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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프 문서집 (1923~1939)

인물니콜라이 예조프, 이오시프 스탈린, 겐리흐 야고다, 레프 트로츠키, 라브렌티 베리야, 미하일 톰스키, 게오르기 몰차노프, 미하일 프리놉스키, 세르게이 키로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레프 카메네프, 알렉세이 리코프, 니콜라이 부하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라자르 카가노비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게오르기 말렌코프, 안드레이 비신스키, 카를 파우케르, 바실리 울리히, 니콜라이 리치코프, 시몬 페틀류라, 네스토르 마흐노, 세묜 피린, 막심 고리키,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게오르기 퍄타코프, 그리고리 소콜니코프, 카를 라데크, 레오니트 세레브랴코프, 알렉산드르 우스펜스키, 아르투르 아르투조프, 미하일 투하쳅스키, 얀 가마르니크, 이오나 야키르, 이에로님 우보레비치, 아우구스트 코르크, 로베르트 에이데만, 보리스 펠트만, 비토프트 푸트나, 아벨 예누키제, 프세볼로트 발리츠키, 그리고리 오르조니키제, 겐리흐 류시코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파벨 포스티셰프, 알렉산드르 포스크료비셰프, 블라디미르 레닌, 스타니슬라프 레덴스, 레오니트 자콥스키, 야코프 아그라노프, 안드레이 즈다노프, 아나스타스 미코얀, 마트베이 시키랴토프, 세르게이 므라치콥스키, 이반 스미르노프, 니콜라이 우글라노프, 바실리 시미트, 레본 미르조얀, 레프 카라한, 피에르 라발, 앤서니 이든, 니콜라이 블라시크, 마르테먄 류틴, 이즈라일 다긴, 블라디미르 쿠르스키, 세르게이 미로노프, 빅토르 주라블료프, 미하일 리트빈, 레프 벨스키, 레오니트 니콜라예프, 야코프 리프시츠, 마트베이 베르만, 스타니스와프 코시오르, 블라디미르 체사르스키, 세라피마 리조바, 게오르기 프로코피예프, 그리고리 예브도키모프, 레오폴트 아베르바흐, 이오시프 운쉴리흐트, 글레프 보키, 보리스 셰볼다예프, 니키타 피보바로프, 알렉산드르 벨로보로도프, 알렉산드르 슬렙코프, 니콜라이 골로데트, 알렉산드르 체르뱌코프, 로베르트 에이헤, 블라스 추바리, 세르고 고글리제, 그리고리 그린코, 폴리카르프 므디바니, 빌헬름 크노린, 오시프 퍄트니츠키, 예브헨 코노발레츠,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이그나티 소스놉스키, 알렉산드르 콜차크, 안톤 데니킨, 니키타 흐루쇼프, 미르 자파르 바기로프, 파벨 불라노프, 블라디미르 넵스키, 게오르기 블라고느라보프 용어내무인민위원부(NKVD), 대숙청, 예조프시나, NKVD 작전명령 제00447호, 민족 작전, 폴란드 작전, 트로이카, 제1범주 / 제2범주 사건대숙청

당원증 검열 경과에 관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1935년 7월)

1935년 7월

스탈린 동지!

크룹스카야 동지의 문제들에 관한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당신의 신뢰에 부응하도록 애쓰고 모든 일을 해내겠습니다. 결과는 알려 드리겠습니다.

건강은 지금까지 아무 탈 없습니다.

이 기회에 몇 가지 일을 알려 드리고 당원 문서 검사의 진행에 관해 지시를 받고자 합니다.

가) 모든 변강당위원회 비서들로부터 검사 진행에 관한 보고 청취를 마쳤습니다. 대부분의 변강과 주에서는 검사 기한을 10월 1~15일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 가운데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는 11월 1일까지 연기했습니다(큰 조직들입니다).

이리하여 5월 13일자 서한에 예정된 2개월의 검사 기한(8월 1~10일까지 끝낼 예정이었습니다) 대신, 검사 기한이 3개월 더 밀렸습니다.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당 조직들이 검사 한 달 뒤에야 이 일의 심각성을 모두 깨달았고, 사실상 거의 모두가 재검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조직에서는 당 중앙위원회가 검사를 취소하고 2개월이 지나서까지 재검사를 해야 했습니다(빈니차, 몰다비아, 오데사, 키롭스크 등). 둘째, 당 대열의 오염이 우리 예상보다 심했습니다. 그래서 당원 검사에 각별한 면밀함이 필요했는데, 검사 인원은 당 중앙위원회 결정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경험이 보여 주듯 이 제한은 아주 옳았고 결코 넓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검사가 늘어진 데는, 당원의 당 문서 검사와 병행하여 당 살림 전체를 정돈하는 일(당원 등록, 통계, 문서고 등)을 불가피하게 함께 해야 했던 사정도 작용했습니다.

이 모든 사정과 관련해 당 문서 검사 진행의 오늘 상황에 비추어 저의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방 당 조직의 검사를 대체로 11월 1일까지 끝낸다.

2. 당 문서 검사를 끝낸 당 조직의 인수를 10월 15일부터 시작해 대략 11월 15일까지 끝낸다.

이 기한이 최소한입니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이런 절차를 세웠습니다. 지구당위원회와 주당위원회가 제출하고 승인한 검사 보고서 각각에는 당원의 성과 당원증 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당원증별 보고 카드와 일일이 대조합니다.

몇몇 지구에서 처음 해 본 경험이 보여 주듯, 이 조치는 필수적이며 검사 중에 드러나지 않은 부적격 당원을 적발하는 진지한 추가 보장입니다. 체르냔카 지구당위원회가 제출하고 쿠르스크 주당위원회 뷰로가 승인한 보고서에 대해 저희가 첨부하는 의견서는 당원증별 보고 카드와 보고서를 대조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시간과 생각이 있으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2]

정기 요약 보고를 보낼 때 저희의 이 의견서를 모든 당 조직에 함께 돌리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중앙위원회에 보고서를 더 책임 있게 제출하고 주당위원회가 더 책임 있게 의견을 내는 데 대단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 최근 당 문서 검사 진행에서 당의 적을 적발하는 부분의 새로운 점은, 속임수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파고든 개별 인물들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명백해졌고, 그들이 활동한 방법과 당에 맞선 투쟁 전술도 아주 뚜렷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트로츠키파 조직들이 특히 시사적입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와 그 밖의 조직 여러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이 모든 조직에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파고드는 방법은 똑같고, 당에 맞선 투쟁 전술도 한결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분명 어딘가에 트로츠키파 조직들을 지휘하는 트로츠키파 본부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본부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본부는 소련 안에도 있을 것입니다.

트로츠키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당에 파고듭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남아 여전히 트로츠키파 입장에 서 있는 트로츠키파는 당에 머물기 위해 온갖 조치를 다 합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자들은 당에서 몇 번씩 제명되고도 당원증을 반납하지 않고 다른 당 조직으로 옮겨 가 거기서 등록합니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 트로츠키파가 이에 관해 일정한 지령을 받았음이 아주 분명합니다.

당에 파고드는 데 트로츠키파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씁니다. 트로츠키파 당원이 비당원 노동자를 트로츠키파 정신으로 교화합니다. 그를 트로츠키파 조직에 굳혀 놓은 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들어가라고 시킵니다. 입당을 온갖 방법으로 돕는데, 다른 조직에서 추천을 받아 주기도 하고, 정 안 되면 자신이 추천을 해 주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이것이 완전히 성공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오데사, 이바노보, 우랄 등지에서 드러났습니다. 여기서도 트로츠키파가 어떤 지령에 따라 움직였음이 아주 분명합니다.

