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1918

1차 세계대전

발칸의 위기는 어떻게 세계전쟁으로 번졌는가?

1914–1918년 협상국과 동맹국이 벌인 세계전쟁. 프랑스·러시아·영국 제국을 중심으로 일본·이탈리아·미국 등이 가담한 협상국이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만 제국·불가리아와 싸웠다. 전쟁은 자치령·식민지의 병력과 노동까지 동원했으며 러시아 혁명과 제국들의 붕괴로 이어졌다.

전쟁의 배경: 동맹 체제와 군비 경쟁

1871년 독일 제국의 성립은 유럽의 오랜 세력균형을 흔들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1879년 동맹은 1882년 이탈리아가 가담하며 삼국동맹이 되었고, 그 맞은편에서는 1894년 프랑스-러시아 동맹, 1904년 영국과 프랑스의 협상, 1907년 영국-러시아 협정이 차례로 맺어졌다. 영국이 프랑스나 러시아 편에 설 의무를 진 정식 동맹은 아니었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분쟁을 정리한 이 협상들은 영국이 장차 두 나라를 지원할 가능성을 열었다. 1 2

군비 경쟁은 바다에서 먼저 불붙었다. 티르피츠 제독의 함대 건설은 영국 해군과 맞서려 했지만, 1906년 영국의 드레드노트 진수로 기존 전함이 모두 낡은 것이 되었고, 1911년 독일은 지출의 무게를 해군에서 육군으로 옮겼다. 1913년 독일이 상비군을 17만 명 늘리자 프랑스는 복무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렸고, 발칸 국가들과 이탈리아·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도 뒤따랐다. 1908~1913년 유럽 6대 강국의 군사비는 실질 기준으로 50% 넘게 늘었다. 1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였다. 1908~1909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자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이 사라졌고, 1912~1913년 두 차례 발칸 전쟁은 오스만 제국을 몰아낸 뒤 승전국들 사이에도 원한을 남겼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의 팽창을 제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로 보았고, 범슬라브주의를 내건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1

원인을 둘러싼 해석은 지금도 갈린다. 레닌은 1916년에 쓴 『제국주의론』에서 이 전쟁을 독점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 열강이 이미 분할을 끝낸 세계를 다시 나누려는 「병합적이고 약탈적인」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1960년대 독일 역사가 프리츠 피셔는 독일의 보수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전쟁을 추구했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논쟁을 불렀다. 그의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인 학자는 적었지만, 1980년대에는 독일의 책임이 다른 열강보다 크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였다. 반면 2012년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은 어느 한 나라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으며, 각국 지도자들이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연쇄적인 결정으로 전쟁에 걸어 들어갔다고 보았다. 3 2 4

7월 위기: 사라예보에서 벨기에까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쏘아 죽였다. 암살자들은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속했고, 세르비아 정보기관 안의 비밀조직 「검은 손」에게서 무기를 받았다. 빈은 세르비아를 군사적으로 응징하기로 했고, 7월 초 독일은 이른바 「백지수표」로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러시아가 끼어들기 전에 빨리 공격하라고 재촉했다. 1 5

7월 23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일부러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 10개 항의 최후통첩을 세르비아에 보냈다. 세르비아는 25일 총동원령을 내리면서도 오스트리아 관리가 세르비아 안의 수사와 재판에 참여하는 조항만 빼고 모든 요구를 받아들였다. 빈은 이를 거부로 간주해 국교를 끊고, 28일 선전포고와 함께 베오그라드를 포격했다. 러시아는 30일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총동원에 들어갔다. 1 5

독일 참모본부는 오래전부터 양면 전쟁을 상정했다. 슐리펜 계획은 육군의 80%로 먼저 프랑스를 꺾은 뒤 러시아로 돌아선다는 구상이었고, 그래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독일은 7월 31일 러시아에 12시간 시한의 최후통첩을 보냈고, 8월 1일 두 나라는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독일은 2일 룩셈부르크를 점령하고 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한 뒤 벨기에에 통과를 요구했으며, 거부당하자 4일 아침 벨기에를 침공했다. 1839년 런던 조약에 따라 벨기에 중립을 보장한 영국은 철군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그 시한이 그날 자정에 지나며 영국도 참전했다. 1 6

프랑스러시아영국세르비아벨기에몬테네그로일본이탈리아포르투갈루마니아미국그리스태국중국브라질쿠바파나마라이베리아과테말라니카라과코스타리카아이티온두라스교전국: 협상국과 그 협력국

협상국의 중심은 프랑스·러시아 제국·영국 제국이었고, 1914년 여름 세르비아·몬테네그로·벨기에가 함께 싸웠다. 일본은 8월 23일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칭다오와 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를 점령했으며, 1915년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내밀어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넓혔다. 삼국동맹의 일원이던 이탈리아는 1914년 중립을 지키다가 1915년 4월 런던 조약에서 오스트리아 영토를 약속받고 5월 23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다. 독일과의 전쟁은 15개월 뒤였다. 6 1 7

1916년 3월에는 독일이 포르투갈에 선전포고했고, 루마니아는 8월 27일 트란실바니아를 노리고 참전했다. 미국은 1917년 4월 6일 독일에 선전포고했지만 정식 동맹국이 아니라 「협력국(associated power)」으로 싸웠다. 같은 해 국왕이 물러난 그리스가 6월 협상국에 합류했고, 중화민국은 8월 14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다. 시암(오늘날 태국)과 브라질도 1917년 협상국 편에 섰다. 라이베리아는 1917년 8월 4일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쿠바·파나마·과테말라·니카라과·코스타리카·아이티·온두라스 등 중남미 나라들도 선전포고했다. 6 8 9 7

참여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브라질은 해군 전대를 지브롤터의 영국 함대에 합류시키고 의료단을 유럽에 보냈다. 중국은 대규모 전투부대 대신 노동자를 보냈는데, 영국과 프랑스를 위해 일한 중국인 노동자는 약 14만 명이었다. 선전포고만 한 나라와 대군을 주요 전선에 투입한 열강을 같은 무게로 셀 수는 없다. 6 10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튀르키예불가리아교전국: 동맹국

동맹국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의 네 나라였다. 그 출발점은 187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양국 동맹이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별개의 교전국이 아니라 하나의 이중제국을 이루었고, 1914년 7월 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며 전쟁을 열었다. 독일은 서부와 동부 두 전선에서 싸우며 동맹국 전쟁 수행의 중심이 되었다. 1 6 7

오스만 제국은 개전 뒤에도 몇 달 동안 공식 참전을 미루었다. 1914년 10월 29일 오스만 깃발을 단 옛 독일 군함들이 오데사 등 러시아 흑해 항구를 포격하자, 11월 협상국이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했다.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에서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잃은 불가리아는 1915년 10월 14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며 동맹국에 가담했다. 11 6 1

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인도프랑스제국의 동원: 자치령과 식민지

영국의 선전포고는 자치령과 식민지를 자동으로 전쟁에 끌어들였다.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뉴펀들랜드·남아프리카 연방 같은 자치령은 내정과 군사비는 스스로 정했지만 외교권은 없었다. 영국 국립육군박물관에 따르면 제국 전역에서 3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노동자가 영국군과 함께 복무했다. 캐나다는 62만 명이 입대해 6만여 명이 전사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제국군에는 41만 명 넘게 복무했으며, 뉴질랜드는 약 10만 명을 해외에 보내 1만 8000명가량을 잃었다. 1949년에야 캐나다에 편입된 뉴펀들랜드도 따로 연대를 보냈다. 6 12

1914년 영국령 인도군은 영국 육군보다 컸다. 약 127만~130만 명의 인도인이 전투병과 노동자로 복무했고, 서부전선에 14만 명, 중동에 70만 명 가까이 투입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서아프리카 변경군과 왕립 아프리카 소총대가 동아프리카 전역을 떠받쳤고, 적어도 18만 명이 짐꾼 부대에서 일했다. 남아프리카는 흑인을 무장시키기를 꺼려 6만 명이 넘는 노동자만 보냈다. 인도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전쟁 협력이 자치를 앞당기리라 기대했지만, 전후 자치가 주어지지 않자 실망은 완전 독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1 12

