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지역

조선

사건 5 · 소속 인물 5 · 출신 인물 24

알제리안도라앤티가 바부다오스트레일리아바하마바레인방글라데시바베이도스벨리즈베냉부탄볼리비아보츠와나브루나이부룬디캄보디아카메룬캐나다카보베르데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차드콜롬비아코모로코스타리카키프로스덴마크지부티도미니카도미니카 공화국에콰도르이집트적도 기니에리트리아에스와티니에티오피아피지가봉감비아과테말라기니아이티온두라스아이슬란드이란이라크코트디부아르자메이카요르단케냐키리바시코소보쿠웨이트라오스레바논레소토라이베리아리비아리히텐슈타인룩셈부르크마다가스카르말라위말레이시아몰디브말리몰타마셜 제도모리타니모리셔스멕시코미크로네시아모나코몽골모로코미얀마나미비아나우루네팔뉴질랜드니제르나이지리아북마케도니아노르웨이오만파키스탄팔라우팔레스타인파나마파푸아뉴기니파라과이필리핀카타르콩고-브라자빌르완다세인트키츠 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사모아산마리노상투메 프린시페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세이셸시에라리온싱가포르솔로몬 제도소말리아남수단스리랑카수단수리남스웨덴시리아대만태국동티모르토고통가튀니지투발루우간다아랍에미리트우루과이바누아투바티칸 시국베네수엘라예멘잠비아짐바브웨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카자흐스탄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폴란드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쿠바스페인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스위스체코우즈베키스탄몰도바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일본인도튀르키예그리스아르헨티나칠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베트남알바니아앙골라부르키나파소콩고민주공화국가나기니비사우인도네시아모잠비크페루트리니다드 토바고포르투갈브라질엘살바도르그레나다가이아나니카라과남아프리카 공화국탄자니아아일랜드슬로바키아마르티니크이스라엘아프가니스탄

역사 국가·지역의 영역은 현재 후계 국가 또는 행정구역을 합친 근사 표시이며, 당시의 정확한 국경선이 아닙니다.

국가 변천

  1. 1910 일본일본에 병합
  2. 1945 일본일본에서 독립
  3. 1948 분단,대한민국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성립

직접 연루된 역사 사건 5전체보기

  1. 1918–19231차 세계대전의 여파: 강화 조약과 혁명의 물결1918년 가을 불가리아·오스만·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면서 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조가 무너지고…
  2. 1924–1927제1차 국공합작과 북벌, 1927년의 파국소련의 원조와 코민테른의 지시로 공산당원이 국민당에 가입한 국공합작은 황푸군관학교와 북벌로 군벌 중국을 흔들었다.
  3. 1927–1936징강산에서 옌안까지: 소비에트 근거지와 대장정1927년의 학살 뒤 마오와 주더는 징강산에서 홍군과 농촌 근거지를 세웠고, 1931년 루이진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 섰다.
  4. 1937–1945중일전쟁과 제2차 국공합작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시작된 전면전에서 일본군은 연안 도시와 철도를 점령했고 국민정부는 충칭으로 물러났다.
  5. 1945–1949국공내전일본 항복 뒤 충칭 회담과 마셜의 중재는 두 당의 무장 경쟁을 막지 못했다.

정당·세력·조직 3

이 나라에 속했던 인물 5전체보기

일제에 맞서 볼셰비키 혁명과 민족해방을 접목시킨 조선 공산주의의 선구자

임종 직전 “나는 조선의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소. 동무들은 반드시 고려소비에트공화국을 성립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대한제국 장교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전향하여 조선 민족해방운동에 마르크스주의를 최초로 접목시킨 공산주의 선구자. 1918년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무장독립노선을 추진했으며, 이승만과 결별 후 고려공산당(상하이파)을 이끌며 민족해방과 계급혁명의 결합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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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5–1902한성무관학교 졸업, 육군 참령·강화도 진위대장
  • 1906–1911신민회 조직, 보창학교 설립, 105인 사건 투옥
  • 1913–1917연해주·북간도 망명, 대전무관학교 설립 및 독립군 양성
  • 1918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창당, 위원장
  • 1919–1921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 1921고려공산당(상하이파) 창당
  • 1922–1935코민테른 연락, MOPR 원동지역 한인 책임자
조선민주당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조선 조선 1883–1950 사망 시점 · 경위 미확정

고당 조만식, 반탁으로 1946년 북부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조선민주당 당수

