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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프 문서집 (1923~1939)

인물니콜라이 예조프, 이오시프 스탈린, 겐리흐 야고다, 레프 트로츠키, 라브렌티 베리야, 미하일 톰스키, 게오르기 몰차노프, 미하일 프리놉스키, 세르게이 키로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레프 카메네프, 알렉세이 리코프, 니콜라이 부하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라자르 카가노비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게오르기 말렌코프, 안드레이 비신스키, 카를 파우케르, 바실리 울리히, 니콜라이 리치코프, 시몬 페틀류라, 네스토르 마흐노, 세묜 피린, 막심 고리키,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게오르기 퍄타코프, 그리고리 소콜니코프, 카를 라데크, 레오니트 세레브랴코프, 알렉산드르 우스펜스키, 아르투르 아르투조프, 미하일 투하쳅스키, 얀 가마르니크, 이오나 야키르, 이에로님 우보레비치, 아우구스트 코르크, 로베르트 에이데만, 보리스 펠트만, 비토프트 푸트나, 아벨 예누키제, 프세볼로트 발리츠키, 그리고리 오르조니키제, 겐리흐 류시코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파벨 포스티셰프, 알렉산드르 포스크료비셰프, 블라디미르 레닌, 스타니슬라프 레덴스, 레오니트 자콥스키, 야코프 아그라노프, 안드레이 즈다노프, 아나스타스 미코얀, 마트베이 시키랴토프, 세르게이 므라치콥스키, 이반 스미르노프, 니콜라이 우글라노프, 바실리 시미트, 레본 미르조얀, 레프 카라한, 피에르 라발, 앤서니 이든, 니콜라이 블라시크, 마르테먄 류틴, 이즈라일 다긴, 블라디미르 쿠르스키, 세르게이 미로노프, 빅토르 주라블료프, 미하일 리트빈, 레프 벨스키, 레오니트 니콜라예프, 야코프 리프시츠, 마트베이 베르만, 스타니스와프 코시오르, 블라디미르 체사르스키, 세라피마 리조바, 게오르기 프로코피예프, 그리고리 예브도키모프, 레오폴트 아베르바흐, 이오시프 운쉴리흐트, 글레프 보키, 보리스 셰볼다예프, 니키타 피보바로프, 알렉산드르 벨로보로도프, 알렉산드르 슬렙코프, 니콜라이 골로데트, 알렉산드르 체르뱌코프, 로베르트 에이헤, 블라스 추바리, 세르고 고글리제, 그리고리 그린코, 폴리카르프 므디바니, 빌헬름 크노린, 오시프 퍄트니츠키, 예브헨 코노발레츠,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이그나티 소스놉스키, 알렉산드르 콜차크, 안톤 데니킨, 니키타 흐루쇼프, 미르 자파르 바기로프, 파벨 불라노프, 블라디미르 넵스키, 게오르기 블라고느라보프 용어내무인민위원부(NKVD), 대숙청, 예조프시나, NKVD 작전명령 제00447호, 민족 작전, 폴란드 작전, 트로이카, 제1범주 / 제2범주 사건대숙청

특별협의회 권한 확대에 관해 예조프와 비신스키가 스탈린·몰로토프에게 보낸 메모 (1937년 9월 4일)

1937년 9월 4일

극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 I. V. 스탈린 동지 앞

소련 인민위원회의 - V. M. 몰로토프 동지 앞

현재 NKVD 기관과 검찰은 반소비에트 활동을 벌이는 폴란드 월경 망명자, 전 폴란드사회당(ППС) 당원 등을 적발하여 행정 절차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탄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위에 적은 범주의 사건에서 자유 박탈 10년 형의 선고는 소련 내무인민위원 산하 특별협의회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상에 근거하여 다음 제안의 승인을 요청한다.

“전 폴란드 월경 망명자, 전 폴란드사회당 당원 등의 반소비에트 활동 사건에 대하여, 소련 내무인민위원 산하 특별협의회가 10년 이하의 감옥 수감형을 부과하는 것을 허가한다.”

N. 예조프

A. 비신스키

반소비에트 분자 탄압 작전의 첫 결과에 관한 특별보고 (1937년 9월 8일)

1937년 9월 8일

제59750호

반소비에트 분자 탄압 결정에 따라 8월 5일부터 전 쿨라크, 형사범, 적극적인 반소비에트 파괴 활동을 벌이는 반혁명 분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맨 먼저 제1범주로 분류된 가장 적대적인 부류를 체포했다. 피체포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반혁명 조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므로, 제2범주로 분류된 자들 가운데 이 조직의 참여자도 체포했다.

작전의 첫 결과:

올해 9월 1일 현재 체포된 자는 모두 146,225명이다. 그 가운데 69,172명이 전 쿨라크, 41,603명이 형사범, 35,454명이 반혁명 분자이다.

이 피체포자 가운데 트로이카가 판결한 자는 총살형 31,530명, 수용소와 감옥 구금형 13,669명이다.

벌써 초기 결과만 보아도 타격이 올바르게 겨누어졌음을 알 수 있다. 타격은 과거에 거의 건드리지 않아 온갖 색깔의 반혁명분자들의 활동 기반이 되어 온 가장 적대적인 분자들에게 가해졌다.

이번 체포로 농업, 공업, 운수 부문에서 다양한 정치 색채의 반혁명 조직을 다수 적발할 수 있었다.

피체포자들의 진술에 따라 9월 1일 현재 적발되어 소탕 중인 것은 다음과 같다.

구분수참여자 수(명)
a) 주로 콜호스와 솝호스에 있는 쿨라크, 파괴 행위, 파괴 공작, 봉기 그룹과 조직2,32819,523
b) 교회·종파 봉기 및 파시스트 그룹과 조직43710
c) 백위군 및 군사 카자크 봉기 조직과 그룹1592,331
d) 반소비에트 정당원들이 만든 그룹과 조직381,673
e) 파괴 공작, 간첩, 테러 그룹과 조직48467
f) 민족주의 그룹과 조직24319
g) 비적 조직37140

이 그룹과 조직의 참여자들을 수색하여 다음을 압수했다.

