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ольшой террор (Bol'shoy terror) · 1936–1938

대숙청

Great Purge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소련에서 스탈린의 주도로 진행된 대규모 정치탄압 캠페인으로, 1937~38년 니콜라이 예조프NKVD 지휘 아래 절정에 달했다. NKVD 명령 00447호에 따라 트로이카의 초법적 재판으로 전개되었으며, 구 쿨라크·소수민족·당 간부·붉은 군대 지휘부·지식인을 표적으로 약 70만~120만 명이 처형되고 170만 명 이상이 수용되었다. 영국 역사가 로버트 콘퀘스트의 1968년 저서 『대테러』로 학계 용어가 되었으며, 스탈린 이후 소련에서는 흔히 ‘예조프시나’(ежовщина)라 불렸다.

상세

전개

1934년 12월 키로프 암살 이후 정치적 사건에 대한 수사 절차가 단축되고,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탄압이 정점에 이르렀다. 1936년 8월의 제1차 모스크바 재판을 시작으로 옛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공개 재판에 세워졌고, 1937년 2월과 3월의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부하린리코프가 축출되면서 당 지도부 내부의 방어선이 사라졌다.

대중 탄압의 법적 근거는 1937년 7월 30일 NKVD 명령 제00447호였다. 이 명령은 반소분자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별 처형 및 수용 할당 숫자를 배정하고, 재판 없이 사건을 처리하는 트로이카를 설치했다. 이어 폴란드인, 독일인, 한인 등을 대상으로 한 민족 작전이 별도 명령으로 진행되었으며, 명령 제00485호에 따른 폴란드 작전이 그 가운데 규모가 컸다. 형사적 근거는 대부분 형법 제58조의 반혁명 범죄 조항이었다.

규모

아카이브 접근이 가능해진 이후 NKVD 자체 통계에 기초한 수치가 정리되었다. 1937년과 1938년 두 해에 정치적 혐의로 체포된 인원은 약 150만 명, 처형된 인원은 약 68만 명으로 집계된다. 이 숫자는 수용소 이송 중 사망이나 기아 관련 사망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총 희생 규모의 하한선으로 읽힌다.

처형 대상은 당 간부와 군 지휘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투하쳅스키를 비롯한 적군 고위 지휘관들이 1937년에 처형되었으나, 할당 숫자의 다수는 전과자, 성직자, 강제 이주민, 국경 지역 소수민족 등 정치적 지위가 없는 집단에서 채워졌다.

종결과 명명

1938년 11월 예조프가 내무인민위원직에서 해임되고 베리야가 후임이 되면서 대량 작전은 중단되었다. 이후 이 시기는 예조프의 이름을 딴 예조프시나로 불렸는데, 이 명명은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그러나 공개된 문서에서 스탈린과 정치국원들이 처형 목록에 직접 서명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할당 숫자의 설정과 승인이 최고 지도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문서로 뒷받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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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primary article: definition, periodization (1936–1938), NKVD Order No. 00447, troikas, death toll of 700,000–1.2 million, Robert Conquest origin of term 'Great Terror' (1968), relationship to Yezhovshchina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historiographical perspective: term used in modern historiography for 1937–1938 mass Stalinist repressions; 725,000+ executed, 1.7 million+ arrested on political charges; 78% of CC members killed; term first applied by Conquest; colloquially called ежовщин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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