정보원 270,777명에 들어 있지 않다.) 이리하여 이런저런 체카 조직은 정보원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정보원은 자원해서 무보수로 일하는 자기 레지덴트와 연결되어 있다. 체카는 레지덴트를 통해 그가 이끄는 10인조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정보망 전체의 지도는 중앙에서는 국가안전국 비밀정치부(СПО)가, 변강과 주에서는 비밀정치부가 맡고 있다.

2. 특수 정보 수집 요원망. 이른바 “특수 정보원”이다. 일반 정보원의 임무가 비정상적이라고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알리는 데 있다면, 특수 정보원의 임무는 특수한 문제만을 다루어 보고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특수 정보 요원망은 국가안전국의 해당 부서들이 각 부서가 내건 특수 과제의 관점에서 구성한다(경제국(ЭКУ)은 파괴 행위와 파괴 공작, 특수부는 간첩, 테러, 반혁명, 비밀정치부는 정당, 성직자 등). 이 유형의 정보원은 그 조직의 취지로 보아 특수한 문제를 잘 아는 더 자격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은 부서가 진행하는 내사에 맞추어 일정한 주민층에서 모집된다(성직자를 살피려면 주로 성직자들 가운데서, 인텔리겐치아를 살피려면 작가, 화가, 기사 등의 사이에서). 유형으로 보면 특수 정보원은 일반 정보원과, 이런저런 반혁명 조직을 적극적으로 내사하는 진짜 체카 요원의 중간쯤 되는 존재다. 특수 정보원도 극히 드문 예외를 빼면 압도적 다수가 무보수로 일한다.

특수 정보원의 수를 정하는 일에서도 같은 방임이 지배하고 있다. 이 범주의 정보원에 대한 중앙 집계는 전혀 없다. 중앙 국의 각 부서조차 따로 놓고 보면 그 수를 모른다. 특수 정보원 수는 변강, 주, 공화국의 특수 부서들이나, 해당 부서가 있는 하급 체카 조직들만 안다. 내가 레닌그라드에서 파악한 바로는 이 요원망의 수도 상당한 규모다. 레닌그라드에는 모든 부서를 통틀어 특수 정보원이 2,000명가량 있다. 일반 정보원과 달리 특수 정보원은 체카의 해당 부서와 직접 연결되어 그곳으로 정보를 보낸다. 자원해서 무보수로 일하는 레지덴트 같은 중간 고리가 여기에는 대개 없다.

3. 체카 기본 요원망. 이른바 요원이다. 이 요원망은 보수를 받는다. 활동 보수 말고도 내사 진행에 필요한 특별 경비(술자리 마련 등)도 받는다. 일정한 임무에 따라 일하는 이 적극적 요원망은 훨씬 작지만, 그래도 주에 따라서는 때로 수백 명에 이른다. 요원의 구성 역시 누구도 조절하지 않으며, 변강과 주 NKVD 국의 일꾼들이 제멋대로 정한다. 이 망의 규모는 이런저런 주 국이나 변강 국이 진행하는 내사의 성격에 곧바로 달려 있다. 이 망에 대한 중앙 집계는 전혀 없다.

II. 요원 모집 절차와 요원 지도에 관하여

이토록 막대한 요원 수는 그 자체로 누가 요원을 모집하느냐는 문제를 이미 상당 부분 결정한다. 실제로 굳어진 요원 모집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일반 정보망의 경우 모집은 대개 체카 자체 기구가 아니라 무보수로 일하는 레지덴트, 즉 같은 정보원들이 한다. 체카의 어느 단계 기구든 정보원들과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지도 체계가 무보수 레지덴트를 정보원의 직접 지도자로 삼도록 짜여 있으니 체카 기구 쪽에서는 누구 하나 얼굴을 아는 이가 없다.