품목수량
기관총1
소총639
각종 엽총1,007
권총과 리볼버1,069
포탄157
수류탄23
폭발물1,190kg
백병 무기2,499점

콜호스와 솝호스의 쿨라크 조직

작전 과정에서 소련의 거의 모든 주에서 콜호스와 솝호스가 전 쿨라크(쿨라크 청산을 피해 숨은 자, 형기를 마친 자, 구금 장소에서 탈주한 자), 전 반혁명 봉기 참여자, 사회혁명당원, 백위군, 비적으로 크게 오염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구금 장소와 유형지에서 자기 지구로 돌아온 이 적극적인 반혁명 부류는, 많은 경우 지구 당·소비에트 기구에 도사린 우익·트로츠키파 배신자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아 콜호스에 튼튼한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그곳에 파괴 행위, 파괴 공작, 봉기 그룹을 만들었고, 콜호스 의장, 관리위원, 작업반장, 회계원 같은 지도적 직위까지 차지했다. 그들은 콜호스원들을 공포에 떨게 하면서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반소비에트 파괴 활동을 벌였다. 농기구를 망가뜨리고 없앴으며, 가축을 죽이고, 종자를 못 쓰게 하고, 수확한 곡물을 불태우고, 노동 규율을 무너뜨렸다. 또 반혁명 선동을 하고, 농업 캠페인을 파탄 내고, 노동일 계산을 고의로 뒤엉클어 콜호스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으며, 봉기 그룹을 만들고, 무기를 모으고,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일부 주의 콜호스에서는 유형지에서 탈주하거나 돌아온 쿨라크들이 콜호스원들에게 이전에 자기 소유였던 재산을 돌려 달라고 최후통첩하듯 요구하며, 그러지 않으면 피의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했다(서부주, 고리키 변강, 쿠르스크주 등).

서부주의 여러 지구에서는 주토지국(ОБЛЗУ)의 지도적 직위에 기어든 반혁명분자들의 도움으로, 유형지에서 돌아온 전 쿨라크들에게 농가, 집, 과수원, 가축 등을 돌려주었다.

많은 콜호스에서 쿨라크를 비롯한 반혁명 분자들이 콜호스원들을 어찌나 공포에 떨게 했는지, 콜호스원들은 전횡을 말없이 참았고 보복이 두려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국경 관구와 지구의 콜호스에 만들어진 쿨라크 조직의 체포된 참여자들을 수사한 결과, 이 조직들이 쿨라크 그룹의 파괴 행위·파괴 공작 활동을 지휘한 외국 정보기관과 직접 연계되어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야로슬라블주 페레슬라블 지구에서 14명으로 이루어진 파괴 공작·봉기 조직이 적발되어 소탕 중이다. 그 가운데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서 제명된 자 1명, 전 쿨라크 2명, 사회혁명당원 1명, 유형지에서 돌아온 전 쿨라크 7명, 역시 유형을 다녀온 전 반혁명 봉기 참여자 4명이 있다. 조직 참여자들은 기계트랙터소(МТС)와 콜호스에서 적극적인 파괴 행위와 파괴 공작을 벌였고, 반혁명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며, 봉기 선동과 트로츠키파 선동을 했고, 전쟁이 나면 운수, 기계트랙터소 계통, 콜호스에서 파괴 공작을 저지를 준비를 했다.

이 조직은 주에서 소탕된 반혁명 트로츠키파 조직의 말단이었다.

같은 야로슬라블주 코스트로마 지구에서는 반혁명 무장 봉기 참여자인 전 쿨라크들로 이루어진 쿨라크 봉기 조직이 적발되었다. 조직 참여자들은 콜호스원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사보타주를 부추겼으며, 콜호스에서 해체 활동을 벌였다.

서부주 크라스노고르스크 지구에서는 사제 폴레곤코와 전 쿨라크인 이반, 바실리, 니콜라이 루반 형제가 만든 반혁명 봉기 조직이 적발되고 있다. 루반 형제는 자기들이 조직에 끌어들인 전 쿨라크와 적극적 교회 신도 17명의 이름을 수사 기관에 댔다.

1935년 조직원 일부는 콜호스에 가입해 그 안에서 파괴 행위를 벌였다. 동시에 개인농으로 남은 다른 일부는 반혁명 선동으로 니콜라옙카 마을의 개인농 100가구 가까이가 콜호스에 가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조직 참여자들은 콜호스원과 개인농 사이의 적대감을 부채질했고, 개인농들을 부추겨 콜호스 초지를 멋대로 차지하게 했다.

스베르들롭스크주 코체보 지구 자폴체보 마을에서는 콜호스 의장인 전 쿨라크 테테를레프가 이끄는 전 쿨라크들의 민족주의 반혁명 그룹이 적발되었다. 이 그룹은 미리 짠 계획에 따라 대대적인 파괴 행위를 벌였다.

콜호스원들이 소비에트 권력에 불만을 품게 하려고 테테를레프는 노동일 계산을 어지럽히고 게으름뱅이들에게 먼저 곡물을 공급했다. 봄 파종을 한 달 앞두고 테테를레프는 콜호스 말들의 사료를 호밀 짚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말들은 쓸모없게 되었고 파종은 파탄 났다.

레닌그라드주 프스코프 관구의 폴나 지구와 그도프 지구에서는 체포된 에스토니아인 개인농 클리마르의 진술로 간첩·파괴 공작 조직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다. 클리마르는 올해 5월 에스토니아 정보원이자 콜호스 의장인 무가에게 포섭되었으며, 그에게서 콜호스원들 사이에 패전주의 선동을 하고, 파괴 공작을 저지르고, 반소비에트 기분을 가진 자들을 간첩·파괴 공작 활동에 끌어들이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공업과 운수의 쿨라크 조직

건설 현장, 공업 기업, 운수에서 상당수의 전 쿨라크와 그들이 만든 조직 그룹이 적발되었다. 국민경제의 이 부문들에 잠입한 쿨라크 분자들은 반혁명 선동을 하고, 태업을 조직하고, 새 임금률을 사보타주하고, 집회를 파탄 내고, 스타하노프 운동에 맞서 싸우고, 파괴 행위를 하고, 파괴 공작을 저질렀다.

로조바야역에서는 독일 정보기관 주재원인 전 쿨라크 람이 이끄는 파시스트 간첩·파괴 공작 그룹이 적발되어 소탕되었다. 그룹 참여자들은 파괴 행위를 벌이고, 파괴 공작을 준비하고, 간첩 정보를 수집했다.

군용 비행장 제77호 건설 현장(서부주)에서는 유형지에서 탈주하거나 수용소에서 돌아온 전 쿨라크 9명으로 이루어진 파괴 공작 그룹이 소탕되었다. 그룹 참여자들은 제재기와 비행 요원용으로 새로 지은 집을 불태웠다.

케르젠 제재소(고리키주)에서는 전 쿨라크들로 이루어진 반혁명 파괴 공작·파괴 행위 그룹이 소탕되었다. 이 그룹은 여러 파괴 공작(석유 저장고 방화, 기계 사고 등)을 저질렀다.

