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라트비아

사건 9 · 소속 인물 10 · 출신 인물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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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은 현재 세계를 기준으로 표시합니다.

국가 변천

  1. 1918 러시아러시아에서 독립
  2. 1940 소련소련에 병합
  3. 1991 소련소련에서 독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9전체보기

  1.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2. 1918.10–1919.08독일 11월 혁명1918년 11월 킬 수병 봉기가 전국의 노동자·병사 평의회로 번져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3. 1918.11–1920.10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1918년 11월 독일이 무너진 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신생 정부는 붉은 군대, 러시아 백군, 독일…
  4. 1939.08–1940.08독소 불가침조약과 동유럽 분할독소 불가침조약은 1939년 8월 23일 밤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소련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5. 1939.09–1941.06발트 3국 병합과 1941년 6월 추방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따라 소련은 1939년 9~10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 상호원조조약과 소련군 기지를…
  6. 1941.06–1944.11독일 점령하의 발트 3국: 6월 봉기에서 홀로코스트와 1944년 퇴각까지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함께 리투아니아에서는 6월 봉기와 임시정부, 에스토니아에서는 숲의 형제들의 「여름…
  7. 1944–1953발트 3국의 재점령: 숲의 형제들과 1949년의 추방1944년 여름부터 1945년 5월 쿠를란트의 항복까지 붉은군대는 발트 3국을 다시 점령했고, 돌아온 공화국 지도자들은…
  8. 1987–1991발트 독립운동과 「발트의 길」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1940년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따라 소련에 병합된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고…
  9. 1991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1991년 8월, 신연방조약 체결을 막으려는 보수 강경파가 고르바초프를 감금하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당·세력·조직 5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10전체보기

1919년 친독 라트비아 정부를 이끈 목사이자 작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영리한 연설이나 조약이 아니라 힘이다”는 1924년 반역 재판 석상에서 남긴 말이다.

라트비아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루터교 목사로 1919년 5월 리예파야 쿠데타 뒤 폰 데어 골츠가 뒷받침한 친독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체시스 전투 뒤 정권이 무너져 독일로 피했고 1924년 귀국해 국가반역죄로 추방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0–1899도르파트(타르투) 대학 신학부 수학
  • 1903–1906체시스에서 잡지 《아우스트룸스》 편집·발행
  • 1906–1918마티시·칼스나바·비에탈바 교구 루터교 목사
  • 1917라트비아 농민연합 창립 참여, 이사
  • 1919.05–06친독 임시정부 수반(총리)
  • 1924국가반역죄 유죄 판결, 대통령 사면 뒤 추방
  • 1926–1930동프로이센 알트슈타트 독일 교구 목사

카를리스 울마니스

Kārlis Ulmanis

라트비아 독립전쟁의 총리, 뒤에 1934년 쿠데타의 독재자

점령 당일 라디오 연설에서 저항을 금하며 “나는 내 자리에 남고, 그대들도 그대들의 자리에 남으시오.”라고 했다.

1918년 11월부터 라트비아 임시정부 총리로 소비에트군, 독일계 쿠데타, 베르몬트군을 차례로 넘기고 1920년 리가 강화와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1934년 쿠데타로 독재를 세웠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42년 감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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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11라트비아 임시정부 초대 총리
  • 1920리가 강화 조약과 토지개혁 주도
  • 1918–1934농민연합 지도자로 총리·외무장관 여러 차례 역임
  • 1934.05군과 아이스사르기 동원, 무혈 쿠데타
  • 1936.04‘민족의 지도자’ 자처, 대통령 겸 총리
  • 1939.10소련군 기지 배치를 허용한 상호원조조약 서명
  • 1940.07소련 점령 뒤 퇴위, 7월 강제이송
  • 1942크라스노보츠크 감옥에서 사망