프랑스도 인구의 열세를 식민지 병력으로 메우려 했다. 1914년 8~12월 서부전선에서만 30만 명 가까이 전사한 프랑스는 그 빈자리를 식민지 군대로 일부 채웠고, 1914~1918년 50만 명이 넘는 식민지 병사가 서부전선에서 싸웠다. 서아프리카의 세네갈 저격병은 약 20만 명이 동원되어 13만 5000명 이상이 유럽에서 싸웠고 3만 명이 전사했다. 그들은 이프르와 딕스뮈드, 베르됭의 두오몽 요새 탈환, 슈맹데담 공세에서 싸웠고, 특히 플랑드르와 슈맹데담에서 손실이 컸다. 6 13

기동전에서 참호전으로: 1914~1916년의 육상 전선

독일군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북부로 밀고 내려가 파리 40km 앞까지 다가섰다. 그러나 9월 5~12일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이 독일군 사이에 벌어진 틈을 반격하자, 독일 제1·2군은 엔강까지 후퇴했다. 양측은 서로의 측면을 돌려고 북쪽으로 달려 나갔고, 1914년 말 영국 해협에서 스위스 국경까지 참호선이 끊김 없이 이어졌다. 독일은 단기 결전으로 양면 전쟁을 피한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14 1

동부전선은 더 유동적이었다. 러시아는 프랑스와의 약속대로 일찍 동프로이센에 진격했지만, 8~9월 탄넨베르크와 마주리 호수 전투에서 패해 동프로이센에서 물러났다. 갈리치아에서는 러시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크게 이겼지만, 1915년 봄 갈리치아에서 밀려났고 5월 고를리체-타르누프 공세로 동맹국이 러시아령 폴란드에 진입했다. 1916년 6월 4일 시작된 브루실로프 공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혔지만, 러시아군도 막대한 인명 손실을 치렀고 그 피로는 이듬해 혁명의 배경이 되었다. 1 15

서부전선에서 참호와 철조망, 기관총과 포병은 공격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다. 1915년 4월 22일 독일군은 이프르에서 처음으로 염소가스를 대규모로 썼고, 이후 모든 주요 교전국이 독가스를 사용해 약 130만 명의 사상자와 9만 명가량의 사망자를 냈다. 1916년 2월 21일부터 12월 18일까지 이어진 베르됭 전투는 전쟁에서 가장 긴 전투였고, 양측 사상자는 70만~97만 5000명으로 추산된다. 7월 1일 시작된 솜 전투 첫날 영국군은 1만 9240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5만 747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11월 18일까지 300만 명 넘게 싸워 1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1 16 17

바다와 남부 전선: 봉쇄, 잠수함, 갈리폴리

영국은 개전 직후 독일 해상 봉쇄에 들어갔고, 식량까지 금제품으로 선언해 동맹국의 수입을 끊었다. 독일 해군은 1916년 5~6월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대함대와 맞섰지만 결정적 승부를 내지 못했고, 이후 독일 대양함대는 대부분 항구에 묶였다. 독일은 잠수함으로 맞섰다. 1915년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격침되어 미국이 항의하자, 독일은 여객선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8 1

1917년 2월 1일 독일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영국의 해상 보급로를 끊겠다며 무제한 잠수함전을 재개했다. 잠수함은 5000척이 넘는 연합국 선박을 격침했지만 199척을 잃었고, 1917년 호위 선단 체제가 도입되자 손실은 크게 줄었다. 전함 중심의 해전보다 봉쇄와 잠수함전이 민간인의 삶과 중립국의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19 1

협상국은 해협을 장악해 오스만 제국을 굴복시키려고 1915년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했다. 3월 함대의 해협 돌파가 실패한 뒤 4월 상륙전이 시작되었지만, 1916년 1월 철수할 때까지 양측이 각각 약 25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이름을 얻은 무스타파 케말은 훗날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오스만 제국은 1914년 12월 사르카미시에서 엔베르 파샤가 이끈 10만 병력의 86%를 잃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쿠트 포위에서 영국군을 꺾었지만 1917년 3월 바그다드를, 12월 예루살렘을 잃었고, 1916년 6월에는 영국의 지원을 받은 아랍 반란이 일어났다. 11 1

오스만 정부는 전쟁을 틈타 아르메니아인을 동부 지방에서 시리아로 강제 이송하며 죽음의 행진과 학살을 벌였다. 사망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국제제노사이드학자협회는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며, 아시리아인과 그리스인도 비슷한 공격을 받았다. 터키 정부는 지금도 제노사이드를 부인하지만 대부분의 역사가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

이탈리아군은 1915~1917년 이손초 강을 따라 카도르나 장군의 정면 공격을 되풀이했지만 큰 진전 없이 피를 흘렸다. 1917년 10월 24일 독일군의 증원을 받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카포레토에서 침투 전술과 독가스로 이탈리아 제2군을 무너뜨리자, 이탈리아군은 150km를 물러나 피아베 강에서 버텼고 보셀리 내각이 무너졌다. 발칸에서 세르비아는 1914년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두 차례 물리쳤지만, 1915년 10월 불가리아가 가세한 동맹국의 공세에 무너져 알바니아를 넘어 퇴각했다. 살아남은 세르비아군은 그리스로 옮겨져 살로니카 전선에서 싸움을 이어 갔다. 1 20

후방의 총력전: 전시 경제, 굶주림, 파업과 항명

장기전은 국가가 생산과 노동, 식량을 통제하는 총력전으로 바뀌었다. 모든 교전국에서 국내총생산 중 정부 몫이 커져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50%를 넘었다. 1916년 8월 참모본부를 맡은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군수 생산을 크게 늘리려는 「힌덴부르크 계획」을 세웠고, 같은 해 조국봉사법은 군대나 군수산업에 있지 않은 17~60세 남성을 모두 전시 노동에 동원했다. 남성이 전선으로 떠난 자리는 여성이 메웠다. 여성들은 전례 없는 규모로 노동 현장에 들어갔고, 이는 전후 여성 참정권 확대의 한 배경이 되었다. 1 21

봉쇄와 흉작, 농업 인력과 비료의 군사 전용이 겹치며 독일은 1916~1917년 「순무의 겨울」을 맞았다. 감자 대신 순무가 주식이 되었고, 겨울 배급량은 하루 1000칼로리까지 떨어져 성인 남성에게 필요하다던 3000칼로리의 3분의 1에 그쳤다. 식량 부족은 곧바로 노동 쟁의로 이어졌다. 리프크네히트 체포에 항의한 1916년 6월의 파업, 1917년 4월의 「빵 파업」에 이어 1918년 1월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3~25일 대파업이 벌어졌고, 독일에서도 100만 명 넘는 노동자가 생활·노동 조건 개선과 종전, 헌정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손을 놓았다. 22 23

베를린 파업은 리하르트 뮐러가 이끈 혁명적 직장위원들이 조직했고, 이때 처음으로 노동자 평의회가 폭넓게 선출되었다. 사민당 지도자 에베르트와 샤이데만은 노동자들의 압력으로 파업 지도부에 들어갔지만 운동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파업은 경찰과 군대에 진압되었고, 뮌헨에서 군수 노동자 파업을 조직한 쿠르트 아이스너 같은 지도자들은 체포되었으며 많은 노동자가 징집되어 전선으로 보내졌다. 1918년 11월 각지에서 생긴 노동자·병사 평의회 가운데 다수가 이 1월 파업을 본떴다. 23

협상국 쪽 후방과 군대도 흔들렸다. 1917년 4월 16일 시작된 니벨 공세가 48시간 안의 결정적 승리라는 약속과 달리 큰 손실만 남기자, 5월 3일 한 사단이 공격 명령을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서부전선 프랑스 보병 사단의 절반 가까이가 항명에 휩싸였다. 병사들은 참호를 지키면서도 공격만은 거부했다. 후임 페탱은 무모한 공격을 멈추고 휴가를 늘리는 한편 3400건의 군법회의를 열어 554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그중 26명이 처형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1916년 4월 24일 부활절 봉기가 일어나 엿새 만에 진압되었고, 지도자 16명의 처형은 오히려 독립 지지를 키웠다. 1 24 25