트로츠키파가 우리 당의 바보들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데사에서 트로츠키파가 (이를 위해 특별히 한 사람을 희생시켜) 트로츠키파 “도발”을 꾸몄습니다. 어떤 트로츠키파가 자기 조직의 지령에 따라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당을 온갖 말로 헐뜯고 당이 정책만이 아니라 구성으로도 비프롤레타리아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도발” 뒤에 트로츠키파 자신들이 그에 대한 반격을 조직했습니다. 그들은 당위원회 비서에게 와서, 이 트로츠키파 “도발”에 대한 응답으로 노동자 수십 명을 당에 끌어들이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위원회 비서는 이 제안에 기뻐하며, 다음 회의에서 트로츠키파 “도발”에 대한 응답으로 30명가량을 입당시켰습니다. 그 가운데 트로츠키파는 자기네가 미리 교화해 놓은, 이미 여러 번 트로츠키파 심부름을 해 온 비당원 노동자 12명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 일부의 집에서는 전단이 발견되었고, 어떤 자들은 전단을 나눠 주었습니다. 모두 지하 모임에 모여 트로츠키파 지침을 학습했습니다.

적발되는 간첩들에 관해 말하자면, 외국 정보기관들이 자기 사람들에게 당에 파고들라고 직접 임무를 주었으며, 이것이 간첩 활동을 위장하는 가장 좋고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이라고 여겼음이 더없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적발된 간첩은 얼마 안 되는 예외를 빼면 모두 당원 가운데서 모집된 것이 아니라, 외국 정보기관의 직접 지령이나 소련에서 활동하는 외국 정보기관 레지덴트[3]의 지령에 따라 입당한 자들입니다.

당에 파고드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방식은 간첩이 어떤 기업에 들어가 노동자로 일하며 사회 활동가, 돌격 노동자로 자신을 내세운 뒤 입당하는 것입니다. 입당한 뒤에는 이 공장 저 공장으로, 또는 관공서로 자리를 옮겨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방식은 간첩이 훔친 당원증이나 돈 주고 산 당원증을 이용하면서[원문대로]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부 당원을 일부러 죽여 그의 당원증과 이름과 성을 차지하고 그 성으로 활동한 사실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외국 정보기관이 자기 요원들에게 당에 파고들 뿐 아니라 당 안에서 위장한 트로츠키파, 지노비예프파 등과 연계하라고 직접 지시한 개별 사실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실이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드러났습니다. 거기에 여간첩 드네프로바(성을 다섯 번 바꾸었습니다)가 왔습니다. 그는 노동자로 입당했습니다. 실제로는 돈 지방에서 죽은 대령의 딸임이 밝혀졌습니다. 친척은 모두 해외에 있습니다. 체포된 폴란드 간첩 얀콥스키와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수색에서 유배된 지노비예프파와 트로츠키파의 주소 37개가 나왔습니다.

그는 총살당한 레닌그라드 본부 관련자 코톨리노프, 즈베즈도프, 하니크, 예브도키모프 등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레닌그라드 본부의 활동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모임에 자기 집을 내주었습니다. 진술은 일절 거부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NKVD는 최근까지 이 일에서 비켜나 있었습니다. 당 조직의 기구만으로는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을 모조리 밝혀낼 수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검사는 실마리를 줄 뿐이고, NKVD 기관들이 일을 끝까지 파헤쳐야 합니다. 지난 몇 달 사이에야 저는 그들을 이 일에 작전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고, 이것이 이미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검사가 적을 적발하는 부분에서 자기 활동의 결함을 극복할 막대한 기회를 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반대하지 않으신다면, 아그라노프와 상의해 주로 NKVD 중앙 일꾼들로 작은 작전 회의를 열고, 당 안에서 적발된 간첩, 트로츠키파 등의 사실을 모두 검토해, 사람들에게 적절히 지시하고 트로츠키파 조직과 간첩 조직을 찾아내도록 내보내고자 합니다. 이런 지도 회의는 모든 면에서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 검사의 전반적 수준에 관해 말씀드리면, 지금은 꽤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어 지방 당 조직들에 특별히 큰 불만은 없고, 진행 중에 줄곧 바로잡아 주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특히 걱정하셨고 또 전적으로 옳으셨던 우크라이나를 흔들어 깨우는 데 틀림없이 성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체르니고프, 빈니차, 오데사, 몰다비아)의 재검사는 당 조직 오염의 막대한 사실들을 내놓고 있으며, 거기서는 피우수트스키도 루마니아도 독일인들도 자기 사람들을 수두룩하게 찾아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도 이제 이를 깨달았습니다. 포스티셰프 동지는 이제 이 일로 거의 날마다 제게 전화합니다.

이 모든 일을 가까운 시일 안에 다음 요약 보고에서 더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 앞으로 있을 당원증 교체 문제를 진지하게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실무 문제가 아주 많이 나오는데, 이는 따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의 동의가 필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당 기구에 위에서 아래까지 가득 찬 등록과 통계의 수공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않고는, 당원 등록을 전혀 바로잡을 수 없고 당원증 발급 절차와 보관도 제대로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 일에서 수공업 방식은 당 중앙위원회 기구를 포함해 터무니없이 판치고 있습니다. 통계와 등록이 모두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200만 장의 당원증을 굴리면서 기계 없이 세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통계는 전부 지방 당 조직들이 보내오는 전혀 온전치 못한 자료에 기초합니다. 집계도 모두 손으로 합니다. 일꾼들은 끔찍이 수준이 낮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중앙위원회 청소부 출신의 “발탁자” 등입니다. 이 일에는 물론 통계와 등록을 제대로 아는 자격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등록과 통계 전체를 기계화하지 않고는 쓸 만한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일을 우리 쪽에서 어떻게 할지 전문가들과 여러 번 회의를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 적절한 기계 세트를 갖춘 기계식 등록·통계소를 우리 쪽에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기계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아 수입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액수는 대략 2만 5,000~3만 달러입니다. 추바리 동지와 이야기했는데, 그는 독일 차관이 다 쓰이지 않았고 사용에 어려움도 있으므로 이 액수를 내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일을 재가해 주시면 해당 제안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올리겠습니다.

주석

  1. 첨부 문서는 문서철에 없다. ↩
  2. 문서 원문에는 “대통령들”(президентов)로 되어 있다. ↩

톰스키의 자살에 관해 소치의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1936년 9월 9일)

1936년 9월 9일

친애하는 스탈린 동지!

트로츠키파 재판이 끝날 무렵 카가노비치 동지와 세르고 동지가 제게 소치로 가서 트로츠키파 관련 일을 당신께 보고하고 여러 지시를 받아 오라고 제안했습니다. 며칠 전 카가노비치 동지가 제게 그 출장은 없던 일이 되었다고 알리면서, 몇몇 일을 글로 보고하라고 권했습니다.

우선 수사 관련 일만 적겠습니다.

1. 톰스키의 자살에 관하여. 톰스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뒤 정치국 회의에서 저를 볼셰보의 톰스키 별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전에 그곳에는 체키스트들이, 특히 몰차노프가 다녀갔습니다. 몰차노프는 당신께 보낸 톰스키의 유서를 수거해 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는 유족에게 우리가 정한 장례 절차를 알리고, 톰스키의 아내가 그의 유서에 덧붙일 말을 제게 전하려 하면 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임무를 모두 수행한 뒤 저는 톰스키의 아내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점이 밝혀졌습니다.