페르보우랄스크 강관 공장에서는 쿨라크 청산을 피해 숨은 전 쿨라크 키네프가 만든 쿨라크 파괴 공작·파괴 행위 그룹이 소탕되었다. 이 그룹은 공장에서 태업을 조직하고, 노동자 집회를 파탄 내고, 스타하노프 운동 반대 선동을 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강 칸스크 지구에서는 적극적인 반혁명 활동으로 특별 이주민 신가옙스키가 체포되었다. 그는 칸스크 제재소에 이곳에서 일하는 특별 이주민들로 이루어진 반혁명 파괴 공작·봉기 조직이 있다고 진술했다. 조직 참여자들은 파괴 공작을 몇 차례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18명이 체포되었다.

교회·종파 반혁명 지하 조직

지금 드러나고 있는 광범한 교회·종파 봉기 지하 조직의 존재는 진지하게 주목할 만하다. 서부주, 고리키주, 모스크바주, 스베르들롭스크주 등지에서 교회·종파 반혁명 조직이 대거 적발되고 있다.

수사로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사제, 종파 신도, 수도자, 전 쿨라크, 백위군으로 이루어진 이 조직들은 여러 해에 걸쳐 적극적인 봉기 활동을 벌였다. 전 쿨라크들을 조직하고 그들로 콜호스에 파괴 공작·파괴 행위 그룹을 만들었으며, 테러 행위를 준비하고, 광범한 반혁명 선전과 선동을 했다.

서부주에서는 독일 정보기관과 연계된 종파 설교자 폴루파킨이 만든 반전주의 침례교도의 대규모 봉기 조직이 적발되었다. 이 조직은 주의 10개 지구에 지부를 두었다. 이 조직 사건으로 102명이 체포되었다.

고리키주에서는 전 쿨라크인 수도사 사빈의 교회·군주제 조직이 소탕되고 있다. 이 조직은 주의 여러 지구를 아우르며 전 쿨라크, 떠돌이 사제, 수도사, “순례자”, 신들린 여자 등으로 이루어졌다. 조직원 사이의 연락은 떠돌이 수녀들을 통해 유지했다. 조직은 반혁명 선전과 선동을 하고, 반소비에트 전단을 퍼뜨리고, 테러 행위를 준비하고, 봉기 인력을 규합했다.

첼랴빈스크주에서는 피체포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종교 흐름의 대표들이 뭉친 연합체인 교회 신도들의 광범하게 뻗어 나간 봉기·테러 조직이 적발되었다. 체포된 주교 뱌트킨의 진술에 따르면, 이 조직은 주의 여러 지구에 참여자 300명이 넘는 불법 봉기 거점을 두고 있다. 조직의 머리는 봉기 영적 협의회이고, 그 지도자는 사제이자 전 백군 장교인 보르모토프이다. 주의 가장 큰 지구들에는 지구 참모부가 있다. 조직은 군사 행동이 시작되는 때 파괴 공작을 벌이고 봉기를 조직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조직은 모스크바에서 비탈리 대주교, 세르기 대주교와 연계되어 있었다.

스베르들롭스크주 시크순 지구에서 적발된 같은 성격의 교회·종파 봉기 조직은 반혁명 활동에서 우익·트로츠키파 분자들과 손을 잡았다.

봉기 조직

전 쿨라크와 반혁명 분자 가운데 가장 적대적인 분자들을 타격하자, 이전 작전에서 건드리지 않은 채 오랫동안 존재해 온, 철저히 은폐된 봉기 거점들도 적발할 수 있었다.

첼랴빈스크주에서는 카자크와 백위군 분자가 많은 쿠르간 지구, 쿠타미시 지구, 즈베리노골롭스코예 지구에서 활동하고, 페트로파블롭스크(카자흐스탄 카라간다주)와 오므스크주의 여러 지구에 분파를 둔 대규모 봉기 조직이 적발되어 소탕 중이다. 조직은 주로 전 봉기 참여자들로 이루어졌다.

모스크바에서는 콜차크 밑에서 검사보를 지냈고 체포되기 전 “노동의 승리” 공장의 법률 고문으로 있던 S. M. 트로이츠키가 체포되었다. 그는 수사에서 자신이 주로 전직 장교들로 이루어진 반혁명 파시스트 조직의 참여자라고 진술했다. 조직은 지노비예프식 원칙으로 세워졌으며 테러 행위를 저지르고 무장 봉기를 준비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조직 참여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오데사주 젤츠 지구에서는 독일 정보기관 첩자 포페르가 만들고 전 쿨라크들로 이루어진 반혁명 파시스트 봉기 조직이 적발되었다. 이 사건으로 19명이 체포되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도네츠크주 스탈린 지구와 포스티셰프 지구에서는 체포된 독일 첩자 그린코의 진술에 따라 40명 규모의 파괴 공작·봉기 조직이 적발되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지토미르 관구에서는 키예프 주재 독일 영사관이 첩자 일만, 네이시, 랴우를 통해 만들고 지휘한 독일인 파괴 공작·봉기 조직이 적발되어 소탕되었다. 조직은 전 쿨라크, 교회 신도, 독일인 설교자로 이루어졌다. 이 사건으로 25명이 체포되었다.

고리키주 디베예보 지구에서는 전 쿨라크, 경찰, 그 밖의 반혁명 분자 40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쿨라크 봉기·파괴 공작·테러 조직이 소탕되고 있다. 조직 지도자는 첼라티마 농촌 소비에트 의장과 같은 이름의 콜호스 의장이다. 조직 참여자들은 파괴 공작과 테러 행위를 여러 차례 저질렀다.

북오세티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키로프 지구에서는 전 쿨라크 10명과 헌병 2명으로 이루어져 1930년부터 존재해 온 반혁명 그룹이 적발되었다. 7년 동안 이 그룹은 처벌받지 않은 채 파괴 행위, 파괴 공작, 봉기 활동을 벌였다.

체포된 전 쿨라크와 그 밖의 반혁명 분자 사건 수사에서는, 쿨라크, 전 지주, 백위군, 교회 신도, 종파 신도가 인민의 적 리코프, 부하린, 투하쳅스키, 코르크 등을 옹호하는 방첩 선동을 하고, 그들을 자기들의 이데올로그로 내세우며, 소비에트 권력과의 투쟁에서 그들을 온갖 수단으로 돕겠다는 뜻을 대놓고 밝힌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

적극적인 반혁명 분자, 쿨라크 분자, 형사범을 제거한 일은 농촌을 깨끗이 하고 어느 정도 건전하게 했으며, 콜호스원들의 정치적·생산적 적극성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콜호스의 노동 규율이 높아졌고, 결근이 크게 줄었으며, 노동 생산성과 질이 높아졌다. 도시와 농촌에서 강도와 절도가 크게 줄었다.