레지덴트만 자기 정보원들을 알고, 체카는 레지덴트만 안다. 요원 모집과 지도의 일은 전적으로 레지덴트에 대한 신뢰 위에 서 있다. 레지덴트가 평균 10명의 정보원을 이끌고, 레지덴트 자신도 가장 적극적인 정보원들 가운데서 뽑히며, 레지덴트에게는 어떻든 자기 본업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보망 지도가 얼마나 허술한지 아주 분명해진다. 정보망을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정세에 따라 체카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그 활동에 날마다 방향을 주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든다. 본업에 치이는 레지덴트는 정보원에게 그런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대개 레지덴트는 정보원을 매우 드물게 만난다.

2. 특수 정보원은 체카 기관의 해당 부서들(지구부터 중앙 기구까지)이 모집한다. 특수 정보원 모집은 사실상 전적으로 체카 해당 부서의 평직원들에게 떨어진다. 레닌그라드에서 표본 점검을 해 보니, 특수 정보 모집 일은 거의 전부 정규 실습원과 전권위원 보좌에게 맡겨져 있었고, 특수 정보원들은 이들과 상시 연락을 유지한다.

특수 정보원 지도 역시 사실상 정규 실습원과 전권위원 보좌의 손에 있다. 정규 실습원과 전권위원 보좌가 체카에서 가장 낮은 직급으로 90%는 기술적인 일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수 정보 지도가 얼마나 비전문적인지 아주 분명해진다. 거의 모든 특수 정보원이 전반적인 수준에서나 맡은 일에 대한 구체적 지식에서나 자기 지도자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3. 이런저런 특수 내사를 맡는 체카의 유급 일꾼인 요원의 모집은 특별히, 각별하게 책임이 무거운 일이다. 외국 정보기관들의 관행이나 옛 제정 시대 오흐란카의 관행을 보아도, 필요한 요원을 모집하는 일에 활동상 얼마나 막대하고 결정적인 의의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분야의 회고록과 전문 문헌만 보아도, 요원 모집 일을 얼마나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맡겼는지, 요원을 고르는 관점에서 그 모집 과정 자체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원의 양보다 질이다. 이런저런 조직을 맡은 좋은 요원 한 명이 나쁜 요원 백 명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이 모든 것 말고도 요원을 모집하는 환경 자체가 매우 다양하다. 내사의 성격에 따라 때로는 노골적인 백위대원, 투기꾼, 사제, 정치 활동가 등을 모집해야 한다. 여기서 모집 문제, 특히 이런 부류의 요원을 지도하는 문제가 그 자체로 얼마나 첨예한지 분명해진다.

그런데도 이 일에서도 전면적인 방임이 지배하고 있다. 이 부류의 요원 모집 역시 부차적인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다. 압도적 다수의 경우 요원은 체카 평직원(전권위원, 작전 전권위원)이 모집하며, 과장이나 부장이 모집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물론 요원의 최종 승인은 부장이 재가해야 하지만, 이는 아무 구속력 없는 빈 형식이 되어 버렸다. 대개 모집된 요원을 승인하는 부장은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전권위원이나 과장이 올린 형식적 요건만 보고 승인한다.

레닌그라드에서는 요원 모집이 그야말로 추태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특수부는 1934년 어느 날 자기네에게 요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요원을 장만하기로 했다. 지금은 유죄 판결을 받은 특수부 부부장 야니셉스키는 부서 일꾼을 모두 불러 모아 모집 할당 수치를 정했다. 특수부의 모든 일꾼은 전권위원 보좌부터 시작해 날마다 요원을 10명 이상 모집할 의무를 졌다. 내가 이 일로 신문했을 때 특수부의 일부 열성 일꾼들은 이런 식의 요원 모집이 얼마나 어리석고 범죄적인지 깨닫기는커녕, 하루에 15명, 20명씩 모집해 임무를 초과 달성했다고 자랑했다.

이런 식의 요원 모집에서는 노련한 반혁명분자가 한둘이 아니라 수십 명이 활짝 열린 체카의 문을 이용해 “모집되어” 체카 내부에서 체제 전복 활동을 벌였음이 아주 분명하다. 내가 아래에서 알릴 사실들이 이를 완전히 확인해 준다.