가). 무엇보다 자살의 정황 전체가 몹시 이상한 인상을 줍니다. 톰스키는 전날 저녁부터 아내와 자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래 이야기했는데, 마치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 같았습니다. 유서도 아마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쓴 것 같습니다. 어쨌든 톰스키가 유서 끝에 우파의 행동에서 역할을 한 동지의 성을 아내더러 당신께 직접 알리게 한다고 덧붙인 것을 보면, 아내는 톰스키의 자살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동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자살 전날 저녁이나 자살 당일 아침에 외부인이 왔었는지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지인 보롭스키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도 톰스키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공모의 인상을 줍니다. 어쨌든 아무도 톰스키를 말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뜻이 있었다면, 톰스키의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으니 그를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톰스키는 태연히 총을 들고 아침에 혼자 산책을 나가 공원 먼 구석에서 자살했습니다.

아주 이상한 정황입니다.

나). 기억하시겠지만 유서 끝에서 톰스키는 우파의 행동에서 역할을 한 동지의 성을 아내를 통해 당신께 알리려 했습니다. 이어진 이야기에서 톰스카야는 몰차노프가 자신을 집요하게 신문하며 유서에 언급된 동지의 성을 대라고 다그쳤다고 제게 불평했습니다. 그는 몰차노프에게 성을 말하기를 거부하고, 당신께 직접만 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몰차노프의 집요한 신문이 계속되자 그 동지가 정치국원은 아니라고만 말했다고 합니다.

제게는 야고다의 성을 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톰스키는 야고다 동지가 우파의 지도적 트로이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당 중앙위원회 내부 상황에 관한 자료를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대주었다는 것을 당신께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모두는 그들이 당 중앙위원회에 맞서 분파 싸움을 활발히 벌이던 시절의 일입니다.

톰스카야의 이 말은 야고다 자신의 짐작과 이상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제가 톰스키 유족을 찾아가기 전에 이미 야고다는 (몰차노프가 가져온 유서를 정치국에서 읽은 뒤) 아그라노프와 이야기하면서 톰스키가 자기 성을 댔을 것이라는 짐작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톰스키의 집에 몇 번 간 적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것이 톰스키가 무덤에서 날린 반혁명적 발길질인지 진짜 사실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톰스키가 그 그럴듯함을 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한다, 이거지요.

이 모든 것을 저는 당 중앙위원회 건물에서 제 귀환을 기다리던 카가노비치 동지와 세르고 동지에게 알렸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당신께 편지로 알리라고 제안했습니다.

2. 우파에 관하여. 체포된 자들의 최근 진술에 비추어 우파의 역할은 다르게 보입니다. 우파에 관한 지난 수사 자료(우글라노프, 류틴, 에이스몬트, 슬렙코프 등)를 살펴본 뒤, 저는 우리가 그때 끝까지 파헤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작년에 체포된 우파 가운데 몇몇을 호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쿨리코프(넵스키 사건으로 유죄 판결)와 루고보이를 호출했습니다. 이들의 예비 신문은 우파의 활동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자료를 내놓고 있습니다.

조서는 며칠 안으로 당신께 보낼 것입니다. 어쨌든 새로운 것을 많이 밝혀낼 수 있고, 우파, 특히 리코프, 부하린, 우글라노프, 시미트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추정할 근거가 충분합니다.

3. 지금 이번 사건으로 체포된 자들과, 당시 키로프 사건 및 다른 사건으로 기소된 자들의 명단을 모두 다시 검토했습니다.

정치국에 사전 보고했습니다. 최종 검토를 위해 예조프, 비신스키, 야고다로 구성된 위원회를 뽑았습니다. 체포된 자들과 유형자들을 형벌에 따라 대체로 다섯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제1범주는 총살입니다. 테러 집단의 직접 참가자 전원, 밀정(이중 첩자), 테러의 가장 두드러진 적극적 조직자들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제2범주는 징역 10년에 이어서 유형 10년입니다.

제3범주는 징역 8년에 이어서 유형 5년입니다.

제4범주는 징역 5년과 유형 5년입니다.

제5범주는 특별협의회로 넘기는데, 특별협의회는 징역 또는 유형 5년 이내의 형벌을 정할 권한이 있습니다.

4. 제가 보기에 트로츠키파의 군사 노선을 밝히는 일이 아주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미트, 푸트나, 지우크, 쿠지미초프가 진술하는 내용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트로츠키파에게 군대 안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간부들이 얼마쯤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5. 트로츠키파와 체카의 연계를 밝히는 선에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잡아낸 것이 없습니다. 제가 자료를 얼마쯤 모았는데, 이는 트로츠키파와 지노비예프파의 블록과 테러 활동의 존재에 관한 신호가 1933년에도 1934년에도 체카에 있었다는 점만 보여 줍니다. 이 모두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습니다.

6. 지금 밝혀지는 바로는, 총살된 재판 관련자 대부분은 끝까지 솔직한 진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 므라치콥스키조차 모든 것을 끝까지 털어놓지는 않았습니다. 드레이체르가 조직했고 므라치콥스키가 알고 있었던 테러 집단이 벌써 몇 개 드러났습니다.

7. 오래 참을 수 없는 체카 활동의 몇몇 결함에 관해 당신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개입 없이는 이 일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스탈린 동지, 이런 일을 편지에 써야 할지 저는 몹시 망설였습니다. 잘못했다면 꾸짖어 주십시오. 최고의 인사를 보냅니다.

9/IX—36년. 당신의 예조프.

결재 문구: “몰로토프 동지와 카가노비치 동지에게. 예조프 동지의 이 편지들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읽어 볼 만합니다. 안녕히! I. 스탈린 29/IX-36”[1]

주석

  1. 문서철의 다음 장에 있다(러시아 국립 사회정치사 문서고(РГАСПИ) 폰드 558, 목록 11, 문서철 729, 85장). ↩

NKVD 지도부 회의 보고 (1936년 12월 3일)

1936년 12월 3일

보고 계획

I.

1). 자기비판 일반의 의의와 그 이해. 2). 우리에게 자기비판이 갖는 의의(비밀 유지 등). 3). 결론.

II.

우리의 실패와 그 원인 1). 실패:

가) 트로츠키파에 대하여

4년. 신호. 이해; 자프란 사건 등.

나) 우파에 대하여.

다) 나머지도 나을 것이 없다.

2). 원인:

가) 주관적 원인을 찾지 말 것

나) 객관적 원인은 본질상 조직 문제

III.

조직 과제 1). 스탈린의 정식. 2). 정보 기구. 3). 중앙위원회의 기구 편제 승인 — 시작.

IV.

새로운 조직 개편의 핵심. 1). 경제국(ЭКУ) 폐지. 2). 방첩부(КРО) 창설. 3). 군[대] 특수부. 4). 작전부(Оперод) 분할. 5). 감옥부.

V.

이것은 시작이다 해야 할 일:

1). 수사부. 2). 기능별 편제를 끝낼 것. 3). 사찰에 무엇을 줄 것인가. 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 요원 사찰 중심 정보. 4). 지방 기구

가) 지구

나) 주

VI.

민경과 체포 1). 체포 분석(1935~36년) 2). 민경의 의의. 3). 기구 창설.

VII. 간부

1). 선발과 배치에 대한 관심. 체키스트의 유형. 2). 우리의 조치. 3). 여러분이 할 일.

VIII.

트로츠키파 사건에 관하여.