작전은 긍정적인 기분이 높아지고, 주민들이 숨어 있는 적대 분자를 찾아내어 폭로하는 데 크게 적극적인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기분을 보여 주는 지표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들 수 있다. 개인농이 콜호스 가입 신청서를 내고, 반혁명 분자를 찾아내어 폭로하는 데 NKVD 기관을 자발적으로 적극 도우며, 스스로 NKVD 기관에 찾아와 피체포자의 반소비에트 활동을 입증하고 반혁명 조직을 드러내는 진술을 자발적으로 하고, 정부 조치를 찬성하는 긍정적 발언을 한다.

“소비에트 권력이 콜호스 건설의 적들을 체포한 것은 옳은 일이다. 숨어 있는 다른 적들이 콜호스를 해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더 많이 체포해야 한다.”

(쿠르바노프 바이수르, 체첸·잉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구춤칼레 마을 콜호스원.)

“NKVD가 일을 제대로 한다. 내가 어제 신문을 돌렸는데, 사람들이 만족해하며 콜호스가 쿨라크에게서 깨끗해지니 이제 콜호스에서 일하기가 더 수월하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다들 말한다…”

(오르조니키제 변강 예브도키모프스코예 지구 통신국 우편 배달원.)

“우리 콜호스원들은 콜호스에 기어든 인민의 적들을 모두 찾아내는 일을 온 힘을 다해 도와야 하고, 그들을 우리에게서 더 멀리 격리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해야 한다…”

(크라스노고르스카야 스타니차의 콜호스원 그룹 가운데 한 콜호스원.)

노동자 아바쿠모프(툴라시 제175호 공장 제8작업장)는 이렇게 말했다. “쿨라크와 이질 분자를 다시 다잡으니 잘된 일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해만 끼치고 쓸모는 별로 없다. 이런 조치는 그저 환영할 일이다.”

일린스코예 지구 부존니 콜호스의 스타하노프 일꾼 추예프는 이렇게 쓴다. “상습 절도범인 제 형제에게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콜호스원들의 물건을 줄곧 훔치며 그들이 편히 일하지 못하게 합니다.”

보타기 마을(서부주)의 콜호스원들은 이렇게 요청한다. “벨리시 NKVD가 콜호스에서 적들을 깨끗이 몰아내는 일을 도와주기를 요청합니다. 콜호스 의장 코사레프는 술에 절어 지냅니다. 콜호스에서 1년 넘게 감사가 없었습니다. 지구 토지부에 편지를 썼는데 답이 감감무소식입니다. 아마 그곳에도 트로츠키파가 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모즈도크 지구 갈류가옙스카야 스타니차에서는 작전 다음 날 평범한 콜호스원 6명이 작전 그룹장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소로킨, 샬노이, 세로프 등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그들이 소비에트 권력에 품은 적대적 기분과 파괴 활동에 관해 진술하기로 했습니다.” 이 콜호스원들의 진술에 따라 갈류가옙스카야 스타니차에서 반혁명 조직이 적발되었다.

서부주 류디노보 지구와 뱌지마 지구에서는 콜호스원들이 자기 발의로 숨어 있던 쿨라크들을 붙잡아 NKVD 지구 분국으로 넘겼다.

“부가이첸코, 아가포프, 크라스노바예프 등의 쿨라크들이 수용소에서 돌아오자 우리 콜호스에 소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부가이첸코는 모든 쿨라크, 게으름뱅이, 도둑을 자기 주위에 모아 콜호스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콜호스에 맞서 싸웠지만,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당국이 이 쿨라크 패거리를 제거하고 다잡은 것은 옳은 일이다. 지금 콜호스원들은 이에 매우 만족한다.”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레닌 지구 “레닌의 길” 콜호스의 콜호스원.)

“우리 콜호스원들을 돌봐 주시는 스탈린 동지께 전보를 보내야 한다. 우리에게 적들이 있었지만 NKVD가 잡아갔다. 이제 그들은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몇 놈 더 잡아가야 한다.”

(치조프와 코즐로프, 오르조니키제 변강 노보마리옙스카야 스타니차의 콜호스원.)

“쿨라크들을 잡아간 뒤로 일하기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모른다. 그들은 선동으로 모두를 들쑤셔 놓았고, 일에서도 해를 끼쳤다. 콜호스에서 쿨라크를 깨끗이 몰아내는 문제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들은 아직 많다.”

(솔로마티나, 미네랄니예보디 지구의 전 농업 노동자.)

이와 함께 반혁명 분자들이 활발해지고 있음도 확인된다. 그들은 선동과 유언비어 유포로 대중 사이에 동요, 공황, 불만을 불러일으키고, 체포 대상자를 숨기려 한다.

그러나 대체로 작전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으며, 주목할 만한 심각한 불상사는 아직 없었다.

작전 과정에서 적발된 쿨라크·백위군, 교회·종파 봉기, 파괴 공작, 테러 그룹과 조직이 많다는 것은, 반혁명 분자 등록이 전혀 완전하지 않았고, 내무인민위원부 지방국(УНКВД) 기관장들이 보고한 탄압 대상자 수치가 그들의 주에 실제로 있는 가장 적대적인 반혁명 부류와 맞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지금 이 모든 분자를 등록하고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자들은 체포하고 있다.

제1범주로 분류된 가장 적대적인 전 쿨라크, 형사범, 그 밖의 반혁명 분자에 대한 체포 작전은 소련의 대부분의 주에서 끝났다.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오세티야, 카바르디노발카르, 체첸·잉구시, 다게스탄, 아제르바이잔, 칼미크 공화국, 오르조니키제 변강과 서시베리아 변강, 서부주, 칼리닌주, 보로네시주, 오렌부르크주, 오므스크주, 쿠이비셰프주에는 제2범주로 분류된 전 쿨라크, 형사범, 반혁명 분자의 체포에 착수하도록 허가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수사는 작전 과정에서 적발된 광범한 반혁명 지하 조직의 모든 거점을 남김없이 찾아내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소련 내무인민위원 예조프

「폴란드」 작전 경과에 관한 특별보고 (1937년 9월 14일)

1937년 9월 14일

제60020호

비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서기 스탈린 동지 앞

폴란드 정보기관 인력 소탕 작전이 계속 진행된 결과, 올해 9월 10일 현재 폴란드 탈주자, 정치 망명자, 전쟁 포로, 영사관 연계자, 그 밖에 폴란드 간첩 혐의가 있는 부류 가운데 소련 전역에서 23,216명을 체포했다[1].