사회주의자와 전쟁

계급투쟁과 국제주의를 내건 사회주의 정당들도 1914년 8월 다수가 자국 정부 편에 섰다. 독일 제국의회의 정당들은 정쟁을 멈추는 「성내 평화(Burgfrieden)」에 합의했고, 8월 4일 사민당 의원들은 전쟁공채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당내 회의에서는 92명 가운데 14명이 반대했지만 당의 규율에 따랐다. 같은 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도 「신성 연합」으로 전쟁을 지지했다. 오스트리아·영국·러시아의 사회주의자 다수도 마찬가지였다. 26 1

반대는 소수에서 시작해 넓어졌다.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1914년 12월 2일 제국의회에서 두 번째 전쟁공채에 홀로 반대했고, 1916년 5월 1일 베를린에서 「전쟁 타도」를 외치다 체포되었다. 1915년 9월 5~8일 스위스 치머발트에 모인 반전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의 책임을 반동적 자본주의 정부들에 돌리고 무병합·무배상 평화를 요구했다. 이 흐름은 뒤이은 킨탈 회의로 이어져 「치머발트 운동」이라 불렸다. 미국의 유진 뎁스와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처럼 전쟁에 반대하다 투옥된 이들도 있었다. 인터내셔널이 무너진 과정과 치머발트 운동의 분열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항목이 자세히 다룬다. 27 26 1

러시아미국독일1917년: 러시아 혁명과 미국의 참전

1916년 말까지 러시아의 사상자는 죽거나 다치거나 포로가 된 이를 합쳐 500만 명에 가까웠고, 도시는 식량 부족과 물가 폭등에 시달렸다. 1917년 3월 7일 페트로그라드 최대 공장인 푸틸로프 공장이 파업으로 멈추고, 이튿날 세계 여성의 날 집회가 빵을 요구하는 시위로 번졌다. 군대가 군중에게 발포하기를 거부하자 니콜라이 2세는 물러났다.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와 권력이 갈린 가운데 전선의 병사들은 갈수록 사기를 잃었다. 즉각적인 평화를 내건 볼셰비키는 11월 7일 권력을 잡았고, 12월 휴전에 이어 1918년 3월 3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로 전쟁에서 빠졌다. 러시아는 옛 제국 인구의 34%, 산업 지대의 54%, 탄전의 89%를 잃었다. 이 과정은 「2월 혁명」, 「10월 혁명」, 「브레스트 강화와 독일의 동방 점령」 항목에서 이어진다. 이 문서의 날짜는 그레고리력 기준이다. 1 28 29

미국은 1914년 중립을 지키면서도 연합국의 주요 물자 공급국이었다. 무제한 잠수함전 재개에 더해, 미국이 참전하면 멕시코에 텍사스·애리조나·뉴멕시코를 되찾게 해 주겠다는 1917년 1월 17일의 「치머만 전보」가 영국 정보기관에 해독되어 공개되자 여론이 돌아섰다. 의회는 4월 6일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윌슨 대통령은 미국이 전후 강화를 주도하기를 바랐고, 1918년 1월 「14개조」로 새로운 국제 질서와 국제연맹을 구상했다. 1917년 선발징병법으로 280만 명이 징집되었고, 1918년 11월 말까지 200만 명의 미국 원정군이 프랑스에 건너갔다. 19 1 8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튀르키예불가리아1918년: 마지막 공세와 동맹국의 붕괴

러시아의 이탈로 동부에서 50개 가까운 사단을 빼낸 독일은 미군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전에 결판을 내려 했다. 1918년 3월 21일 루덴도르프는 「미하엘 작전」으로 춘계 공세를 시작해 생캉탱 부근 영국군 전선을 60km나 밀어냈고, 이어 다섯 차례 공세로 다시 마른 강까지 다가섰다. 그러나 보급이 따라가지 못해 7월 공세는 멈췄고, 3월 연합군 총사령관이 된 포슈가 반격에 나섰다. 8월 8일 아미앵 전투에서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영국·프랑스군이 500대 넘는 전차를 앞세워 독일 전선을 뚫자 루덴도르프는 이날을 「독일군의 암흑의 날」이라 불렀다. 이로써 시작된 「백일 공세」에서 연합군은 9월 29일 힌덴부르크선을 돌파했다. 30 1 6 31

동맹국은 남쪽부터 무너졌다. 9월 15일 살로니카 전선에서 프랑스·세르비아·그리스군이 도브로폴레를 돌파하자 불가리아군이 무너졌고, 불가리아는 9월 29일 살로니카 휴전에 서명해 동맹국 가운데 처음으로 전쟁에서 이탈했다. 같은 날 독일 최고사령부는 황제에게 군사적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보고했다. 다마스쿠스까지 잃은 오스만 제국은 10월 30일 무드로스 휴전에 서명했다. 1

10월 24일 이탈리아군이 비토리오 베네토 공세를 시작했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미 안에서부터 해체되고 있었다. 10월 마지막 주 프라하·자그레브·부다페스트에서 독립이 선언되었고, 헝가리 사단들은 귀국을 요구했다. 제국군은 해체되었고 이탈리아군은 30만 명이 넘는 포로를 잡았다. 11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빌라 주스티 휴전을 받아들였고, 합스부르크 왕정이 무너진 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따로 휴전을 맺었다. 1

독일에서는 10월 3일 막스 폰 바덴이 총리가 되어 윌슨 대통령에게 14개조를 바탕으로 한 휴전을 요청했다. 그런데 해군 지휘부가 정부도 모르게 영국 함대와의 마지막 결전을 명령하자, 10월 30일 빌헬름스하펜의 수병들이 출항을 거부했고 11월 3일 킬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수병과 노동자의 평의회는 며칠 만에 전국으로 번졌고, 11월 9일 공화국이 선포되며 빌헬름 2세가 퇴위했다. 그 과정은 「독일 11월 혁명」 항목이 다룬다. 11월 11일 오전 5시 콩피에뉴 숲의 열차 안에서 휴전이 조인되어 오전 11시에 발효되었다. 독일군은 라인강 서쪽에서 철수하고 함대와 무기를 넘겨야 했으며 해상 봉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마지막 날에도 2738명이 전사했다. 1 32 33

희생과 쟁점, 그리고 여파

희생자 수는 집계 방식에 따라 크게 다르다. 흔히 인용되는 추계는 사망자 1500만~2200만 명이며, 그 가운데 군인이 900만~1100만 명, 민간인이 600만~1300만 명이다. 클로드펠터는 민간인 사망자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치는 650만 명」이라고 하면서도 추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유럽에서 동원된 6000만 명 가운데 약 800만 명이 죽었고, 독일은 경제활동 남성 인구의 15.1%,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7.1%, 프랑스는 10.5%를 잃었다. 세르비아는 민간인과 질병 사망자를 합쳐 인구의 30% 가까운 120만 명 이상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34 1 6

봉쇄의 희생도 논쟁거리다. 독일 보건청은 1918년 12월 봉쇄로 76만 3000명의 민간인이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1928년 연구는 42만 4000명, 제이 윈터는 독감을 뺀 초과 사망을 30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 수치는 봉쇄 해제를 바라던 독일의 선전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1918년 봄부터 퍼진 이른바 스페인 독감은 군대의 대규모 이동으로 확산이 빨라졌지만, 그 사망자 추산은 1700만~5000만 명, 많게는 1억 명까지 엇갈린다. 독감을 비롯한 질병은 군인 사망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으므로, 전쟁 사망자와 독감 사망자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18 35 34

역사가들은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지만이 아니라 연합국이 왜 이겼는지, 장군들이 막대한 사상자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병사들이 참호의 조건을 어떻게 견뎠는지, 후방이 전쟁을 어디까지 받아들였는지를 두고 오래 논쟁해 왔다. 21세기에는 점령, 정치의 급진화, 인종, 젠더, 정신 건강 같은 새로운 질문이 더해졌다. 전후 독일에서는 군대가 전장에서 진 것이 아니라 파업과 혁명을 일으킨 후방의 「배신」 때문에 졌다는 「등 뒤의 칼」 신화가 퍼졌다. 그러나 독일 최고사령부 스스로 9월 말 패배를 인정했고, 봉쇄가 패전을 얼마나 앞당겼는지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1 36 18

11월 11일의 휴전은 서부전선의 전투를 멈추었을 뿐 강화가 아니었다. 전쟁은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만의 네 제국과 로마노프·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오스만 왕조를 무너뜨렸다. 1919~1920년 파리 강화 회의와 베르사유 조약을 비롯한 강화 조약들, 폴란드·핀란드·발트 3국·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 같은 새 국가들, 1918~1919년의 혁명 물결과 1923년의 위기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 항목에서 이어진다. 1 33

결과

1918년 9~11월 불가리아·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이 차례로 휴전하며 동맹국의 패배로 끝났다.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만의 네 제국이 무너졌고, 강화 회의와 새 국가들, 혁명의 물결은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이어진다.