IX. 기관 이기주의와 당성에 관하여.

X. 개편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극비

보고

공화국 내무인민위원, 변강·주 NKVD 국장, 소련 NKVD 중앙 기구 지도 일꾼 협의회에서 한 소련 내무인민위원 N. I. 예조프 동지의 보고.

동지 여러분, 우리 협의회를 개회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특히 우리 기구를 개편하기로 한 당 중앙위원회의 최근 결정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의가 없으면 시작합시다.

자, 동지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부탁드릴 것은 저를 보통 말하는 뜻의 보고자로 여기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의 현재 활동 상태를 평가하고, 이 기관의 활동에서 드러난 실패의 원인을 지적하며,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 몇 가지를 다루는 것을 제 임무로 삼았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당면 문제 전부에 답을 드리는 것을 임무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첫째, 아직 그럴 때가 무르익지 않았고, 둘째, 그러려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몇몇 문제에는 답을 드려 보겠습니다. 동시에 그 문제들을 여러분이 풀어야 할 문제로 내놓겠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내놓고자 하는 첫 번째 문제는 자기비판 문제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자기비판을 하라고 호소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또 우리 모두가 함께 우리 기관이 지나온 단계의 활동을 분석해 보고, 그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소비에트 체제의 조건에서 자기비판은 우리 국가의 굳건함을 만들어 내는 추동력이자 어느 정도는 결정적인 힘입니다. 자기비판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수의 결함과 실패가 생겨,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연시켰을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가 일당제 정치 지도 체제를 갖춘 특별한 국가라는 점입니다. 우리 당, 단일한 당이 위에서 아래까지 국가 유기체 전체를 지도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를테면 통상적인 의회 체제의 요소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체제에서는 이질적인 정당들이 정부를 좌에서, 우에서, 중앙에서 비판하고, 그 결과 정부는 끊임없는 포화 아래 놓입니다. 우리는 일당제이고, 그래서 우리의 주된 추동력은 자기비판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결함을 들추어내고 그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비판은 우리 기관의 활동에도 그에 못지않은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기비판을 연단에 올라가 온갖 절절한 연설을 하며 제 가슴을 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세간에서 흔히 이해하듯 사람들이 반드시 서로 욕을 퍼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비판”이라는 말이 “자기비판”에서 나왔다고, 곧 서로 욕을 퍼붓는 것이라고 여기는 식이지요. 우리는 자기비판을 이 말의 당적인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런 자기비판이라야 오늘의 과제를 발판 삼아 아주 현실적이고 분명한 새 과제를 세울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자기비판이 왜 여기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가.

우리는 밖에서 비판받지 않는 기관입니다. 우리 소비에트 기관 아무것이나 들어 보십시오. 이를테면 갈래갈래 뻗은 경제 조직 체계를 거느린 중공업인민위원부나 다른 어느 인민위원부든 말입니다. 그들은 신문에서든 집회에서든 밖으로부터 어떤 비판이든 받을 수 있습니다.

NKVD는 이런 뜻에서, 활동의 작은 부분 몇 가지를 빼고는 전반적인 비판을 거의 받지 않는 기관입니다.

우리 활동의 조건, 곧 음모와 비밀 유지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우리 내부에서는 어느 당 조직이나 공장, 기관 등에서 펼칠 수 있는 만큼 폭넓은 형태로 자기비판을 쓸 수 없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작전 활동의 구체적 사실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자기비판의 실효성이 제한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자기비판 가능성과 그 규모 등이 제한되어 있다면, 객관적으로 우리에게는 다른 어느 곳보다 일종의 부패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우리 활동의 지나온 단계 몇 가지를 비판하려는 것은 이 일에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누군가를 걸고넘어지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나온 단계를 분명히 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지난 활동을 보면, 우리 각자가, 또 우리 모두가 대단히 많이 일하고 나름대로 제 일을 하고 있음에도, 결함이 산더미 같고 실패도 산더미 같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우리 활동을 바로잡을 수 없고, 적어도 우리 활동의 전망과 가까운 과제를 필요한 만큼 분명하게 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 활동의 오류와 실패에 관하여

그렇다면 우리 활동의 전반적인 결함과 개별적인 실패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먼저 가장 첨예하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실패라 할 문제를 내놓읍시다. 트로츠키-지노비예프 반혁명 패거리를 폭로하는 데서 우리 체키스트 활동이 실패한 문제입니다. 조금도 과장 없이 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비열한 놈들을 폭로하는 데 적어도 4년이나 늦었습니다.

보십시오, 경제 건설의 이런저런 부문에서 개별적인 실패가 일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실패에 대해 우리는 해당 부처의 누구든 꾸짖고 때립니다. 달리 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 체제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일을 형편없이 하고,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을 처벌하고, 해임하고, 꾸짖습니다. 그런 경우 뒤처진 부문에 온 당이 달려들어 그 부문을 실패에서 끌어내도록 돕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실패는 다른 부처에서는 덜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 일에서의 실패는 소비에트 국가의 공고화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뜻에서 가장 첨예했던 것이 바로 트로츠키-지노비예프 반혁명 음모를 늦게 폭로한 우리의 실패입니다. 이 실패는 세르게이 미로노비치 키로프 살해 사건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직접 손을 댄 살인자들과 그 사주자·조직자들의 개인적 죄를 제쳐 두면, 키로프 동지 살해의 책임은 우리 기관에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2년쯤 전에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눈뜨고 놓쳤다는 것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니 키로프 동지 살해 같은 사실은 우리 활동에서 드러난 결함을 바로잡는 데 우리의 모든 힘을 동원했어야 마땅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키로프 동지가 살해되고 적어도 1년 반이 지나서야 우리 기관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 같은 전면적인 반혁명 트로츠키주의 폭로에 나섰습니다.

그러니 당적으로, 볼셰비키답게 말하자면, 우리는 체키스트를 무엇보다 선진적인 볼셰비키이자 혁명가로, 제자리에 머물러 썩지 않고 늘 행동하며 적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평가하는데, 키로프 동지 살해 같은 신호가 있었는데도 반혁명 트로츠키주의의 뿌리를 드러내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더욱 용납할 수 없습니다.

동지 여러분, 반혁명 트로츠키 조직이 테러, 패전주의, 파괴 행위, 파괴 공작 등으로 귀결되는 전술 과제를 오래전에 정식화했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비밀이 아닙니다. 시기가 1931년이냐 1932년이냐 하는 논쟁은 사태를 바꾸지 못합니다. 어쨌든 적어도 1932년부터 트로츠키-지노비예프 블록의 반혁명 활동 방향 전체가 우리 당과 소비에트 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 투쟁을 조직하고, 파괴 행위와 파괴 공작를 광범하게 조직하는 데 있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파시스트 도당은 소비에트 체제의 기초를 조직적으로 허물려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를 더 무겁게 합니다. 이것이 소비에트 체제에 적대적인 고립된 개인들의 반혁명적 표출이 아니었기 때문에 죄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런 반혁명 단독자를 폭로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중심과 지방 그룹을 갖추고 널리 가지를 뻗어 존재하던 트로츠키 조직을 제때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의 죄를 더 무겁게 합니다. 체키스트인 여러분 스스로 잘 아시듯, 정보의 관점에서, 사찰의 관점에서 볼 때, 이미 형성된 조직, 더욱이 트로츠키-지노비예프 조직처럼 광범한 조직을 폭로하는 편이 단독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그래도 우리에게 신호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중앙과 지방의 옛 요원 자료를 검토하면서(여러분 각자가 현지에서 뒤져 보면 역시 무슨 실마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사건을 앞으로 밀고 나가 펼쳐 나갔어야 할 만큼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신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로츠키-지노비예프 반혁명 음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자프란 사건

가장 특징적인 예를 하나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스크바주와 중앙의 비밀정치부(СПО)에 관한 일입니다. 1933년에 요원 자프란이라는 자가 질베르만, 흐루스탈료프, 드레이체르를 비롯한 트로츠키파 그룹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요원 자신에 대해 나올 수 있는 추측을 미리 막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이 요원에 관해 몇 마디 하겠습니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결함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함도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이 요원이 일을 꼬이게 하고 도발을 할 수 있다고 추측할 만한 근거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원에 대한 개인적인 태도와 객관적 자료는 별개입니다.