요원 지도도 사실상 전권위원이나 작전 전권위원의 손에 있다. 드물게 과장 자신이 지도하고, 부장이 지도하는 일은 더욱 드물다. 수준 낮은 사람들이 흔히 매우 수준 높은 요원들을 지도하는 이런 체계 때문에 지도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요원이 체카에 허위 정보를 줄 온갖 가능성이 열린다. <...>[1]

II. 체카의 수사 기구

엄밀히 말해 체카에 특별한 수사 기구는 없다. 체카 활동의 기초가 탐색(요원)과 수사라고 친다면, 이 두 활동 사이에 체카에서는 아무런 구분이 없다. 대개 어떤 요원 내사를 진행하는 사람이 그 요원 내사가 끝나면 그에 관한 수사도 맡는다. 실제로 이 일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어떤 전권위원이 자기 요원이나 요원 무리를 지도하다가 요원 내사가 수사 사건을 열 단계에 이른다. 수사 사건 개시와 따라서 체포는 과장이 재가한다. 그러고 나면 요원 내사를 지도한 바로 그 전권위원이 수사를 맡는다. 요원 활동과 수사 활동의 이런 결합에는 여러 긍정적인 면과 함께 여러 부정적인 면도 있다. 긍정적인 면은 무엇보다 수사하는 일꾼이 첫 요원 보고에서부터 사건을 그 발단부터 안다는 것이다. 요원 사건을 알고 있으니 수사하기가 더 쉽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대개 추가 요원 내사와 새로운 요원 탐문의 필요성이 드러나는데, 이를 수사가 수행한다. 탐색과 수사가 이렇게 결합된 데서 오는 부정적인 면은 수사관이 “부풀린” 사건을 많이 내놓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체키스트 관행에서는 일꾼의 자격, 적격성, 일솜씨에 대한 평가가 체키스트들의 유행어대로 “깔끔한 사건 하나 해냈다”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의 결과는 잘 끝난 수사이므로, 요원 활동까지 동시에 지도하는 수사관은 흔히 거기 빠져들어 “사건”에 바람직한 쪽으로 요원에게 방향을 주고, 때로는 자기가 바라는 방식으로 사건을 내놓는 데 맞지 않는 중요한 요원 자료를 무시한다. 체키스트 관행에는 이런 “부풀린” 사건이 아주 많다. 탐색 활동과 수사 활동을 나눌 수 있다면, 즉 탐색은 어떤 사람들이 하고 수사는 다른 사람들이 하게 한다면, 수사가 탐색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일이 보장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자고 제기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 내게도 분명하지 않으며, 더구나 탐색 활동과 수사 활동을 이렇게 결합하는 데서 오는 긍정적인 면이 매우 크다. 내가 살펴본 레닌그라드 사건들로 보아, 사람들이 수사할 줄 모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수사관은 작전 일꾼이고, 그들의 더 강한 면은 수사 진행이 아니라 탐색이다. 그럴 만도 하다. 탐색에는 자격과 교양이 덜 필요하다. 수사 활동이 허약한 근본 원인은 체키스트들의 극히 낮은 자격과 일반 교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경제국이나 비밀정치부 같은 어떤 부서의 체키스트가 큰 수사를 맡는 일이 흔하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거물 정치인이나 거물 전문가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사람의 죄상을 밝히려면 무엇보다 꽤 높은 일반 교양과 수사 대상 주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적어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수사를 진행하면서 성실하게 공부는 해야 한다. 대개 둘 다 없다. 게다가 체키스트 수사관 간부들은 법을 전혀 모르는데, 이른바 절차적인 면은 사건에서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면에 대한 체키스트들의 태도는 더없이 경멸적이다. 대개 법은 무슨 형식주의쯤으로 여겨져, 수사 전 과정에서 법을 지키지 않고 맨 끝으로 미뤄 둔다. 체키스트들의 일상과 일에는 수사가 끝나면 “자, 수사는 끝났으니 검찰에 넘길 서류나 꾸며야지” 하고 말하는 버릇이 배어 있다. 이 서류 꾸미기는 체키스트들에게 일에서 가장 하찮고 가장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수사 활동의 모든 결함을 사례로 보여 주려면 레닌그라드의 그 지노비예프파 사건 수사를 들 수 있다. 이 수사는 조금도 깎아내릴 수 없는 막대한 긍정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위에서 말한 부류의 부분적 결함도 여럿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수사 조서를 모두 주의 깊게 읽어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모든 피신문자에게 공통된 정형화된 질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답변도 거의 비슷한 식이다. 수사관들이 서로의 질문을 베끼고 피신문자에게 흔히 비슷한 답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서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피의자 각자에 대한 개별 신문의 경계가 지워져 있다. 그 결과 모든 조서가, 자세히 읽어 보면, 정치적으로 너무 매끄럽게 다듬어지고 깎여 있다. 마치 모든 피고인이 줄곧 반혁명 활동을 하다가 OGPU가 체포하자마자 모두 뉘우치기 시작해 자기 과거에 정치적으로 침을 뱉고 당과 소비에트 권력의 조치를 찬양한 것처럼 되어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 자신이 이를 목격한 증인이다(거의 모든 피고인이 내 손을 거쳐 갔다). 많은 자들이 전혀 뉘우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체포되자 자신의 반혁명적 얼굴과 본질을 더 뚜렷이 드러냈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그들이 당과 당 지도자들을 향해 내뱉은 욕설을 모두 받아 적자는 말은 아니지만, 조서에서 이 특징을 대체로 부각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적의 얼굴이 더 정확히 보였을 것이다.