연표와 지도

사라예보 킬 탄넨베르크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이프르 루츠크 리에주 솜 전장 콩피에뉴 베르됭 마른 전장 카포레토 베오그라드 갈리폴리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17 페트로그라드 20 페트로그라드 27 킬 4 탄넨베르크 21 베를린 22 브레스트-리토프스크 7 이프르 13 러시아군 · 1916: 루츠크 돌파 14 솜 전장 3 동맹국군 · 1914: 벨기에 → 마른 24 아미앵 23 생캉탱 25 콩피에뉴 12 베르됭 5 마른 전장 2 빈 19 동맹국군 · 1917: 카포레토 → 피아베 6 세바스토폴 15 부쿠레슈티 1 사라예보 10 동맹국군 · 1915: 베오그라드 → 모라바 11 소피아 9 로마 8 갈리폴리 상륙지 일대 18 아테네 16 영국 제국군 · 1917: 쿠트 → 바그다드 26 영국 제국군 · 1918: 팔레스타인 → 다마스쿠스 동맹국군31019러시아군13영국 제국군1626
  1. 11914.06.28오스트리아헝가리
    사라예보 암살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암살이 7월 위기의 계기가 됐다.

  2. 21914.07.28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개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3. 1914.08독일러시아프랑스영국벨기에몬테네그로
    유럽 열강의 참전

    독일·러시아·프랑스·영국의 참전과 벨기에 침공으로 전쟁이 확대됐다. 몬테네그로도 세르비아 편에 섰다.

  4. 1914.08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인도
    영국 제국의 동원

    자치령과 영국령 인도가 병력·노동·자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뉴펀들랜드는 별도 자치령이었다.

  5. 31914.08–09독일벨기에프랑스영국
    독일군의 벨기에·프랑스 진격

    독일군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북부로 진격했다. 화살표는 리에주–브뤼셀–몽스–마른 방면의 서진·남진을 개략적으로 보여 준다. 9월 마른 전투에서 진격이 저지됐다.

  6. 1914.08.23일본독일
    일본 참전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7. 41914.08.26–30독일러시아
    탄넨베르크 전투

    독일 제8군이 동프로이센에 들어온 러시아 제2군을 포위해 거의 섬멸했다.

  8. 51914.09.05–12프랑스영국독일
    마른 전투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의 반격으로 독일군이 엔강까지 물러났고, 이후 서부전선은 참호전으로 굳었다.

  9. 61914.10.29–11튀르키예러시아영국프랑스
    오스만 제국 참전

    오스만 함대의 러시아 흑해 항구 공격 뒤 상호 선전포고가 이어졌다.

  10. 71915.04.22독일프랑스벨기에
    이프르에서 독가스 대규모 사용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처음으로 염소가스를 대규모로 썼다.

  11. 81915.04.25튀르키예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갈리폴리 상륙

    영국·프랑스 및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병력이 갈리폴리에 상륙했다.

  12. 1915.05.07독일영국미국
    루시타니아호 격침

    독일 잠수함이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경고 없이 격침해 1197명이 숨졌다.

  13. 91915.05.23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의 협상국 참전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다.

  14. 101915.10–11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불가리아세르비아
    동맹국의 세르비아 공세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북쪽에서, 불가리아군은 동쪽에서 공격했다. 화살표는 베오그라드에서 모라바 계곡을 따라 남하한 북부 공격축을 나타낸다. 세르비아군은 알바니아 방면으로 후퇴했다.

  15. 111915.10.14불가리아세르비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의 동맹국 참전

    불가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16. 121916.02–12프랑스독일
    베르됭 전투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장기 소모전이 벌어졌다.

  17. 1916.03.09포르투갈독일
    독일의 대포르투갈 선전포고

    독일 선박 나포 뒤 두 나라가 공식 교전 상태에 들어갔다.

  18. 1916.05.31–06.01영국독일
    유틀란트 해전

    영국 대함대와 독일 대양함대가 맞붙은 전쟁 중 유일한 대규모 전함 해전으로, 결정적 승부는 나지 않았다.

  19. 131916.06–09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
    브루실로프 공세: 루츠크 돌파

    러시아 남서전선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전선을 돌파했다. 화살표는 로브노 방면에서 루츠크를 거쳐 코벨 쪽으로 나아간 북부 공격축의 개략이다. 코벨은 함락하지 못했다.

  20. 141916.07–11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
    솜 전투

    영국 제국·프랑스군과 독일군의 대규모 소모전이 계속됐다.

  21. 151916.08.27루마니아오스트리아헝가리
    루마니아 참전

    루마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다.

  22. 161917.02–03영국인도튀르키예
    쿠트 재점령과 바그다드 진격

    영국·인도군은 1916년 쿠트에서의 항복 이후 재편해 공세를 재개했다. 1917년 2월 쿠트를 되찾고 티그리스강을 따라 북서진해 3월 11일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23. 1917.02.01독일영국미국
    무제한 잠수함전 재개

    독일이 대서양의 모든 선박을 경고 없이 공격하는 무제한 잠수함전을 재개했다.

  24. 171917.03러시아
    2월 혁명

    러시아 제정이 붕괴했으나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했다. 명칭은 율리우스력에서 유래한다.

  25. 1917.04.06미국독일
    미국 참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26. 1917.05.03프랑스
    프랑스군 항명

    니벨 공세가 실패한 뒤 공격 명령 거부가 서부전선 프랑스 보병 사단의 절반 가까이로 번졌다.

  27. 181917.06그리스
    그리스의 협상국 합류

    국내 분열 끝에 그리스가 협상국 편으로 참전했다.

  28. 1917.07.22태국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시암 참전

    시암이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다.

  29. 1917.08.14중국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중화민국 참전

    중화민국이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했다. 중국인 노동자는 이미 협상국을 지원하고 있었다.

  30. 191917.10.24–11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
    카포레토 돌파와 피아베강 진출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카포레토에서 이탈리아군 전선을 돌파했다. 이탈리아군은 타글리아멘토강을 넘어 피아베강 방어선으로 물러났다. 화살표는 우디네를 거치는 남서쪽 진격 방향을 나타낸다.

  31. 1917.10.26브라질독일
    브라질 참전

    브라질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32. 201917.11.07러시아
    10월 혁명

    볼셰비키가 페트로그라드에서 권력을 장악했다.

  33. 211918.01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
    1월 대파업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독일에서 노동자들이 생활 조건 개선과 종전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베를린에서는 노동자 평의회가 선출되었다.

  34. 221918.03.03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튀르키예불가리아
    브레스트 강화

    소비에트 러시아가 동맹국과 강화해 전쟁에서 이탈했다.

  35. 231918.03.21독일영국프랑스
    독일 춘계 공세

    루덴도르프가 미하엘 작전으로 서부전선 최후의 대공세를 시작했다.

  36. 241918.08.08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프랑스독일
    아미앵 전투와 백일 공세

    연합군이 아미앵에서 독일 전선을 뚫었고, 루덴도르프는 이날을 「독일군의 암흑의 날」이라 불렀다.

  37. 251918.09–11불가리아튀르키예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
    동맹국의 연쇄 휴전

    불가리아·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가 차례로 휴전하고, 11월 11일 독일과의 휴전으로 서부전선 전투가 중단됐다.

  38. 261918.09.19–10.01영국인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튀르키예
    메기도 돌파와 다마스쿠스 추격

    이집트 원정군은 팔레스타인의 오스만 전선을 돌파했고, 사막기마군단 등이 갈릴리호 방면을 거쳐 북진했다. 아랍군도 별도의 내륙 축에서 진격했으며 10월 1일 다마스쿠스가 함락됐다. 화살표는 영국 제국군의 북진 축을 개략적으로 표시한다.