체키스트의 임무는 요원이 들고 오는 군더더기를 다 걷어 내고, 필요한 것을 취해 근본을 붙잡고, 고리 하나하나를 따라 사슬 전체를 끌어내는 데 있습니다.

더 말씀드리면, 이 임무는 체키스트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도 개자식 중의 개자식 같은 놈이 느닷없이 신호를 주어 그 덕분에 우리가 사건을 진전시키는 경우가 어디 한둘입니까. 그러니 되풀이하지만, 요원에 대한 개인적인 태도는 더없이 부정적일 수 있어도, 여기서는 객관적 사실을 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 자질로 보면, 되풀이하지만, 자프란을 도발자이자 형편없는 요원으로 여길 근거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과 같은 객관적 사실을 알려 왔습니다.

1933년에 자프란은 질베르만, 흐루스탈료프, 드레이체르와 연결된 뒤 요원 보고에서, 제17차 당대회에서 참회 연설을 한 지도자들을 비롯해 트로츠키파와 지노비예프파의 행동이 양면분자의 행동임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게 입증했습니다. 그들의 양면 행위는 오로지 현존하는 반혁명 조직을 더욱 깊이 숨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자프란은 조직이 테러 방법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트로츠키-지노비예프 조직을 지원할 목적으로 국가 자금을 훔친 일을 비롯해 여러 구체적 사실도 알려 왔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센터의 존재를 추측했습니다. 모스크바 센터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모스크바에 활동적인 트로츠키파 그룹이 있고 거기서 드레이체르가 가장 활발한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드레이체르가 당시 동시베리아에서 공장장으로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요컨대 요원 자료를 모두 읽어 보면(저는 전부 읽었습니다) 바로 이 자프란의 요원 자료에는 현실로 확인된 온갖 사실이 보고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자프란의 문학적인 일반화 몇 가지는 제외하겠습니다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이 모든 일은 어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잘 진행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프란이 질베르만의 집에 앉아 있다가 반혁명 전단을 보았습니다. 아니, 질베르만이 제17차 당대회 결정을 비판하는 트로츠키파 전단을 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자프란은 그 전단을 달라고 했습니다. 질베르만은 거절했다가 나중에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앉아서 이 전단을 베껴, 그리고 필요한 사람에게 보여 줘.” 그래서 자프란은 전단을 자기 수첩에 베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불행하게도 자프란은 이 수첩에 자기 요원 보고를 모두 적어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온갖 불운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전(前) 모스크바주 OGPU 전권대표부 일꾼들이 자프란에게서 이 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모스크바 당 협의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레덴스 동지가 전단을 카가노비치 동지에게 넘겼고, 카가노비치 동지가 연설에서 이 전단을 언급했습니다. (대꾸: 전단 제목은 “카가노비치는 레닌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카가노비치 동지가 연설에서 이 전단을 이용하자 동지들은 어쩔 수 없이 질베르만과 흐루스탈료프를 체포해야 했습니다.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질베르만과 흐루스탈료프는 제기된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 뒤 모스크바 사람들이 중앙에 드레이체르 체포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드레이체르가 그때 공장장이었기 때문에 중앙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고, 사건은 다음과 같이 돌아갔습니다.

얼마 뒤 자프란 자신이 체포되어 도발 혐의로 신문을 받았습니다.

말씀드려야겠는데, 이 신문은 꽤 가혹했습니다. 저는 루트콥스키 동지가 진행하고 라드지빌롭스키 동지도 참여한 신문의 속기록을 읽었습니다. 라드지빌롭스키 동지 역시 어느 정도는 이 도발에 넘어갔습니다.

자, 요컨대 동지 여러분, 지금 이 신문 조서를 읽어 보면 그 오류가 코를 찌릅니다. 이 신문 속기록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금세 알아챕니다. 신문 내내 대략 이런 표현이 수두룩합니다. “트로츠키파가 그런 짓을 할 만큼 바보라고 누가 그럽디까?”

여러분 각자가 대체 누가 자프란을 이런 식으로 신문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수사의 과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프란을 폭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무게중심이 적을 폭로하는 데서 요원 자신을 폭로하는 데로 옮겨 가자 적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약해졌고, 체포자 신문 문제도 부차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요컨대 어찌어찌하여 자프란에게 도발 혐의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를 강제수용소에 5년간 가두는 근거가 된 주된 문서로 등장한 것은 그가 썼다는 이른바 위조 전단이었습니다. 말씀드려야겠는데, 저는 이 전단을 읽었습니다. 이것은 위조일 수가 없었습니다. 트로츠키파 회보에 실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프란은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았고 그저 이 전단을 베꼈을 뿐입니다. 자프란이 도발할 목적으로 이 전단을 직접 작성했다는 명목으로 그에게 5년이 주어졌습니다.

동지 여러분, 말씀드려야겠는데, 여러분이 이 사건을 더 가까이 살펴보았다면 자프란은 결코 이 반혁명 전단을 작성할 수 없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전단은 자프란에게는 조금도 없는 숙련된 정치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프란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라는 데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한 동지들이 좀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여기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정치적 오류의 가능성을 아예 제쳐 둔다 해도, 자프란을 이 전단의 작성자로 유죄 판결한 것은 법률상의 오류입니다.

그다음, 흐루스탈료프와 질베르만은 석방되었습니다. 드레이체르는 어떻게 된 일인지 여기, 여러분에게서 사건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진정서를 썼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프란이 자기를 모함한다고 분개하며 자프란을 사기꾼, 개자식 등으로 불렀습니다. 수사 경과를 누가 드레이체르에게 전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드레이체르는 어떻게든 수사에 관해 알아냈습니다.

이 사건의 특징적인 세부 사항을 몇 가지 더 들겠습니다. 드레이체르는 당시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드레이체르는 모스크바 트로츠키-지노비예프 테러 센터의 가장 활동적인 일원으로 총살되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흐루스탈료프는 바로 도로고밀롭스카야 거리에서 비밀 아지트를 유지하던 그 흐루스탈료프입니다. 거기서 스탈린 동지의 이동 경로를 감시했습니다. 질베르만은 세르게이 미로노비치 살해 사건으로 5년 형을 받았을 것입니다 (목소리들: “네”).

우리는 지금 이 질베르만을 강제수용소에서 불러들였습니다. 그의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에게도 드레이체르와 흐루스탈료프에게 닥친 것과 같은 운명이 닥칠 것입니다.