지그프리츠 안나 메이에로비츠

Zigfrīds Anna Meierovics

라트비아 독립의 국제 승인을 얻어 낸 초대 외무장관

라트비아 공화국 초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초대 외무장관을 지내며 1920년 리가 강화, 1921년 법적 승인과 국제연맹 가입을 이끌었고, 1925년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라트비아의 초대 외무장관으로 1918년 영국의 사실상 승인, 1920년 리가 강화, 1921년 연합국의 법적 승인과 국제연맹 가입을 얻어 냈다. 총리도 지냈으며 1925년 교통사고로 서른여덟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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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라트비아 농민연합 공동 창립자, 비제메 지방 토지위원회 재무부장
  • 1918초대 외무장관 취임
  • 1920소비에트 러시아와 리가 평화조약 체결
  • 1921연합국의 법적 승인과 국제연맹 가입 성사
  • 1921–1923총리 역임
  • 1923–1924총리 재임

빌헬름스 문테르스

Vilhelms Munters
라트비아 국가기관 라트비아 라트비아인 (에스토니아·발트 독일계) 1898–1967 ○ 자연사

1939년 소련–라트비아 상호원조조약에 서명하고 1940년 소련으로 추방된 라트비아 외무장관

리가에서 에스토니아인 상인 아버지와 발트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라트비아 독립전쟁 때 에스토니아군에서 복무했다. 1920년부터 외무부에서 일하며 1933년 사무총장이 되었고, 1934년 울마니스의 쿠데타 뒤 사실상 외무부를 이끌다 1936~1940년 외무장관을 지냈다. 1939년 6월 독일–라트비아 불가침조약에, 10월 5일 소련–라트비아 상호원조조약에 서명했다. 소련 점령 뒤 1940년 7월 내무장관 빌리스 라치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과 함께 보로네시로 추방되었고, 1941년 6월 체포되어 1952년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1954년 풀려나 1958년 라트비아로 돌아왔고, 해외 라트비아인 단체를 비난하는 글을 쓰다 1967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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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라트비아 외무부 입부
  • 1933외무부 사무총장
  • 1936–1940외무장관
  • 1939소련–라트비아 상호원조조약 서명
  • 1940–1954소련 추방·투옥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47전체보기

페테리스 이바노비치 스투치카

Пётр Иванович Стучка

계급적 법 개념을 정식화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의 건설자

‘법이란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하고 이 계급의 조직된 힘, 즉 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관계의 체계, 즉 질서이다.’ (『법과 국가의 혁명적 역할』)

라트비아 출신 법률가·혁명가. 1865년 7월 14일(26일) 리가현 콕네세 볼로스트에서 태어나 1932년 1월 25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고 유골은 붉은광장 크렘린 벽에 안치되었다. 라이니스와 함께 라트비아 마르크스주의 ‘신조류’ 운동과 신문 『디에나스 라파』를 이끌었고, 1897년 체포되어 7개월 구금 후 뱟카현으로 5년 유형되었다. 10월 혁명 후 법무인민위원으로 ‘법원 포고 제1호’를 기초했으며 1918~1920년 라트비아 소비에트 정부 수반, 1923년부터 RSFSR 최고재판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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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3–1888리가 김나지움 졸업,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 졸업 — 변호사 개업
  • 1888–1897라이니스와 함께 라트비아 마르크스주의 ‘신조류’ 운동 및 신문 『디에나스 라파』 주도
  • 1897–1903체포, 7개월 구금 후 뱟카현 5년 유형 — 풍자집 『작은 등에』 공동 집필
  • 1906RSDRP 입당, 라트비아 사회민주당 통합대회 주재 — RSDRP 지역조직으로 편입
  • 1917.10–11스몰니에서 라트비아 소총병 연락,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 조사위원장 — 법무인민위원으로 ‘법원 포고 제1호’ 기초
  • 1918–1920RSFSR 법무인민위원·외무부인민위원, 라트비아 소비에트 정부 수반(1918.12–1920.1)
  • 1923–1932RSFSR 최고재판소 초대 소장, 코민테른 국제통제위원회 의장(1924), 『국가와 법 백과사전』 편집장(1925~1927), 소비에트법연구소 소장(1931)

1919년 친독 라트비아 정부를 이끈 목사이자 작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영리한 연설이나 조약이 아니라 힘이다”는 1924년 반역 재판 석상에서 남긴 말이다.