1945년 12월 30일 조만식은 소련군사령부의 압력 속에서도 반탁 결의문을 채택했고, 1946년 1월 5일 고려호텔에 감금되었다. 이 시기를 분수령으로 그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북부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고 김일성 등 좌익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조만식(曺晩植, 호 고당, 1883~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의 교육자·개신교 장로·언론인·정치인이다. 1913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오산학교 교사(1915년 교장), 평양기독교청년회 총무·산정현교회 장로,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일제에 대해서는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노선으로 항일운동을 폈다. 해방 후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이어 평남 건준과 평남 조공을 통합한 평남인민정치위원회(좌우합작 기구) 위원장이 되었다. 1945년 11월 3일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당수가 되었고 12월 30일 반탁 결의문을 채택했다. 1946년 1월 5일 고려호텔에 감금되었고 2월 최용건이 당을 장악했다. 이후 사망은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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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3–19151913년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오산학교 교사가 되어 1915년 교장이 되었으며 민족교육에 종사
  • 1920년대–1930년대평양기독교청년회 총무·산정현교회 장로로 기독교·사회운동을 조직하고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 평양지회장, 조선일보 사장을 지냄
  • 1945.08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이어 좌우합작 기구인 평남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음
  • 1945.10–11토지개혁·소작제 7·3제 논쟁으로 입장이 드러나 우파 위원들이 위원회를 떠나 월남했고, 11월 24일 명칭에서 ‘정치’가 빠지며 위원회가 좌파 기구로 바뀜
  • 1945.11.03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수로 선출되어 반탁 노선을 폄
  • 1945.12.30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를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반탁 결의문을 채택
  • 1946.01.05소련군사령부에 의해 고려호텔에 감금되어 정치무대에서 제거됨
  • 1946.02최용건이 당을 장악하고 2월 24일 제1차 당대회에서 당수로 선출됨
  • 1948–1950재판 없이 구금이 이어졌고 교환 협상은 결렬됨. 행방이 확인되지 않으며 사망은 전언·추정으로 시점·경위가 확정되지 않음

레닌·쑨원과 만나고 좌우합작을 택한, 분단 직전 조선의 마지막 통일주의자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 나는 거리에서 죽을 것이다.” 수차례 테러를 겪으며 자식들에게 남긴 말.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백의사의 총에 쓰러졌다.

1918년 신한청년당을 결성,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창립에 참여하고,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트로츠키와 면담했으며 쑨원의 권유로 중국국민당에 가입했다. 1945년 8월 총독부로부터 평화적 치안권 이양을 받아내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조선인민공화국 부주석이 되었다. 1946~47년 김규식과 좌우합작운동을 이끌며 통일정부를 추진했으나, 극우단체 백의사에 암살당했다. 남북 모두가 공식 추모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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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 결성, 당수 취임
  • 19192·8독립선언 주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 1920–1922고려공산당 상하이파 입당; 모스크바 원동피압박민족대회 참석, 레닌·트로츠키 면담
  • 1925–1929쑨원 권유로 중국국민당 입당, 국공합작 참여
  • 1933–1936조선중앙일보 사장; 조선체육회 회장
  • 1944비밀결사 건국동맹 결성, 전국 조직화
  • 1945.08–09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공화국 부주석
  • 1946–1947좌우합작운동 전개, 근로인민당 위원장

양림

楊林

청산리 전투의 교관에서 대장정의 간부단 참모장으로, 황허 도하에서 전사한 조선인 혁명가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본명은 김훈이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아버지를 잃었고,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교관으로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다. 윈난 강무학교를 마친 뒤 광저우의 황푸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조선인 생도들을 가르쳤고, 1925년 동정에 참가하고 그해 공산당에 들어갔다. 예팅의 독립연대 대대장을 거쳐 북벌과 광저우 봉기에도 참가했다. 모스크바 공산대학에서 다시 군사 교육을 받고 1930년 만주에 가 만주성위 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34년 10월 비스티라는 이름으로 홍군 간부단 참모장을 맡아 대장정에 올랐고, 1936년 2월 제15군단 제75사단 참모장으로 동정의 황허 도하 돌격대를 이끌다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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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3·1 운동 참가, 신흥무관학교 입교
  • 1920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교관, 청산리 전투
  • 1925황푸군관학교 교관, 동정 참가, 공산당 입당
  • 1926–1927예팅 독립연대 대대장, 북벌·광저우 봉기
  • 1930만주성위 군사위원회 서기
  • 1934–1935홍군 간부단 참모장으로 대장정
  • 1936동정 황허 도하 중 전사