끝으로 수사의 결함이라는 관점에서 주의해야 할 마지막 점은, 이런 정치 사건에서 정치적 측면에 역점을 둔 것은 옳았으나 기술 문제는 완전히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 기관, 소비에트 기관, 바로 그 체카 기관과의 관계 기술은 매우 교훈적이고 흥미롭다. 이를 통해 일반적인 정치적 경각심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적의 일상적인 조직 기술의 방법을 식별하는 관점에서도 우리 당 조직들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총살당한 비보르크 지구 소비에트 비서 루먄체프의 경우, 그가 지구당위원회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지구에서 누구와 연계했는지, 어떻게 처신했는지, 자기 정치적 친구들에게 돈을 내주면서 자기 의장을 어떻게 속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두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 지노비예프파 백위대 무리 같은 독특한 반혁명 조직에서는 아주 중대한 일이다. 그들은 지난날의 지하 활동 방법과 기술에 새롭고 독특한 것을 아주 많이 들여왔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 집단이 소련에서 처했던 특수한 조건에서 나온 것이다. 양면분자 행각 자체가 다른 종류의 기술적 연계와 주위 세계와의 관계 기술을 미리 규정했다. 대체로 훌륭했던 이 수사의 부정적인 면들은 이러하다.

이 수사에는 가장 수준 높은 체키스트들이 앉아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가장 수준 높은 체키스트들조차 교양과 지식이 모자란다. 그들은 반대파와 이야기하다가 쩔쩔맸다. 많은 이들이 지노비예프파의 반대파 투쟁뿐 아니라 당의 역사 일반도 몰랐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스피리도비치들이 없는데, 이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III. 간부