이 수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지역·부문체포(명)그 가운데 자백(명)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7,6511,138
레닌그라드1,832673
모스크바주1,070216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4,124
서부주837
서시베리아1,325
철도 운수2,943

첫 번째 메모에서 설명한 사건들의 수사를 전개하는 한편, 개별 공화국과 주에서 벌인 후속 작전 조치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근 폴란드 정보기관이 만든 새로운 간첩·파괴 공작 조직 여럿을 소탕했다.

하리코프에서 체포된 가톨릭 사제 가신스키의 진술로, 가신스키가 폴란드 영사관의 지시에 따라 만든 반소비에트 민족주의 조직이 드러났다. 가신스키는 자기가 직접 포섭한 19명의 이름을 댔다.

체포된 하리코프 마카로니 공장 부회계주임 고로데츠키는 폴란드 영사관의 임무에 따라 간첩·파괴 공작 활동을 했다고 자백했다. 고로데츠키는 1930년부터 하리코프 트랙터 공장과 전기기계 공장에 간첩망을 만들었다.

하리코프 일대 제당 공장의 고참 직원 포냐톱스키와 스메르친스키는 폴란드를 위한 간첩 활동에 관해, 간첩 자료를 가지고 폴란드로 드나드는 불법 연락원망이 있다고 진술했다.

올렙스크에서 체포된 키예프 군관구(КВО) 정보부의 전 첩자 라프킨, 그로브추크, 이그나튜크는 1928년부터 폴란드 간첩이었으며, 활동 과정에서 정보국에 거짓 정보를 주고 도발했다고 자백했다.

키예프에서도 체포된 키예프 군관구 정보부의 전 첩자 보레이코와 사프추크에게서 비슷한 진술을 받았다. 이들도 폴란드 이중간첩으로 드러났다.

키예프에서 체포된, 폴란드 영사관에 포섭된 폴란드 첩자 포르놀스키는 영사관의 임무에 따라 셀리반코프 제당 공장에 11명 규모의 파괴 공작 그룹을 만들었다고 자백했다.

지토미르에서는 1932년 정치 망명자로 위장해 소련에 잠입한 폴란드 요원 마치옙스키가 체포되었다. 그의 진술로 지토미르의 폴란드 군사 조직(ПОВ) 전투 세포가 드러났다.

슬라뱐스크에서는 폴란드 간첩 카르바와 시시케비치가 만든 간첩·파괴 공작 그룹이 적발되었다.

스탈리노에서 체포된 쿨리노-쿨리놉스키는 1931년 간첩 활동을 위해 빌노 지부가 자신을 소련에 잠입시켰다고 자백했다. 쿨리노-쿨리놉스키는 즐라토우스트에서 유형 생활을 할 때도, 그 뒤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공장과 모스크바에서 일할 때도 곳곳에 간첩·파괴 공작 그룹을 만들었다. 간첩 활동으로 폴란드 대사관에서 일하는 말리놉스키와 연계되어 있었다.

오데사에서 체포된 핀시발은 현재 레닌그라드에 있는 폴란드인 기사 브루노 지메크가 키로보에 만든 폴란드 간첩·파괴 공작 조직에 참여했다고 자백했다. 핀시발은 조직 참여자 12명의 이름을 댔다.

오데사주 도브로벨린코프 지구에서는 폴란드 정보기관이 심어 놓은, 후디와 보자코프라는 자들이 이끄는 간첩·봉기 조직이 적발되었다. 이 조직은 폴란드 영사관과 연계되어 있었다.

키예프에서 제29소총대대 전 병기 보급 책임자 A. A. 미제르니크가 체포되었다.

미제르니크는 1924년 폴란드에 살 때 폴란드 정보기관에 포섭되어, 같은 해 간첩·파괴 공작 활동을 위해 불법으로 소련에 파견되었으며 체포되는 날까지 이 활동을 했다고 자백했다.

소련으로 파견되기 전 폴란드인들은 미제르니크를 바르샤바 노동자들 사이의 밀정으로 썼다.

미제르니크에게는 모스크바와 하리코프의 접선 장소가 여럿 주어졌다.

소련에 머무는 내내 미제르니크는 노농적군(РККА) 개별 부대의 상태와 방위 시설을 알려 주는 정보를 폴란드 정보기관에 넘겼다.

미제르니크는 소련 영토에 사는 폴란드 정보기관 첩자 6명의 이름을 수사 기관에 댔다.

체포된 키예프 요새 지구 운영 구역 책임자 E. A. 댜첸코는 자신이 폴란드 정보기관에 속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1932년 폴란드 첩자 젤토브류호프에게 포섭되었다.

그는 1937년 3월까지 젤토브류호프에게, 또 젤토브류호프의 이름으로 폴란드에서 댜첸코를 찾아온 정보기관 연락원에게 방위 시설 상태, 노농적군 부대의 전투력과 배치, 키예프와 빈니차 요새 지구 지휘관들의 인물평 등 극비 자료를 여러 건 넘겼다. 체포하기 위해 젤토브류호프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체포된 폴란드인 안톤 두도르치크와 그 아들 미하일의 자백으로, 민스크 발전소에 있는 폴란드 정보기관의 파괴 공작 조직과 이 발전소에 대한 오랜 파괴 공작 준비가 드러났다.

민스크에서 체포된 A. I. 아포즈난스카야는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영사관에 포섭되었다고 인정했다. 폴란드 정보기관의 임무에 따라 군인 가족의 신임을 얻고 지휘관들의 집에 보관된 각종 군사 문서를 훔쳤다. 훔친 문서 일부가 그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오르샤에서 체포된 폴란드 간첩 M. S. 오시케르는 수사에서 모스크바 근교 공장들, 특히 제22호 항공기 공장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정보기관 첩자들의 이름을 댔다.

스밀로비치 지구에서는 “피우수트스키 쿨카”라는 이름을 가진 15명 규모의 “폴란드 군사 조직” 파괴 공작·봉기 말단 조직을 소탕했다. 이 조직을 이끈 S. K. 스코로보가티는 활동상 폴란드 총참모부(ПГШ) 제2부의 첩자 불가크와 브루블렙스키와 연계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불법으로 소련 영토에 드나들었다.

조직 참여자들은 파괴 공작과 간첩 활동 외에 지방 소비에트와 당 기구 지도자들을 겨냥한 테러 행위도 준비했다.

제18국경경비대 구역에서 민족은 벨라루스인인 폴란드 탈주자 7명이 붙잡혔다. 수사 결과 이 그룹 전체를 폴란드 정보기관이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에 정착하라는 임무를 주어 넘겨보냈음이 확인되었다.