그리고 세부 사항이 또 여럿 있습니다. S. M. 키로프 살해 뒤, 카라간다 수용소에 있던 바로 이 자프란이 그곳에서 달아났습니다.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해 역에서 전화를 겁니다. “저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왔습니다. 제가 옳았기에 달아났습니다. 그러니 제 전과를 지워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오래 잡아 두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 동지 앞으로, 제 앞으로, 검사 앞으로 진정서를 냈습니다. 이 사건은 당통제위원회의 심리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프란을 석방하라는 제의가 나왔습니다. 그는 석방되었고, 휴양지로 보내졌고, 생활 형편도 마련받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전 그는 다른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사건이 어떤 것인지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어두운 일입니다. 전 요원 자프란과 전 NKVD 지구 분국 전권위원이 모여 무장을 갖춘 무슨 테러 그룹을 조직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조사해야 합니다. 정말 위험한 사건이거나 터무니없는 소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되풀이하지만, 이 사건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은 따로 살펴볼 것이고, 오늘 우리 이야기와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실패의 원인에 관하여

자프란 사건은 모든 실마리를 우리 손에 쥐여 준 신호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그 신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쳤음을 보여 주는 예시일 뿐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배신입니까, 경계심 부족입니까? 고의로 사건을 망친 것입니까, 아니면 스탈린 동지가 키로프 동지 살해 뒤에 쓴 편지에서 정식화했듯이 당적 감각이 없었던 것이 체키스트들에게 몹쓸 장난을 친 것입니까?

제 생각에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후자에 가까운 까닭은, 동지들에게 이 사실들을 붙잡을 감각도, 후각도, 경계심도, 날카로움도 그저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들을 예시로 들었고, 되풀이하지만 이것들은 단독 사실이 아니며 그에 못지않게 뚜렷한 다른 사실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경계심, 감각, 작전 후각이 없었습니다. 동지들은 이 일을 놓쳤습니다. 트로츠키파가 테러 같은 첨예한 투쟁 방법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는 아예 믿지 않았고, 이 일을 무슨 반당 반혁명쯤으로 보았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거대한 성공을 배경으로 우리 당과 사회주의 국가에 맞서 그런 첨예한 투쟁 형태로 넘어갈 만큼 뻔뻔한 자들이 나타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짐작하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에 들뜬 사람들이 장밋빛 안경을 쓰고 삶을 보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반혁명은 무슨 얼어 죽을 반혁명, 그게 어디서 나온단 말이오? 우리가 이런 성공, 이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반혁명이라니,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사람들은 기본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스탈린 동지는 우리 소비에트 국가가 강화될수록, 우리의 성공이 커질수록, 우리에게 격파당했으나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적대 계급의 잔재들이 점점 더 첨예한 투쟁 형태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체키스트가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의 임무는 우리의 성공을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뻐하십시오. 당 전체 대중에서도, 소비에트 시민 전체에서도 당신을 빼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기뻐하고 만세를 외치라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들을 잡아내라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적들은 물론 우리의 성공을 기뻐하기는커녕 온 힘을 다해 거기에 맞섭니다. 그런 적이 있고 앞으로도 있으리라고 당신은 미리 짐작해야 합니다.

동지 여러분,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만 저는 주관적 원인을 찾고 싶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책임자를 찾으려 들면 우리는 이 늪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무언가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트로츠키-지노비예프 음모를 밝히는 데 늦어지게 만든 객관적 원인이 여럿 있습니다.

이 객관적 원인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 우리 활동의 여러 실패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조직 문제가 이미 오래전에 의식 속으로, 우리 국가의 유기체 전체로, 당·소비에트와 그 밖의 조직들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는데도 우리는 이 문제에 마땅한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조직 문제는 지금 NKVD 기관 앞에 놓인 중심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실패의 객관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기본적으로, 조직 분야에서 우리가 정치 과제의 수준에 뒤처졌고 이런 관점에서 제대로 개편하지 못했다는 사정에 있습니다. 조직 과제란 우리 활동 전체에서 관심의 중심에 서야 할 조직 문제들의 총합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당·소비에트 기관에나 놓인 주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뒤처진 조직 과제를 정치 과제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문제에서 우리는 크게 뒤처졌을 뿐 아니라, 조직 지도 문제 자체의 의의를 곧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를 관심의 중심에 두지 않았으며, 이것이 일의 성공을 가로막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뒤처짐은 어디서 나타납니까? 무엇보다 먼저, 이 뒤처짐이 있기는 합니까?

수사와 요원망에 관하여

우리 역할을 규정할 때 우리는 NKVD가 반혁명과 투쟁하는 기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반혁명은 공개적으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반혁명분자들은 거리를 돌아다니지도, 유리창을 깨지도, 깃발을 들고 다니지도 않고, 합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자기 신문을 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소비에트 체제의 독특한 조건에서 비합법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정치 사찰 기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치 사찰 기관이라면, 요원망이 우리의 기초 중의 기초여야 한다는 것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요원망 이야기를 시작하면 흔히 그것이 우리의 눈이고 손이고 발이라고 즐겨 말하며 우리 몸의 부위를 전부 나열합니다.

지난번 협의회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눈도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눈은 심한 근시이고 어떤 눈은 원시입니다. 발과 손도 여러 가지입니다. 귀도 여러 가지여서 어떤 귀는 어둡고 어떤 귀는 그 반대입니다. 문제는 거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 활동의 기초 중의 기초가 정치 사찰의 지렛대로서 요원 공작이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출발한다면 조직 문제, 요원망을 뒷바라지하고 지도하는 문제가 우리 관심의 중심에 서 있었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사찰 기관이라면 적어도 80~90%는, 아니 그 이상을 요원망에 쏟아야 할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그렇습니까?

실제로 우리의 조직 과제는 거꾸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80 또는 90%를 요원 공작이 아니라 수사에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사에 대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고, 수사에 대해 포상하며, 수사라면 누구나 기꺼이 달려듭니다. 그런데 요원 공작 조합, 훌륭한 요원 내사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키스트가 요원을 만나 그에게서 중대한 정보를 얻고, 그 가운데 핵심을 취해 알맞은 방향을 주고, 들어가야 할 곳에 파고드는 일이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 사이에서는 요원망이란 어두운 일이라는 말이 드물지 않게 들립니다. “내가 요원과 무얼 하겠나? 수사관 일이 더 확실하지. 불게 만들고, 진술 받으면 끝이니까.”

동지 여러분, 우리에게서 사찰 활동과 수사 활동의 비율은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요원망은 지도하고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하고, 온갖 작전 조합을 궁리해 내야 합니다. 한마디로 체키스트 앞에 놓인 어마어마한 일을 펼쳐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이 일은 찬밥이 되었고, 그사이 수사 기능은 터무니없이 커졌습니다. 일부 체키스트에게 이런 전통까지 생겼습니다. “그자를 불게 만들려고 데려옵니다” 하고 말합니다. “자료는 있소?” 하고 물으면 “아니, 실마리는 좀 있습니다. 불 것 같습니다” 합니다.

스탈린 동지가 정식화한 관점, 곧 조직 활동이 정치 과제의 수준에 뒤처진 것을 없앤다는 관점에서 이 과제를 세운다면, 우리의 작전·사찰 활동 지도에 적용했을 때 다음과 같이 됩니다.