체카의 특성상 체키스트 간부는 특별히 검증된 사람이어야 한다. 체카의 사람들은 정치 활동의 첨예한 부문에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많은 것이 요구되며, 무엇보다 단련된 볼셰비키여야 한다. 실제로 흔히 우리와 이질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요원망과의 연계, 자기 활동에 대한 비판의 부재, 이 모두가 체키스트들을 특수한 처지에 놓는다. 체키스트들 가운데 배신자 한 명이 소련을 상대로, 조직 하나가 통째로도 저지르지 못할 만큼 엄청난 반혁명적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체키스트 간부들은 이런 의미에서 이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상에 근접해 있는가? 레닌그라드 체카의 체키스트 구성 사례는 그렇다고 말해 주지 않는다. 나는 레닌그라드 체카 기구를 살펴보면서 작전 부서들에서 280명을 숙청해야 했다. 점검 대상에는 경찰, 호적 사무소, 소방대 등은 들어가지 않았고, 사실상 특수부, 경제국, 비밀정치부, 작전부 등을 거느린 국가안전국만 들어갔다. 이 280명 가운데 180명은 어쩔 수 없이 수용소로 보냈고, 100명은 체키스트 업무가 아니라 경찰, 호적 사무소, 소방대, 체카 경리 업무에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숙청된 자들 가운데는 언제든 우리를 배신할 수 있었던 우리와 이질적인 자들이 아주 많다. 그들이 배신하지 않았다는 확신은 내게 없다. 전직 백군 장교, 꽤 이름 있는 가문의 귀족들이 많고, 전직 트로츠키파와 지노비예프파도 그에 못지않으며,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저 타락한 자들이 상당수다. 예를 들자면...[4]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적게 숙청했다고 생각하며, 숙청을 더 계속해야 할 것이다. 특히 레닌그라드에서 다른 곳의 체키스트 업무로 전출시키는 부분에서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체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했을 텐데, 할 일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야고다와 이렇게 합의했다. 그와 함께 지정한 다른 변강들로부터 체키스트 보충 인원 제1진이 레닌그라드에 오고 나서, 얼마 뒤 나머지 체키스트 구성원에 대한 숙청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체키스트 구성원은 어떠한가? 대부분은 교양이 낮은 사람들이다. 대개 작전 업무에 머리끝까지 파묻혀 책을 거의 손에 들지 않고, 정치·경제 문헌은커녕 문학 작품조차 드물게 읽는다. 말이 나온 김에, 체키스트들 사이에서 공통으로 눈에 띄는 것은 독서와 문화와 지식을 경멸하는 태도다.

체키스트 간부의 이런 상황이라면 체키스트들 사이의 교양 활동과 학습 문제가 더없이 첨예하게 제기되어야 마땅할 것 같다. 실제로는 둘 다 없다. 체키스트들 사이에서 진지한 정치 교양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일은 대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체키스트들을 “체키스트 규율”의 정신으로 교양한다는 데로 귀착된다. 이것을 진지한 교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일은 거기서 끝난다. 당에 대한 헌신, 볼셰비키적 경각심, 통찰력, 겸손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교양하는 일은 전혀 없다. 모든 교양이 체키스트의 특수성, 자기 부처의 전문성에 지나치게 좁게 집중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체키스트들은 붉은 군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거기서는 특수한 군사 교과를 이수하고 전문 분야를 익히는 것과 함께, 적군 병사와 지휘관이 정치적으로 아주 잘 교양되어 저마다 훌륭한 당 학교를 동시에 거치는 셈이다. 연대 정치위원 300명을 정치부장으로 뽑아 쓴 경험이 훌륭하게 정당화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 아는 대로 당이 당 사업에서 자격 있는 사람들을 정치부에 적잖이 내주었는데도, 이들은 기계·트랙터 배급소 정치부의 거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가 되었다.

체키스트 환경의 특성에다 그들이 받은 교양 전체가 체키스트들의 생활 조건에도 반영된다. 압도적 다수의 체키스트들은 폐쇄된 환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에서는 “부르주아성”이 대량으로 나타난다. 체키스트의 아내들이 말 그대로 보통명사가 되었다는 점만 말해 두면 충분하다.[5]

주석

  1. “요원”의 “질적 구성” 절들이 생략되었다. ↩
  2. 문서 원문에 말줄임표로 되어 있다. ↩
  3. 문서에는 서명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