  39. 271918.11.03독일
    킬 수병 봉기

    출항 명령을 거부한 수병들이 킬에서 봉기해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전국으로 번졌다.

관련 인물 279명

협상국178명

집행 · 지휘52

이탈리아군 참모총장루이지 카도르나1850–1928

1915~1917년 이손초 강을 따라 정면 공격을 되풀이했다.

프랑스군 총사령관로베르 니벨1856–1924

1917년 4월 니벨 공세가 큰 손실만 남겨 프랑스군 항명 사태를 불렀다.

서부전선 사단·군단장블라디미르 준콥스키1865–1938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서부전선에서 제15시베리아사단과 제3시베리아군단을 지휘했다.

동부전선 최고사령관니콜라이 로마노프1856–1929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동부전선을 지휘했다.

11군 사령관블라디미르 사하로프1853–1920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보조 축을 지휘하고 브로디를 점령했다.

사로니카 전선 원정군 사령관미하일 디테릭스1874–1937

1차 세계대전 중 사로니카 전선의 러시아 원정군을 지휘했다.

라트비아 소총병 연대장이오아킴 바체티스1873–1938

제1차 세계대전에 라트비아 소총병 연대장으로 종군했다.

연대장과 사단장알렉산드르 스베친1878–1938

1914~1916년 제6핀란드소총연대와 흑해해병사단을 지휘했다.

러시아군 군단 지휘관안드레이 스네사레프1865–1937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대장·여단장·사단장과 군단장을 지휘했다.

프랑스에서 대대를 지휘한 미군 장교존 P. 루카스1890–1949

제108야전통신대대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되어 복무했고, 1918년 아미앵 인근에서 중상을 입었다.

서부전선 대대 지휘관존 고트1886–1946

서부전선에서 참모로 복무하고 대대를 지휘했다.

몬테 사보티노 점령 지휘관피에트로 바돌리오1871–1956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몬테 사보티노 점령을 지휘했다.

프랑스군 자동차 수송 지휘에메 두멩크1880–1948

제1차 세계대전기에 자동차 수송을 조직하고 1916년 베르됭 보급과 부대 교대를 지원했다.

러시아 기병부대 지휘관알렉산드르 크리모프1871–1917

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병 여단과 사단을 지휘했다.

프랑스 전선 기관총대대 지휘관에드워드 알몬드1892–1979

1918년 프랑스 전선에서 제4사단 제12기관총대대를 지휘했다.

미군 전차여단 지휘관조지 S. 패튼1885–1945

생미엘 전투와 뮈즈-아르곤 공세에서 전차부대를 지휘했다.

왕립비행군단 편대 지휘관아서 해리스1892–1984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왕립비행군단 조종사와 편대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프랑스군 중대 지휘관로베르 투숑1878–1960

1914년 크리스마스 밤, 부상당한 채 테트드포 정상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 두 차례 표창을 받았다.

살로니카 전선 연대 지휘관두샨 시모비치1882–1962

살로니카 전선에서 제7보병연대를 지휘했다.

동부연합군 작전참모샤를 욍치제르1880–1941

동부연합군 작전참모로 바르다르 공세를 계획했다.

프랑스군 사단 지휘관모리스 가믈랭1872–1958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제9보병사단을 지휘했다.

프랑스군 지휘관필리프 페탱1856–1951

베르됭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했다.

전시 구호·식량 통제 기관장허버트 C. 후버1874–1964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구제위원회와 미국 식량청을 이끌며 수백만 명을 먹여 살렸다.

제1근위군단 지휘관블라디미르 마이-마옙스키1867–1920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1근위군단을 지휘했다.

시베리아 위생·급식대 지휘관빅토르 페펠랴예프1885–1920

제1차 세계대전 중 제3 시베리아 위생·급식대를 이끌었다.

전시 구호행정 책임자니콜라이 키시킨1864–1930

1차 세계대전 중 전러시아 도시연합의 부총책임자로 의료·후방 지원을 조정했다.

제8군 포병감미하일 한진1871–1961

제1차 세계대전 중 브루실로프 공세의 포격 계획을 주도했다.

러시아군 전선 사령관니콜라이 루즈스키1854–1918

제1차 세계대전 중 북서전선과 북부전선 총사령관을 지냈다.

오렌부르크 카자크 연대 지휘관알렉산드르 두토프1879–1921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제1오렌부르크 카자크 연대를 지휘했다.

러시아군 참모장과 군단장예브게니 밀레르1867–1939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5군·제12군 참모장을 맡고 제26군단을 지휘했다.

제8군 사령관알렉세이 칼레딘1861–1918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루츠크를 돌파했다.

브루실로프 공세 지휘관알렉세이 브루실로프1853–1926

1916년 남서전선 총사령관으로 브루실로프 공세를 지휘했다.

러시아군 연대장·참모미하일 본치-브루예비치1870–1956

제176연대장과 제3군·북서전선 군수참모부장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발트·흑해함대 사령관알렉산드르 콜차크1874–1920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발트함대와 흑해함대를 지휘했다.

차르군 중대장·대대장블라디미르 트리안다필로프1894–1931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차르군에서 중대장과 대대장으로 복무했다.

제8비행대 지휘관트래퍼드 리말로리1892–1944

제8비행대를 지휘했고, 캉브레 전투 뒤 전차와 포병을 유도하는 임무를 맡았다.

시베리아 포병여단장알렉산드르 코즐롭스키1864–1940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시베리아 포병 여단을 지휘했다.

동부전선 작전 총지휘미하일 알렉세예프1857–1918

스타프카 참모총장으로 러시아군의 작전과 보급을 총괄했다.

러시아군 기병군단장표트르 크라스노프1869–1947

1916년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루츠크 돌파를 주도했다.

캅카스 전선 지휘관니콜라이 유데니치1862–1933

캅카스 전선에서 사르카미시·에르주룸·트레비존드 전투를 지휘했다.

철의 여단 지휘관안톤 데니킨1872–1947

제4소총 철의 여단을 지휘하고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루츠크를 두 차례 점령했다.

카우셴 전투 기병 돌격 지휘관표트르 브란겔 (백군 총사령관)1878–1928

1914년 카우셴 전투에서 기병 돌격을 지휘했다.

국가방위기구 발기인·피난위원장미하일 로댠코1859–1924

1915년 국가방위 특별협의회 설립을 주도하고 피난위원장을 맡았다.

제정군 중대 지휘관미하일 샬린1897–1970

1916~1918년 제정군 소위로 복무하고 예비소총연대 중대를 지휘했다.

러시아군 소대 지휘관블라디미르 쿠라소프1897–1973

러시아 제국군 소대장으로 서부전선에서 복무했다.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기습 지휘라브르 코르닐로프1870–1918

1914년 11월 야간 기습을 직접 이끌어 오스트리아군 포로 1,200명을 사로잡았다.

연합군 작전 조율 참모막심 베강1867–1965

포슈의 핵심 참모로 연합군 작전을 조율했다.

러시아군 군단·기병사단 지휘관파울로 스코로파츠키1873–1945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군 기병사단을 지휘했다.

제1사단 작전참모조지 C. 마셜1880–1959

제1사단 작전참모로 칸티니·뫼즈-아르곤 공세를 기획했다.

전시 해군 확장을 주도한 해군 차관보프랭클린 D. 루스벨트1882–1945

제1차 세계대전 중 해군 확장을 주도했다.

러시아군의 6월 공세 지휘알렉산드르 케렌스키1881–1970

육해군장관으로서 1917년 6월 공세를 강행했으나 실패했다.

제정군 정찰대 지휘관파벨 바토프1897–1985

1915년 제정군에 징집되어 근위 3소총연대 정찰대를 지휘했다.

참여118

제국군 장교로 참전표도르 트루힌1896–1946

1916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제1차 세계대전 복무자파블레 카라조르제비치1893–1976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복무했다.

러시아군 기병 자원복무자니콜라이 구밀료프1886–1921

1914~1917년 기병으로 자원 입대해 두 차례 성 게오르기 훈장을 받았다.

러시아군 장교미하일 조셴코1894–1958

1915~1917년 장교로 참전해 다섯 차례 훈장을 받았다.