라트비아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루터교 목사로 1919년 5월 리예파야 쿠데타 뒤 폰 데어 골츠가 뒷받침한 친독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체시스 전투 뒤 정권이 무너져 독일로 피했고 1924년 귀국해 국가반역죄로 추방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0–1899도르파트(타르투) 대학 신학부 수학
  • 1903–1906체시스에서 잡지 《아우스트룸스》 편집·발행
  • 1906–1918마티시·칼스나바·비에탈바 교구 루터교 목사
  • 1917라트비아 농민연합 창립 참여, 이사
  • 1919.05–06친독 임시정부 수반(총리)
  • 1924국가반역죄 유죄 판결, 대통령 사면 뒤 추방
  • 1926–1930동프로이센 알트슈타트 독일 교구 목사

1940년 소련 대사관이 정한 라트비아 괴뢰 정부의 총리로 소련 편입을 요청한 미생물학자

리보니아 마즈살라차의 소작인 집안에서 태어나 타르투 수의학교를 마쳤고, 1905년 혁명에 가담했다가 스위스로 망명해 다보스의 결핵 연구소에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세르비아군 수의관으로, 라트비아 독립전쟁에는 수의 부대 대위로 복무했다. 1919년 라트비아 대학교에 미생물학 연구소를 세웠고 1923년 라트비아 최초의 박사 학위 논문을 썼으며, 사회민주주의 지지자였다. 1940년 6월 소련 대사관에 불려 가 새 괴뢰 정부의 수반 자리를 제안받아 총리가 되었고, 7월 21일부터는 대통령 직무도 맡아 라트비아의 소련 편입을 요청했다. 1940~1952년 라트비아 SSR 최고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의장을 지냈고, 1941년 공산당에 들어갔다. 1963년 리가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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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3–1901타르투 수의학교
  • 1911다보스 결핵 연구소 조수
  • 1919라트비아 대학교 미생물학 연구소 설립
  • 1940괴뢰 정부 총리, 대통령 직무대행
  • 1940–1952라트비아 SSR 최고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의장

이오아킴 이오아키모비치 바체티스

Иоаким Иоакимович Вацетис

적군 최초의 총사령관, 제국군 대령에서 혁명의 군사 건설자로

1918년 7월, 좌파 사회혁명당 반군이 모스크바 중심부를 장악했을 때, 바체티스의 라트비아 소총병들이 새벽 포격으로 그들을 제압했다. 볼셰비키 정부는 그날 아침 그에게 존속을 빚졌다.

라트비아 이름은 유쿰스 바치에티스이고, 러시아에서는 이오아킴 이오아키모비치 바체티스(Иоаким Иоакимович Вацетис)로 불렸다. 라트비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차르의 장교가 되었고, 혁명 후에는 소비에트 공화국 최초의 전군 총사령관으로서 초대 붉은 군대의 틀을 만들었다. 1918년 7월 모스크바에서 라트비아 소총병 사단을 지휘해 좌파 사회혁명당의 무장봉기를 진압함으로써 볼셰비키 정권을 위기에서 구했고, 그 직후 동부전선을 이끌며 백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비당원 군사 전문가로서 트로츠키·레닌과 긴밀히 협력했으나, 1919년 반역 혐의로 체포·해임된 이후에는 전선에서 물러나 군사학자와 교수로 활동했다. 대숙청 속에서 체포·처형되었고, 1957년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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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1–1917차르 군대에서 복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라트비아 소총병 연대장으로 종군하여 대령까지 진급
  • 1917–191810월 혁명 후 볼셰비키 편에 서서 12군 사령관, 라트비아 소총병 사단장 역임
  • 1918.07모스크바 좌파 사회혁명당 봉기 진압 지휘
  • 1918.07–09동부전선 사령관
  • 1918.09–1919.07RSFSR 전군 총사령관 — 붉은 군대 최초의 총사령관
  • 1919–1937적군 군사 아카데미에서 교편, 1927년 교수, 1935년 2등급 군사령관
  • 1937대숙청 속 체포·처형
  • 1957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