사찰의 정치 과제는 소비에트 체제의 적을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자 스탈린 동지는 우리의 성공이 커지고 우리가 강해질수록 광포한 적에게 남는 것은 테러에 의지하는 길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탈린 동지는 변경의 반혁명 민족주의 그룹들과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되살아나 꿈틀거릴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사찰 앞에 놓인 기본 과제는 바로 이런 정치적 단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전쟁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외국 정보기관들이 활발해지고 있고 우리 영토에서 열병처럼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보 활동은 적을 제때 성공적으로 들추어내 처치할 수 있도록 개편되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에게서 조직적으로는 물론 우리 활동의 매우 중요한 부문인 수사가 압도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갖 재능을 발휘하고, 여기서 조직자들이 드러나고, 여기서 작전 요원들이 일합니다. 그런데 요원 사찰 활동은 뒷마당에 밀려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직 활동이 현 단계에 우리 앞에 놓인 어마어마한 정치 과제의 수준에 뒤처졌다는 뜻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뒤처짐이야말로 어느 정도 우리의 여러 실패를 불러온 객관적 요인입니다. 제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무슨 객관적 원인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객관적 원인을 지적한 것은 주관적으로 죄를 찾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관적 죄를 찾으려 들면 파헤쳐지는 것이 아주 많을 테니까요. 특히 저 자신이 지난 2년 동안 우리 기관의 활동에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말씀드려야겠는데, 여러분 쪽에서 진행된 중대한 정치 사건 가운데 제가 이런저런 정도로 보고받지 않은 사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 있지 않습니다.

국가안전총국(ГУГБ)의 개편에 관하여

이제 동지 여러분, 얼마 전 당 중앙위원회가 우리에게 승인해 준 개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중앙위원회가 승인한 국가안전총국 조직 개편안은 이미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시작일 뿐이라고 봅니다. 사실 이 결정으로 우리 활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문제를 전부 내놓은 것이 아니고, 첫걸음을 내디딜 뿐입니다. 왜 그런지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편되지 않은 국가안전총국 부서는 다루지 않고, 새로 만들거나 폐지하는 부서만 다루겠습니다.

경제부(ЭКО) 폐지와 방첩부 조직에 관하여

무엇보다 먼저 경제부 폐지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경제부의 존재는 이 부서가 활동할 요소가 우리에게 있는 동안에는 정당했습니다. 그 요소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상품 유통에 민간 상인이 있었고 그들이 꽤 큰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 2) 공업에도 민간 자본이라는 얼마간의 층이 있었다는 점, 3) 농촌이 아직 집단화되지 않아 자본주의 성장 요소가 있었고, 그 경제적 토대가 아직 허물어지지 않았으며, 레닌이 말했듯 그곳에서 시시각각, 날마다, 대중적 규모로 자본가가 자라났다는 점, 4) 끝으로 국가 기구, 주로 국가 기구의 중간 고리와 하부 고리가 상당 부분 우리 전문가가 아니라 옛 형태의 전문가 손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객관적 사실이 경제부의 존재를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상품 유통에도 공업에도 민간업자가 없고, 농촌은 집단화되었으며, 농촌의 자본주의 성장 토대는 모두 완전히 허물어졌습니다. 국가 기구도 압도적 부분이 소비에트 체제에서 교육받았거나 일부 재교육받은 우리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달라진 상황이 사실상 벌써 오래전에 경제부를 스스로 사라지게 한 셈입니다. 경제부가 최근 몇 년 다룬 사건들은 전부 온갖 종류의 반혁명과의 투쟁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경제부는 강했고 좋은 사건들을 내놓았습니다. 앞 시기에 특징적이던 다른 사건들은 경제부가 최근 몇 년 전혀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을 할 토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경제부 폐지는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경제부가 예전 같은 모습으로 계속 존재할 객관적 전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실 경제부 폐지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부서를 모든 부분에 걸쳐 없앤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경제부에서 반혁명, 간첩 행위, 파괴 공작와 투쟁하는 기능을 떼어 내 새 부서인 방첩부를 만들었습니다.

새 부서를 왜 방첩부라고 불렀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아실 일입니다.

방첩부에는 반혁명, 간첩 행위, 파괴 행위, 파괴 공작와 투쟁하던 경제부의 부분과, 특수부의 방첩과들이 들어갔습니다.

군 담당 특수부에 관하여

군 담당 특수부를 만든 동기에 관해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우리는 특수부에서 방첩 부분을 떼어 냈습니까? 이 일에 대해 동지들에게 어떤 우려가 있고, 제가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저에게 어떤 우려를 표했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저는 가이 동지의 보고를 듣고 그 자리에서 그의 특수부에 불균형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군 관련 활동이 찬밥 신세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제게 붉은군대를 담당하는 특수부를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르익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정말이지 우리에게는 해마다 자라나는 어마어마한 군대가 있습니다. 날마다 일급 기술로 무장하는 군대, 성장하고 기술로 무장해 갈수록 날로 더 복잡한 과제가 놓이는 군대입니다. 붉은군대 앞에는 이전의 실천으로 풀리지 않았고 이제 실천으로 검증될 새로운 문제가 수천 가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 가운데 일부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 검증되고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붉은군대의 장비 문제를 보십시오. 이것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의 후방 조직 문제와 긴밀히 얽혀 있습니다. 후방 보장은 거대한 과제가 될 것이고, 지금부터 고민하고 진지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우리 현대 군대, 아니 어느 기계화 군단이나 여단 하나에만도 끊임없이 보급을 대는 것은 큰 일입니다. 엄청난 양의 연료, 탄약, 식량 등을 끌고 다녀야 합니다. 이 문제들은 후방 조직 문제와 연결해서 제기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붉은군대를 담당하는 특수부 앞에 새로운 과제를 잇달아 내놓습니다.

군대에 반혁명 분자가 없다고, 오늘 반소비에트 기분을 지닌 민간인이 내일 붉은군대에 소집되면 곧바로 소비에트 사람이 된다고 짐작하는 것은 볼셰비키와 체키스트의 감각을 다 잃은 사람들이나 할 일입니다. 인접한 적대 국가들이, 그리고 인접하지 않은 국가들도(독일, 영국 등) 우리 군대와 참모부에 기어들지 않았고 기어들려 하지 않는다고 짐작하는 것은 더욱 잘못입니다. 붉은군대에 반혁명 분자가 있을 수 없다는 명제에서 아예 출발한다면 특수부도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특수부 폐지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반혁명 분자와 외국 정보기관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고, 전쟁이 다가올수록 그 활동을 더욱 활발히 벌일 것이 사실이라면, 붉은군대를 제대로 담당할 특수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몇몇 동지들이 저에게 또다시 옛날의 “발싸개꾼”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말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에게 “발싸개꾼”이 있고 없고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누가 “발싸개꾼”이 되고 싶다면 보로실로프 동지에게 말해서 그런 동지를 자기 밑 보급계원으로 데려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반혁명과 투쟁할 의지가 있다면 “발싸개꾼” 이야기는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특수부원 간부를 새로운 사람들로 보강할 수 있고 보강할 것입니다. 이 부서를 진정으로 작전 능력과 전투 능력을 갖춘 부서로 만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일을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발싸개꾼”을 내세우는 이유는 전혀 비판을 견뎌 내지 못합니다.

특수부 앞에는 거대한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말해서 활동 개편의 관점에서 보면 특수부 앞에 놓인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이 활동을 조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야 하고, 특수부들의 과제를 분명히 규정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특수부는 육군과 해군 안의 강력한 방첩 조직, 강력한 정보 기구여야 합니다. 거기에는 육군, 해군, 지상군, 지하[원문대로]군, 공군을 아는 숙련된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앞에 놓인 거대한 과제를 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일 우리 군대가 국경을 넘을 때 우리 특수부원들이 무엇을 할지, 적의 영토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규정해야 합니다.