폴란드 첩자 드로즈도비치의 진술로, 그가 반소비에트 분자를 대량으로 폴란드에 넘겨보내 폴란드 정보기관이 이들을 공작해 포섭한 다음 소련으로 되돌려 보내게 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드로즈도비치는 11년 동안 자기를 거쳐 파견되어 소련 후방 깊숙이 정착한 폴란드 간첩 수십 명의 이름을 댔다.

이번 작전으로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체포된 자들의 진술에 따라 소련의 다른 도시들에서 찾아내 폭로한 폴란드 간첩은 모두 26명이다.

서부주

폴란드 간첩·파괴 공작 조직 24개를 적발해 소탕하고 폴란드 첩자 33명을 폭로했다. 특히 오르조니키제그라드시 “붉은 프로핀테른” 공장 특수 포탄 설계실에서 체포된 기사 I. I. 노바코비치는 1934년 레닌그라드에 있을 때 그곳에서 폴란드 요원 핀추크(체포 진행 중)에게 포섭되어 폴란드를 위한 간첩 활동을 맡았다고 진술했다. 노바코비치는 핀추크에게 여러 비밀 자료, 특히 12인치 포탄 생산 공정에 관한 자료를 넘겼다. 노바코비치의 진술에 따르면 핀추크는 반혁명 간첩 활동으로 군사·파시스트 음모의 총살된 참여자 펠트만과 연계되어 있었다.

로슬라블 객차 수리 공장에서는 3명으로 이루어진 간첩·파괴 공작 그룹을 소탕했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폴란드인인 전기 작업장 부책임자 프로코포비치는 1933년 폴란드 탈주자 키슬랴코프에게 포섭되어 폴란드를 위한 간첩 활동을 맡았으며, 그와 함께 다른 여러 사람을 간첩·파괴 공작 활동에 끌어들였다고 인정했다. 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다.

체포된 폴란드 탈주자인 벨라루스 철도 우네차역 차량 기지 부기관사 M. A. 미흐뉴크는 1930년 미코셰비치 정치경찰 부책임자 E. 야누스에게 포섭되어 불법으로 소련에 넘어왔다고 자백했다. 미흐뉴크는 여기서 주재원으로서 폴란드 정보기관이 넘겨보낸 폴란드 간첩 여럿, 특히 벨라루스 철도에서 일하는 간첩들과 연락을 맺었다.

비토시 유리 공장에서 철공으로 일하던 체포된 폴란드인 S. I. 크랍체비치는 1929년 폴란드 탈주자 로바딘스키에게 포섭되어 간첩·파괴 공작 그룹에 들어갔다고 자백했다. 로바딘스키의 임무에 따라 그는 다시 폴란드 탈주자 마출스키를 포섭했다. 모두 체포되었다.

체포된 폴란드 탈주자 이반 이바노비치 코사치는 1929년 폴란드 정보기관의 내통자인 게라심 루바니크와 자하르 루바니크 형제에게 포섭되었다고 자백했다. 같은 해 그는 폴란드 정보기관 첩자 자하르 루바니크와 자크루토와 함께, 우리 국경 경비대에 일부러 포섭되라는 임무를 받고 소련으로 넘어왔다.

뱌지마에서 국경 경비병 I. K. 추옙스키가 체포되었다. 그는 폴란드로 달아난 폴란드 요원 라드케비치에게 포섭되어 1928년부터 폴란드 간첩으로 있었다.

레닌그라드

체포된 폴란드인들의 사건 수사로 레닌그라드 군수 공장들, 곧 제4호 신관 공장, 제7호 포 공장, “볼셰비키” 공장, 이조라 공장, 키로프 공장, 마르티 조선소에서 폴란드 군사 조직의 파괴 공작 그룹 여럿이 적발되었다. 이 그룹들은 동원 시기에 공장의 가장 중요한 작업장을 폭파하고 불태우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제4호 공장 기사 라빈스키는 이 공장에 있는 “폴란드 군사 조직” 파괴 공작 그룹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1934년 폴란드 총참모부 제3부 첩자 포드비소츠키에게 포섭되어 간첩·파괴 공작 활동을 맡았다. 라빈스키는 공장 조립 작업장에서 파괴 공작을 준비한 이 그룹의 참여자 11명의 이름을 댔다.

라빈스키 그룹과 별도로 같은 제4호 공장에서 폴란드 정보기관의 또 다른 주재원 조직인 유르차크의 조직이 적발되었다. 유르차크는 1930년 폴란드 방첩 기관 데펜지바에 포섭되어 폴란드 정치 망명자들 사이에서 간첩 활동을 하도록 독일로 파견되었다. 그 뒤 정치 망명자로 위장해 소련으로 넘어왔고,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 주재원 브루콥스키의 임무에 따라 레닌그라드 제4호 공장에 잠입해 그곳에서 간첩 정보 수집과 파괴 공작 준비를 조직했다. 폴란드 정보기관의 위임을 받아 독일 요원 2명, 미할렙스키와 알렉산드르가 공장에 잠입해 자리 잡도록 도왔다.

이조라 공장에서 체포된 기사 로시츠키는 자신이 폴란드 군사 조직 성원이자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 주재원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공장 여러 작업장에서 파괴 공작을 준비했다고 자백했고, 이조라 공장 폴란드 군사 조직 파괴 공작 그룹 구성원 12명을 넘겼다.

마르티 조선소. 이 공장에서 일하던 레닌그라드주 내무인민위원부 지방국(УНКВД)의 전 직원 부이치크는 1920년부터 “폴란드 군사 조직” 성원이었고, 간첩 활동으로 레닌그라드 주재 폴란드 영사관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영사관의 임무에 따라 공장에 파괴 공작 그룹 2개를 만들었다고 자백했다.

제7호 공장. 폴란드인 작전 초기에 적발한 포넵친스키의 파괴 공작 그룹 외에, 이 공장에서 1936년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 장교 첼레빈스키에게 포섭된 직장 바흐루신의 간첩 그룹과,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 주재원 스탄케비치가 만든 7명 규모의 직장 오메르치크의 파괴 공작 그룹이 드러났다.

키로프 공장. 수석 기계 기사 글랍데츠키는 공장 동력 설비 폭파를 준비한 폴란드 군사 조직 파괴 공작 그룹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이 그룹 참여자 11명의 이름을 댔고, 이들은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이미 자백했다.