프랑스군 참호전 병사보리스 수바린1895–1984

프랑스군에 동원되어 서부전선 참호전을 경험했다.

전시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황후알렉산드라 로마노바1872–1918

니콜라이 2세가 전선에 있는 동안 라스푸틴의 조언을 받아 각료 교체를 압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장교아나톨리 페펠랴예프1891–1938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제정 러시아군 사병보리스 펠트만1890–1937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제정 러시아군 사병으로 복무했다.

전쟁 수행을 잠정 지지한 의원마트베이 스코벨레프1885–1938

전쟁 수행을 잠정 지지하면서 정부의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했다.

서부전선 의료·영양 부대원마리야 울리야노바1878–1937

간호 과정을 마친 뒤 서부전선 의료·영양 부대에서 복무했다.

하급 부사관으로 복무한 병사이반 쿠탸코프1897–1938

1916~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하급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러시아군 참모 장교아우구스트 코르크1887–1937

제20군단, 제3시베리아군단, 제10군에서 참모 장교로 복무했다.

러시아 제국군 병사스타니스와프 메싱1890–1937

1913~1917년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어 투르케스탄·카프카스 전선에서 복무했다.

러시아 제국군 포병장교이에로님 우보레비치1896–1937

제1차 세계대전에 포병장교로 참전했다.

라트비아 소총병 장교에두아르트 베르진1894–1938

제1차 세계대전에 라트비아 소총병으로 참전했다.

근위척탄병연대 장교그리고리 그린코1890–1938

제1차 세계대전에 예카테리노슬라프 근위척탄병연대 장교로 참전했다.

전쟁 참전 병사바실리 블류헤르1890–1938

1914~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군에 동원된 병사모이세이 루히모비치1889–1938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동원되었다.

남서부 전선의 하급 장교니콜라이 크릴렌코1885–1938

1916년 남서부 전선에서 연대 통신부대의 하급 장교로 복무했다.

근위 제1사단 장교미하일 투하쳅스키1893–1937

근위 제1사단에서 복무하다 부상당하고 1915년 2월 포로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자볼데마르 울메르1896–1945

1916년 준위학교를 졸업한 뒤 1차 대전에 참전했다.

벨기에 전시 정부의 사회주의 국무장관에밀 반데르벨데1866–1938

1914년 8월 독일의 벨기에 침공 뒤 국무장관으로 입각해 조국 방위를 지지했다.

프랑스 전시 내각의 무임소 장관쥘 게드1845–1922

1914년 8월 무임소 장관으로 입각해 신성 연합 정부에 참여했다.

마케도니아 전선에 복무한 장교나폴레온 제르바스1891–1957

국방운동에 가담해 마케도니아 전선에서 복무했다.

서부전선에 복무한 왕립공병대 장교로널드 스코비1893–1969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왕립공병대 장교로 서부전선에 복무했다.

이탈리아군 포병 대위주세페 카스텔라노1893–1977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왕국군에서 포병 대위로 복무했다.

이탈리아군 장교비토리오 암브로시오1879–1958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카포레토 후퇴를 엄호했다.

러시아 군사행정 사무소 서기미하일 리조프1889–1939

제1차 세계대전 중 모르샨스크 향 군사책임자 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했다.

프랑스 전선에 복무한 미 육군 장교존 J. 매클로이1895–1989

1917~1919년 미 육군 포병 장교로 프랑스 전선에 복무했다.

러시아군 체코 수렵대원스타니슬라프 체체크1886–1930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군 체코 수렵대에 참가했다.

프랑스 전선의 군의관헨리 뵈우커스1880–1959

1917년부터 1918년까지 프랑스 전선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오스트리아 전선에 복무한 병사티모페이 키르피치니코프1892–1917/1918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고 부상했다.

러시아군 장교니콜라이 스코블린1893–1937/1938?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군 장교로 복무했다.

제정 러시아군 복무자페레츠 마르키시1895–1952

제1차 세계대전 때 제정 러시아군에서 복무했다.

영국 해군 전함 복무레지널드 드랙스1880–1967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함 HMS 라이언에서 복무하고 주요 해전에 참가했다.

벨기에군 장교로 전투 참전라울 판 오버스트라텐1885–1977

리에주와 할렌 전투, 앤트워프 포위전과 해안 경주에 참전했다.

세르비아군 장교드라자 미하일로비치1893–1946

세르비아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서부전선 포병 장교앨런 브룩1883–1963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의 왕립기마포병대 탄약종대에 배속됐다.

프랑스군 참전 장교샤를 들레스트랭1879–1945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프랑스군 보병 장교샤를 드골1890–1970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육군 보병 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군 전투기 조종사게오르기 지노비예프1887–1934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서부전선 제2군 항공대에서 복무했다.

프랑스군 징집병자크 도리오1898–1945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케미데담 전투에서 부대가 괴멸당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피에르 테탱제1887–1965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랑스군 참전 병사마르소 피베르1895–1958

1차 대전에 참전했고, 전쟁은 그를 반군국주의자로 만들었다.

프랑스군 포로이자 강제노동 거부자로제 살랑그로1890–1936

1915년 10월 독일군에 포로가 된 뒤 수용소에서 동료들과 강제노동을 거부하도록 권했다.

브루실로프 공세에 참전한 포병 사관후보생미하일 G. 예프레모프1897–1942

제국군 포병 사관후보생으로 브루실로프 공세에 참전했다.

차르 군대 이등병바실리 볼스키1897–1946

1916~1917년 차르 군대의 이등병으로 복무했다.

러시아군 참전 장교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1886–1921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다섯 차례 부상했다.

러시아군 기병 장교그리고리 세묘노프1890–1946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성 게오르기 훈장과 게오르기 무기를 받았다.

전시산업위원회 면화분배위원윌리엄 L. 클레이턴1880–1966

전시산업위원회 면화분배위원으로 전쟁 중 정부에 봉사했다.

러시아 포로구호위원회 의장니콜라이 골리친1850–1925

1915년부터 1916년까지 러시아 포로구호위원회를 이끌었다.

두마 대표단장으로 연합국 방문알렉산드르 프로토포포프1866–1918

1916년 두마 대표단장으로 연합국을 방문했다.

러시아군 참모 장교블라디미르 카펠1883–1920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 장교로 복무하며 브루실로프 공세 계획에 참여했다.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니콜라이 쇼르스1895–1919

군 의무병으로 복무한 뒤 남서전선에서 소위로 전투했다.

군 지원·구호 조직자게오르기 리보프1861–1925

제1차 세계대전 중 젬스트보 연합과 젬고르를 이끌며 군수·구호망을 조직했다.

러시아 제국군 포병야코프 골레프1894–1960

1916년 러시아 제국군 포병으로 복무했다.

제정 러시아 해군 장교악셀 베르그1893–1979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정 러시아 해군에서 복무했다.

러시아 전선 참모장교파벨 레베데프1872–1933

제1차 세계대전 중 남서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참모직을 맡았다.

북서전선 적십자 외과고문니콜라이 부르덴코1876–1946

북서전선에서 적십자 외과고문으로 복무했다.

제국군 징집 병사표트르 바라노프1892–1933

1915년 제국군에 징집되었다.

혁명적 수호주의 주창자이라클리 체레텔리1881–1959

독일 제국주의에 맞서 러시아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 위생병·준위드미트리 푸르마노프1891–1926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위생병이자 준위로 복무했다.

미군 제8연대 병사해리 헤이우드1898–1985

미 육군 제8연대 소속으로 프랑스 전선에서 전투에 참전했다.

러시아군 연대 복무 병사바실리 차파예프1887–1919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326 벨고라이 연대에서 복무했다.

러시아군 군의관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1873–1928

제1차 세계대전 중 군의관으로 징집되어 전선에서 복무했다.

러시아 제국군 참모 장교요한 라이도네르1884–1953

러시아 제국군 참모 장교로 1차 대전을 치렀다.

남서부 전선 장교니키포르 흐리호리우c.1885–1919

1차 세계대전에서 남서부 전선 장교로 복무했다.

서부전선에 복무한 영국 육군 장교앤서니 이든1897–1977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영국 육군 장교로 서부전선에서 복무했다.