이 나라를 출신 배경으로 둔 인물 24전체보기

일제에 맞서 볼셰비키 혁명과 민족해방을 접목시킨 조선 공산주의의 선구자

임종 직전 “나는 조선의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소. 동무들은 반드시 고려소비에트공화국을 성립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대한제국 장교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전향하여 조선 민족해방운동에 마르크스주의를 최초로 접목시킨 공산주의 선구자. 1918년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무장독립노선을 추진했으며, 이승만과 결별 후 고려공산당(상하이파)을 이끌며 민족해방과 계급혁명의 결합을 추구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5–1902한성무관학교 졸업, 육군 참령·강화도 진위대장
  • 1906–1911신민회 조직, 보창학교 설립, 105인 사건 투옥
  • 1913–1917연해주·북간도 망명, 대전무관학교 설립 및 독립군 양성
  • 1918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창당, 위원장
  • 1919–1921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 1921고려공산당(상하이파) 창당
  • 1922–1935코민테른 연락, MOPR 원동지역 한인 책임자

무력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1950년 7월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세로 전환, 힘겨운 적진을 뚫고 승리의 북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합니다.’

이승만은 조선 말기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립운동가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공을 국시로 삼고 국가보안법 제정 등 강력한 반공 체제를 구축했으며, 38도선 이북으로의 무력 북진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정전을 거부하고 1953년 반공 포로 2만 7천 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해 휴전 교섭을 흔들었으며, 정전협정 서명을 끝내 거부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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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6–1898독립협회·협성회 활동, 《매일신문》 주필
  • 1899–1904한성감옥 투옥, 옥중 《독립정신》 집필
  • 1905–1910도미,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
  • 1919–1925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 1948제헌국회의장,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당선
  • 1948–1960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
  • 1960–19654·19혁명으로 하야, 하와이 망명
조선민주당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조선 조선 1883–1950 사망 시점 · 경위 미확정

고당 조만식, 반탁으로 1946년 북부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조선민주당 당수

1945년 12월 30일 조만식은 소련군사령부의 압력 속에서도 반탁 결의문을 채택했고, 1946년 1월 5일 고려호텔에 감금되었다. 이 시기를 분수령으로 그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북부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고 김일성 등 좌익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조만식(曺晩植, 호 고당, 1883~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의 교육자·개신교 장로·언론인·정치인이다. 1913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오산학교 교사(1915년 교장), 평양기독교청년회 총무·산정현교회 장로,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일제에 대해서는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노선으로 항일운동을 폈다. 해방 후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이어 평남 건준과 평남 조공을 통합한 평남인민정치위원회(좌우합작 기구) 위원장이 되었다. 1945년 11월 3일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당수가 되었고 12월 30일 반탁 결의문을 채택했다. 1946년 1월 5일 고려호텔에 감금되었고 2월 최용건이 당을 장악했다. 이후 사망은 확정되지 않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913–19151913년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오산학교 교사가 되어 1915년 교장이 되었으며 민족교육에 종사
  • 1920년대–1930년대평양기독교청년회 총무·산정현교회 장로로 기독교·사회운동을 조직하고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 평양지회장, 조선일보 사장을 지냄
  • 1945.08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이어 좌우합작 기구인 평남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음
  • 1945.10–11토지개혁·소작제 7·3제 논쟁으로 입장이 드러나 우파 위원들이 위원회를 떠나 월남했고, 11월 24일 명칭에서 ‘정치’가 빠지며 위원회가 좌파 기구로 바뀜
  • 1945.11.03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수로 선출되어 반탁 노선을 폄
  • 1945.12.30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를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반탁 결의문을 채택
  • 1946.01.05소련군사령부에 의해 고려호텔에 감금되어 정치무대에서 제거됨
  • 1946.02최용건이 당을 장악하고 2월 24일 제1차 당대회에서 당수로 선출됨
  • 1948–1950재판 없이 구금이 이어졌고 교환 협상은 결렬됨. 행방이 확인되지 않으며 사망은 전언·추정으로 시점·경위가 확정되지 않음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킴

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러시아 혁명에 투신한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자

1918년 9월 16일, 아타만 칼미코프의 백군에게 끌려나가 총살당하기 직전 그녀의 마지막 외침: ‘자유와 독립을 조선에!’

시베리아 한인 이주민의 딸로 태어나 1916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다. 레닌의 지시로 극동에 파견되어 하바롭스크 소비에트 외무인민위원을 지내고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창당했으며, 조선인 적위대를 조직해 백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1918년 33세로 처형당한, 러시아 혁명과 조선 독립운동을 잇는 상징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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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 입당
  • 1917하바롭스크 볼셰비키 지부 서기 겸 극동 인민위원회 외무인민위원
  • 1918.04한인사회당(이후 조선공산당의 전신) 공동 창당
  • 1918.06–08조선인 적위대 및 국제 적위대 조직, 백군·일본군에 맞서 전투
  • 1918.09.04백군과 일본군에 체포됨
  • 1918.09.16하바롭스크에서 백군 코사크에 의해 처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