“볼셰비키” 공장. 공장 전력 설비 책임자 샤이친스키가 체포되었다. 그는 1929년부터 폴란드 군사 조직 성원이며, 공장 전력 설비를 못 쓰게 만들 계획을 세운 파괴 공작 그룹에 들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폴란드 군사 조직 파괴 공작 그룹은 공장에서 활동하다 소탕된 트로츠키파 조직과 연계되어 있었다.

작전 과정에서 적발된 “폴란드 군사 조직” 그룹들과 더불어 개별 간첩과 파괴 요원도 여럿 체포되었다. 이들의 진술로 폴란드 정보기관이 레닌그라드 기업들과 레닌그라드 군관구(ЛВО) 군사 기관들에 유달리 넓은 전선으로 침투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레닌그라드 군관구 제15군수창고의 전 당 사무국 서기 보르트쿤은 폴란드 간첩 코하노비치에게 포섭되어 간첩 활동을 했으며 창고의 작전 업무에 관한 비밀 정보를 그에게 넘겼다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체포된 같은 창고의 군의보 코하노비치는 자신이 폴란드 요원이며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 주재원 도겔과 연계되어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도겔의 임무에 따라 간첩 정보 수집 외에 제15창고 방화를 준비했고, 이 임무를 위해 특수 수단을 받았다.

제101항공대 조종사 힌체프는 체포된 폴란드 간첩 바르타셰비치가 만든 봉기 조직에 들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제53항공여단 기술병 탈란은 1935년 폴란드 부영사 카르시에게 포섭되었으며, 그에게 제53항공여단의 상태에 관한 자료를 넘겼다고 진술했다.

레닌그라드 군관구 제9기계화여단 군사 기사 메르즈빈스키는 1925년 가톨릭 사제 가신스키에게 포섭되어 폴란드를 위한 정보 활동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가신스키에게 루가 포병 사격장의 업무에 관한 자료를 넘겼다.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지도 않고 폴란드 민족 주민이 많지도 않은 여러 지구와 주에서도 작전은 상당한 결과를 내고 있다.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는 프리발하시스트로이 발전소장 I. Yu. 몬춘스키, 프리발하시스트로이 급수 책임자 V. I. 크라솝스키, 북아랄 동력어선 기지 직원 V. K. 로젠베르크가 체포되어 폴란드 요원임을 자백했다.

고리키시에서는 몰로토프 자동차 공장, 제르진스크 방위 화학 기업들, 비크사 야금 공장에 폴란드 정보기관이 만든 조직 여럿이 적발되었다.

체포된 비크사 야금 공장 평로 작업장 책임자이자, 작업장 업무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제명된 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당원 A. D. 로파타의 진술로, 그가 1925년 폴란드 데펜지바에 포섭되어 간첩·파괴 공작 활동을 위해 소련에 넘어왔음이 확인되었다.

니즈네드네프롭스크에 도착한 로파타는 당시 코민테른 공장 공장장으로 일하던 폴란드 간첩 베네츠키와 연락을 맺고 그의 임무에 따라 간첩·파괴 공작 활동을 전개했다.

비크사 야금 공장으로 옮긴 뒤 로파타는 반혁명 트로츠키파·파괴 공작 조직과 연락을 맺었고, 체포되는 날까지 공장에서 파괴 공작과 파괴 행위를 벌였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바리카디” 공장의 전 창고 책임자인 폴란드인 V. L. 셰레이코가 체포되었다. 그는 1932년 이 목적으로 일부러 스탈린그라드에 온 폴란드 대사관 직원 슬랴진스키에게 포섭되었다고 자백했다. 셰레이코는 폴란드 정보기관에 “바리카디” 공장 배치도, 공장에서 생산하는 포의 설명과 수량, 1932~36년에 노농적군에 출하한 포 수량을 넘겼다. 슬랴진스키는 셰레이코를 폴란드 정보기관 주재원인 네프테토르그 법률 고문 스탄케비치(체포됨)와 연결해 주었다.

같은 곳에서 R. V. 로제치니크(폴란드인, 쿨라크, 철도 선로 수리 노동자)가 체포되었다. 그는 1932년 폴란드 출국 문제로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영사관을 찾아갔을 때 영사관 직원 바르자노비치에게 포섭되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철도 시설과 화물, 특히 군수품 운송에 관한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정보는 모스크바와 민스크의 폴란드 영사관에 직접, 또 민스크에서 온 첩자 코스튜케비치에게 체계적으로 전달했다.

민스크 영사관의 임무에 따라 로제치니크는 1926년 합법적으로 폴란드로 나가 바라노비치에서 특수 정보 학교(학교장 드젬비츠키)를 마치고, 1927년 간첩·파괴 공작 임무를 띠고 소련으로 돌아왔다. 파괴 공작 활동은 폴란드의 대소련 군사 공격 개시 시점에 맞추어져 있었다. 맨 먼저 메드베디차강 철교 폭파와 열차 탈선이 계획되었다.

로제치니크와 함께 바라노비치 정보 학교를 마치고 소련으로 넘어온, 그가 이름을 댄 다른 간첩들도 여럿 있다.

그로즈니시에서는 “그로즈네프티” 유전에 잠입한 폴란드 간첩 여럿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전 노농적군 소대장인 폴란드인 S. G. 이바시코는 1926년 폴란드에서 불법으로 온 자기 형제 블라디미르 이바시코에게 포섭되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폴란드인들의 임무에 따라 노농적군 안에서, 또 제대 뒤에는 “그로즈네프테자보디” 기업들에서 간첩 활동과 파괴 활동을 벌였다. 특히 폴란드 정보기관을 위해 설계도와 비밀 문서를 체계적으로 훔쳤다.

같은 곳에서 폴란드군 중위 출신 폴란드 간첩 크뱌트콥스키가 체포되었다. 그는 제18호 학교 교장으로 일하며 남의 성으로 숨어 지냈다. 크뱌트콥스키는 폴란드 간첩·탈주자 그룹과 연계되어 있었다.

이바노보시에서 체포된 폴란드 망명자이자 콜추기노 금속 가공 공장 압연 작업장 노동자 Yu. Ya. 이에레마-예레민은 1931년부터 폴란드를 위해 간첩·파괴 공작 활동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에레마-예레민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던 폴란드인 부간에게 포섭되었다.

부간의 임무에 따라 이에레마-예레민은 콜추기노 공장의 생산 능력과 제품 품목에 관한 정보를 그에게 넘겼고, 노동자들의 기분도 알려 주었다.

올해 4월 그는 파괴 공작을 목적으로 가열로 전기 크레인을 못 쓰게 만들었고, 압연 작업장의 3단 압연기도 부수려 했으나, 이 파괴 공작은 작업장 노동자들이 막아 냈다.