프랑스군 장교장 드 라트르 드 타시니1889–1952

제12용기병연대와 제93보병연대에서 복무하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신성동맹을 수용한 노동운동 지도자레옹 주오1879–1954

1914년 반전 총파업 노선을 접고 신성동맹을 수용했다.

프랑스군 참전병자크 뒤클로1896–1975

베르됭에서 싸우다 부상당한 뒤 포로가 됐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참전병루드비크 스보보다1895–1979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서 탈영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합류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공병장교드미트리 카르비셰프1880–1945

브루실로프 공세를 포함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동부전선 병사바실리 자루빈1894–1972

1914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군으로 동부전선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참전 군인미하일 호진1896–1979

1915년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자원입대자세묜 보그다노프1894–1960

1915년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소위까지 진급했다.

러시아군 참전 장교세묜 아랄로프1880–1969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군 장교로 동프로이센 작전에 참전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징집병안드레이 예료멘코1892–1970

제국군에 징집되어 남서전선과 루마니아 전선에서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남서전선에 참전한 제국 러시아군 장교알렉세이 안토노프1896–1962

제국 러시아군 소위로 남서전선에서 싸우다 부상했다.

전쟁 지속을 주장한 전선 정치위원보리스 사빈코프1879–1925

남서전선 수석정치위원으로서 전쟁을 승리까지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러시아군 정찰병·부사관시디르 콥파크1887–1967

러시아 제국군 정찰병과 부사관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병사파벨 리발코1894–1948

러시아 제국군에서 복무하며 프셰미실 공방전과 브루실로프 공세에 참전하고 부상당했다.

러시아 제국군 장교알렉산드르 토도르스키1894–1965

1914~1917년 제국군 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루마니아 전선 복무자그리고리 코톱스키1881–1925

코톱스키는 루마니아 전선에서 복무했다.

러시아 북부전선의 징집병세묜 로샬1896–1917

1915년 북부전선에 징집되어 전선 선전 활동을 했다.

러시아군 항공부대 정비사세르게이 일류신1894–1977

1914~1918년 러시아군 항공부대에서 정비사로 복무했다.

러시아 제국군 기병 장교스타니스와프 부와크-바와호비치1883–1940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 제국군 기병 장교로 싸웠다.

전시 사회당 각료 비서실장레옹 블룸1872–1950

전시 사회당 각료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체코슬로바키아 민족평의회 공동창설자에드바르트 베네시1884–1948

1차 대전 중 마사리크·슈테파니크와 함께 민족평의회를 창설했다.

러시아 제국군 중장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1867–1951

러시아 제국군에서 복무해 제1차 세계대전 중 중장까지 올랐다.

동프로이센에서 중상을 입은 병사야코프 세레브랸스키1892–1956

1914년 제국군 복무 중 동프로이센에서 중상을 입었다.

러시아 제국군 하사관미하일 키르포노스1892–1941

1915년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어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러시아군 병사드미트리 파블로프1897–1941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 포로가 될 때까지 싸웠다.

러시아군 하사관으로 참전알렉산드르 고르바토프1891–1973

제정 러시아군 소속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소위바실리 체르니셰프1896–1952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군 소위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징집병니콜라이 야코블레프1898–1972

1916년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군 참전자니콜라이 안토노프-그리추크1893–1939

제1차 세계대전에서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네 등급 모두 받았다.

러시아 제국군 하사관니콜라이 블라시크1896–1967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군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전쟁 중 임시정부 외무장관파벨 밀류코프1859–1943

전쟁 중 임시정부 외무장관을 지냈다.

러시아 제국군 자원병이반 바그라먄1897–1982

1915~17년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캅카스 전선 페르시아 원정에 참여했다.

서부전선에 참전한 러시아 제국군 병사미하일 코시킨1898–1940

1917~18년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어 서부전선에서 부상했다.

러시아 제국군 장교표도르 톨부힌1894–1949

1914~1917년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참모대위까지 진급했다.

서부전선 복무와 혁명 선전알렉산드르 먀스니코프1886–1925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복무하며 병사들 사이에서 혁명 선전을 했다.

제국군 포병 장교레오니트 고보로프1897–1955

1차대전에 동원되어 제국군 포병 소위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군 장교알렉산드르 예고로프1883–1939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다섯 차례 부상하고 용맹 금검과 훈장을 받았다.

차르군 복무 군인이즈라일 다긴1895–1940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차르군에서 복무했다.

루마니아 전선 병사위원회 의장드미트리 쿠르스키1874–1932

제1차 세계대전 중 루마니아 전선 제4군 병사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전쟁 지지로 돌아선 사회주의 언론인귀스타브 에르베1871–1944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애국주의와 전쟁 지지로 돌아섰다.

제정 러시아군 소위샬바 체레텔리1894–1955

1914년부터 1915년까지 제정 러시아군 소위로 복무하다 포로가 됐다.

제정군 장교로 참전보리스 샤포시니코프1882–1945

제정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군 징집병미하일 라셰비치1884–1928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두 차례 부상했다.

러시아 기병대 복무자미하일 프리놉스키1898–1940

1916년 1월 기병대에 입대했고 그해 8월 탈영했다.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장교에두아르 달라디에1884–1970

1914년부터 1918년까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병에서 중위까지 올랐다.

루마니아 전선의 차르 포병대 하사관레프 메흘리스1889–1953

1911~1917년 차르 포병대에서 복무하며 루마니아 전선에서 고급 하사관으로 있었다.

러시아 제국군 포병 하사관이반 코네프1897–1973

1916~1917년 러시아 제국군 포병 하사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러시아 제국군 기병콘스탄틴 로코솝스키1896–1968

1914~1917년 제5 카르고폴 용기병연대에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랑스 전선에 복무한 러시아 군인로디온 말리놉스키1898–1967

러시아 원정군 소속으로 프랑스에서 복무하고 무공십자훈장을 받았다.

제정군 기병 하사관게오르기 주코프1896–1974

1915년 제정군에 징집되어 용기병 연대 하사관까지 올랐다.

동맹국43명

집행 · 지휘10

참여27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복무자예브헨 코노발레츠1891–1938

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복무했다.

동부전선 참전 장교햘마르 프리돌프 실라스부오1892–1947

1915~1918년 독일에서 훈련받고 동부전선에서 싸웠다.

독일 사민당 의원으로 전쟁공채 표결에 참여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1850–1932

1914년 8월 사민당 의원단과 함께 전쟁공채에 찬성했다.

무기 소지를 거부한 독일군 복무자카를 코르슈1886–1961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군에 복무하며 무기 소지를 거부했다.

바이에른군 창기병 장교한스 폰 만토이펠-쇠게1894–1919

바이에른군 제2창기병연대에 자원해 서부와 동부 전선에서 싸웠다.

전쟁공채와 성내 평화를 지지한 SPD 지도자프리드리히 에베르트1871–1925

전쟁 중 전쟁공채와 「성내 평화」를 지지했다.

오스트리아 전쟁 지지 지도자빅토어 아들러1852–1918

개인적 의구심에도 정부의 전쟁을 지지했다.

전쟁 포로 구호 활동가막스 폰 바덴1867–1929

전쟁 중 적십자와 전쟁 포로 구호 활동을 했다.

서부전선 포병 장교알프레트 요들1890–1946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서부전선에서 포병 장교로 복무했다.

독일 측 동부전선 복무자빌헬름 리터 폰 레프1876–1956

제1차 세계대전 동부전선과 세르비아 전역에서 복무했다.

독일 해군 고위 참모장교에리히 레더1876–1960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 고위 참모장교로 복무했다.

폴란드 군단 보병연대 장교스테판 로베츠키1895–1944

제1·제5 폴란드 군단 보병연대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 기병 장교타데우시 부르코모로프스키1895–1966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군 기병 장교로 참전했다.

독일 측 전투기 조종사헤르만 괴링1893–1946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측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독일군 참모 장교고트하르트 하인리치1886–1971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복무했다.

독일군 통신·참모 장교하인츠 구데리안1888–1954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군 통신·참모 장교로 참전했다.

핀란드 엽병으로 동부전선 전투 참여에리크 하인리히스1890–1965

1915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에서 훈련받고 동부전선 전투에 참여했다.

독일군 참모 장교발터 모델1891–1945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 장교로 두각을 나타냈다.