자, 이런 사소한 문제만 들어 보십시오. 제가 특수부장 가이 동지에게 “이러이러한 제2선 사단이 편성될 것입니다. 이 사단의 특수부장은 누가 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는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사단장이 아무개이고 정치부장이 아무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총사령부 참모부에 문의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수부장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비밀 인물이라 형체가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목소리: “그야말로 신화 속 인물입니다”).

그러니 제가 보기에 특수부를 붉은군대를 담당하는 독립 부서로 분리한 것은 아주 옳은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들 말마따나, 부디 자기 일을 감당해 내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이 부서는 지방 조직이 어마어마합니다. 특수부 기구가 인원 면에서 국가안전총국의 가장 강력한 기구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군 담당 특수부 창설이 더욱 옳은 것은 붉은군대에서 반혁명과의 투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수부에는 과가 한둘 있었는데, 거기에 지상군 전체, 곧 보병, 포병, 자동차화·기계화 부대 등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만능 기구로 군대를 담당하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특수부에 튼튼한 인력의 뼈대를 세우고, 작전 활동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말이지만, 특수부 활동을 재미없고 체키스트답지 않은 “발싸개” 일로 여기는 일부 체키스트의 기분에 전환을 일으켜야 합니다. 특수부가 여러분의 활동 가운데 가장 명예로운 분야의 하나라는 기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여러분 특수부원들이 가장 먼저 전개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숙련된 정보 요원 가운데 검증된 간부가 있어야 합니다.

개편 전에는 특수부의 일반 방첩 기능이 군 담당 활동을 완전히 그늘에 가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여기서도 조직의 관점, 조직 활동이 정치 과제에 뒤처진 것을 없앤다는 스탈린의 정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은 정보 활동을 달리,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럴 힘이 모자랐습니다. 조직 활동이 일반 방첩 활동이 군 관련 활동 전체를 짓눌러 버리게 짜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군 관련 사건이 아주 적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군대 안의 트로츠키파 사건도, 군대에 트로츠키파가 있는데도 우리는 군 쪽이 아니라 민간 쪽에서 접근했습니다. 제 생각에 군 트로츠키파 계통을 우리는 아직 끝까지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군대에는 트로츠키파만이 아니라 온갖 다른 개자식들도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군대는 주민과 격리되어 있지 않고, 세균 하나 들어가지 않는 밀봉된 병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혁명 분자들이 있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상당히 받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 참모부들의 정보기관이 우리 군대 안에 자기 요원망을 만들고 파괴 공작를 조직하려 애쓴다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공업에서 파괴 공작·파괴 조직을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는 파괴 공작 행위를 저지를 수 없다고 기대할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는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적어도 공업보다 적지 않습니다. 전쟁 때의 후방과 전선의 관계 같은 문제를 보십시오. 적의 요원망이 거기서 혼란을 일으키면 중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 특수부 창설은 조직상 정당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부서는 중요성으로 보아 중심 부서의 하나입니다. 이 부서의 구체적 과제는 가까운 시일 안에 규정하겠습니다.

지금 이 부서의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에 잠시 머물고자 합니다. 이 부서 활동의 특징은(이것은 우리 작전 활동 전체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공세적인 활동 형태로 넘어가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방어 활동의 완성된 형태로서 우리는 공세 형태를 택해야 합니다. 특수부는 이 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부서가 되어야 합니다. 공세로 넘어가,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 영토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적들 눈치를 볼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 눈치를 보며 우리가 어디서 어느 곳을 꼬집을지 생각하게 합시다.

이것이 제가 보기에 특수부의 특징입니다만, 되풀이하지만 이것은 우리 작전 활동 전체에 해당합니다.

작전부 분할에 관하여

끝으로 작전부 분할에 관해서입니다. 이것이 중대한 조직 조치라는 것은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매우 큽니다.

분할 자체는 고통 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경호 기능과 작전부 기능을 독립된 활동 분야로 분리했습니다. 이 분할은 우리 활동 전체의 진행이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당과 정부 지도부 경호를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 소련처럼 위대한 국가에서 정부 경호는 튼튼한 국가적 기반 위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정부와 지도자들을 경호한다는 사실을 놓고 비밀스럽게 굴 것도, 숨길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경호한다는 것을 알게 합시다. (목소리들: “옳습니다, 옳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굴코를 꼭 비밀 정원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웃음).

작전부 부분으로 말하면, 물론 활동 전체를 매우 진지하게 개편해야 하고, 무엇보다 작전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경호 기능이 작전부에 있을 때는 그것이 명예로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작전부에서 경호가 빠지면 몇몇 동지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게 무슨 부서야? 무슨 지원 부서지.” “심부름이나 해야 하는 부서, 자기 상관 말고도 위에 상관이 여럿 있는 부서.”

동지 여러분, 그런 규정은 옳지 않습니다! 경호를 작전부에서 분리하는 문제를 결정할 때 우리는 작전부 자체의 활동을 진지하게 개편해야 하고, 무엇보다 작전부 앞에 가장 중요한 과제를 여럿 내놓고 풀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문제는 외부 감시 근무입니다. 이것을 진지하게 세워야 합니다. 적어도 거리를 지나가는 어느 시민이든 정보 요원을 일일이 세면서 “저건 정보 요원이군, 저것도 정보 요원이군” 하고 말하지 않도록 일을 세워야 합니다.

기본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정보 활동 수준을 높이려 합니다. 적어도 대중적인 외부 정보망을 고도로 숙련되게 만들어, 자기 일을 알고 진지한 훈련을 받은 교양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려 합니다. 그리고 특수 부대(방첩부 계통)에는 필요하면 연미복을 입혀 외교 관람석에 앉힐 수 있고, 외국인들이 모이는 호텔에서 폭스트롯을 출 수 있으며, 우리도 외국인도 민망하게 하지 않는 그런 정보 요원을 두려 합니다. 정보 요원은 외국어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를테면 폴란드 같은 나라에 마음 놓고 앉혀 둘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 요원을 해외로 보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부서 안에서만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행 기능뿐 아니라 어느 정도 정보 기능까지 맡는 외부 감시 근무를 마땅한 높이로 세워야 합니다.

둘째 문제는 기술입니다.

말씀드려야겠는데, 우리 체키스트 활동에서 기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사찰이 우리 활동의 주도적 부분이 되면 사람들은 기술로 돌아설 것입니다. 기술로 돌아서야 하는 까닭은 기술이 무엇보다 사건을 문서로 입증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고, 이것이 사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기술에 대한 태도는 될 대로 되라는 식입니다. 수사 사건을 문서로 입증하면 좋고, 못 해도 큰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술을 쓰면 사건을 작전상 처리하는 일이 빨라지고, 특정 인물들을 감시하는 동지들의 힘과 기운도 덜 든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정보 활동을 진지하게 세워야 하고, 우리 사찰이 적을 찾아내기 위해 기술을 더 많이 쓰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술은 그리 작은 일이 아닙니다. 적을 폭로할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을 매우 진지하고 착실하게 써야 합니다. 어쨌든 볼로비치 동지가 제게 말한, 그러나 아직 우리 실무에 도입되지 않은 개별적인 시도들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전혀 쓰지 않는 귀중한 발명들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우리 기술의 총합입니다. 곧 편지 검열, 전화 도청, 그 밖의 온갖 방법을 이용한 도청, 사진, 문서 압수 등, 정보 활동에 봉사하도록 세워야 할 기술 전체인데, 이것은 그 자체로 정보 활동의 매우 중대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이 작전부를 이렇게 그립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부서에 있던 양립할 수 없는 두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