체포된 이바노보주 로드니키시 “볼셰비키” 공장의 법률 고문 프루스-주콥스키는 1926년부터 폴란드 간첩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여러 공범의 이름을 댔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모스크바에 살고 있었다. 이 그룹은 간첩 활동 외에 테러 실행 준비도 했다. 특히 간첩 크라스노폴스키는 스탈린 동지, 몰로토프 동지, 카가노비치 동지를 겨냥한 테러를 준비하면서 쿤체보 도로 일대와 이 도로의 차량 통행을 연구했다. 크라스노폴스키는 프루스-주콥스키에게 테러 행위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야로슬라블에서 체포된 정치 망명자 시코프는 1926년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에 포섭되어 그 임무에 따라 67명의 봉기 조직(그 가운데 전 백군 장교 39명, 야로슬라블 반란의 적극적 참여자 20명)과, 콘스탄티노프 정유 공장에 7명, 야로슬라블 국영 발전소에 3명의 간첩·파괴 공작 그룹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시코프의 진술에 따라 77명이 체포되었고 27명이 자백했다.

이번 작전 결과 적발된 폴란드 군사 조직 우랄 중앙 사건에서, 이 중앙이 조직한 파괴 공작·간첩 그룹이 스베르들롭스크, 나데진스크, 페름, 타길, 보로실롭스크, 페르보우랄스크 등의 지구에서 드러났다.

이 밖에 체포된 중앙 지도자 말리놉스키는 그가 이 활동에 끌어들인 폴란드 탈주자 다비도비치, 코사치, 무신스키, 엘렌베르크, 프루사크가 이끄는 테러 그룹 5개를 지목했다.

말리놉스키는 테러 그룹의 전반적 지도를 NKVD 내부 경비대 제189연대 참모장 클로치코에게 맡겼다.

클로치코는 체포된 뒤 1923년 폴란드에서 간첩 활동을 위해 포섭되었고, 붉은 군대에 잠입하라는 특수 임무를 받고 소련에 넘어왔다고 자백했다.

클로치코는 NKVD 내부 경비대 관리국 분과 부책임자 예멜랸치크와 제239호송연대 병기 보급 책임자 고딥스키를 폴란드 군사 조직에 끌어들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클로치코는 우랄 군관구 군인들 가운데 폴란드 군사 조직 참여자 여럿의 이름을 댔다.

폴란드 군사 조직 우랄 중앙의 체포된 성원들의 진술에 따라 우랄마시 공장, 우랄바곤스트로이, 노보트루브니 공장의 적극적인 폴란드 군사 조직 파괴 공작 그룹도 소탕했다. 제172호 공장, 제9호 공장, 페름 공장, 우랄에네르고, 우랄 군관구 부대들에 아직 폭로되지 않은 폴란드 간첩 여럿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수집된 간첩 자료는 모두 폴란드 군사 조직 우랄 중앙 지도자 말리놉스키가 모스크바로 보내, 특별 연락원을 거쳐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대사관 부무관 하를란트에게 넘겼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적발된 폴란드 군사 조직 지하 시베리아 위원회 사건으로 위원회 성원들이 체포되었다. 첩자 돔발과 개인적으로 연계된 전 폴란드 사회당원 필리포비치, 가톨릭 사제이자 시베리아 교황청 관리자 주콥스키, 폴란드 총참모부 제2부 대위 소센코, 정치 망명자 플레바네크이다. “폴란드 군사 조직”은 이미 1918년에 시베리아에 만들어져 콜차크 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시베리아 영토에 불법 폴란드 군단을 만들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조직의 옛 간부들을 바탕으로 1930년 불법 시베리아 위원회의 핵심 활동가 그룹이 구성되었다. 이들은 1936년 피우수트스키의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의 무덤에 쓸 흙을 모은다는 구실로 시베리아에 온 폴란드 대사관 직원 라고다, 피우수트스키의 전 부관 리피츠키와 연락을 맺었다. 라고다와 리피츠키는 위원회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시베리아에서 폴란드인들의 무장 봉기를 준비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폴란드 군사 조직 시베리아 지하 위원회는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톰스크, 바르나울, 비스크, 나림 변강 등에 폴란드 봉기 군단과 파괴 공작·테러 그룹을 조직했다.

폴란드인 작전 결과, 다른 나라 요원들이 폴란드 반혁명 분자와 민족주의 분자들로 만든 간첩·파괴 공작 그룹 여럿도 적발되어 소탕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 체포된 폴란드인 페레스베트-살톤은 1930년 극동에서 일할 때 그곳에서 일본 정보기관 첩자 오가와에게 포섭되었다고 자백했다. 그는 오가와의 임무에 따라 전력 설비 부문에 13명의 파괴 공작망을 만들었다. 특별히 온 연락원들을 통해 일본 정보기관과 연락을 유지했다. 페레스베트-살톤은 일본 정보기관의 비밀 접선 장소를 넘겼다.

알마아타에서 폴란드인 킨츠를 체포할 때 그에게서 일본 화폐, 인쇄 활자 재고, 그가 일본 간첩임을 입증하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스몰렌스크에서는 이번 작전으로 제85소총연대 포대 부지휘관 G. N. 소스니츠키가 체포되었다. 그는 1928년 사촌 형제 알렉산드르 소스니츠키-가이두케비치에게 포섭되어 루마니아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소스니츠키-가이두케비치는 1929년 파괴 공작·테러 임무를 띠고 또다시 루마니아에서 넘어오다 몰다비아 국경경비대에 붙잡혔고, 체포된 상태에서 자살했다.

소스니츠키-가이두케비치가 체포된 뒤 G. N. 소스니츠키는 자신이 체포되는 날까지 카란틴 마을 교사인 루마니아 정보기관 주재원 N. P. 쿠네츠키와 연락을 유지했다.

포섭된 때부터 G. N. 소스니츠키는 레닌그라드와 비텝스크 수비대, 제25소총사단과 제29소총사단, 세바스토폴 고사포 학교의 상태에 관한 정보를 루마니아 정보기관에 넘겼다.

올해 9월 10일까지 판결받아 총살된 폴란드 첩자는 모두 1,251명이다.[2]

내무인민위원

국가안전 총위원 예조프

주석

  1. 밑줄은 여기서부터 연필로 그은 밑줄을 나타낸다. ↩
  2. 첫 장에 자필 메모가 있다. “예조프 동지가 보냄”; “예조프 동지에게. 아주 좋다! 앞으로도 이 폴란드 간첩 오물을 파내고 쓸어 내라. 소련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쳐부수어라. I. 스탈린. 14/IX—3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