양 전선에서 복무한 참모 장교에리히 폰 만슈타인1887–1973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양 전선의 참모 장교로 복무했고 대위로 종전했다.

독일 예거대대 지원병파보 탈벨라1897–1973

1916년 제27프로이센 예거대대에 지원병으로 복무했다.

독일군 참모 장교프란츠 할더1884–1972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 장교로 복무했다.

독일 자금으로 혁명망 구축알렉산드르 파르부스1867–1924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정부의 자금으로 러시아 혁명 조직망을 구축했다.

서부전선에 참전한 독일 병사리하르트 조르게1895–1944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세 차례 부상을 입었다.

독일군 복무 병사아돌프 히틀러1889–1945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 복무했다.

독일군 자원병에른스트 톨러1893–1939

독일군에 자원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징집병너지 임레1896–1958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1916년 러시아군의 포로가 됐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병사요시프 브로즈 티토1892–1980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복무하다 부상당하고 포로가 되었다.

반전 사회주의자53명

참여49

전쟁을 막으려 한 반전 운동가장 조레스1859–1914

1914년 7월 독일 사민당과 국제 총파업을 추진해 세계대전을 막으려 했다.

불가리아의 참전 반대자디미터르 블라고예프1856–1924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다.

독일의 참전과 전쟁을 반대한 좌파프란츠 메링1846–1919

전쟁 발발 때 독일의 참전을 반대했다.

반전 선언 서명자알렉산드르 샤피로1882–1946

전쟁 중 크로폿킨의 연합국 지지에 반대하고 반전 선언에 서명했다.

반전 사회주의 운동 조직자안젤리카 발라바노바1878–1965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뒤 반전 사회주의자들을 결집했다.

반전파 지도자표도르 로트시테인1871–1953

제1차 세계대전 중 BSP 안에서 친전 노선에 맞서 좌파 반전파를 이끌었다.

전쟁공채 반대 의원카를 리프크네히트1871–1919

1914년 12월 2일 전쟁공채에 홀로 반대표를 던졌다.

전쟁에 반대한 사회주의 활동가클라라 체트킨1857–1933

전쟁에 반대하고 1915년 베를린에서 국제 여성 반전 회의를 조직했다.

반전 선동가하인리히 브란들러1881–1967

1914~1916년 반전 활동을 했다.

전쟁 반대 운동가실비아 팽크허스트1882–1960

1914~1918년 전쟁 반대와 징병 거부 운동을 벌였다.

전쟁 반대 사회주의자카를 카우츠키1854–1938

1917년 전쟁 반대 입장으로 사민당을 탈당하고 USPD를 공동 창립했다.

반전 국제주의자보리스 캄코프1885–1938

1915년 치머발트 회의에 참석하고 반전 국제주의자로 활동했다.

혁명전쟁을 주장한 반전파니콜라이 부하린1888–1938

브레스트에서 혁명전쟁을 주장한 최좌파였다.

전쟁 반대파쿠르트 아이스너1867–1919

전쟁에 반대해 USPD에 들어갔다.

전쟁공채에 반대한 노동당 의장램지 맥도널드1866–1937

1914년 8월 노동당이 전쟁공채를 지지하자 의장직을 사임했다.

반전 운동가키어 하디1856–1915

전쟁에 끝까지 반대하다 1915년 숨졌다.

짐머발트파 사회민주주의자블라디미르 보이트인스키1885–1960

1914~1916년 시베리아에서 짐머발트파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활동했다.

반전 국제주의 활동가아브람 고츠1882–1940

우솔리예 유형지에서 시베리아 치머발트파와 함께 반전 국제주의 활동을 했다.

군대 내 반전 선동가그리고리 추드놉스키1890–1918

1917년 군대에서 반전 선동을 했다.

독일 반전 운동가율리안 마르흘레프스키1866–1925

스파르타쿠스단에서 활동하다 반전 운동으로 독일에서 투옥됐다.

국제주의 좌파 사회주의자마르크 나탄손1850–1919

제1차 세계대전 중 치메르발트·킨탈 회의에서 국제주의 입장을 견지했다.

전쟁 차관 반대 투표알렉세이 바다예프1883–1951

전쟁이 발발하자 볼셰비키 두마 의원들과 함께 전쟁 차관에 반대표를 던졌다.

반전 국제주의자알프레드 로스메르1877–1964

치머발트 회의에 프랑스 참가를 조직하고 전쟁 내내 반전 활동을 지속했다.

반전 선전으로 징집·투옥된 활동가아우구스트 탈하이머1884–1948

스파르타쿠스단에서 활동하며 반전 선전을 했고 징집되어 투옥됐다.

전쟁 반대 활동을 한 저널리스트애나 루이즈 스트롱1885–1970

시애틀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다.

반전 노선 신문 발행 실무자뱌체슬라프 카르핀스키1880–1965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위스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의 창간과 배포를 맡았다.

협상 종결과 무병합 평화를 촉구한 의원필리프 샤이데만1865–1939

1917년 5월 15일 제국의회 연설에서 외교로 전쟁을 끝내고 병합 없는 평화를 맺자고 촉구했다.

반전 활동을 한 아나키스트프세볼로트 예이헨바움1882–1945

1915~1916년 프랑스에서 반전 활동을 하다 당국의 추적을 피해 미국으로 도피했다.

반전 논설을 쓴 사회주의자유진 V. 뎁스1855–1926

1915년 반전 논설 「나는 결코 군인이 되지 않겠다」를 썼다.

징병 반대 조직가에마 골드만1869–1940

1917년 징병 반대 활동을 조직해 2년형을 선고받았다.

반전 활동가이사크 시테인베르크1888–1957

1915년 반전 활동으로 체포되어 우파 현에 유배됐다.

전쟁 반대 사회주의자구스타프 란다우어1870–1919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다.

치머발트 회의 참석자펠릭스 콘1864–1941

스위스 망명 중 치머발트 회의에 참석해 국제주의 좌파로 활동했다.

반전 활동을 한 볼셰비키 의원그리고리 페트롭스키1878–1958

1914년부터 1917년까지 반전 활동으로 체포되어 투루한스크에 유형되었다.

반전 활동가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반전 활동으로 1915년부터 1918년까지 투옥됐다.

영국의 반전 활동가게오르기 치체린1872–1936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반전 선동을 벌였다.

반전 국제주의자율리 마르토프1873–1923

마르토프는 침머발트 반전 회의에 참가하고 1917년 내내 전쟁 지속에 반대했다.

반전 활동으로 군사법정에 회부된 활동가빌헬름 피크1876–1960

1915년 반전 활동으로 군사법정에 회부됐다.

반전 국제주의자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1875–1933

망명 중 반전 활동을 했다.

국제주의적 반전 볼셰비키그리고리 소콜니코프1888–1939

제1차 세계대전을 국제주의적 입장에서 반대했다.

반전 사회주의자드미트리 마누일스키1883–1959

1차대전에 반대하고 트로츠키와 반전 신문을 발행했다.

치머발트 회의 조직자크리스티안 라콥스키1873–1941

1915년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반전 좌파가 모인 치머발트 회의의 조직을 도왔다.

짐머발트 좌파 대변인그리고리 지노비예프1883–1936

1915년 9월 초 반전 짐머발트 회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좌파를 대표해 발언했다.

치머발트 좌파의 반전 사회주의자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치머발트 좌파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반전 사회주의자레프 트로츠키1879–1940

1차 세계대전 중 반전 입장을 취하고 파리와 뉴욕에서 망명했다.

반전 사회민주당 창당 참여자아르투어 크리스피엔1875–1946

1917년 전쟁 지지에 반대해 독립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전쟁에 반대한 국제주의 사회주의자페르낭 로리오1870–1932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쟁 협력에 반대하고 짐머발트의 입장을 지지했다.

혁명적 직장위원 지도자리하르트 뮐러1880–1943

혁명적 직장위원을 이끌고 베를린 반전 파업을 조직했고, 이때 처음으로 노동자 평의회가 폭넓게 선출되었다.

세르비아 사회민주당 지도자디미트리예 투초비치1881–1914

1914년 11월 콜루바라 전투에서 세르비아군 병사로 전사했다. 트로츠키는 그의 죽음을 세르비아와 발칸 사회민주주의가 전쟁에서 입은 가장 큰 타격이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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